제3의 눈
이마 중앙에 위치한 제3의 눈은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높은 스승들만의 통찰력이다. 이것은 인간 내면의 지혜를 일깨워,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와 카르마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그려내면서, 마음법의 진수 정확하게 바로 볼 수 있는 무상(無上)의 법문이다.
불가(佛家)에서는 부처님의 제3의 눈으로 칭송되며 혜안, 불안, 법안으로 존칭되는 서방정토의 출입문이며 이근원통의 진원지이다. 성경에서는 ‘좁은 문’으로 표기되며 상징적으로 해석되지만, 그곳에 도달해보지 않으면 성서의 구절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특히 힌두교에서는 이마 한 중간에 점을 칠하는 것으로 수행의 목표점을 여실히 나타낸다.
이러한 전통이 오늘의 가톨릭에서도 남아 있어 세례 시에 이마에 성유(聖油)를 바르는 종교의식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이처럼 세계 4대 종교 모두에 형식으로 남아 있어 그 신비함을 더하고 있다. 제3의 눈, 그곳은 인간이 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해탈의 문이며 절대계의 초입이다.
또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대자유인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최상의 법문으로 비밀리에 전해져오고 있다.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여러 가지의 해법들이 등장한다. 그중 몇몇 외국단체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부처의 최고법을 전수한다며 국내로 슬그머니 유입되어 신비감을 부추기고 있다.
그중 하나가 미륵불이다. 대만에서 출발한 포대화상의 미래불을 모시는 불교단체다. 이마 한 중간에 의식을 동원하여 집중하는 참선법을 개발하여 한의학의 물의 찬기운은 올라가고 불의 뜨거운 기운은 내려간다는 수승화강의 논리를 앞세워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을 앞세워 일세해탈을 꿈꾸는 단체다. 베트남 출신의 비구니 청해무상사도 이마의 천목(天目)혈에다 집중을 요구한다. 입문하는 즉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관음을 득하면 일세해탈과 함께 5대조 조상의 업장을 녹여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포교의 캐치프레이즈다.
그들과 유사한, 인도의 다카르싱을 추종하는 단체도 국내활동이 대단하다. 청해무상사의 스승임을 자처하며 유기농법과 선수행을 포교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관음법문 단체다.
국내의 모 수련단체에서도 비법이 공개된다. 대선사가 공개하는 비법이라며 자기최면을 소개하고 있다. 이마 한 복판에 딱따구리가 긴 부리로 경혈을 쪼아서 열고 있는 그림을 그리는 자기최면법이다.
또 자기 스스로 견성(見性)한 수행자로 자처하는 작가 출신의 기수련가는 입정(入定)시에 천목혈을 집중하면 개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딱따구리보다 한수 위인 터널을 파는 굴착기를 동원하는 의념의 그림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 기록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도 제3의 눈을 개혈하였다거나 지혜의 통찰력을 얻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오직 이들의 기법을 주장하는 그들 단체장의 목소리만이 유일하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라가면, 지혜는커녕 영적 장애에 노출된다. 따라서 두뇌의 과부하 현상인 상기병인, 두뇌질환으로 연결되어 정신분열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다.
지혜의 근원인 제3의 눈을 열수 있는 방법을 굳이 비법이라 하여 숨길 필요도 없고 신비주의라 하여 감출 것도 없다. 불전에서는 ‘깨달음을 얻으면 지혜의 눈이 열리며 혜안이 개안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한다. 번뇌 망상의 중생도 ‘육근(六根)을 쉬게 하는 무심’을 이루기만 하면 지혜(반야바라밀)를 얻을 수 있음을 누누이 설명하고 있다.
‘무위(無爲), 함이 없는 함’은 노장사상의 핵심이다. 선불교가 어떠한 이론보다도 무위(無爲)를 받아들임으로써 깨달음을 더욱 더 정확한 논리로 정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무위의 결과물이며 수행의 핵심인 제3의 눈은 생물학적인 눈이 아니라 초자연적이며 초월적인 안목이다.
지혜의 눈이란 통찰력을 말한다. 만물을 직관하여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도 이곳에서 저곳을 보듯 시공간을 초월하여 훤하게 볼 수 있는 힘이다. ‘의식의 통제’에서 나타나는 달마대사의 ‘묘한 작용(妙用)’은 이제 무위법을 대변하고 광원의 근원을 설명하고자 한다.
불가에서는 혜안, 법안, 불안(佛眼)으로 지칭되는 이곳은 영적인 깨달음의 대명사이다. ‘묘한 작용’의 한 부분인 ‘백회혈과 관음, 제3의 눈’의 등장은 수행의 마지막 단계과정을 객관화한다.
제3의 눈은 깨달음의 통찰력이며 법력의 효시다. 따라서 차원이 다른 영혼의 세계는 물론 지난 생의 흔적인 전생이나 카르마까지도 모두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무속인의 영적인 능력(靈眼, 영혼과 귀신을 볼 수 있는)과 고급 명상 수련가의 법력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영혼의 세계를 감지하거나 보는 것을 동일하다고 혼돈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속인들은 오직 접신(接神)을 통하여 귀신을 볼 수 있는 것뿐으로, 선수행자는 명상을 통해서 영혼을 볼 수 있어 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영혼의 세계가 하나로 된 평편한 공간이 아니다. 그 등급이 각기 달라 최고(?)의 높은 접신(接神)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영혼도 있다. 하지만 어떤 접신의 힘으로도 영혼의 제도나 퇴마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단지 시끄럽고, 귀찮게 굿판을 벌여 잠시 도망치게 하는 것뿐이다.)
청정(淸淨)으로 무장한 법신의 눈, 법안(法眼)은 영혼의 모든 세계, 영계(靈界)를 제압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영혼의 세계를 넘어선, 시공을 초월한 카르마의 흔적까지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고 카르마속의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는 또 다른 고차원 세계의 진입로인 것이다.
영혼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비이성적일 수 있지만 죽음과 연관된 영혼이 머무는 곳으로 정리하면 쉽다. 그러나 그곳도 현실의 삶과 같이 등급이 구분되어 시공간에 갇힌 4차원의 영혼의 세계와 또 다른 고차원의 시공간을 초월한 카르마로 분리할 수 있다.
카르마란 지난 생은 물론 빅뱅 이후의 모든 인연과 삶의 흔적을 총칭한다. 제3의 눈은 영혼의 세계를 정복함은 몰론 그 너머에 있는 고차원의 카르마를 녹이는 빛이며 동시에 그 빛을 만들어내는 광원이다. (뒷장 카르마편에 다시 설명함)
그럼 제3의 눈은 어떻게 개발되는가? 한때 시중에서는 단전호흡법의 대가로 자처하는 착각도사가 이마 한 복판에 딱따구리가 이마를 쪼는 그림을 연상하는 자기최면법을, 또 어떤 명상단체의 작자는 굴착기로 광석을 캐듯 이마를 쪼는 자기최면을 연상하라고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개발되지 않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자기최면이나 의념수련이 아닌 오로지 ‘의식의 통제’에서 나오는 무위의 선(禪)수행만이 그곳에 당도할 수 있다.
관음(觀音), 소리의 파장은 머리 언저리 – 저 멀리에서 시작하여 점차 머리 한 복판, 백회혈로 다가선다. 소리의 파장이 점점 확대되어 밀도가 강해지면 크라운 챠크라는 가속으로 가동하면서 전격적으로 카르마를 분해하며 내보낸다.
정진의 시간이 쌓이면 소리는 이마 정중앙의 제3의눈(천목혈)으로 자리를 이동한다. 이때 관음(觀音)은 소리의 파동에서 빛으로 변화하면서 수많은 빛의 입자들을 증폭시키며 제3의 눈을 개안한다. 이때쯤은 카르마를 하나씩 캐서 내보내는 과정을 지나 카르마 그 자체를 바로 녹이는 용광로 역할이 시작된다.
관세음보살과 아미타불의 등장이다.
성경의 가브리엘 천사와 미카엘천사의 비유와 동일한 것 같다. 필자도 소리법문의 수행끝자락에서 가브리엘 천사를 목격한 것은 어릴 적부터 믿어온 가톨릭의 영향인 듯하다.
아미타 부처님이 어디에 계시는가?
마음에 붙여두어서 부디 잊지 말라
생각하여 생각이 다해 생각이 없는 곳에 이르면
6근의 문에서 항상 자금광을 놓으리라.
아미타불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미타파(AMITAPA)이며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을 뜻한다.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빛의 이름이 아미타파이다. 칠흑과 같은 무진장세월의 어둠의 세계일지라도 한줄기의 강렬한 빛은 화롯불위에 잔설 녹듯이 단숨에 어둠을 녹일 수 있다.
우리의 카르마는 지난세월 수만 수천(數萬數千) 삶의 흔적들이며 갚아야할 빚으로 겹겹이 쌓인 어둠의 동토 층이다.
제3의 눈을 활용하는 선지식의 법력은 빛의 파장으로 변모하면서 후학들에게 법의 가르침이 시작된다. 정진의 시간이 쌓여 후학들도 어느 수준으로 향상되면, 영혼의 맑음은 머리끝 백회를 개혈하고 하늘의 소리, 관음(觀音)을 연결하면서 밝음을 소지하게 된다. 그 중간에 달마조사의 ‘묘한 작용은 항하수 모래알같이’ 수많은 작용을 되풀이한다.
마침내 관음은 소리에서 빛으로 변하면서 이마 한복판 제3의 눈을 개혈한다. 한동안 이곳에서 머물던 빛의 행렬은 쉼 없는 정진의 시간을 요구한다. 마침내 뒷머리로 연결되는 빛의 파노라마는 원통터널을 서서히 만들어나간다.
이마와 뒷머리로 연결되는 원통터널은 이성적이며 구체적이며 객관적이다. 그러나 아직 완성의 단계는 아니다. 그 다음의 경지가 기다리고 있다.
악마의 눈을 피해, 악마를 두려워하지 않는 경지, 곧 악마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지가 이곳이다. 능엄경에 이르면 관음(觀音)은 관세음보살이 깨달음을 얻은 최고의 지혜법문이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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