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6장 1절 -34절
찬송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오늘 말씀에는 이스라엘로 불리는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가나안 땅, 헤브론을 떠나 브엘세바를 거쳐 애굽의 고센땅으로 이동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생애에서 중요한 두 번의 이주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간 것이고, 두 번째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생애를 보면, 모두 세 번에 걸친 중요한 이주가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3번에 걸친 이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때마다 모두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말해서 야곱의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는 때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1~2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야곱이 헤브론을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렀습니다. 브엘세바는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져 있습니다. 흔히 가나안 땅을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표현합니다. 단이 가나안 땅 북쪽 끝이라면, 브엘세바는 가나안 땅의 맨 남쪽 끝에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브엘세바를 지나면 사막지대가 애굽까지 펼쳐집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3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야곱을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었습니까?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야곱은 창세기 37장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에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던 야곱이 이제 애굽으로 떠납니다.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야곱은 바로 앞에서 130년의 험악한 세월을 살아왔다고 고백했습니다. 130세면 인생의 황혼기입니다. 새로운 변화와 모험을 원하지 않는 때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130년 인생 동안, 가나안 땅을 떠난 기간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얻은 댓가로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서 살았던 20년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110년 동안을 가나안에서 산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인생 말년에 110년이나 살았던 삶의 터전을 떠납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이기에 그 땅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신앙적인 문제와 직결되는 일입니다. 애굽은 어떤 곳입니까?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애굽왕 바로에게 아내 사래를 빼앗긴 곳입니다.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던 부끄러운 기억의 현장입니다. 또한 아버지 이삭에게는 창세기 26:2절에서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경고하신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애굽으로 지금 야곱은 자신의 삶의 자리를 옮기려고 했기에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상 중에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약속 하셨습니다. 하나는 야곱의 가문이 애굽에서 큰 번성을 이룰 것이며, 둘째는 야곱이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두 가지, 즉 크게 번성할 것이며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온다는 말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보다 더 중요한 말씀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아무리 잘되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사야 7:14절에 보면,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서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메시야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이름은 그 존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이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라는 뜻입니다. 그 만큼 중요한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셨으며, 그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5~27절까지는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의 가족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명단에는 2명의 여인, 디나와 야곱의 손녀 ‘아셀’의 딸 ‘세라’를 제외한 70명이 애굽으로 이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70명이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룹니다. 그리고 수 백년이 흘러 출애굽을 하게 됩니다. 민수기 1:46절에 보면, 출애굽한 20세 이상의 남자만 603,550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 20세 미만의 남자를 모두 합하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는 200만명이 넘습니다. 야곱을 포함한 70명이 애굽으로 갔는데, 2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약속의 땅으로 돌아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며,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하나님의 결코 짧지 않은 능력의 손 안에서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8~34절까지는 야곱과 요셉의 상봉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0여년 만에 이산가족처럼 떨어져 살다가 상봉하였으니 그 감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 요셉을 만났을 때, 그것도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아들을 만났을 때, 아버지 야곱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30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지금 죽어도 좋다’ 현재 너무나 행복하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치고 이 보다 더 극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죽어도 좋다. 교우님들은 이런 고백을 지금까지 살아오시는 동안 몇 번이나 하셨습니까? 어떤 분은 1번, 어떤 분은 2번, 3번.. 아니 그 보다 더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의 그 고백이 지금 돌이켜 보면, 그 한 순간의 감격으로 그쳐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때는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왜 그때 그런 생각을 가졌었을까.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세상으로 인한 이와같은 고백은 후회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셈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만, ‘지금 죽어도 좋다’는 이 고백이 단지 한 순간의 감격으로 그치거나 후회로 끝나버리는 허망한 고백이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서 참된 고백으로 승화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셈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갈 때만, 절제와 의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이 세상을 살다보면 ‘지금 죽어도 좋다’는 행복에 겨운 고백을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고백이 이 세상에만 국한된 허망한 고백이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서도 의미있는 참된 고백으로 승화되게 해 주옵소서. 이 세상에서만 좋은 게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서도 좋은 것을 추구하며 살게 해 주옵소서. 잠시 잠깐의 기쁨을 주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오늘 이 세상을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약속의 땅과 이방의 땅을 들락날락 하며 살았으나 종국에는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던 야곱의 인생을 묵상해 봅시다.
2. 두려움에 사로잡힌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3. 약 70명의 가문이 약 200만명으로 번성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지금 죽어도 좋다’는 고백이 순간의 기쁨을 표현한 곳이 아니라 영원으로 승화되기 위해 오늘 내가 결단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작성: 이성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