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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8. 3. 1. 21:31
[탐정 손수호] "여의도 면적 8배 이완용 땅, 누구에게 갔나?"
CBS 김현정의 뉴스쇼입력 2018.03.01. 13:42수정 2018.03.01. 16:42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손수호(변호사, 법무법인 현재 강남사무소)
탐정의 눈으로 사건을 들여다봅니다. 탐정 손수호. 우리 사회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건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이죠. 탐정 손수호. 오늘도 손수호 변호사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손수호>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공휴일이잖아요, 오늘. 공휴일에는 뭐 하세요? 사무실은 쉬는 날이실 테고.
◆ 손수호> 오늘도 일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희 팀이 다 일하죠.
◇ 김현정> 평생이 일이에요, 손수호 변호사는.
◆ 손수호> 3.1절에는 더 여유롭게 일할 수 있죠.
◇ 김현정> 어쨌든 일.
◆ 손수호> 일 많이 할 때예요, 지금.
◇ 김현정> 저녁이 있는 삶을 좀 누리시기를, 언젠가는 손수호 변호사도.
◆ 손수호> 저녁도 여유 있게 먹습니다, 회사 근처에서.
◇ 김현정> 회사. (웃음) 굉장히 만족하는 삶을 사시네요, 긍정적인 삶.
◆ 손수호> 일거리 많은 걸 감사히 생각해야죠.
◇ 김현정> 정말 부지런한 손 탐정과 함께 합니다. 오늘 3.1절에도 함께하는 탐정 손수호. 오늘 주제를 3.1절과 관련된 걸 가져오셨나 모
르겠어요.
◆ 손수호> 네, 그렇습니다. 작년 광복절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약속을 했어요.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삼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사라지도록 하겠다.
◇ 김현정> 저도 기억납니다, 이 말.
◆ 손수호> 대통령이 이런 약속을 해야 할 정도인데. 실제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았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 김현정> 궁금합니다.
◆ 손수호> 오늘 대표적인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삶을 살펴보고 지금 개선할 부분이 혹시 있는지 생각해보려 합니다.
◇ 김현정> 사실은요. 친일파들이 떵떵거리고 잘 산다. 이거 뭔가 문제 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다 어렵게 살고 병을 앓고 제대로 교
육도 못 받고 이런 얘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정말 어떻게 사는지는 그러고 보니까 잘 몰랐던 것 같아요.
◆ 손수호>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손 탐정과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소개할 인물 누구입니까?
◆ 손수호> 첫 번째. "매국노 중에서도 최고 매국노. 이완용(李完用)"
◇ 김현정> 이완용. 이완용 빼고는 매국노 설명이 안 되죠.
◆ 손수호>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매국노죠. 그런데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도 있어요.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 아시죠?
◇ 김현정> 독립신문.
◆ 손수호> 네, 독립신문을 발행한 서재필 선생. 1897년 11월 11일자 독립신문에 이런 내용이 실렸습니다.
◇ 김현정> 어떤 거요?
◆ 손수호> "이완용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이권을 외국에 넘겨주는 것에 반대했다.
이완용은 대한의 몇째 아니 가는 재상이다." 독립신문이 이완용의 애국심을 칭찬한 겁니다.
◇ 김현정> 독립신문이 '이완용은 우리 이권을 외국에 넘겨주는 거 반대했다'고 썼어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이완용은 조선의 4대 명필로 불릴 정도로 재주가 뛰어났고 독립문을 세우는데 가장 많은 돈을 기부했다고 하는데요. 지금도 독립문 현판의 글씨가 이완용 글씨라는 설이 있을 정도죠.
◇ 김현정> 독립신문이 가짜 뉴스를 썼을리는 없고.
◆ 손수호> 그렇죠.
◇ 김현정> 한때는 존경받는 애국자가 맞았다는 얘기네요.
◆ 손수호> 명망 있는 지식인이었던 건 맞아요.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이었습니다. 지금의 외무부장관인 외무대신으로 일하면서 외국에
이권을 넘겼습니다. 그 대가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는데요.
그러다 결국 독립협회에서도 제명됐어요. 그 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참패하는 걸 보고나서 본격적인 친일 행보를 시
작합니다.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 병탄을 주도하면서 나라 팔아먹은 대가로 일제로부터 아주 많은 돈을 받았죠.
◇ 김현정> 그러니까 돈과 명예 다 챙긴 거예요.
▲이완용(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손수호> 네. 일제로부터 받은 돈으로 땅을 사서 되팔았습니다. 부동산 투기죠.
◇ 김현정> 그러네요.
◆ 손수호> 그래서 경성 최고의 현금 부자가 되었는데. 이게 어느 정도였다면요.
한때 여의도 면적의 8배 가까운 땅을 소유했고요.
◇ 김현정> 개인이?
◆ 손수호> 네. 전국에 이완용 땅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파악된 현금 자산만 200만 원이었는데, 이게 지금 가치로는 600억 원을 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 김현정> 현금으로 손에 들고 있는 거만 600억원. 땅은 여의도 면적의 8배. 이완용 땅을 밟지 않고는 전국을 다닐 수 없다고 할 정도.
◆ 손수호>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정말 나라 팔아서 자신은 떵떵거리고 산 거네요.
◆ 손수호> 권력과 부를 다 손에 쥐고 누리다가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요. 해방 전에 죽었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69세면 지금, '69세면 빨리 사망한 거 아니야?' 하실지 모르지만 그 당시로 69세면 장수 누린 거잖아요.
◆ 손수호> 천수를 누린 거죠.
◇ 김현정> 게다가 해방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완용이 죽고 그 많은 재산들은 어떻게 됐어요?
◆ 손수호>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의 98%를 해방 전에 팔아치웠습니다.
◇ 김현정> 이것도 또. 돈에 뭔가, 이재(理財)가 밝았네요.
◆ 손수호> 그래요. 일단 이렇게 현금화가 됐기 때문에 그 후 어디로 재산이 흘러갔는지 파악하기 참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이완용 후손들은 1992년 서울 북아현동에 있는 땅이 자기들 땅이라면서 국가를 상대로 소 제기 했
는데요, 이완용 후손들이 소송에서 이겼습니다. 그리고는 그 땅을 바로 30억원에 팔아버리고 캐나다로 이민 갔어요.
◇ 김현정>그러니까. 친일파의 재산을 해방 후에 환수하기는 커녕 친일파 후손한테 땅을 되찾아준 셈이 된 거네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국민들이 당연히 분노했죠. 이완용 재산 몰수하자는 서명운동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친일파 재산을 환수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국가가 환수한 이완용 일가의 땅은 19,000
제곱미터 그러니까 약 3,300평에 불과했는데요.
◇ 김현정> 이 정도면 어느 정도예요, 이완용 재산의 땅에서?
◆ 손수호> 이게 이완용이 가지고 있던 전체 땅의 0.05%. 극히 일부인 거죠.
◇ 김현정> 0.05%? 0.5도 아니고?
◆ 손수호> 네 0.05%. 나머지 친일 재산은 아직도 어딘가에서 안전하게 후손들에게 넘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 김현정> 그 친일 행위로 만든 재산이 버젓이 대물림이 되고, 심지어는 더 얻겠다고 재산 내놓으라고 소송까지 벌인다
니 기막힌 일입니다.
◆ 손수호> 네. 그렇죠.
◇ 김현정> 이완용. 다음 인물은 누구입니까?
◆ 손수호> 두 번째. "탐관오리의 대명사. 민영휘"
◇ 김현정> 민영휘.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여러분 기억 떠올려보세요. 어떤 인물입니까?
◆ 손수호> 1852년 서울생이고요. 당시 민씨 일족이 실권을 잡고 아주 기세 등등했습니다. 또 민영휘의 아버지는 민두호라는 사람인데
요. 민두호(閔斗鎬) 역시 민씨 세도를 이용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돈을 긁어모은 걸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당시에 '민 쇠갈고리', 민씨 성을 가진 쇠갈고리라는 뜻이죠.
◇ 김현정> (웃음) 굉장히 직접적인 별명이네요.
◆ 손수호> 사실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중에서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 김현정> 누구라고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사람.
◆ 손수호>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민영휘 역시 민초들을 착취해서 재산을 모았는데요.
1930년대에는 조선 최고 갑부소리를 듣기도 했고요. 명성황후의 눈에 들어서 주요 관직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1893년 갑오농민 전쟁이 벌어지자 청나라에 진압군 파견을 요청한 '친청파'였다가, 경술국치 직후에는 또 일제에 빌붙
기 시작 하거든요.
◇ 김현정> 친일파가 되려고. 이랬다 저랬다.
◆ 손수호>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죠.
◇ 김현정> 기회주의자.
◆ 손수호> 또 민영휘는 아부에도 탁월했습니다. 평안도 관찰사 시절에 말로만 듣던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고종에게 선물했죠.
그후 민영휘가 광성의숙이라는 학교를 세우자 고종이 휘문의숙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내려줄 정도였습니다.
◇ 김현정> 이 휘문의숙이 지금 휘문고등학교예요?
◆ 손수호> 그렇죠,.
◇ 김현정> 그렇게 되는 거군요.
◆ 손수호> 그리고 이 휘문의숙 교정에 자기가 스스로, 죽기도 전에 자기 동상을 세웠는데요,
이게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동상이라고 합니다.
◇ 김현정> 최초의 동상이 민영휘 동상. 근대에.
◆ 손수호> 그리고 당시 다른 동상들은 전쟁물자로 다 공출되고 파괴됐지만, 이 민영휘 동상만은 건드리지 않았는데요.
민영휘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거죠.
◇ 김현정> 민영휘. 이 사람도 누릴 거 다 누리다가 해방 전에 죽었다면서요.
◆ 손수호>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해방 10년 전인 1935년에 사망했는데요. 이렇게 위세를 떨치던 민영휘가 죽었는데도,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이 장례를 초라하게 치러서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 김현정> 후손들 어떻게 지내요? 민영휘 후손들.
◆ 손수호> 민영휘가 친일로 얻은 권세와 재산은 3대도 아니고 4대까지 문제없이 내려갔는데요.
앞에서 말씀드린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
◇ 김현정> 지금 휘문중고등학교는요. 서울 대치동. 정말 금싸라기 땅에 있어요.
◆ 손수호> 풍문여고도 세웠고요. 또 손자 민병도는 제일은행장과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춘천에 있는 남이섬 유원지를 사서 아들에게 물려줬는데요.
지금 이 남이섬 유원지는 연 매출 300억원, 순이익이 80억원 수준이라고 합니다.
◇ 김현정> 지금 우리가 가서 즐기는 그 남이섬. 그러니까 짚트랙도 타고, 가면 타조도 있고 한 그 남이섬 유원지가 민영휘 자손 거예요?
◆ 손수호> 네. 아주 알짜 자산인 거죠.
◇ 김현정> 그렇군요.
◆ 손수호> 또 자손들 상당수가 미국에 거주하면서 우리나라를 오가고 있는데. 글쎄요.
우리나라에 세금은 제대로 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후손들이 종로 한복판 노른자위 부동산을 놓고 법정 싸움을 벌이기도
했죠.
◇ 김현정> 그러니까 2007년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조사위가 이 민영휘로부터 대물림된 재산. 그러니까 친일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
기로 결정을 했었잖아요. 그런데 그때 후손들이 재산을 다 개인 명의에서 법인 명의로 바꿨다면서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재산 환수작업을 회피하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의심되죠.
◇ 김현정> 환수 못 했어요, 결국?
◆ 손수호> 회수 작업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죠.
◇ 김현정> 그 친일 재산인 걸 뻔히 아는데 이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내려온 건지를 알면서도 환수할 길은 없는 상황. 국민들 들으면서 화가
나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이완용, 민영휘 거쳤습니다. 다음은 누구입니까?
▲삼일절(자료사진)
◇ 김현정> 송병준. 송병준 이름이 노다, 노다 대감이었어요?
◆ 손수호> '노다 헤이치로'라는 일본 이름으로 스스로 개명 한 건데요. 송병준은 조선 말기 무관이자 정치인이고 '정미칠적'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도 지냈고, 일제로부터 백작 작위까지 받습니다. 특히 송병준은 직접 일본 총리와 이토 히로
부미를 찾아가서 제안을 합니다.
◇ 김현정> 뭐라고요?
◆ 손수호> 직접 가서요. "1억 5,000만 엔을 주면 조선을 팔아넘기겠다. 그 돈으로 이렇게 넓은 조선 땅과 2,00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을
일본 손에 넣고 세금 받을 수 있지 않냐. 이건 절대로 비싼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믿기 어렵죠?
◇ 김현정> 이게 그러니까 그냥 야사가 아니고 진짜 기록으로 남아 있어요?
◆ 손수호> 정식 기록에 남아 있는 내용입니다.
◇ 김현정> 진짜 매국노네. 매국노 중의 매국노네요, 송병준도.
◆ 손수호> 그렇습니다. 송병준은 민영환 집안에 식객으로 있다 무과에 합격했는데,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자 일본 무역회사와 합작해서 부
산에 상점을 차립니다. 1호 친일 합작기업으로 볼 수 있겠죠. 분노한 군중이 이 상점을 때려 부수기도 했어요.
송병준은 그 후에 일제 지시에 따라 일진회를 만들어서 조선인들이 일본의 지배를 원한다는 내용으로 여론 조작까지 합니다.
◇ 김현정> 조선인들이 원해서 이렇게 일본이 지배해 주는 거다?
◆ 손수호> 그렇죠. 최근의 댓글 공작처럼 여론을 조작한 거죠. 또 매국의 대가로 백작 작위는 물론 거액의 은사금을 받아 챙기는데요.
고종 양위를 요구하면서 대신들을 협박하고, 국채보상운동 방해 공작까지 합니다.
또 민영환이 자신을 돌봐줬는데요. 국권 피탈로 상심하고 자결했죠. 가족도 남고 재산도 남았는데 남은 가족들을 협박해서 그
재산을 모두 빼앗아가요. 은인이든 친구든 가릴 것 없이 주변 사람들의 재산과 토지를 빼앗아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는데, 지금
도 송병준 일가 명의로 되어 있는 것이 전국에 수천만 평에 달한다고 합니다.
◇ 김현정> 여기도 그렇군요. 이 후손들은 지금 어떻게 삽니까?
◆ 손수호> 재산을 상속받은 아들이 송종헌이에요. 당시 전국적인 세도가로 행세했습니다. 그런데 광복 후 용인의 대저택과 전답을 급히
처분하고 서울로 피신했다가 반민특위에 체포돼서 조사 받다 사망했어요.
◇ 김현정> 그러니까 송병준의 아들 송종헌은 반민특위 조사 중 사망.
◆ 손수호> 네, 송종헌.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게 아니고요. 송병준의 손자인 송돈호가 등장합니다.
건설회사를 만들어서 운영했는데, 1990년대부터 할아버지 송병준의 토지를 찾는 절차를 진행합니다.
◇ 김현정> 아버지가 그렇게 옥중에서 사망을 하니까 뭔가 토지가 어딘가 막 있기는 있는데 뭔가 부정확하게 넘어갔을 수도 있겠네요,
자손한테.
◆ 손수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러자 그거를 되찾는 소송을 했군요.
◆ 손수호>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기꾼들이 많이 관여했고 실제로 사기극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당시에 문제됐던 땅이 서울 상암동 60만 평, 인청 부평 30만 평 또 강원도에도 200만 평 등등. 굉장히 많았어요.
송병준 명의로 되어 있던 땅이죠. 그런데 이걸 송돈호 손자가 곧 바로 찾아가겠다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중간에 한 단
계 거쳐 가려 합니다.
◇ 김현정> 어떻게 거쳐요?
◆ 손수호> 후손들과 브로커가 짜고 이 토지를 어떤 단체에 기증한다는 서류를 만들고요. 기부를 받은 단체가 "내가 이 땅의 주인이다"라
고 주장해서 소유권을 취득합니다. 그리고 이 단체가 땅을 찾은 다음 송돈호와 브로커가 반반씩 나누는 건데요. 짜고 치는 고스
톱이죠.
◇ 김현정> 굉장히 복잡하죠, 여러분? 쉽게 말하면 어떤 단체 A라는 어떤 자선단체에다가 기증하는 식으로 해서 명의를 바꿔놓고 기증단
체가 국가가 그거 내놔 하니까 아니, 나 지금 이거 기증받은 건데 내가 왜 내놔야 됩니까 이렇게 한 다음에 뒤로 반반씩 나눠가
졌다는 거군요.
◆ 손수호> 실무에서는 이걸 이제 '원쿠션'이라고도 하죠.
◇ 김현정> 이런 방법이 또 있군요. 참 기가 막힙니다.
◆ 손수호> 이게 언론 취재로 들통났어요. 그러자 손자 송돈호는 국가에 땅을 헌납하겠다고 선언합니다.
◇ 김현정> "그러면 헌납하겠습니다" 이렇게 했어요.
◆ 손수호> 그런데 이것도 거짓이었고요. 송돈호의 배다른 형 송준호가 국회를 찾아가서 국가 헌납 동의서를 작성했어요,
1997년에. 하지만 송돈호는 몰래 숨어서 땅 찾기 소송을 계속합니다. 2002년에 인천 부평에 있는 미군기지가 국가에 반환되
었어요. 그런데 이 땅을 포함한 일대가 모두 송병준의 소유라고 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위헌이라며.
◇ 김현정> 그러니까 국가가 친일파 재산 빼앗아가는 그 법은 위헌이라면서 헌법소원 냈었죠.
◆ 손수호> 참 뻔뻔한 거죠.
◇ 김현정> 저 이거 기억해요. 헌법소원 냈던 거 여러분도 기억하실 겁니다. 참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런 일 벌이는 친일파 후손들. 저는
그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지만 이게 가능했다는 게 더 이상해요. 우리 사회가 이걸 허용했다는 게 더 이상해요.
◆ 손수호> 바로 그 부분을 오늘 꼭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1990년에 이완용의 증손자가 서울 마포구에 있는 땅을 되찾아서 바로 팔아치웠
습니다. 그 때부터 친일파 후손의 땅 찾기 소송이 주목을 받았죠. 그런데. 친일파 후손이 16건의 소송 중 8건에서 승소합니다.
◇ 김현정> 친일파 후손이?
◆ 손수호> 당시에는 특별한 법령도 없었고요. 또 국민 정서나 법 감정과 별개로 법원은 제출된 증거에 의해 법리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건데요.
◇ 김현정> 그래서 그런 것에 반발하면서 나온 법이 바로 이 친일파의 재산을 우리가 환수하자라는 특별법이었던 거잖아요.
◆ 손수호> 네, 2005년이었죠.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친일 후손들의
땅 찾기는 계속되고 있고요. 심지어 2011년에요. 또 다른 매국노 민영은의 후손들이 청주시를 상대로 토지 반환 소송을 제기해
서 1심에서 승소 했습니다. 다행히 상소심에서 뒤집혔지만, 특별법에도 허점이 있었습니다.
◇ 김현정> 어떤 거요?
◆ 손수호> '친일 재산 귀속법'에 따르면 국권 침탈이 시작된 시점을 '러일전쟁 개전 시'라고 봐요. 즉 러일전쟁이 벌어진 날. 시작된 날. 그
때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 시점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걸 상속받은 재산을 그 대상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러일전쟁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라고 하면 이 법에서 정한 환수 대상이 아닌 거죠.
◇ 김현정> 그나마 이 환수 대상에서 빠지는군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위헌성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긴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죠.
◇ 김현정>그러니까 '친일재산귀속법', 이 특별법이라는 게 있는데도 다 막을 수 없다는 게 저는 좀 희한하네요.
◆ 손수호>그렇습니다. 또 잊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죠. 바로 친일파 후손과 함께 이권을 챙기는 사람들입니다. 우선 토지 브로커들.
◇ 김현정> 아까 짜고 치는 사람들.
◆ 손수호> 또 브로커들에게 도움을 주는 현직 공무원들, 지역 건달들. 실제로 송병준의 손자 송돈호가 경찰관계자, 거물급 조폭과 연결됐
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또 변호사들. 이런 소송하면서 거액의 성공 보수를 받기도 하는데, 이들 모두 제2, 제3의 친일
파라고 할 수 있겠죠.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게 살지 않길 바랍니 다.
◇ 김현정> 따끔한 한마디시네요.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게 살지는 말아라. 자손들한테 부끄러운 일은 하지 말아라. 오늘 3.1절에 참 맞
는 주제입니다마는 소개하면서도 내내 씁쓸해요. 손 탐정의 한마디.
◆ 손수호> 외국 사례를 잊지 말자.
◇ 김현정> 외국, 외국은 어땠습니까?
◆ 손수호> 우선 프랑스. 4년 동안 독일의 지배를 받았죠. 그런데 해방 직후에만 부역자 1만 명을 처형합니다.
◇ 김현정> 4년 점령당했는데, 4년 동안 식민지였는데도 1만 명을 처형했어요.
◆ 손수호> 그게 끝이 아니고요. 그 후 4년에 걸쳐서 7,000명에게 사형 선고를 하는데 징역형과 시민권 박탈 처분은 10만 명에게 내립니
다. 그리고 1990년대까지도 과거사 청산 작업을 지속하는데, 이게 프랑스뿐만이 아니에요. 네덜란드는 나치 협력자들을 엄하
게 처벌하기 위해서 1870년에 폐지했던 사형 제도를 특별히 부활시킵니다.
그러면서 150명 이상에게 사형 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무려 35년 동안이나 일제의 지배를 받던 우리는 반민 특위가 약 700
명을 조사해서 겨우 300명을 기소합니다. 그런데. 사형 1명, 무기징역 1명, 징역형 13명, 공민권 정리 18명.
◇ 김현정> 공민권 정리 18명.
◆ 손수호> 나머지는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이러니 친일 세력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 수밖에 없죠.
◇ 김현정> 부끄러워요, 저는 지금 들으면서 부끄러워요.
◆ 손수호>독립운동을하면 3대가 덕을 보게 하겠다고 대통령이 약속했지 않습니까? 꼭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오늘 탐정 손수호. 지금까지의 손수호 탐정 내용 중에 오늘이 가장 저는 착잡한 것 같습니다.
◆ 손수호> 가슴이 아프죠.
◇ 김현정> 그러게 말입니다. 손 변호사님 고생하셨고요. 또 얼른 가서 일하세요.
◆ 손수호>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탐정 손수호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CBS 김현정의 뉴스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