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마부(馬夫), 펄벅과 농부(農夫), 잇사(一茶)와 파리 (4)
까치밥과 타인능해(他人能解)
펄벅이 경주 일대를 여행할 때 감나무 끝에 매달린 몇 개의 홍시를 보고 "저 감들은 따기 힘들어 그냥 놓아둔 것이냐"라고 일행에게 물었다. 그러자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둔 까치밥"이라는 설명하였다. 그녀는 탄성을 지르며 "이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약 펄벅이 한국인들의 생활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면 곳곳에 숨겨있는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씨를 더 많이 느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까치밥 외에도 겨울에 소가 추울까봐 외투격인 덮석을 씌우고, 여물을 쑤어서 화식(火食)을 시키는 것도 우리문화의 특징이다. 또 닭이 알을 낳으면 둥우리에서 알을 몽땅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밑알을 남기는데 암탉의 모성애를 흩트리지 않으려는 주인의 마음도 까치밥과 다를 것이 없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운조루(雲鳥樓)의 타인능해(他人能解)에 대한 이야기이다. 운조루는 조선 영조 때(1776, 영조 52) 류이주(柳爾胄)가 낙안군수로 있을 때 건축한 것이다. 타인능해는 운조루의 쌀뒤주 여닫이에 새겨진 글자이다. 아무나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운조루의 주인이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커다란 뒤주가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어, 이웃의 눈치 보지 않고 쌀을 가져 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쌀뒤주 아래쪽에 ‘他人能解’라고 쓰인 마개를 열면 딱 한 줌씩 가져갈 수 있게 하였다. 가난 한 사람들에게 직접 쌀을 퍼줄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슬그머니 퍼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운조루에는 타인능해에 버금가는 것도 있다. 바로 굴뚝이다. 부잣집에서 밥 짓는 연기를 펑펑 피우는 것이 미안하여 굴뚝을 낮게 만들은 것이다. 이렇게 운조루에는 이웃을 돌보는 마음,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든가 우분투(Ubuntu)의 일면이 생생하게 부각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양날의 칼과 같은 현상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에서 삼복더위를 이기려는 전래풍습인 보신탕 문화도 있고, 토사구팽(兎死狗烹)도 있다. 마당가에는 개를 잡는 살구((殺狗) 나무도 있고, 보신탕을 먹고 나서 살구 씨를 먹는 풍습을 알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 변명 같은 ‘양날의 칼’도 좋지만, 적소적시(適所適時)가 있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니체와 마부에서는 니체는 자신의 고뇌를 말에게 투사시키고, 펄벅은 농부의 마음을 자신의 가슴에 담았고, 잇사는 자신의 처지를 파리의 운명에 대위시키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간이든 동물이든 서로가 배려의 대상임을 강조하는 사례이다.
[202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