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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주만성초등학교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kim su gon(8회)
황방산과 만성동
요즘들어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전주는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즐겨 찾을 수 있는 곳이 너무나 많다. 10여분만 나가면 산이 있고 강변이 있고 소공원도 있다. 자연적인 조건도 좋지만 행정기관에서도 부응해서 많은 투자를 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산보다는 농사지을 들판이 좋았다. 지금은 산을 찾는 사람과 인근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소위 웰빙 바람으로 많이 찾고 있다.
<황방산정상에서 바라본 만성동>
전주시내 서쪽에 있는 황방산은 중국대륙으로부터 서해바다를 거치고 호남평야를 지나 달려온 북서계절풍이 전주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인사를 해야 하는 지킴이 역할을 하는 산이다. 그러한 면에서 전주는 축복의 고장이다. 산과 들판의 마지막 분기점에 서서 자연재해도 별로 없다. 서해안에 도착하는 더운 공기의 구름이 찬 육지에 부딛치면서 큰비를 내리고 전주는 그냥 지나가면서 살짝 맛만 보여주고 덕유산, 지리산 자락이 있는 산간지역에서 또 한번 큰비를 마지막으로 내리는 이곳 전주는 완전한 고을 그대로다.
<황방산 용천바위에서 바라본 팔복동과 동산동>
겨울에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 군산을 비롯한 해안과 동부내륙에 눈을 쏟아 놓는다.
그러나 내 고향 전주하고 만성동은 奧地였다. 지금도 실제 생활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눈이 조금 내렸는데 동네까지 들어오는 시내버스가 눈 때문에 길이 위험하다고 일방적으로 전주 이서간 도로에서 들어오는 참새미까지만 운행하고 되돌아갔단다. 어머니는 그곳에서부터 30분 이상을 걸어서 집에 올 수 밖에 없었다 실은 다른 차들은 정상적으로 다니고 있는데.
이렇듯 불평도 안하는 순진한 촌로들이 사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도로망이라고는 팔복동과 전주 이서간 국도에서 연결되는 구불구불한 도로이고 원만성과 용정리로 이어지는 도로는 비포장으로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의 농로로 남아있고 지금도 지게로 져 날라야 하는 논둑과 밭둑길이 대부분이다. 요즘들어 고라니, 꿩, 비둘기 때문에 농사 망치기 일상이고 심지어 맷돼지까지 극성이다. 그러나 기지제(틀물방죽)는 겨울철새들의 낙원이고 봄이면 뻐꾸기, 뜸부기, 제비가 조잘대고 가물치, 개구리소리 들리는 논과 저수지에는 왜가리 백로가 낚시꾼이며 저수지 가장자리엔 스포츠용 경비행기활주로가 있어 동호인들이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틀물방죽옆 논에서 추수하시는 부모님과 멀리 보이는 황방산>
지역내 기관이라고는 만성초등학교가 있는데 한때 1000여명이던 학생이 지금은 7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1967년도로 기억하는 6학년 담임을 맡았던 윤경중 선생님이 작사를 하신 교가 구절이 생각난다. ‘황방의 아침햇살 우릴 깨우고 만성의 푸른들이 우릴 부른다. 백제의 옛 얼을 가슴에 새겨 굳건히 새 터전에 힘 모아 닦는 새 일꾼 7백건아 배움의 터전 그 이름 만성국교 우리의 자랑’
그리고 팔복동 나가는 뒤편에 호원대 교육원이 있고 교통방송국이 금암동에서 이전해왔다.
그나저나 동쪽 하늘에 바라보이는 것은 황방산이지 전주시가지가 아니다. 정월대보름 저녁에 보름달이 뜨는 것 바라보이는 것도 황방산이요 해가 뜨는 곳도 황방산이라 만성동은 황방산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숙명을 같이 하는 고을이다.
<만성동 옥계부락에서 추수하시는 부모님>
어릴 적 어른들 말씀에 저 산을 폭파시키든지 틀물방죽 건너편으로 옮겨야 이쪽도 발전될 거라 했다. 중.고교시절 이른 새벽에 등산을 할 때 보면 차이는 확연하다. 그때의 차별하는 것 같은 생각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시내쪽은 새벽안개 속에 불빛이 반짝거리는데 우리 부락을 비롯한 서쪽 이서면에는 희미한 호롱불 몇 개가 보인다. 인접 동네인 팔복동은 전기의 혜택을 일찍 받았지만 이곳 만성동은 70년대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농어촌 전화사업이 시작된 1974년에야 백열전구와 동네 이장집에서 전화기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생활권은 전주이지만 시내를 한번 가려면 큰맘을 먹어야 했고 당시 면소재지인 현재의 동산동사무소를 가려면 걸어서 1시간이상 거리이고 농협에 가거나 선거시 투표소를 가려해도 시내버스를 타고 효자동을 거쳐 완산동 중앙동 금암동 덕진 팔복동을 지나 전주시내를 한바퀴 돌아서 1시간이 걸리는 행정의 사각지대이다.
요즈음 들어 좁은 도로일망정 포장이 되어서 많은 차량들이 왕래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전주 서부신시가지 지역이 개발되고 서곡지역이 개발되면서 황방산은 본격적으로 등산로로서 각광을 받고 이산을 찾는 사람들은 발아래 만성동을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만가지 소원이 다 해결되고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일 것이다.
황방산 서측으로 크게 3개의 능선이 뻗어있다.
두현부락뒤 포강위 능선 고인돌이 있는 곳에서 수남재를 거쳐 월평뒤로 이어진 것과 만성주유소에서 서고사 올라가는길, 황방사에서 김해김씨 종산인 복숭아과수원에서 틀물방죽까지 원만성, 옥계동 뒤를 지나는 능선이 있다. 이는 북풍을 막아주는 동네 뒷재로 예전에는 왕소나무가 여러그루 있었는데 이것도 어느 순간 병충해를 못 이겨 전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두현부락 뒤에서 찰방으로 이어지는 작은 능선과 그 앞에 만성초등학교 교정과 용흥마을뒤 능선과 산 바로앞에 방마동이 있다.
전주에서 이서를 거쳐 김제로 나가는 길 건너에는 전주소각장시설로 집단 이주한 어전부락과 안심부락, 대흥동, 명밭동이 있고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 상림이 있고 저수지 건너에는 중동과 암멀 정문동 오공부락이 보이고 월평과 찰방부락이 1960년 조촌초등학교로부터 분리된 만성초등학교를 모교로 하며 지낸 동네들이 저 멀리 산골 마을같이 논과 밭사이에 옹기종기 흩어져 있다.
이 산은 굳이 풍수지리를 배우지 않은 사람이 보아도 듬직하게 엎드려 있는 황소같기도 하고 누렁개 같기도 한 모습으로 氣가 서려 있을 것 같아 보인다. 풍수적으로는 누렁개가 반산에 있는 밥을 먹으려 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틀물방죽으로 들어오는 물은 크게는 상림저수지에서 시작한 만성천이 본류이다. 그리고 황방산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물길은 두현부락 뒤 미륵바위아래 포강에서 월평앞으로 논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도랑과 서고사에서부터 옥계부락 앞으로 흐르는 규모가 큰 옥계천과 용천바위에서 시작하여 용골방죽에서 수렁골로 흘러내리는 물 또 하나는 호원대 교육원앞 도로 건너편 후곡제라는 저수지에서 논을 거쳐 하개동으로 흐르는 4줄기의 개천이 누렁개의 젖줄이라 한다.
이처럼 서쪽으로 경사진 지형으로 물은 자연유하식으로 월드컵경기장 가운데를 통과해서 화전리 들판을 지나 삼례철교 아래 수문을 통하여 만경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또한 옥계동과 원만성은 까마귀가 동네앞 사장터에 있는 시체를 뜯어 먹기 위한 형상이라고 하는데 동네앞에 석재공장과 교회가 들어서면서 까마귀가 놀라 도망을 가서 예전의 부를 누리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풍수학자 손석우선생은 말하고 있으며 명당자리가 이 일대에 있다고 한다.
산의 남쪽으로는 김제 부안으로 나가는 도로가 이어져 서전주 IC가 2km남짓 거리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예전에 전주를 가기위해 명당골재를 넘어 서곡과 서신동 고사평을 가기위해 건너던 징검다리가 이제 서곡교로 연결된 서부우회도로가 산 중턱까지 올라와 전주 IC로 이어지는 곳이며 장차 서부지역으로 발전해 나가는데 있어 고속철도는 물론이고 신공항이 건설되더라도 반드시 쓸모 있는 지역으로 생각이 되고 중앙행정기관이 이주한다 하더라도 이 지역이 適地 라고 본다.
그와 더불어 황방산은 등산코스로서 아주 좋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동네에서 만성주유소를 지나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좌우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고 중턱에 이르면 누렁개가 새끼를 품고 있는 듯 포근함이 느껴지는 어릴 적 인근 초등학교 단골소풍지 서고사가 있다. 원래 대웅전 앞 암반사이로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이 일품이지만 지하 100여미터 암반에서 뽑아 올린 물이 더 좋다.
<황방산 서고사>
이절은 항상 북서쪽을 바라보며 만성동을 내려다 보고 있지만 바람이 일지 않는 아늑한 곳이다. 이절을 좌로 하고 우측으로 난 등산로를 올라서면 예전에 서곡으로 넘어가던 고개에 다다른다. 여기서 좌측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고인돌이 있고 정상이 나온다. 또한 서곡에서 남측 공원묘지에 이르는 주등산로는 1시간거리의 코스로 좌우로 샛길을 이용하여 시민들의 이용이 많아졌다.
216미터의 정상에 서면 동남쪽을 바라보면 삼천천이 흐르고 전주천과 서신동에서 만나 북쪽으로 흘러 삼례 익산 들판을 거쳐 서해바다로 이어져 있고 전주신시가지와 화산공원 용머리고개, 완산칠봉과 시가지를 너머 기린봉과 운장산 남고산성과 고덕산, 남쪽으로 모악산이 하늘과 맞닿아 보인다. 북동쪽으로는 가련산, 건지산과 덕진연못, 고산천을 지나 봉동이 있고 서북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낮은 구릉과 평야이다. 가까이는 팔복동의 공장지대와 저수지 밑의 장동, 월드컵경기장, 용정리, 여의동, 동산동, 삼례, 미륵산, 익산이 보이고 좌우로 호남고속도가 지나고 있고 멀리는 김제 황산과 군산앞바다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천혜의 전망대이다.
산의 서쪽 능선 중턱 아늑한 곳에는 전주 주변의 동서남북 4대사찰인 동고사 남고사 진북사와 함께 여자스님이 주지로 있는 천년고찰 서고사가 있고 남쪽 능선 끝자락에는 시립공원묘지와 주로 際를 지내주기위해 일원사로 바뀐 산성안이라 불리는 암자가 있으며 이 산성안 주변으로는 성벽이 일부 훼손은 되었지만 흔적을 그대로 찾아 볼 수 있고 지역내에 있는 바위에도 黃 方 古 城 內 ......로 시작하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따라서 유사시 군부대의 감제고지로서 전주를 지키는 요새가 될 지역이며 또한 많은 역사와 유적을 간직한 산이다.
<황방산 산성안 바위>
한편 누구나 한번만 눈여겨보면 알 수 있는 고인돌이 등산로상에 여기저기 있고 이러한 것은 서쪽 산 아래까지 널려져 있다. 산 북쪽 서측 등산로 아래에는 지금도 물이 솟아나는 용천바위라는 곳이 있어 소원성취 하고자 발길이 잦은 곳이며 그 아래에는 황방사라는 절이 있고 북쪽 끝자락의 현 서부우회도로 옆에도 전주 제2산업단지 조성되기 전 감천리라는 지역이름 딴 감천사가 있다.
그 아래에 있는 동네가 약 150여호되는 원만성과 내고향 옥계부락이다. 아직도 김해김씨문중이 상당히 살고 있는 집성촌이고 정씨 윤씨를 비롯한 고향 지킴이 하고 있는 몇몇집안 토착민들이 살고 있는데 세월을 거슬러 사는 듯한 70년대 이전 모습이다.
아버지댁 옥상에서 바라본 황방산, 오른쪽이 옥계교회다.
도시가 팽창하면서 만가지가 이루어진다는 萬 成 洞 에 관심들을 가지고 있다. 산에서 바라보는 서쪽의 커다란 저수지는 어릴 적 겨울에는 썰매타고 여름에는 멱감고 조개잡고 마름따던 기지제라 불리는 틀못이다. 일제시대 황방산 서고사 아래에서 채석을 하여 제방을 쌓고 1932년에 완공한 저수지로 그 아래 농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쌓았다. 그로인해 만성동 주민들은 넓은 논밭을 모두 수몰당해야 했고 장동, 용산리, 동산동, 반월리 등 현재 월드컵경기장 인근이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저수지 아래 물 공급위해 년례행사로 물고기들이 수난을 겪었었는데 이제는 저수지둑 높임사업으로 저수량을 늘리고 아래쪽이 개발되어 몽리면적이 줄어들면서 수질정화를 하여 잘 보존하려 하고 있다.
황방산을 전주시의 중심 산으로 삼고 만성동이 개발되어질 때 街 路 중심으로 발달한 전주시가 재대로 발전형태를 갖추게 될 것이다. 예전에 소나무가 많던 산에는 인근 산업단지내 제지회사의 영향인지 소나무가 거의 없고 아카시아 칡 오리나무 등 활엽수가 판을 치고 남쪽 공원묘지 인근 일원사 아래에만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얼마전 고인돌을 발견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80년대 발간된 全州市誌 맨 처음부근에 소개되고 있다. 단지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다. 본인도 고인돌 사진들을 찍어 가지고 가서 팻말이라도 붙여달라고 해당부서에 갔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등산로상에 고인돌이 여러군데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고인돌위에 비석이 있다. 일제시대에 이 산에 소나무 조림을 한 지역유지들이 松 契 를 조직하였다는 내력이다.
본격적으로 만성동을 개발하려면 먼저 지역주민에 대한 배려와 환경개선을 위한 지원사업이 필요하며 인근 황방산에 대한 조사와 발굴, 내력에 대한 교육의 장이 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잘은 모르지만 후백제 시절의 성터와 서고사 그보다 수천년 전의 고인돌의 존재가치 이유 등을 재대로 조사하여 보존할 것은 더 망가지기 전에 심혈을 기울여 보존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황방산을 등산하면서 심신도 단련하고 전망이 좋은 이 산을 더욱 사랑해 주길 바라면서 아울러 역사가 살아 숨쉬는 산이라는 것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관심 있는 분들과 기관에서 지표조사와 사료연구를 통해 발굴도 하여 등산로를 따라 안내도와 설명서등을 설치하고 공원화사업을 위한 수종갱신과 팜플릿도 만들어 살아있는 배움의 장이 되는 시간을 가지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5 .2. 4 김 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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