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부터 매년 네팔을 방문해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는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그는 서양 정신분석학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으로 불교를 꼽았다. 그동안의 자비행과 불교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편집자>
“불교, 멀쩡한 기왓장 교체 말고 인재 육성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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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후 교수는 “신도들의 기복은 이를 바로잡아 주려하지 않는 스님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
△여전히 많은 직책을 갖고 바쁘게 지내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근황은 어떠신지요? 이화여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하면서 기존의 집을 개조해 ‘예띠의 집’을 짓고, (사)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해 네팔의 문화를 알리고 있습니다. 구랍 25일부터 1월 15일까지 네팔에서 50명의 경상대 교수와 학생들과 함께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왔습니다. 1989년 네팔로 처음 의료봉사를 데려 갔던 제자가 단장이 돼 50명을 이끌고 간 감격스럽고 뜻 깊은 활동이었습니다.
△약 20년 간 매년 네팔을 방문해 의료봉사를 꾸준히 하고 계신데 봉사를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나요? 네팔에 가보는 게 소원이던 학창시절 경북산악연맹 10주년 기념행사로 히말라야에 갈 기회가 생겼으나, 준비가 턱없이 부족해 아쉽게도 취소됐습니다. 이후 네팔에 가고 싶다는 염원이 커지던 중 첫 강의 때 사쿠라란 네팔인 학생을 만나며 그 원이 구체화됐습니다. 이후 사쿠라 가족과 연을 맺으며 네팔을 오가게 됐습니다. 또 1982년 한국산악회의 제안으로 6개월 간 네팔 학술요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 때 영국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대원 에드워드 힐러리를 한국 사람으로서는 처음 만났는데, 힐러리가 그곳에 병원을 짓는 등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의료 봉사의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후 1984년부터 네팔의료봉사단을 꾸려 지금까지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네팔뿐 아니라 국내 광명보육원에서도 40여 년 간 봉사해 오신 것으로 압니다. 광명보육원과는 인연이 깊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대구에 피난 온 보육원 아이들을 어머님이 돌보셨고 이 모습을 보며 저도 어른이 되면 이들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군의관 때 서울 창동 근무지 부근에 보육원이 있음을 알고 나서부터 보육원을 돕고 있습니다. 보육원에는 현재 50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데 행사 때마다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이에 인기가 많은 편입니다.(웃음)
△원장님처럼 성공하신 분들의 봉사활동이 더 많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분야에 충실하다 보니 시간 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문성을 갖춘 직업으로 한 사람에게라도 더 혜택을 준다면 그것 역시 질 높은 봉사가 되지 않을까요. 봉사도 습관적으로 몸에 배고, 스스로 동기가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봉사해야지’가 아니라 ‘하다 보니 봉사네’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티 등 어려운 지역의 고통을 상상하거나 공감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티 참사를 대하는 우리나라를 보면 씁쓸합니다. 아이티도 한때 우리나라를 원조했던 나라인데,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대한민국이 그들의 참사에 100만불을 원조했다고 합니다. 100만불은 없는 입장에서는 많은 돈이지만, 높은 국력이나 그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과거 역사를 비춰보면 부끄러운 액수입니다.
△불교와 연을 맺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독실한 불자였던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절에만 드나들지 않고 주로 보육원이나 적십자 등에서 봉사를 하는 등 부처님 말씀을 생활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신여성이셨습니다. 이 같은 불교와의 인연은 부처님이 태어난 곳이자, 전 세계에서 수도승이 모이는 네팔에 1982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한 해도 안 거르고 다니면서 더욱 깊어진 듯합니다.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는 부다가야보다 더 많이 다녔지요. 그럴 때마다 무슨 인연이 있어 그곳에 갔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어머니 원력 때문이 아닐까요(웃음).
△네팔에서 명상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자산을 사회에 기증하겠다는 사쿠라의 아버지와 함께 1986년 돌카라는 곳에 3층짜리 ‘네팔-이화 우정의 집’이란 병원을 짓고 그 안에 명상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매년 네팔을 찾을 때마다 그곳에서 명상을 합니다. 사쿠라의 아버지는 명상을 드러내놓고 하는 건 아니지만, 명상이 생활화돼 실천하는 사람으로 저만 보면 명상을 안 한다고 경책합니다.(웃음) 그곳에 들릴 때 함께 명상을 하지만, 오랜 기간 함께 명상을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현재 불교 상담분야는 특히 명상 치료를 접목한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불교계의 상담 활동영역을 넓힌 장본인으로서, 의학자로서 치료적 명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은 일입니다. 서양의 정신의학 교과서에는 없는 지식이 동양에서는 생활인 것이 많습니다. 한국인들의 심성 자체는 이미 치료적 마인드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서양정신 의학이 부딪히는 한계점을 불교를 통해 활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은 기독교 신자일지라도 종교에 관계없이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명상이 불교 수련의 한 방편이듯 정신분석치료도 자기 수련을 치료자가 도와줘 자기를 깨닫도록 만들기에 일종의 수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료와 같이 전문 분야가 아니더라도 실제 불자들이 명상을 잘 하는 것 같습니까? 신도들은 명상을 안 하더라도 심성적으로는 일정 수준까지 올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고인 물처럼 머물러 아쉽습니다. 정해진 수준 이상으로 뛰어넘으려고 하는 모티브가 없습니다. 특히 기복이 주된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 문제입니다. 스님들은 이를 바로 잡고 부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 수준에 머무르게 두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신도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그 책임의 2/3는 부처님 말씀을 가까이에서 배워놓고 그것을 왜곡되게 옮기는 스님에게 있습니다. 신도들을 법당에 모을 목적으로 돈을 받고 부적을 파는 스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부적 효력이 있냐고 물었더니 ‘있기는 뭐가 있느냐’면서 ‘복주머니에 부적을 넣어 줘야 내 말을 들으러오기 때문에 부적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을 절에 오도록 하는 방편은 좋습니다. 그러나 이미 온 사람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달리 가르치니 문제입니다. 사업하는 이들은 종종 제게 스님, 목사와 얘기하기가 제일 힘들다고 토로합니다. 이는 자기만 불경을 읽었다는 뜻입니다. 일부 스님들은 절에 오라고 신도들을 꼬신 뒤 계속 그 방편으로 꼬시고, 그것을 유지키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현 한국불교의 수행 풍토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자판기를 설치한 사찰에 자판기 설치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청년회에서 좋은 일에 쓴다면서 시중가보다 비싼 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소탐대실입니다. 500원 동전 모으려다 큰 시주를 잃는 것이죠. 사찰이 큰 일주문 세우고, 단청만 새로 하면 되나요? 화장실도 새롭게 고치고, 문화재관람료를 폐지해야 합니다. 관람료를 받으려면 참선 모습을 보여주는 일본처럼 선방도 개방하세요.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입니다. 또 멀쩡한 기왓장을 빼 다시 올리고, 일주문을 크게 세우는 것보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차선으로 살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차선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권투 챔피언만 눈에 들어왔는데 나이가 드니 바닥에 쓰러진 사람이 눈에 들어옵디다. 한 챔피언이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영원한 챔피언은 없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죽을 힘을 다 하면 할 수는 있겠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한 발짝만 물러서도 만족할 게 많기에 느릿하고, 천천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곧 3월이 다가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후배들을 위해 당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 얘기는 그들에게는 벌써 효과가 없습니다. 제 얘기가 옳더라도 변하는 이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방편일 분입니다.
△불자로서 잘 사는 삶의 태도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어떤 종교든 사람이 종교적 심성에 가까워진다는 점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교란 이름표만 붙이고 자기 성찰이 적은 분들이 많습니다. 전보다 형편도 좋아졌는데 각박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 때문입니다. 저는 정신과 환자 치료 시 ‘당신은 지구상에서 딱 하나 있는 희귀종’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곤 했습니다. 부처님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한 뜻처럼 세계 하나밖에 없는 나를 아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해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고, 어릴 때부터 사랑받은 아이는 곤경에 처해도 살아나온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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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숙(54) -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 - (사)생명나눔실천본부 사무총장 역임 - (사)불교아카데미 원장 역임 -현 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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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후(75) - 경북대 의대 졸업 - 불교상담개발원 원장 역임 - 현 열린마음의원 원장, 이대 명예교수 - 현 가족아카데미아 이사장 |
첫댓글 대표적인 희귀종으로 외할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천문학 한문등 천재란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습니다.
중년이 지나 천재란이야기를 듣는 할아버지는 미친사람이란 말을 들으며 홀로 산으로 떠나 불교에 귀인하여 이름모를 사찰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사이 6남매의 자식이 정신이상으로 실종되거나 10대 후반 일찍 세상을 떠났고 저희 어머니는
어린나이 남에 집에가서 식모살이를 하였고 역시 정신이상으로 평생을 고통받고 계십니다. 홀로 고생하시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어린시절부터 모시며 바라보며... 가끔은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가족을 책임지지 않고 홀로 절에 들어가 생활하시
그래서 제가 스님을 바라볼때 가족을 두고 혼자 절에 머문다는 스님을 만나면 곱지 않는 시선으로 볼때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책임질 사람들을 버리고
홀로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이제는 지구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희귀종으로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기에
6남매를 두고 홀로 절에서 생을 마감하셨을까란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