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누구나 저마다의 특징이 있고 개성이 있듯이 나역시도 타인과는 판이한 점이 몇군데 존재하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식성은 기존 성인들로써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이질적인 면이 있다 술과 담배는 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지만 식사도 한국 사람들의 주식인 밥과 김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 하다 밥은 하루 종일 먹지 않는 때도 있지만 식구들이 자리하는 아침식사 한끼 정도는 먹는다 그외는 빵과 밀가루 음식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세끼 식사를 밥으로만 때운적은 기억에도 아물할 지경으로 요원하다 이전부터 빵과 분식으로는 반찬없이 잘 먹어도 밥은 반찬이 잘 갖추어지지 않으면 식사를 하지 않을 정도로 까다롭다 김치는 군대에 가서 제한된 식사 조건에 의해서 할수없이 먹기 시작하여 그 맛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때마다 먹는 반찬은 아니다 어쩌다 눈에 띄이면 젓가락 한두번 갈뿐 먹지 않는 때가 다반수이다 그러니까 1년에 한포기 정도는 먹는 걸까?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집사람과는 식성이 극과 극인지라 결혼 초기 음식에 대한 불화가 극심했다 맵고 짠 음식을 기피하는 나의 식성에 집사람의 당혹스러움은 표현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니 집사람도 나의 식성을 이해하게 되고 단것을 즐기지 않던 사람이 이젠 거의 내 식성에 근접해 있는것을 볼수있다 빵과 군것질을 즐기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길가다 보면 먹을것을 들고 우물우물 먹어가면서 걷는 나의 모습을 목격한다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나는 그런 것들이 정말 맛있기때문에 남을 의식을 느끼지 않지만 모친과 집사람은 나이든 사람이 체신머리가 없다고 핀찬을 주고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쳐지지 않는 나의 습성화가 되어 버렸다 사람이 자신만의 즐거움을 누리고 산다는 만큼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학창시절에도 매점에서 파는 식빵을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먹다 남겨진 식빵 가루를 담배가루로 오인한 교사에게 추궁을 당하기도 하였고 군생활 초기에 국군 대구 통합병원 환자 면회소 px에서 파는 단팥 도너츠가 너무 맛있어서 매일처럼 드나들었더니 px병이 개근상을 주어야겠다고 조롱어린 농담을 던지고는 하였다 언젠가 일본 오사까 지하상가에서 맛본 부드럽고 감미로운 카스테라 맛을 잊지 못해 그후 오랜 시간을 찾아 헤매던 일 하카다 역안의 소문 난 제과점의 빵을 사먹기 위해 장시간 줄서서 기다리던 일 나는 이렇게 스스로 식도락가라 칭하며 음식에 대한 편견과 집념이 누구보다도 심하다 아이들 어릴때에도 집사람이 좋아하는 과일보다는 아이들을 준다는명목하에 과자나 빵을 잔뜩 사들고 가고는 하였지만 정작 집사람과 아이들은 거의 맛보는 차원에서 그치지만 나는 끝까지 정리하는 수준까지 들어가니 집사람은 아이들 핑계로 자신의 간식거리를 사온다고 불평을 늘어 놓고는 하였다 내가 군것질에 대해서 매니아 수준이라는 것은 웬만한 친분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 언젠가 장남이 생일이 아닌데도 생일케잌을 들고 와서 주길래 어디서 가져왔나고 물으니 친구 생일파티에서 커팅하고 친구들은 술을 먹기때문에 빵을 먹지 않아 아버지 갖다 드린다고 가져 왔다고 해서 남자가 쪼잔한 짓을 한다고 힐책을 하면서도 다 먹었다 2년전쯤 내 생일날 차남 여자친구가 나의 먹성을 알고 생일 선물로 각종 간식 종류를 포장하여 박스로 보내 왔다 동봉한 카드 내용에는 건강안부와 더불어 조금씩 한달간 드실 분량은 될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지만 3일후가 되니 바닥이 나 있었다 물론 집사람은 단것을 너무 선호한다고 타박을 하면서도 늘 간식을 준비하여 둔다 나 또한 간식이 떨어지면 웬지 서운하기 때문에 직접 사서 두기도 한다 주위에서도 나의 특이한 식성을 잘알기에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나 친지들은 나의 간식거리른 들고 오기도 하고 집사람과 가까운 지인들은 나를 만나면 주위 상점에서 이것 저것 사서 챙겨 주기도하고 유명을 달리한 지인은 가방에 늘 간식거리를 준비해 다니다 만나면 꺼내 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 사람들도 내가 앉은 자리에서 아이스크림 한통을 먹거나 아이스콘이나 아이스 바를 열개 정도 먹는 것을 보며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나는 자신이 식사를 하기 위해서 한식집은 거의 가지 않지만 뷔페 음식은 즐긴다 그곳은 디저트로 각종 빵과 과자가 차림되어 있기 때문에 골고루의 음식을 즐길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친구 자녀들 결혼식에 초대되어 가서 식사보다 디저트를 서너접시 비우는 내 모습에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응당 그러러니 하고 놀라는 친구들도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일생 단것에 노출되어 살다보니 내몸에서 표시나게 수난 당하는 부분은 역시 치아다 앞 이빨 상하 2개씩을 제외하면 전부 의치로 덮혀있다 그것도 소시적부터 부분 부분을 보철하였기에 다른 사람은 한번도 쉽지 않은 보철 시술을 상하 좌우로 3번정도는 번갈아 가며 교환 보철하였기에 이제는 상태가 나빠지면 어쩔수 없는 지경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새해에 들어 서자 우측 상단 치아에 이상이 생겨 보철 부분을 들어 내고 남아 있는 치아부분을 전부 제거하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 내 치아를 보살펴 주던 인척 치과의사는 인플란트 시술을 취급하지 않는 탓인지 많은 인플란트를 하게되면 구강 건강에 적신호가 오게 된다며 틀니를 적극 권유하는 것이었다 잇몸이 아물때까지 고심을 하다 결국 의사의 설득에 넘어가서 틀니로 결정하고 틀니 작업으로 들어가 석고 본까지 뜨고 말았다 틀니를 착용하고 다니게 된다는 것이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정신적인 상실감은 자신을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 간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때마침 그즈음 누나에게 전화가 와서 차아 문제가 화제가 되어 최근 인플란트 치아를 3개나 하였는데 일반 치아나 다름없이 편리하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많은 부분이 부실한 탓에 비용과 잇몸 건강을 위하여 틀니로 결정하였다는 말을 하였더니 전화를 끊고 이번에 계열사 사장으로 영전된 동생과의 통화중 내 치아 문제의 자초지종을 전하였던 모양이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와서 형님 틀니는 안됩니다 하고 단호하게 말해 오는것이다 내가 비용때문에 틀니로 결정하였다고 생각하였는지 비용은 걱정말라며 자신이 형님 치아 문제는 전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나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결정하였지 비용 문제가 아니라고 이해시키고 나도 적지않은 번민이 있었음을 토로하며 임플란트로 변경하겠다고 약속했다 칫과로 가서 틀니로 못하게 됨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임플란트 전문 칫과로 가서 임플란트 시슬을 위한 계약을 하였다 마지막 치아를 하나 줄이기로 했음에도 5개의 치아와 치골 이식 비용이 치아 한개값을 능가하여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누나와 동생이 이번 임플란트 시술 비용을 공동 부담하기로 하였다며 누나가 계약금으로 200만원을 보내왔다 나는 누나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성의로 100만원은 받을수 있으나 동생도 그 이상을 보내오면 분명히 돌려 보낼터이니 공연한 헛수고를 말라고 전해 주라며 100만원을 돌려 보냈다 결국 누나와 동생의 협조로 200만원의 부담을 덜었지만 돈보다도 이렇게 조그마한 일이라도 함께 해 준다는 형제들이 있다는 점이 나를 더욱 흐뭇한 마음을 갖게하고 더불어 어린 날 내가 쇼킹으로 바라 본 할아버지의 탈 부착한 틀니로써 생활해야 한다는 좌절감에서 벗어 났다는 안도감이 훨씬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 같아 새로운 인생을 맞는듯 한 흐뭇함에 한결 가벼운 마음 감출 길 없었다
첫댓글 글 솜씨가 대단합니다!~
그나저나 단 것과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으면 당수치가 많아 올라 갈 것 같은데~~ 당뇨걱정은 없는가보구려~ ㅎㅎ
하기야 세상에 이런일이란 프로에서 설탕을 쌓아놓고 먹는 사람도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도 있기도 하였지만~~~
가족간에 우애가 좋아 서로 도와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구려~~
늘 즐겁고 행복하시길 바라오!~
과분한 말씀 칭찬으로 듣겠소이다~ㅎㅎ
혈압이나 당뇨가 있었다면 벌써 이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반신불수로 살아 갔겠지요. 20년전 뇌경색이란 병마와 한번 겨룬적이 있거던요
신은 사람마다 즐거움을 누릴수 있는 은총을 내렸지만 나에겐 일생 별미 만족이란 은총도 덤으로 주신 것 같네요
덕담 감사하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