ೠ 교복을 입다 ೠ
초등시절 6년의 세월이 어느덧 지나 교복을 입고 다니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었으니 동네 아이들과의 선별된 만남을 가져야 한다. 우리 동네는 비교적 저속득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였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것 같았다. 외모, 말투, 옷차림새 자체가 동네 아이들과는 차별화 되어 있었다.
변두리 초등학교시절에는 내가 우기면 내 말이 정답이었는데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라는 개념보다는 “너와 나”라는 주체성이 강한 용어가 난무한다. 나의 생각에 변화가 왔고 그들과 대립하기 위한 묘수를 생각해봤지만 역부족이다. 혼란스럽다. 또한 같은 동네에서 어울리던 친구들은 사촌동생을 제외하고 같은 학교에 입학하지 못해 외톨이가 되었다. 학교가는길은 언제나 고단하고 외로웠다.나는 중딩 1학년때 부터 고급문화가 무엇인지 어렴풋히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성적이 바닥을 쳤다. 초딩시절에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항상 성적 우등생이었던 나의 자존심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진다. 책을 잡았다. 그 이후로 내 성적은 일취월장하여 드디어 상위권에 집입하게 된다.
중학교는 동등한 교모와 교복을 입는 유니폼 문화이다. 모두가 획일화되고 표준화가 된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나의 실체를 교복속에 은폐 시킬 수 있어 좋았다. 초딩때는 담임 선생님 이 모든 과목을 홀로 담당하셨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의 역할과 능력이 학업 성적을 좌우했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니 과목마다 선생님이 다르다. 과목마다 담당 선생님이 다르니 선생님에 따라 학업 흥미도가 달라진다. 나의 장난끼는 예나 제나 변함이 없었다.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1시간정도 걸렸지만 아랑곳 없이 학교 운동장에서 밤 늦도록 동급생들과 어울려 놀았다.
여름교복은 하얀 셔츠에 회색바지, 그리고 교모에는 흰천을 씌었고다. 겨울 교복은 상하의 검정 옷에 교모의 흰천은 벗겼다. 교복은 빈부의 차를 전혀 느낄 수 없는 평등의 제복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로부터 셋째 누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시작된다. 첫째, 둘째 누님이 출가한 이후라 셋째 누님이 서열상의 우위를 점유하게 된다. 셋째 누님은 어머님과 유일하게 대립할 수 있는 억척스럽고 강인한 누나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참으로 잔정이 많은 누님이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옆에는 출가한 둘째누님이 살고 계셨다. 어릴때부터 이미 방목한 상태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가끔 학교 담치기를 해서 누님 집에서 점심도 먹고 조카들과 대면도 하고 수업시간이 되면 정확하게 원대 복교하였다.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에 들어가니 과목마다 선생님들이 달랐고 공부좀 제법했다는 부잣집 아이들이 모인 새로운 집단이였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도 입시제였다. 같은 집에서 살던 사촌동생도 같은 학교에 다녔고 송촌에 살던 조카도 합류하였다.
중학교에 입학한 며칠후 교복을 입고 근처 야산에 올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뭉게 구름이 하늘을 휘젓고 다닌다. 구름의 모양은 날개를 단 새처럼 허공을 휘젓으면서 형체를 바꾼다. 어깨를 펴고 나의 미래를 설계하였다. 나의 미래는 설계도처럼 크게 되지는 못했지만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꿈꾸던 과학자의 길을 비교적 순탄하게 걸었기 때문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뼈속같이 시려오는 강추위에 학교가는 길은 멀고 먼 긴 여정이였다. 헤진 겨울 교복속에는 낡은 여름 셔츠가 어린 내 몸을 감싸고 있었으며 몸은 춥다 못해 아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학교 정문앞 근처에 왔을 때 출가한 둘째 누님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너무나 부끄러워 몸을 숨기고자 했지만 숨을 곳이 없었다. 누님은 내 교복을 벗기시더니 그 자리에서 주저 앉으신다. 얼마후 밤색 털 세터가 나에게 도착했고 그 옷은 대학 다닐 때까지 나의 유일한 겨울 세터옷이 되었다. 그 누님이 오랜 지병 끝에 2016년2월20일 세상을 떠나셨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비통한 마음에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이른 봄기운이 도는 날, 아지랑이 숲을 헤치고 푸른 창공을 향해 홀연히 떠나 가셨다. 이제 누님과의 나의 사연은 역사속의 전설이 되어버렸다.
여름 장마철에는 구석진방 천정에서 빗물이 떨어진다. 군데 군데 사발을 놓고 떨어지는 빗물을 담아낸다. 빗물의 양과 사발의 크기에 따라 들리는 소리가 음계를 이룬다. 그 소리를 듣는 것도 즐거움이였다. 밤에는 천정에서 쥐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모기가 귓전에서 윙윙거린다. 그래도 불편함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으례 겪어야 할 생활이려니 생각했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단지 불편할 따름이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영혼이 맑으면 세상을 얻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 이후 나는 강박증이 생겼다. 어릴 적 필요한 물건을 갖지 못한 소유욕이 꿈틀거려 생활이 안정된 이후에는 사재기 버릇이 생겼다. 지금 내 옷장에는 옷가지가 수십벌이 넘는다. 일종의 소유욕이 꿈틀거려 대충 입다가 남을 주거나 버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낭비인 것이다. 불과 40여년 전후인데 우리 생활상은 몰라보게 많이 변화하였다.
교복문화는 고등학교까지 이어진다. 교복은 단순하고 획일화된 제도권안에서 자신의 개성은 철처하게 매몰되었고 오직 상급학교 진학에 대한 한가지 목적에만 몰두하여야만 했다. 이때부터 나의 의식속에는 삶에 대한 번민과 정신적 방황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우리 친구들은 교복속에 숨겨진 자신의 자아를 쉽게 노출하기를 꺼려 했다. 막 나가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튀면 맞는다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하여튼 교복은 내가 은밀하게 안주하기에 아주 편안한 복장이었다.
첫댓글 당시 누구도 가난했다 /하여. 따뜻한 마음 하나로 우리는 진한 육친의 애정을 나누 었고 /지난시절의 반추를 통하여 가끔은 회한에 잠기고 슬픔에 잠기고 그리움의 노예가 된다 / 찡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