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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내장산 일원에서 눈꽃축제의 일환으로 단축마라톤대회가 있었다.
전날인 토요일 오후에 정읍으로 넘어가 유창아파트 처제네 집으로 갔는데 저녁을 먹을 즈음에 눈이 마구 내린다.
"히야~분위기 좋고~♬"
밖을 보니 하얀 눈세상이 되어 있고 계속해서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다.
내장산에 자리를 틀고 있는 오총무네 한테서 술한잔 하자는 유혹이 온다.
'분위기 상으로는 딱 한잔하는 것이 좋은데...'
그렇게 저렇게 아쉬움을 달래며 밤을 세고 대회장에 가보니 입이 딱 벌어진다.
근처의 고수란 고수는 죄다 모인양 별들의 잔치가 벌어졌다.
30위 이내에 들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걱정이 앞서지만 어차피 피해갈 방법도 없고 또 피해서도 안되는 것이고...
얼굴이 많이 팔렸다는 것이 이런때는 더욱 부담스럽다.
대충 뛸 수 없는데 ....
과연 몸이 따라줄까?
허...참!
한낮이지만 현저히 영하의 기온이고 찬바람까지 쌩쌩 불어대는데 코스는 평지가 거의 없는 난코스, 주변에는 죄다 최강의 고수들....
출발신호가 떨어지고 2주차장에서 정읍쪽방향으로 내리막길로 주자들이 쏟아져 달려간다.
이미 앞에는 40여명의 대열이 포진해 초반기세를 몰아가고 있고 클럽에서도 준호씨, 운로, 진국, 정종 등 네명이 가물가물 선두그룹에서 달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얼핏봐서는 10위권내외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휴~큰일이네!'
출발직전에 비닐봉지를 구멍내서 뒤집어 쓰고 달리는데 정면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이기는데는 아주 유효한것 같다.
2.5Km표지판을 지나며 힐끗 시계를 보니 9분3초를 지나고 있다.
'엘레리나네! 이게 10Km레이스보다도 빠르게 풀리고 있네???'
대충봐도 3분40초 이내의 페이스인데 16Km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고 게다가 이런기온에 이런 험한 코스에서 감당하기가 힘들텐데!
(지금 환산해보니 3:37/Km)
4.5Km쯤 되는 지점에서 저수지 아래 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새로 뚫린 길로 꺾여 올라간다.
5Km표지판에서 찍은 랩타임이 18:35
여전히 좀 빠른듯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여기서부터 내장산 경내의 반환점까지는 줄기차게 오르막길이다.
무려 8Km이상되는....
앞에가는 사람들중 10명 이상은 앞질러야 30위 이내에 들것 같은데...
어떤 사람이 이 난코스의 희생양이 될까?
완만한 오르막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안 앞서가는 주자들의 움직임도 점점 차별화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새로생긴 I.C로 나가는 삼거리를 지날무렵 빌빌대는 진국을 앞서고 조금 후에 추위에 맥을 못쓰는 정종이를 앞서고 난 뒤 50여미터 앞에 아른아른 눈에 들어오는 운로를 보며 페이스를 가늠하게 된다.
처음 출발한 행사장 뒷편을 지나며 응원객들의 격려 함성을 듣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양영석'의 코치가 아주 구체적이다.
"좋아! 그대로 힘내고... 앞으로 두명만 더 잡아!"
두명만 더 잡으면 30위 이내에 든다는 소린지???
상가에 접어들기 전에 운로를 앞지른다.
상가 이후엔 매표소 앞부터 급한 경사길이 반환점까지 3Km 가량 이어지는데 여기에서 또 퍼져나가는 사람들이 생길 것 같다.
누구든 힘들지 않는 사람은 없겠거니 하면서 오르막을 더욱 박차를 가하며 달리다보니 너댓명을 따라잡았다.
반환점을 돌아나오는 앞주자들의 수를 당연하게 세어보게 되는데 내가 딱20번째이다.
'허~많이 따라 잡았네!'
'이대로만 유지하기만 하면...'
이제부터는 내리막길로 골인지점까지 최대의 스피드를 낼 수 있다.
어차피 기록싸움은 아닌데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까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을 해본다.
앞에가는 주자와 나를 앞서려는 한무리들과 치열한 경합이 벌어진다.
정말 장난이 아닌 속도가 이어지는데....
'이제 몸도 다 풀렸고 골인지점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가 아낄게 무었이냐?'
정말로 자존심을 건 스피드 경쟁이 불을 뿜는다.
보폭은 느낌상으로 아까 올라갈때의 두배는 벌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사람들 마음은 다 비슷한 것인지 나를 상대하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다 한가락씩 한다는 고수들이라서 똑같이 자존심을 걸고 포기하지 않는것 같다.
'쓰팔 이정도 달리면 진즉 떨어졌어야 하는데...쎄긴 쎈 ...'
매표소를 500미터 쯤 앞둔 곳에서 애꿋은 준호씨만 앞지르게 된다.
목표를 삼은것은 아니었지만 옆에서 경쟁하는 사람과 각축을 벌이다보니 어쩔수가 없다.
순위가 19위가 되어서 계속 내리쏘고 있는데 언제나 그러듯이 화이팅을 외쳐주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
일일이 답례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면하고 지나칠 수도 없고...
정말 고마운 일인데...
매표소를 막 빠져나온 즈음에 15Km표시가 놓여있다.
시간은 57:41
상가를 지나고 1주차장에서 2주차장 골인지점으로 향할 즈음 익산의 김표님이 나를 앞질러 나간다.
'허! 이러면 안되지~'
몇초 뒤에 다시 따라잡아 앞지르며 다시 따라 붙지 못하게 인터벌을 쓰며 피니쉬로 향하는데 사람들의 터널을 지나며 우아하게 피니쉬를 통과하려고 하는 순간 다급한 목소리들이 외마디가 되어 들려온다.
"뒤에 뒤에~와~~~"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이미 실제적인 피니쉬를 통과했다고 생각할 즈음에서도 100미터 달리기식으로 뒷주자를 따돌리는 촌극이 벌어진다.
덕분에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볼거리가 제공되고...
19위 표식을 목에 걸고 뒤따라 들어온 김표님과 뜨거운 포응을 나눈다.
내가 보기엔 이양반이 많이 는것 같은데 되려 나를 보고 많이 늘었다고 감동(?)을 한다.
최종시간은 막판에 우아하게 들어오지 못해서 정확히 체크하지는 못했지만 1시간 1분 내외인것 같다.
어찌되었건 대회니까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려야 하고 또 최근 누적된 피로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어서 기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