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신영 박사 한양대교수 ]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밝힌 일본인 학자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 땅이라는 역사적 증거는 많다.
첫째로 삼국사기 - 신라시대(서기 512년, 신라지증왕 13년), 신라장수 이사부가 우산국 영토인 울릉도와 독도를 정복하여 병합하였다. 1511년전부터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은 1905년에 독도를 시마네 현에 편입시키고 고시 40호를 발표했다. 118년전이다.
둘째로 세종실록지리지 - 울릉도와 우산국은 마주보는 섬이며, 모두 우산족의 땅이였다고 나와 있다. 우산국이 울릉도뿐만 아니라 독도가 포함된다는 문헌으로는 세종실록지리지, 민기요람, 군정편, 증보 문헌비고 등 고문헌에 나타나 있다.
셋째로 1699년(숙종25년) 안용복장군은 일본 에도막부(정부)로부터 울릉도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인정하는 증서를 받아 왔다.
안용복장군 개인자료에 의하면 조선숙종 때 부산 동래 수군으로 들어가 능로군(能櫓軍)으로 복무하면서 왜관에 자주 드나들어 일본 말을 잘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일본인들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왕조의 통치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울릉도를 죽도(竹島:다케시마) 혹은 기죽도(機竹島:이소다케시마)로, 독도를 송도(松島:마쯔시마)라 하고 조정에서는 대마도주에게 공문을 보내 일본인의 울릉도 등지에 대한 왕래를 금하게 하였지만 일본인의 울릉도, 독도에 대한 침구는 계속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선과 일본의 어부들은 종종 충돌하게 되었으며 급기야 1693년(숙종19년)에 안용복(安龍福)과 박어둔(朴於屯)을 중심으로 한 동래⋅울산의 어부 40여명이 울릉도에서 오타니 가문의 일본어부들과 충돌하게 되면서 1699(숙종25년)까지 약 6년간에 걸쳐 두 나라간 울릉도⋅독도지역의 영유권에 대해 외교문제가 오가는 논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 논쟁은 울릉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라 칭하고 마치 별개의 섬인 양 하여, 울릉도 점령근거를 얻어내려 한 대마도주의 계략을 사서와 안용복의 증언 등을 통하여 간파한 조선조정의 강력한 대응으로 이후 다시는 울릉도 등지에 왕래하지 않겠다는 일본막부의 약속을 받아냄으로서 종결되었다.
안용복의 도일활동은 숙종실록, 승정원일기, 동국문헌비고 등 한국의 관찬서와 죽도기사(竹島紀事), 죽도도해유래기발서공(竹島渡海由來記拔書控), 이본백기지(異本伯耆志), 인부연표(因府年表), 죽도고(竹島考) 등 일본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옛날옛적에도 벌써 우리 조상들은 독도가 조선땅임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어부 안용복이 증명했다.
그리고 미 연합군도 인정한 독도 지도도 있다.
연합국최고사령부행정지역 聯合國最高司令部行政地域
[미국ㅣ연합국최고사령부ㅣ1946년ㅣ90cmx68.5cmㅣ원본은 독도박물관 소장]
연합국최고사령부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일본의 행정구역을 규정한 SCAPIN 677호에 첨부된 지도이다. 일본의 행정구역을 점선(MacArthur Line)으로 표시하여 구분시켰는데 울릉도와 TAKE(독도)는 일본의 영역에서 분명하게 분리시켜 표시하였다. 이는 연합국 최고사령부에서도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정한 실례이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봐도 대한민국 땅이요 국제적으로 봐도 연합최고사령부에서도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한 사실이니 이제 일본은 독도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왜. 대한민국 영토가 맞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