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二幕)
인생은 축복입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생이 낫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좋은 이생을 버리고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저 세상으로 서둘러 떠나가는 젊은이들이 많아 세상을 안타깝게 합니다. 저 세상에 가면 이승보다 더 아름답고 평온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이승에서도 괴로워 못 사는 사람이 저승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기대는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아예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차라리 그 모진 목숨을 끊을 용기가 있으면 이승에서 축복받는 인생을 쟁취해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승에서 잘 살아야 내생에서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테판 M. 폴란 마크 레빈’이는 분이 몇 해 전『2막 (Second Acts)』이라는 책을 발표했습니다. ‘2막’은 인생 후반전과는 다른 개념이죠. ‘2막’이란 인생의 나머지 시간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찾는 행복은 2막에서 얻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2막은 내가 지금 행복한가를 점검하고,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찾아보는 출발선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행복하다면 굳이 2막을 꿈꿀 필요가 없죠.
그래서 우리에게는 새로운 무대, 즉 인생 2막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인생 2막에서는 ‘8가지만 버리면 인생에 축복’이 온다고 합니다. 그 8가지를 살펴보지요.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움켜잡으시고요!
제1장, 나이 걱정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자신의 인생이 초라한 것 같아 한숨 쉬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열심히 살아왔지만 뚜렷이 해놓은 일이 없습니다. 지나온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두려움에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삶의 열정을 유지하고 오늘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하는 태도는 아주 단순합니다. 현실은 차츰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삶은 발전합니다. 계속해서 숨을 쉬고 살아 있으면 점점 더 행복해질 날이 올 것입니다.
제2장, 과거에 대한 후회를 버리는 것입니다.
지난 기억에서 자유로워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과거를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과거는 지나간 일일 뿐입니다. 후회해 보았자 쓸모가 없습니다. 차라리 용서와 사과를 하는 것이죠. 그러면 좀 더 즐겁고 충만한 삶으로 가는 문을 열어줍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우리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꿈꾸는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후회는 분노보다 더 해롭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받는 것보다 스스로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 더 나쁩니다.
제3장, 비교감정을 버리는 것입니다.
남이 아닌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는 이유는 자라면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죠. 우리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타고나는 성향이 아닙니다. 내가 최고인데 누구와 비교를 한단 말인가요.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는 것을 병이라고 말하면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좀먹는 암입니다. 하루아침에 우리의 정신을 죽이지는 않지만 조금씩, 해가 갈수록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파괴하죠.
제4장, 자격지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평가절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에 초점을 맞추고 결점을 부각시키면서 자책을 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칭찬과 존경을 받을 만한 훌륭한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잘한 일들은 우연이 아니며 우리가 가진 능력은 결코 무가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존경받을 만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많은 사실을 무시하고 스스로를 평가절하하고 있지 않는가요?
제5장, 개인주의를 버리는 것입니다.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무력함을 느낄 때가 있는지요? 그렇다면 도움을 청하면 됩니다. 무한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차용 능력이 2배가 될 수 있습니다. 인맥을 3배로 넓힐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과 많은 돈을 투자해야만 배울 수 있는 지혜와 전문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주 쉽고 빨리 할 수 있습니다. 단지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제6장, 미루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망설이면 두려움만 커집니다. 하기 싫은 전화 통화나 골치 아픈 과제를 해결해야 할 때 완벽한 시간을 기다리면 안 됩니다. 완벽한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영원히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망설임은 성공을 지체하고 두려움을 고착시킵니다. 용기를 냅시다. 행동을 취하면 더 많은 것을 달성하고, 더 행복해지고, 걱정과 두려움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제7장, 강박증을 버리는 것입니다.
최고보다 최선을 택하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서 잘하지 못하는 것에도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능하게 보이는 것이 두려워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초라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실패를 허락해야만 인생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이죠.
제8장 막연한 기대감을 버리는 것입니다.
미래를 만드는 것은 현재입니다. 미래에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을 미래에 맡기는 것은 끝없이 계속되는 과정이죠. 죽는 날까지는 항상 내일이 있을 것이고 만일 사후세계나 윤회를 믿는다면 죽은 후에도 내일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이지요!
이 8가지만 버리면 이승이 저승보다는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제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은 엄청난 죄악입니다. 그 벌 어찌 감당하려 하십니까? 우리의 목숨이 내 것이 아니고 천지 · 부모 · 동포 · 법률 사은(四恩)의 공물(公物)이기 때문입니다. 죽고 싶다면 그 죽을 각오로 인생 2막을 새로 써 내려가야 하지 않을 런지요!
법주사 당간지주를 아시나요
법주사 당간지주
당간지주(幢竿支柱)란 무엇일까요? 당간(幢竿)은 삼국시대 불교가 전파되면서 사찰 앞에 돌이나 쇠로 만들어 높이 세운 기둥으로 찰간(刹竿)이라고도 합니다. 찰간에 깃발을 달아 종파, 문파를 알렸는데, 행사와 불사 때 행사를 알리고 그 주변지역에 사찰이라는 신성한 영역을 알리는 동시에 사원에 모든 액을 물리치려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幢)이란 사찰의 문 앞에 긴 장대를 세우고 그 끝에 용두의 모양을 만든 다음 깃발을 달아서 부처님과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과시하는 장엄구로서 모든 번뇌를 파괴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번(幢幡)은 항상 달아두지 않고 기도나 법회가 있을 때 불전이나 불당 앞에 세우기도 하였는데 이는 중생을 지휘하고 마군(魔軍)을 굴복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절을 사찰이라 말하는 것은 절에 당간 즉 찰(刹)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종파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위에 특정한 색깔의 깃발을 내걸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전하는 법주사 당간지주는 고려 목종 7년(1006)에 조성된 것으로서 조성 당시의 높이는 전체 약 16m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 고종 3년 국가재정마련을 위한 당백전 주조라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사찰의 수많은 금속물들이 수거된 바 있었는데, 당시 이곳의 철당간 역시 파괴되었습니다. 곧이어 순종 당시(1910) 이곳 철당간은 22m의 높이에 원래 모양대로 복원되었으며, 1972년 다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