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24:36-48절
고린도전서 15:20-28절
그리스도의 부활
2011.10.16일
▣ 사랑하는 여러분, 저희들은 오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은 예수가 하나님이신 증거를 말씀을 통해 증거 했습니다. 첫 번째로 예수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다고 말씀 드렸고, 두 번째로 그 말에 신뢰가 가는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예수의 삶 속에서 가장 극적인 부활 즉 다시 살아난 사건을 통하여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만약 예수가 분명히 다시 살아났다면 그 분은 하나님이심을 확증하게 됩니다. 로마서 1장 4절에 “성령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 분이십니다. 그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하십니다. 바로 예수가 분명히 다시 살아났다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분명한 것입니다.
▣ 그런데 어떤 분이 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예수가 하나님이신 것이 지금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이신 사건이 지금 나에게 닥친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삶과 그리고 당장 대학 가는 문제와 무슨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까? 오늘 이 시간은 단순히 기독교의 기본 진리인 교리를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을 통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또한 고린도전서 15장 30절에 “그리고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위험을 무릎 쓰고 있습니까?”무슨 말입니까? 만약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우리들이 지금까지 믿었던 모든 믿음이 헛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고 시간을 헌신하고 물질을 헌신했던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앙의 핵심은 예수가 다시 살아나심에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음을 무릎 쓰고 그들이 전한 내용은 “예수를 믿으면 자식들이 잘되고, 건강해 지고, 돈을 많이 벌게 될 것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이것을 복이라고 전했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대체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잔인하게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사건이 그들에게 왜 기쁜 소식이었을까요?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예수가 다시 살아나신 사건이 왜 기쁜 소식일까요?
▣ 오늘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부활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부활의 증거와 의미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부활이 오늘 우리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먼저 첫 번째로 부활의 의미는 오늘 우리들의 삶을 결정합니다. 오늘 우리가 심는 삶의 방식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부활을 믿지 않으면 현재의 쾌락으로 끝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2절에 “만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부활은 다음 세상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의 평가가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믿지 않으면 그냥 이 순간을 즐기고 내 생명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누리는 쾌락과 풍요에 빠져 마음껏 누리고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복, 이 세상에 누릴 복에 얽매여 부활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삶의 결정이 짧은 이 세상의 삶으로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부활이 있다고 믿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부활의 그날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평가 받을 텐데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최근에 어떤 정치인은 교회에 집사라는 분이 그것도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교회 안에서 알려지신 분인데 성추행으로 징계를 받고 최근에는 온갖 인신공격을 앞장서서 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분은 부활을 믿을까? 부활은 심판의 날입니다. 우리의 삶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는 날인 것입니다. 부활의 그날에 사도 바울은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고전15장 52절).” 주님의 심판의 나팔 소리는 홀연히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들은 부활의 영광의 몸을 입고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가 분리 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보시고 우리를 분리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을 믿는 다면 지금 우리들의 삶을 아름답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합니다.
▣ 두 번째로 부활을 믿는 신앙의 삶은 주님으로 인한 고난을 기꺼이 담당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0-11절에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그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면 그의 인생은 얼마나 비참한 인생입니까? 그리고 그는 평생 동안 어려움과 역경이 끝이 없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부활의 주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3-4절에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환난으로 인하여 우리는 최종적으로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지금의 고난으로 인하여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고난으로 인하여 심는 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들에게는 지금 고난과 역경이 그를 좌절하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마지막 세 번째로 부활을 믿으면 부활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함과 같습니다. 이 약속은 그가 믿은 하나님,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것입니다.”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면 그분은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나를 사랑하시며 나의 길을 인도하심을 확신하게 합니다. 그분이 약속하신 것은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의 사건입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책인져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라고 하십니다.
▣ 그래서 부활 신앙은 나를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미래를 나의 현실로 당겨 사는 삶을 말합니다. 부활 신앙은 교회 안에서 성서 안에서 갇힌 신앙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흘러 넘치는 신앙인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역사의 한 복판에 하나님 나라의 운동으로 사건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지금도 고통과 좌절과 절망 속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작업장에서, 강정마을에서, 실직자로 희망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부활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들이 불안해 하고 염려하고 좌절하는 것은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능력의 하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면 그 능력의 주님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기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심을 확신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의 미래에 대해 불확실하고 노후에 대해 불안하지만 부활의 하나님을 믿기에 감사하면서 기쁨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이것을 오늘 이 순간에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함께 하실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이 부활한 사건이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이 사건이 정말 일어난 것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우리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냥 무턱대고 믿으면 될까요? 그냥 감으로 알 수 있을까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조금은 논리적으로 검토해 봅시다. 정말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을까? 그렇다면 그 증거는 무엇일까에 대해 살펴봅시다.
▣ 첫 번째로 예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부활절 아침 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에 찾아갔지만 예수님의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예수의 시신이가 사라짐을 알게 되고 그 이후에 그들은 예수가 부활했다고 선포하게 됩니다. 만약 예수의 시신을 발견했다면 부활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누군가 그 시신을 치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을 선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믿었다면 그 시신을 치운 사람이 양심의 가책과 제자들의 거짓말을 증명하기 위해 나섰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떤 자료와 사건을 통해 예수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것으로 예수가 부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두 번째로 수의가 헝클어지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장례 예식을 보면 시신은 세마포를 입히고 세마포로 띠로 시신을 동여매고 그 사이에 향료 가루를 뿌리게 됩니다. 여기서 세마포는 아마로 만든 고급 원단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모시로 수의를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마로 수의를 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동여매고 묶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의 시신이 있었던 무덤에서 수의를 발견했는데 요한복음 20장 6-7절에 “삼베가 놓여 있었고,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그 삼베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한 곳에 따로 개켜 있었다.”여기서 ‘삼베가 놓여 있고’라는 말은 ‘말려서 있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놓여 있었다.’라는 말이고, ‘개켜 있었다’라는 말은 ‘둘둘 말려 있었다.’라는 말인데 종합하면 인간의 손에 의해 건드려지거나 접혀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마치 나방이 나와 버린 빈 번데기 껍질 같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으로 보아서 예수의 부활은 소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영혼이 빠져 나와서 주저앉아 버린 옷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것으로 예수는 부활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 세 번째로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부활의 주님이 10회 걸쳐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12제자들에게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장소에서 부활의 주님은 나타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에 500명의 사람들 앞에서 나타나신 적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6절에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번에 오백여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에 부활의 주님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많이 살아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두 사람이 보았다면 착각이고, 환상을 보았다고 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실제적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음식을 먹기도 하셨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것으로 보아서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변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말을 하셨다.”두려움에 떨면서 숨어 있던 제자들,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 이런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담대하게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이 사실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초대교회 중심적인 인물이 됩니다. 바로 야고보서를 기록하는 사람이 됩니다. 어떻게 가장 가까운 동생이 자신의 형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서 1장 1절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평생을 살아갑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는 다면 우리들은 달라져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경험했던 제자들은 놀라운 삶의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삶이 부활의 주님을 믿으면 새로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기적인 자신에서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화 되고, 어린 아이 같은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이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으로 새롭게 변화를 경험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