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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과학 이야기 스크랩 달을 숭배하다 / 음력과 조수와 세시풍속
킴스특허 추천 0 조회 11 09.02.23 20: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Moon symbol달 月 Moon

달의 결영과 바다의 조수의 관계가 알려지고,

또 달의 결영의 주기와 여성의 경도의 주기가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달이 지닌 생명력의 상징성은 확실히 소문을 넘어 어떤 실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달과 물과 여성이 더불어서 생명력 상징의 삼위일체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규명하지 못했을때, 인간의 숭배가 시작된다.

 




Earth as viewed from the Moon during the Apollo 8 mission, Christmas Eve, 1968

196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인간이 쏘아올린 아폴로 8호 인공위성은
소문의 실체 달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구로 보내왔다.

달에서 부터 바라본 푸른 에메랄드, 지구의 모습이었다.

 

달을 숭배 崇拜하다, moon worship

 

 

달은 우주의 리듬이다. 여성이고 우리 인체다.

인류는 어느 사이 상징에게 경배하다.


달 속에 있는 신이나 달의 상징 또는 인격화한 형태를 숭배하거나 공경하는 것이다.

달의 성스러움은 삶과 우주의 기본 리듬과 연결되어 있다. 여러 시대와 문화에 걸쳐 두루 퍼져 있는 달 숭배 현상은 풍부한 상징과 신화를 낳았다. 사람들은 달을 우주의 율동적인 생명과 관련하여 생각했고 모든 생명의 변화를 다스리는 것으로 믿었다. 달이 차고 기우는 순환과정을 보고 많은 이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이 올라가는 죽은 자의 땅이나 재생의 힘을 달과 연관지었다.

 

 

달은 한국인의 우주론·세계관과 인생관 그리고 생활습속 등에 걸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태양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중대한 것이다. 전통 한국사회는 실질적으로 ‘달 중심론’이라고 할만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저기저기 저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금도끼로 찍어내고 옥도끼로 다듬어서/초가삼간 집을 지어 양친부모 모셔다가/천년만년 살고 지고 천년만년 살고 지고.” 이것은 누구나 즐겨 부르는 동요이다.

 

이만큼 사랑을 받는 동요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낮에 나온 반달……”로 시작되는 또 다른 동요까지 생각한다면 한국동요 속에 나오는 달은 유달리 휘영청 밝게 빛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달이 동심만을 일깨워 시정(詩情)에 젖게 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시정과 종교적 상상력을 촉발한 달이 농경생활을 영위하던 전통 한국사회에서 생활력의 원점이자 기준을 이루면서, 한국인의 생활과 생명의 기복이며 리듬을 결정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들에게는 달을 좇아 이루어나가던 삶이 있었고 또 목숨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네는 ‘달의 삶’, ‘달의 목숨’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전통 한국인의 생체맥박(biorhythm)이나 생활맥박을 이야기할 때, 달은 근본적으로 그 맥박이나 맥동(脈動)의 동기이자 기준이었다는 것은 매우 강조되어야 한다. 전통사회의 한국인들은 하늘을 우러러 달에 그들의 소망을 붙이고 살아왔듯이, 달을 생각하면서 땅을 일구어왔던 것이다. 그것이 곧 우리들이 누려온 ‘달의 삶’이요, ‘달의 목숨’이다.

 

 달은 생명의 순환을 지배한다는 생각은 달과 운명을 연관지어 생각하도록 했다. 달의 신화는 특히 달이 사라지는 시기를 강조한다. 달의 순환에서 3일간의 어둠과 일 식은 달을 집어삼키거나 잡아먹은 다음 결국 다시 토하거나 다시 살려놓는 괴물들간의 싸움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 보통 해석된다. 그믐은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는 활동(특히 식목이나 성교)에 대해 엄격한 금기가 필요한 유해한 기간으로 해석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의례 행위의 일부로 달을 공격하는 자를 겁주어 쫓기 위해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도 한다.

 

 

달과 달의 순환을 인격화한 신들은 상대적으로 수가 적다. 원시 수렵문화에서 달은 지극히 남성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여성들은 달을 아주 악하고 위험한 존재로 생각한 반면 농경사회의 전통 속에서의 달은 일반적으로 여성이며 식물 생장과정의 자비로운 주재자로 여겨졌다.

 

 

 

 

 


Map of the Moon by Map of the Moon by Johannes Hevelius (1647)
폴란드의 천문학자 헤벨리우스는 1647년 위대한 월면도를 편집했다.

 

그가 출판한 〈월면도 Selenographia〉(1647)는 달표면의 상세한 지도와 많은 특징적인 부분의 이름이 포함된 초기의 월면도를 포함하고 있다. '알프스'처럼 그가 달의 산을 나타낸 몇몇 이름들은 아직까지도 쓰이고 있으며, 달의 운석구덩이 중 하나에는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또한 그는 그당시로서 가장 포괄적인 1,564개 별에 대한 목록과 현재도 쓰이고 있는 몇 개의 별자리가 처음 등장하는 천문도를 만들었다. 이 목록과 천문도는 그가 죽은 후 그와 함께 관측했던 아내가 〈Prodromus Astronomiae〉(1690)와 함께 출판했다.

 

달의 상징 symbol

 

달의 둥은 원만이요, 구족(具足;다 갖추어져 있음)이다. 갖출 것 다 갖춘 아주 충족한 상태이다. 원형 그 자체가 이미 원만구족의 상징이지만, 그와 같은 원형의 상징성을 달만큼 완벽하게 갖춘 것은 달리 없다. ‘달이 찬다. ’고 한 것은 바로 이 상징성에 대하여 암시하고 있다. ‘찬다’는 것은 기운 것이 차고 모자라는 것이 꽉 차 오른다는 것이다.

무엇인가가 아주 속이 배게 영그는 것을 ‘찬다’라고 한다.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는 민요와 같이, 달은 기욺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참이 더욱 돋보이게 된다.

 

달은 그 둥으로 말미암아 원만과 구족함의 상징이 되기는 하지만, 이내 찼다가 기우는 것이 달이다. 기욺과 참을 번갈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달의 결영(缺盈 : 기욺과 참.)은 연속적이고 동시에 반복적이다.

 

초승달에서 반달로, 다시 보름달로 옮겨가기까지 그 둥글어져 가는 과정이 빈틈없이 점진적이고 연속적이다. 그것은 생명의 점차적인 성장과도 같은 것이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아기에서 어른으로 자라나는 과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던 달은 거꾸로 보름달에서 반달로, 그리고 다시 그믐달로 이울어가게 된다. 이것은 역으로 생명의 퇴조와도 같은 것이다.

 

장년에 다다른 한 인간이 늙은이를 거쳐 죽음에 다다르게 되는 과정과도 같은 것이다. 한편, 달은 이와 같은 참과 이욺을 주기적으로 되풀이한다. 그믐달이 사라지고 초승달이 다시 돋아나기까지 달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는 사흘 동안을 계산하게 된다면, 이러한 결영의 반복은 마치 하나의 생명이 성장, 퇴조하고, 죽음에 다다르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리하여 달은 매우 높은 상징성을 가지게 된다. 죽음을 아주 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비록 죽음에 든다고 해도 다만 일시 죽음에 들 뿐, 재생과 회생을 거듭하는 ‘죽음 있는 영속하는 생명’, 그것을 달은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오직 한번, 지상의 삶을 누릴 뿐, 이내 죽음에 들고나면 그뿐이라는 자기인식을 가지게 된 인간들에게 달의 상징성은 아주 결정적인 것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지각된 달의 상징성 가운데, ‘죽음 있는 영속하는 생명’의 상징성이야말로 가장 값지고 중요한 것이 된다. 이리하여 달은 ‘융화하는 빛’, ‘원만하고 구족한 원융성’, 그리고 ‘죽음 있는 영속하는 삶’ 등을 상징하면서 인간들의 머리 위, 밤의 창공에 떠 있었던 것이다. 이 밖에 달은 그 밝음으로 해서 정화하는 힘의 상징으로 간주되었음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죽음 있는 영생하는 삶’의 상징인 달은 말할 것도 없이 재생의 상징이 되고, 생명력 그 자체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 특히, 달의 결영과 바다의 조수의 관계가 알려지고, 또 달의 결영의 주기와 여성의 경도의 주기가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달이 지닌 생명력의 상징성은 한층 더 강화된다. 달과 물과 여성이 더불어서 생명력 상징의 삼위일체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달의 진실과 소문들

 

Moon symbol달 月 Moon

살면서 이토록 자주, 그리고 분명하게 '날마다' 만나는 달

그러나 그 달에 대해서 생각해 본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진정으로 친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본일이 없듯이

 

 

 



지상의 천문대에서 바라본 달의 모습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달의 얼굴 한쪽만 바라본다.

 

 


Moon symbol달 月 Moon

 

 

 

 
Lunar libration 달의 칭동(秤動)

 


지구의 유일한 자연위성.

달의 펼쳐듬과 오그라듬을 바라본다.

세월이 씽씽 간다. 달의 얼굴이 커지고 작아질때, 지구와 사람의 몸에서는 변화가 생긴다.

달은 도대체 무엇일까?

 

달 月 Moon은 평균 약 38만4,400㎞ 거리에서 지구 주위를 서에서 동으로 공전한다. 달의 크기는 지구의 1/3보다 작으며, 적도지름은 약 3,476㎞ 정도이다. 질량은 지구의 1/81.3에 불과하며, 지구의 밀도가 5.52g/㎤인 데 비해 달의 밀도는 약 3.34g/㎤이다. 달은 태양빛을 반사해 빛을 내지만 반사율(albedo), 즉 받은 빛을 반사하는 비율은 0.073에 불과하다. 달의 밝기는 주로 달표면의 기복과 이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의 양에 따라 달라지므로 위상 주기에 따라 변한다.

 

달은 자전축을 중심으로 29.5일 만에 1바퀴씩 자전하는데, 이 주기는 달이 지구 주위를 1바퀴 공전하는 시간과 같다. 따라서 지구에서 볼 때 달은 거의 같은 면만 보이게 된다. 실질적인 자전율은 일정하나 달이 매일 움직이면서 그리는 호(弧)의 길이는 약간씩 변한다. 따라서 달이 지구를 향하는 면도 호의 길이에 따라 달라져서, 지구에서 볼 때 달의 구면은 달의 공전주기와 거의 같은 주기로 약간씩 진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같은 겉보기 진동을 광학 칭동(光學秤動)이라고 하며 그 양은 보통 6~7°이다.

 

 

 

갈릴레오는 참 많은 일을 했다.

달의 표면을 조금 더 가까히 다가가 쳐바본 지구인은 역시

갈릴레오 갈릴레이이다. 그는 망원경으로 그 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달이 말했다, '안녕 갈릴레오?"

 

 

 

달표면은 1609년 갈릴레오가 처음 관측한 이래 줄곧 망원경의 연구 대상이 되어왔다. 달표면을 자세히 그린 초기의 월면도 중 하나는 폴란드의 천문학자 요한네스 헤벨리우스의 저서인 〈월면학 Selenographia〉(1647)에 실려 있다. 이탈리아 예수회의 천문학자 G. B. 리치올리는 자신의 저서 〈새로운 알마게스트 Almagestum novum〉(1651)에서 달표면의 어두운 지역을 바다(mare)로 표현했는데, 이들 가운데 '비의 바다'(Mare Imbrium)나 '감로주의 바다'(Mare Nectaris) 등과 같이 환상적인 이름을 썼다. 오늘날에는 달표면에 물이 전혀 없다고 알려졌으나 이같은 이름은 계속 쓰이고 있다. 위에 기술된 저서들이 발표된 뒤 수세기 를 거치면서 더욱 상세한 월면도가 제작되었고, 마침내는 달사진이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1959년에 와서는 소련의 우주탐사선이 지구에서 볼 수 없는 달 뒷면 사진을 촬영했다. 1960년대말 미국의 달궤도선(Lunar Orbiter)은 지구에서 보이는 면과 그 뒷면을 포함한 달표면 전체를 근접촬영했다.

 

 



달의 표면에 보이는 운석구덩이다.

달의 운석덩이가 만든 곰보의 흔적을 연구하는 것은

우주의 창조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위험에 대한 생각이기도 하다.

 

 

 


달에서 눈에 가장 잘 띄는 구조는 구덩이(crater)이다. 이들 구덩이는 지름이 약 200㎞ 혹은 그 이상 되는 것도 있으며, 달표면에 매우 많이 흩어져 있으며 종종 서로 겹쳐 있기도 한다. 큰 구덩이의 대부분은 운석(隕石)이 빠른 속도로 달표면과 부딪쳐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지름이 1㎞이하인 작은 구덩이는 화산폭발로 생겨났을 수 있다. 둘레에 고리가 있는 구덩이도 많이 있으며, 이같은 고리는 일반적으로 주변보다 약 1.5㎞ 정도 높이 솟아 있지만 때때로 높이가 꽤 낮은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구덩이 안에는 하나의 중앙 봉우리나 여러 개의 봉우리가 있다. 바다로 알려진 달의 어두운 지역에는 구덩이가 상대적으로 적다. 이들 바다는 대부분의 구덩이가 생겨난 뒤에 거대한 용암류가 흘러들어간 지역일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또다른 중요한 지형은 열구(rille)로서, 이는 수백㎞까지 뻗어 있는 골이 깊은 도랑이다. 이들 열구는 바다나 큰 구덩이의 경계를 이루는 산맥이나 언덕에 나란히 무리를 지어 있는 경향이 있다. 어떤 것은 구덩이 벽을 가로질러 지나기도 한다.

 

 



 



멀리서 바라본 달의 모습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달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한다.

마치 생명을 두고 지구에서 뜬소문들이 그렇게 많듯이.

 

 

19세기말 영국의 천문학자 조지 다윈 경이 내놓은 가설은 수십 년 동안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태양조석(太陽潮汐)에 관한 수학이론을 바탕으로, 그는 달이 처음에는 지구의 일부분이었다가 조석작용으로 지구에서 떨어져나가 점점 멀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1930년 해럴드 제프리스 경은 그와 같은 과정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보여주었다. 1950년대에 나와 널리 퍼진 달의 기원에 관한 또 하나의 이론은 달이 태양계의 다른 어떤 곳에서 생겨나 나중에 지구의 인력에 붙들렸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뒤 이 이론의 바탕이 된 기본가설이 물리학적으로 있을 법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가깝게 다가가서 본 달의 모습이다.

달의 기원에 대한 이론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은 아직도 '소문의 와중'에 있다는 뜻일 게다.

아직도 달의 진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다만 소문의 와중에 있다.

도대체 '인류의 과학'이란 것이 오늘날까지 밥처먹고 무엇을 했단 말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태양계의 기원에 대해 응결설(凝結說)을 확장시킨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지구는 티끌, 유성체(遊星體), 비교적 큰 소행성 등의 무리에서 물질이 유입되어 생겨났다. 반면에 달은 지구 주변에 남은 부스러기 물질이 응결되어 이루어졌으며, 달이 커지면서 지구에 흡수되지 않았다. 지구 주변에 남은 이들 부스러기 물질은 태양계가 생겨난 초기에 태양과 성분이 비슷한 물질 가운데 비휘발성(非揮發性) 원소가 모여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가 녹아 규산염물질에서 철-니켈로 이루어진 단단한 물체가 분리되었다. 이런 중금속 부스러기들이 유입되어 지구가 되었고, 반면 갓태어난 행성 주변궤도에 있던 암석질 물체가 응결되어 달이 생겨났다.(생겨났다고 하더라)

 

 

Moon symbol달 月 Moon

달의 역이 생리적인 삶의 리듬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삶의 리듬까지를 지배하였다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이른바 세시풍속(歲時風俗)에서 분명해진다.

 

 

 

 

 

음력 lunar calendar


달이 태양과 같은 방향에 있을 때는 지구가 달의 그늘을 향하게 되므로 안 보인다. 이것이 삭으로 음력 초하루에 해당하고 7일경에 달의 서쪽 반이 보이는 반달〔上弦〕, 보름에는 달이 태양의 반대쪽에 와서 둥근 전면이 보이는 망(望)이 된다. 보름이 지나면 달의 서쪽(오른쪽)이 이지러진다.

 

삭망월(29.53일)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을 쓰면 우선 0.53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큰달 30일과 작은달 29일을 교대로 써서 평균 29.5일을 쓰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음력의 1년, 즉 1태음년(太陰年)=29.5일×12=354일이 되어 양력의 1년인 1태양년=365.24일보다 약 11일이 짧다.

 

 

 

 

 

 

 

1태양년은 계절이 되돌아오는 주기이므로, 음력을 그대로 쓰면 1년에 약 11일씩 3년에 약 한 달, 9년이면 한 계절이 어긋나서 달력으로는 봄이지만 실제 계절은 아직 겨울인 경우가 생긴다. 예로부터 이러한 일을 바로 잡기 위하여 대략 3년에 한 번 윤달을 끼워서 음력 날짜와 계절이 잘 맞도록 조정을 하였는데, 이것이 우리가 쓰고 있는 태음태양력이다.

윤달을 끼우는 방법으로 예로부터 알려진 것은 19년7윤법인데, 19태음년에 7개의 윤달을 끼우면 12×19+7=235삭망월로 19태양년의 일수(6,939.6일)와 같다. “윤달에 태어난 사람은 19년만에 제 생일을 되찾는다.”는 말은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는 사람에게는 태어났던 그 계절에 생일을 맞이할 기회가 19년에 한 번 있다는 뜻이다.

 

유대인의 음력 카렌다

 

또, 양력의 생일을 쓰던 사람이 필요(혼사·점복)에 따라 음력 생일을 찾는 일이 허다한데, 만 19세(또는 만 38세) 때 생일의 음력 날짜가 바로 그것이다. 19년만에 음력과 양력의 날짜가 발이 맞게 되기 때문이다.

흔히 “음력이 계절에 더 잘 맞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것은 주객이 뒤바뀐 이야기가 된다. 1년의 계절을 24등분한 24절기가 쓰이게 된 까닭은 음력으로는 계절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데 있다.

 

24절기는 양력으로 해마다 같은 날짜에 가깝지만 음력으로는 날짜가 크게 어긋난다. 농사를 짓는 데는 늘 음력의 날짜가 아니라 24절기가 그 길잡이가 된다. 음력은 계절과 어긋나는 결함이 있으나, 해변의 어촌에서는 밀물과 썰물의 변화가 음력 날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음력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음력 날짜에 따라 밀물 때의 물의 높이는 한 매(물) 두 매 등으로 늘어나고, 또 줄어들 때는 한 꺾음 두 꺾음 등으로 나타내는 풍습이 어촌에 전해지고 있다.

 

 

중국인의 음력 카렌다

 

 

 

 

달과 조석 ebb and flow

조석(潮汐)이란 해변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밀물과 썰물로 해면의 높이가 변하는 현상인데, 그 원인은 주로 지구에 가장 가까운 달이 바닷물에 미치는 인력에 있다.

 






〔그림 1a〕 에서 달의 인력은 가까울수록 크기 때문에 A, O, B의 순으로 크다. 지구의 중심 O에서 보면 〔그림 1b〕, A는 O보다 더 끌리고 B는 O보다 덜 끌리는 결과 A와 B는 O에 대해서 바깥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달에 가까운 A와 그 반대쪽 B에서 밀물, 그 중간에서는 썰물이 일어나고, 지구의 자전에 따라 A지점은 약 12시간 뒤에 B지점으로 오게 되어 다시 밀물이 일어난다. 즉, 밀물과 썰물은 하루에 두 번씩 일어난다. 달보다 먼 태양도 바닷물에 조석을 일으키지만 그 영향은 달의 약 2분의 1 정도로 작다.

 

그래서 달과 태양의 인력이 서로 돕는 삭과 망에서는 여느 때보다 밀물이 크게 일어나서 사리〔大潮〕, 달과 태양의 인력이 서로 방해하는 반달일 때(상현과 하현)는 여느 때보다 적은 밀물, 즉 조금〔小潮〕이 일어난다.

인천의 경우 사리 때 해면의 높이는 약 9.5m, 조금일 때는 약 4.5m이다. 밀물과 썰물은 앞에서 말한 달의 위치에서 즉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지체가 있다.

 

 


이는 바닷물이 움직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달이 정남에 보일 때부터 만조가 일어날 때까지의 시간은 곳에 따라 약간씩 다른데, 인천만의 경우 평균 4시간 28분이다. 음력날짜와 만조·간조 때 해면 높이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그림 3〕(인천만)에서 볼 수 있다. 사리와 조금이 각각 삭망과 상현·하현에서 지체되는 까닭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달과 생활력 세시풍속歲時風俗

the lunar calendar

음력, 곧 태음력은 말할 것도 없이 ‘달의 역(曆)’이다. 물론, 음력의 음(태음)은 단순히 달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양(태양)과 함께 우주적 조화의 궁극적인 이원소(二元素)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음이다.

그러나 달은 그 태음의 정(精)으로 간주된 것이기 때문에 태음력을 곧 ‘달의 역’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전통 농어촌사회에서 달의 역인 음력은 크게는 생활력이자 농사력이었다.

 

이것은 한국인의 집단적인 삶의 율동 그 자체가 달의 역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우리는 달을 따라 살고 달을 따라 농사를 지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달의 결영의 주기를 삶의 리듬으로 삼았다는 것은,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달의 결영의 주기가 그들의 생리적 또는 생물적인 삶의 리듬을 결정한 것만이 아니고, 그와 동시에 문화적인 삶의 리듬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달의 역이 생리적인 삶의 리듬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삶의 리듬까지를 지배하였다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이른바 세시풍속(歲時風俗)에서 분명해진다. 세시풍속이란 문화적인 삶의 리듬을 좌우하는 생활력과 농사력을 따라 영위된 풍속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세시풍속은 달의 역에 따른 공동체적인 ‘통과의례(通過儀禮)’이다. 그것도 극히 역서적(曆書的)이고도 계절적인 통과의례이다.

 

모든 세시풍속에 획일적으로 해당될 수는 없으나, 그 중의 상당수는 계절적인 전환기를 관리하는 생활제도이다. 자연질서에 순응하면서 자연질서가 보장하고 있는 생산적인 결과를 촉진함으로써 전환기를 능동적으로 넘기는 것이 다름 아닌 세시풍속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상원(上元)의 달에 집중된 각종 풍속에 의하여 분명해진다.

 

달의 명절인 상원과 중추(中秋)는 서로 짝지어져서 농사력의 시작과 결말을 뜻하고 있다. 상원이 달에게 바치는 농경의 예축(豫祝)을 위한 명절이라면, 중추는 농경의 수확을 달과 더불어 갈무리하는 명절이기 때문이다. 참다운 농사력의 시작이 상원이고 그 끝이 중추라고 본다면, 우리의 농사력은 달로 시작되고 달로 끝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정월초하루부터 보름까지를 통틀어서 ‘설쇠기’로 볼 수 있다. 초하루에서 비롯된 각종 기년 행사(祈年行事), 말하자면 ‘해빌이’가 상자일(上子日)에서 상해일(上亥日)에 이르는 12일 동안의 기축(祈祝)과 금기(禁忌)로 다져진 뒤 보름날에 다다라서 절정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정초 상자일에서 상해일에 이르는 12일이 12개월의 전체(代喩)임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그 12일을 포함하여 초하루부터 상원까지의 15일 동안 기년 행사가 점층적으로 진행되다가 대보름에 이르러서 대단원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보름 동안의 설쇠기는 고사와 기축, 그리고 놀이로 이어지는 명절이다.

 

그것은 종교적인 축제의 기간이라서, 일상적인 생활의 시간과는 구별되는 별도의 시간이다. 대보름은 그 일상적인 테두리 바깥에서 벗어난 날들의 막음문이자, 또 한편으로는 일상적인 테두리로 들어서는 시작의 날이기도 한 것이다.

정월초하루에서 보름에 이르는 각종 기년 행사의 점층적인 진행이 달이 둥글어져 가는 과정, 즉 달의 점층적인 진행과 병행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달에게 일년농사의 풍족을 미리 예축하는 상원행사는 달을 대상으로 한 점복행위(占福行爲)와 짝지어져 있다.

 

이것은 ‘달의 역’에 어울리는 한 해의 참다운 시작이 정월대보름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월대보름은 한 해의 첫 만월이기 때문이다. 다른 달의 보름은 작은 보름이라는 것을 상대적으로 전제하지 않고는 상원에 대자가 붙을 수 없다. 대보름의 대가 큰 대자라는 것은 상원의 중대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또 하나의 보름인 추석이 ‘한가위’라고 불리고 있음을 연상하게 된다. 한가위의 ‘한’ 또한 대(大)나 다(多)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일년 동안 열두 번 있게 되는 보름 가운데 상원과 중추의 보름에만 ‘대’나 ‘한’을 씌워서 이름 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두 보름이 특별한 보름임에 대한 증거이다.

 

상원은 농사력이 시작되는 참다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보름이라는 점에서, 한가위는 한 해의 농사력이 마무리되는 보름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한 해 동안 두개의 대(한)보름을 가지고, 그것으로써 농사력의 시작과 끝으로 삼을 만큼, 만월에 대한 믿음과 꿈을 가꾸어왔던 것이다. 그것은 곧 풍요와 번영과 생명력에 대한 믿음이자 꿈이었던 것이다. 보름달이 둥글고 밝은 만큼, 우리들의 믿음과 꿈도 부풀고 또 빛을 더하였던 것이다. 대보름날은 세시풍속 전체로 볼 때, 가장 부푼 날, 가장 둥근 날이다. 그것은 세시풍속에 따르는 어떤 명절도, 대보름만큼 풍족하고 다양한 고사며 점치기, 그리고 놀이를 갖추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만큼 대보름은 명절 중의 명절이다. 대보름날 각종 행사의 핵은 아무래도 달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세시풍속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달에 대한 기년 행사도 점치기와 기축과 놀이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이 행사는 따로따로 치러지기보다는 하나로 어울려 복합적으로 치러지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다시 가지가지 대립적 양분(兩分)의 원칙에 비추어서 점을 치게 되지만, 정상/비정상, 예정/예정바깥, 두꺼움/얇음, 여묾/여림, 흼/붉음, 밝음/어둠, 맑음/흐림, 물기/메마름 등의 양분법은 원칙적으로 풍/겸에 대응되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빛깔에 관한 부분만 자세히 살펴보면, ‘맑음·푸름·흼·묽음·눅음·무름’ 등이 ‘흐림·붉음·됨·누렁’ 등과 대립하고 있다. 이 대립법은 여실하게 보름달이 수성(水性), 곧 물다움을 많이 띨수록 더욱더 풍성하게 풍요를 상징하게 됨을 보여주고 있어서, 달과 물 사이의 관계가 깊음을 보여주고 있다. 달의 풍족은 곧 물의 풍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보름의 해운보기나 달점은 이같이 달맞이 또는 달바라기로만 치러진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의 달그림자점이 있었으니 달빛을 받아서 땅바닥에 지는 사람·손가락·작대기·절구 등의 그림자로 점을 쳤는가 하면, 특수하게는 물에 지는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점을 치기도 하였다. 이 경우 그림자의 실(實)/부실(不實)이 문제가 되었거니와 그림자의 선명도를 따라 길/흉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대보름날에 사람들이 달바라기를 하면서, 해운을 빌고 더불어서 해운을 점치기도 한 것이라면, 이른바 ‘달집의 불’로는 놀이하면서 해운을 빌었던 것이다. 달집의 불은 주술적인 놀이이다.

 

일례로, 전라남도 구례지방 산간마을의 경우를 보면, 볏짚과 솔가지로 움막 같은 꽤 큰 달집을 짓고 달집 위에는 액을 없애기 위한 연을 단 뒤에 달이 떠오르는 때를 기다려 거기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둘레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는 묵은 저고리 동정이나 깃을 뜯어서 불붙은 달집에 던져 넣으면서 액막이를 빌었다. 그것은 묵은 오예(汚穢 : 부정)를 씻음을 의미하였거나 아니면 신체 일부에 감염된 옷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육신의 일부를 신령에게 바침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불 둘레에서 농악을 울리는가 하면, 더러는 청소년들이 그 불 위를 제 나이만큼 수를 정해서 뛰어넘기도 하는 것이었다. 불길이 기세 좋게 타올라야만 해운이 좋다고 믿었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해운 점치기의 뜻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달집의 불기운은 겨울의 얼음과 대비시키면 그 뜻이 분명해진다. 새해를 맞아서, 대지에다 봄기운의 더움을 지레 지피는 주술, 그것이 곧 달집에 불놓기이다.

 

말하자면 ‘달집의 불’에서 달의 풍요의 기운인 대보름달은 이제 보장된 봄기운을 지상에다 옮겨놓는 주술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물론, 정월대보름날의 세시풍속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전라남도편-≫에는 대보름의 행사로 자그마치 80여가지가 보고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 80여가지가 한 동아리로 묶여서 재연될 대보름날의 서낭굿이나 별신굿까지 통틀어서, 이들 상원의 세시풍속들은, 요컨대 한 해의 첫 만월이 상징할 신생력이나 재생력을 확실하게 지상의 섭리로 옮겨놓기 위한 주술적인 점치기, 기축, 그리고 놀이의 복합이었던 것이다.

 

 

 

 

 
<출처;tong.nate 네이트 우수 블로그 왕관이예요justin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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