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리 정착 후 '주민들 속으로' 도움 필요할 때면 거꾸로 찾아와 지오하우스 인증 업체로도 선정
"물꾸럭(문어) 잡으러 가요!" 앞집에 사는 토박이가 스스럼 없이 찾아오게 된 건 순전히 김용래씨의 붙임성 덕분이다. 제주에 정착한 지 1년 2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수시로 그를 찾는다. 감귤밭 가지치기할 때나 형제섬 앞바다에 물꾸럭 잡으러 갈 때나 구멍가게 냉장고가 고장났을 때나 예외없이 그는 '홍반장'이 된다.
1948년생인 김씨는 지난해 4월 말 서울살이를 접고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정착했다. 대기업에서 30년간 근무하다 1999년 퇴직한 후에도 바쁘게 살았던 그다. 중소기업 경영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경영난에 허덕이는 회사들을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다. 그러다 국가 공인 '노인'이 된 재작년부터 일거리가 없어져 몸이 자유로워지자 전원생활을 꿈꾸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아이디어를 내놨어요. 아내도 입버릇처럼 제주도에 살고 싶다고 해서 작년 3월에 내려와 이 집을 보고 바로 결정했죠." 대기업 주재원으로 중국에 나가 있는 둘째사위가 먼저 내려와서 집을 봐뒀던 터다. 둘째딸 부부는 5년 뒤 제주도에 정착할 계획이다. 그렇게 찾은 쓰러지기 직전의 집을 잔금도 치르기 전부터 수리하기 시작했다. 화장실과 주방도 없는 집을 수리하는 한달 동안 아내 박인숙씨와 그는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이 즈음 그는 경로당을 찾아갔다. 동네어른들을 사귀는 것이 제주살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경로당에서 그는 물꾸럭 잡으러 같이 다니는 토박이를 제외하곤 가장 어린 나이다. "할머니들이 영계 왔다고 이쁘다면서 반찬도 하나 더 주세요. 동네분들을 사귀어 아침에는 문어도 잡으러 같이 다니고, 어울려 다니다 보니 한가한 날이 별로 없어요."
집수리 끝나고 밖거리가 비어 있으니 민박이나 해볼까 생각하던 차에 이사무소에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제주관광공사가 세계지질공원 핵심마을 관련 상품으로 추진 중인 '지오하우스' 사업에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집 위치가 좋아서인지 바로 지오하우스 인증 업체로 선정됐어요. 민박치곤 싼 가격이 아니지만 민박체험을 원하는 관광객들이 많아 손님이 꾸준하게 들어오고 있어요." 여름엔 평균 90%의 가동률을 기록할 만큼 인기 폭발이다.
요즘 그는 제주도의 수눌음 문화에도 흠뻑 빠졌다. 이웃이 밭일을 하러 가는데 시간이 되느냐고 물어오면 품삯도 없지만 기꺼이 달려간다. "점심과 저녁도 얻어먹고, 양파·배추·감자 등도 주워다 먹으니 부식비가 별로 안 들고 얼마나 좋아요." 시멘트 일부를 걷어낸 그의 집 마당에는 이웃에게서 얻어온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꽃이 심어져 있다. 수눌음은 이주민에게 더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