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시집『엉덩이에 대한 명상』출간
이동훈 시집『엉덩이에 대한 명상』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175번'으로 출간되었다.
작품은 4부로 나뉘어져 있고 앞에 '시인의 말'과 뒤에 이성혁(문학평론가)의 해설 '기억의 현재화와 생명력의 발견'이 실려 있다.
150쪽으로 된 이 시집의 정가는 8,000원이다.
<시인의 말>
라면 맛이 시들하더니
글맛도 그러하다.
더 헤매라는 신호일 텐데
자꾸 나를 다듬는 것도
나가 아닌 것 같다.
맹한 국물이지만
된장 고추장 반의반 숟갈로
간을 맞추었으니
아무쪼록
냄비 뚜껑에 나눌 게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14년 1월
이동훈
<작품 감상>
엉덩이론
엉덩이 든직한 짝에게, 엉덩이 조선 반만 하다고, 주워
들은 걸 철없이 써먹다가 귀싸대기 얻어맞았지. 엉덩이가
얼굴보다 예민한 줄 몰랐던 거지.
엉덩이 까고 팬티 갈아입는 옆집 누나를, 숨어 보다 숨 막
힌 적 있지. 허연 속살이 꿈으로 와 이부자리를 지리면서, 벌
거벗은 마야의 보이지 않는 엉덩이까지 눈부셔하던 적 있지.
엉덩이 쫓다가 덜컥 식구 만들고, 엉덩이 붙일 데 없는
실업으로 뒷목 잡은 적 있지. 매품으로 엉덩이 떡칠하려
는 흥부 마음도 슬며시 잡히는 거지.
엉덩이 예쁜 세 살에게, 엉덩이 반쪽은 아빠 거라고 했
다가 홰치는 소리를 들었지. 어린것도 엉덩이에 대한 자
존이 있다는 거지.
엉덩이 뿔 날 일은 몰라도 엉덩이 금갈 일은 있다는 거, 엉
덩방아 찧고 엉엉 운다면, 아직은 잡아줄 누가 있다는 거지.
대추나무 꽃
낮은 슬레이트 지붕 단칸방에
북적거리는 남매를 할매가 다 안았다.
겉으로 늙고 속으로 정정한 대추나무를 닮아
할매는 어지간히 억척이었다.
시장 바닥을 훑어온 배춧잎과 시래기로
된장국을 무시로 끓였지만
가난에 대해서,
배곯지 않고도 생기는 허기에 대해서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대추나무 그늘진 평상에
할매 곁으로 쪼르르 파고드는 날엔
물기 마르는 빨래처럼 금세 서늘해졌고
의기소침하거나 겉도는 날엔
손바닥으로 등짝을 아프게 맞기도 했다.
그런 할매도 참으로 늙기 시작했다.
오줌 마려워 깨어난 어느 새벽
문기둥 잡고 숨 고르던 할매를 보았다.
끝끝내 병원 한 번 가지 않은 할매
대추씨처럼 맵차 보여도
속정은 대춧빛보다 고와서
나누고 나누어도 다할 것 같지 않더니
지나는 손을 잡고 밥 먹고 가랬단다.
그게 유언이 되었다고
할매 발치에 엎어져 아부지는 엉엉 울었다.
무춤하니 견디다가 보았다.
할매의 쭈글쭈글한 손을
대추나무 쩍쩍 갈라진 아픔을 보았다.
할매는 한 그루 대추나무였다.
피는 듯 마는 듯 지나버린
대추나무 꽃이었다.
쑥 뽑히다
꽃밭에 쑥 같은
볼품사납고 불량스럽게만 기억되는
그래서 후회되는 이름이 있다.
쑥에게 손을 댔다.
뿌리의 흙알갱이까지 모질게 털어 덤불에 던지고
가을볕에 바짝 말랐을 줄만 알았다.
그랬던 것이 두어 뿌리 용케 살아남아 꽃을 피웠는데
아뿔싸! 내가 버린 건 색색이 아름다운 국화였다.
국화 잎줄기를 쑥대로만 여기고 일을 저질렀으니
괄시 당한 쑥에게 미안하고
쑥 대신에 초상난 국화에게 미안하다.
다른 것을 그르다고 하고
있는 그대로조차도 볼 줄을 몰랐던 셈이다.
국화도 쑥도 자기를 몰라보는 손길이 오죽 미웠을까.
마음을 기울여 보면 서로 다르다 할 것을.
또 마음을 기울여 보면 서로 다르지 않다 할 것을.
이제 어쩔 거나.
쑥 대신에
국화 대신에
쑥 뽑힌 자존심 한 움큼을.
길 떠나는 가족*
열리지 않는 길을 오래 걸었네.
상흔이 가시지 않은 서울에서
아지랑이 아물거리는 남쪽으로
입때껏 가리어 있던 길을
그리움의 물꼬 트고 넘쳐흐르고 싶었네.
그림이 밥이 되지 못하고
사랑이 밥을 대신하지 못하여
식구는 떠나고 눈물자국만 남은 날들
닫혔던 길 위에 뼈까지 야위어서야
꽃 피고 새 우는 남쪽이 보이네.
소달구지에 실은 꿈,
내려놓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내딛는 황소 걸음새도 식구 표정도
풀어놓은 구름보다 경쾌한데
다시 헤어지는 일 없이
술 담배도 끊고 그림만 그릴 거라고
고삐를 그러쥐는데
이상하지,
남쪽 가는 길이 이리 환하다니.
더디기만 하던 길이
서귀포 앞바다까지 금세 열리다니.
이제 굶어도 배고프지 않으니
참 이상하지,
꽃상여도 아닌데, 마지막도 아닌데
눈물은 왜…….
*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1954. 종이 그림과 일본의 가족에게 보낸 엽서 그림이 있음.
호연정*
시끄러운 세상 쪽을
느티나무로 둘러친 언덕바지 집.
캔디의 포니 동산 같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다친 마음들이 괴어드는 집.
떠나온 세상을
넌짓 쳐다보는 꿍꿍이에 놀라
강물 내다보는 자리에서
굳이 몇 걸음 뒤로 나앉은 집.
곧거나 휜 자재가
지붕 밑, 짧거나 긴 거리를
중심과 가녘의 구분 없이
자유자재로 어울린 말랑말랑한 집.
마루에 길게 누우면
한쪽으로 쏠려서 굳은
속상하고 불편한 마음이
제풀에 스르르 풀어지는 집.
늙은 은행나무가
제 둥치에 조릿대를 키우며
안부를 물어오는 집.
슬픈 캔디를 불러
대놓고 울어도 좋을 것 같은
오래 헤매다가 돌아온
웅숭깊은 마음자리 그 집.
* 호연정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호. 합천 율곡면 소재.
첫댓글 처녀시집『엉덩이에 대한 명상』의 상재를 축하합니다, 이 시인님!
앞으로 더욱 아름답고 방방하고 통통하고 풍만하고 실팍한 엉덩이를 많이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건필을 빕니다.
첫 시집 잘 받았습니다. 감사드리고, 축하드립니다. 새삼 '엉덩이에 대한 명상'을 해보게 됩니다.
이동훈 시인의 첫 시집 출간을 축하해 마지않습니다.
시집 출간을 계기로 더 좋은 작품들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토요일 아침이 비로 시작해서 이부자리에서 조금 더 뭉그적거리는, 그러고 싶은 날입니다.
낮에는 라면을 끓여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수프 반만 넣고 된장,고추장으로 간을 맞추시기를 권장해드림)
홍해리 선생님
직접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도 잘 못드리고 늘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채들 선생님
명상은 제가 할 테니 선생님은 가족과 함께 나들이 다녀오시기를요.(비가 와서...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임보 선생님
이쪽은 벚꽃이 꼴을 갖추었는데 비 예보가 있어 저들이 바짝 긴장해 있을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우이도원에서도 꽃잔치가 있겠지요. 늘 배우며 살겠습니다. 인사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시집 잘 읽고 있습니다.
이동훈 시인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느낌, 푸근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되십시오.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계절에 상재하시니 더욱 푸르를 일 만 남았어요..ㅎ
고맙습니다.
비가 그치면(여긴 해가 날 듯하다가 바람이 좀 붑니다) 사진 찍기 좋은 계절이겠지요. 감사합니다.
이 봄날에 꽃이 피는 시인님의 건필에 축하를 드립니다.' 엉덩이...'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하필이면, 엉덩이를 밀어서 죄송합니다. 봄 마실 많이 다니시겠네요. 감사합니다.
짧아지는 봄 밤, 이틀째 '엉덩이에 대한 명상' 하니라 잠을 더 줄였네요.ㅎ
이동훈시인님을 많이 알게 되겠지요? 축하드립니다.
잠을 청하는 방편은 아니시겠지요^^ 어쭙잖은 글을 소개해 주시고 해서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감사합니다.
시가 참 따뜻하군요. 봄비 같기도 하고,..촉촉해서 십 년 묵은 짐을 풀다말고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주소불명으로 떠돌 이시인의 시집, 어떻게 되돌려받을 수 있을까,.속상하고, 안타깝고, 미안하고,.그러나 우선 축하축하,.!!! 첫시집이어서 더 오랫동안 뜻깊게 받은 이들의 가슴에 따뜻한 충격으로 남을 것입니다. 축하해요.!! ^&^
늦게라도 주인을 찾아가서 다행입니다. 귀국 축하드리고요. 감사합니다.
시집 잘 읽고있습니다 첫시집 상재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삼척, 선생님 정원에 꽃이 한창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 시집상재를 축하합니다. 글맛이 참 깊죠. 시집은 보지 못했지만...
박은우 선생님, 감사합니다. 주소록에 있는 주소지(한남동)로 부친 걸로 되어있는데요, 혹 주소가 잘못되거나 다른 사정이 있으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이동훈 시인 님, 오늘 시집을 받고 기쁘게 읽습니다.
개를 위한 변명까지 읽다가 댓글 씁니다.
재미나게 읽고 배우겠습니다.
늦었지만 첫 시집 상제를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되십시오. 꾸벅.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5.31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