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여름
김은우
비파 하고 발음하면 목이 긴 항아리 같은
현악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햇빛과 그늘을 건너뛰며 음악이 머무는 동안
선풍기가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선형계단을 타고 오는
빗방울의 왈츠를 따라 아이들과 미끄럼틀 아래에서
모래무덤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매미가 울고 둥근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고
푸른 잎들이 담장을 덮을 때
귓불이 발그레한 젊은 스님이
랩으로 염불을 합니다
복숭아의 달콤함이나 포도의 신맛이 아닌
두부의 물컹한 맛이 입안에 맴도는
달아나는 아름다움을 붙들고
수증기처럼 사라지고 싶은 날들
새장 문을 열고 손짓을 하자
갇힌 새가 날아갑니다
새야 새야 뒤돌아보지 말고 가렴
새를 떠나보내는 나의 마음을 새는 알까요
푹 고아 끓인 삼계탕 냄새가 코를 찌르는
새끼두꺼비들이 목숨을 걸고 대이동을 하는
눈동자가 얼룩지는 습기의 나날
풀들 베어낸 자리에 비린내가 스며들고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는 쓰레기
긴 장마가 끝나도 여름은 끝나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붉은 꽃이 집니다
2023 한국시인
카페 게시글
*김은우 시인의 방
아무튼 여름 / 김은우
김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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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6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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