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렬의 전국연합은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통일을 주장해왔다. 전국연합출신들이 청와대에도 있다.
김성욱(프리존)
오종렬이 이끄는 평택범대위의 실체
1.
2001년-「매향리美軍국제폭격장폐쇄汎국민대책위원회(매향리범대위)」
2002년-「美軍장갑차여중생故신효순·심미선양殺人사건汎국민대책위원회(여중생범대위)」
2004년-「탄핵무효·부패政治청산을위한汎국민행동(탄핵무효범국민행동)」
2005년-「貧困을확대하는APEC반대·부시반대국민행동(反부시국민행동)」
2005년-「농업의근본적회생과故전용철농민살해규탄汎국민대책위(전용철범대위)」
그리고 2005년과 2006년-「평택美軍기지확장저지汎국민대책위(평택범대위)」
소위 범대위라는 조직을 앞세워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 오종렬 등 사실상 동일(同一) 인물들의 反美 소요·폭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2001년 이래 구성됐던 각 범대위 상임대표 명단입니다.
▲2001년 매향리 범대위(매향리 미군부대 철폐를 목적 구성) ; 전국연합 오종렬 外 평통사 홍근수, 민주노동당 권영길·단병호, 문정현 신부, 범민련 남측본부 이종린 등
▲2002년 여중생범대위(노무현 정권 탄생 기여) : 전국연합 오종렬 外 평통사 홍근수, 통일연대 한상렬, 민주노동당 단병호·천영세, 문정현 신부 등
▲2004년 탄핵무효범국민행동(노무현 정권 유지 기여) : 전국연합 오종렬 外 문규현 신부, 민주노총 이수호, 아름다운재단 박원순 변호사, 환경운동연합 최열 대표 등
*2002년 여중생범대위 촛불시위는 미선이·효순이 두 여중생에 대한 추모 이전에 미군철수 등「反美감정」을 선동하며 盧대통령 당선 이후 1년 넘게 계속됐습니다.
*2004년 탄핵 당시 거의 매일 취재했던 탄핵무효 촛불집회 역시 「탄핵무효」「국회해산」은 물론 「反美감정」을 선동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예컨대 촛불집회의 주제가 역할을 하며 집회 내내 애창된 「너흰 아니야」라는 노래는 『시대가 바뀌어도 북한은 적(敵)이고 미국은 죽었다 깨도 혈맹(血盟)이라는 너희들의 망발, 너희들의 헛소리』등 북한에 대한 적(敵)개념과 미국에 대한 동맹(同盟)개념을 망발과 헛소리로 치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2005년 10월 反부시국민행동(2005년 11월18일 1만 여 명 동원, 부산 수영만 인근에서 쇠파이프·죽창·곤봉 등을 사용 폭동) ; 전국연합 오종렬 外 민중연대 정광훈 등
▲2005년 11월 전용철범대위(여의도농민대회에서 전용철씨가 사망하자 구성. 노무현 대통령 사과 및 허준영 경찰청장 사퇴 유도) : 전국연합 오종렬 外 민중연대 정광훈·통일연대 한상렬·전국농민회총연맹 문경식·민주노동당 권영길 등
▲2005년 2월 평택범대위(2005년 7월10일·2006년 3월15일·4월7일·5월4일 쇠파이프·죽창·곤봉 등을 사용한 극렬폭동) ; 전국연합 오종렬 外 민중연대 정광훈, 통일연대 한상렬, 평통사 홍근수, 문정현 신부, 전국농민회총연맹 문경식, 민주노동당 이정미 등
2.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범대위를 구성해 反美를 주도한 인물이 오종렬이라는 인물입니다.
오종렬의 전국연합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91년 설립 이래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통일을 주장해 온 단체입니다. 전국연합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전국연합은 2001년 9월22~23일 충북 괴산군 보람원수련원에서 열린 소위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자』고 결의했습니다. 연방제(聯邦制)실현을 다짐한 이날 결의는 「9월테제」또는 「군자산의 결의」로도 불리죠.
전국연합은 이 대회에서 『6.15공동선언 이후 정세는 <<조국통일의 大사변기>>로 규정할 수 있다』며 『「낮은 단계의 연방제통일」→ 「자주적 민주정부수립」→ 「연방통일조국의 완성」』의 시나리오를 담고 있는 정치조직방침을 결정했습니다. 전국연합은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연방통일조국 건설」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연방통일조국 건설」은 『남한 내 「민족민주전선역량」의 反帝투쟁이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의 反帝전선에 가세(加勢)·결집(結集)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북한 사회주의에 남한이 흡수·통합되는 방식의 통일이 연방제라는 설명입니다.
전국연합은 이를 위해『美帝식민지배체제의 결정적 해체, 6.15선언이행을 앞당겨 연북(連北)·연공(連共)의식의 대고조 이룰 것, 사대매국세력 한나라당 박살, 국보법·이적(利敵)규정·주적(主敵)규정철폐(2004년 대의원대회 자료집)』『국보법철폐를 통해 친미수구세력을 척결(剔抉)·매장(埋藏) 및 생명줄을 끊어 놓는 투쟁을 벌일 것(2005년 대의원대회 자료집)』이라는 요지의 결의를 한 바 있습니다.
3.
노무현 정권 들어 공직人事의 특이점은 전국연합 출신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전국연합 간부출신으로 공직에 진출해 있는 이는 우선 진실·화해위 위원장 宋基寅씨(장관급)를 들 수 있습니다. 宋신부는 전국연합 부산본부 상임지도위원과 전국연합의 서울 용산구 동자동 사무실 내 위치한 「민주화운동정신계승연대」의 부산본부 공동대표를 지낸 바 있습니다.
천영세(千永世.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前전국연합 공동의장 - 민노당 국회의원)·강기갑(姜基甲. 전국연합 대의원 - 민노당 국회의원)·김금수(金錦守.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 노사정위 위원장·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민간위원)·이창복(李昌馥.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 경기대 관선이사장, 최근 강원지사출마로 사퇴)·김상근(金祥根.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 법무부 감찰위원회 위원장, 前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정동익(전국연합 감사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감사·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위원)씨 등은 전국연합 現職 간부들입니다.
함세웅(咸世雄) 씨는 2004년 10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명단에서 삭제됐습니다. 그는 99년 이래 3년여에 걸쳐 덕성여대에 관선이사로 활동해 온 데 이어 최근에는 세종대 관선이사로 파견됐습니다.
전국연합의 前職 간부들은 열린우리당과 청와대에 진출한 사람이 많습니다. 이인영(李仁榮) 의원은 全大協 1기 의장 출신으로 1997년 전국연합 조직국장을 역임했고, 우상호(禹相虎) 의원은 全大協 부의장 출신으로 1992년 전국연합 부대변인을 역임했습니다.
임종인(林鍾仁)의원은 1992년~1995년 전국연합 대변인을, 이기우(李基宇)의원은 1991년 전국연합 경기남부 조직부장을, 유선호(柳宣浩) 의원은 1992~1993년 전국연합 인권위원, 최규성(崔圭成)의원은 1991년 전국연합제도정치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김희선(金希宣) 의원의 경우 1991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범민련)」 준비위원을 거쳐 1992년 전국연합 통일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결성단계인 지난 91년 11월1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이적단체(利敵團體)」로 判示받은 바 있으며, 지난 97년 5월16일 다시 대법원에서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다시 「利敵團體」판정을 받았습니다.
지난 총선 당시 열린당 부산 해운대 기장甲 공천을 받았던 최인호(崔仁昊)씨는 全大協 부의장 출신으로 1993~1995년 전국연합 산하 부산연합 조직국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총선에서 떨어진 후 2005년 4월 대통령비서실 부대변인으로 임명됐습니다.
열린당 경기 고양일산을 공천을 받은 김두수(金斗守)씨는 1996~1998년 전국연합 정치국장을 역임했다. 낙선 후 대통령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2005년 11월15일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임명된 황인성(黃寅成)씨는 1990년대에 집행위원장으로 전국연합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으로 공직에 진출했고, 2004년 4월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발탁됐었습니다. 黃寅成씨는 지난 5월 청와대 인선에서 시민사회수석 이정호 제도개선비서관에서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전해철 변호사도 전국연합 인권위원장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친북화·반미화·좌경화 배경에는 대통령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종착역이 어디가 될지 너무 위태롭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