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절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땅이 비를 잘 흡수하여 밭을 갈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복(유로기아스)을
주십니다. 밭가는 자에게 채소를 내라. 다시 말하면 하늘이 땅에 제공하는 비를
받아 쟁기로 땅을 가듯 마음을 밭을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때에 복이 옵니다. 호세아도 묵은 땅을 기경하면 의의 비가 내린다 합니다(호10:12)
그렇다면 이제 합당한 채소를 내라 성숙한 열매를 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열매가 항상 열리고 있는 상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드디어 생명나무가 된 겁니다.
그렇다면 땅은 일단 비를 받아야 됩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입니다. 이른 비 성령으로
우리가 거듭났고 이제는 늦은 비이신 다른 보혜사 진리의 영이 오시므로 그리스도께서
구주가 되시므로 우리가 영접했습니다. 그 다음은 밭을 갈라는 겁니다. 어떻게?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가지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간구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복이 옵니다.
복이 어떻게 오겠습니까? 말씀으로 옵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채소와 과일을 내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내는 겁니다. 지금 하늘에서 성령의 비는
누구에게든지 임하십니다. 지금도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씨도 뿌리십니다.
그 다음에는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일을 계속하고 있어야 진짜입니다.
8절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가시와 엉겅퀴하면 창3장에서 아담으로 말미암아 땅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냅니다. 이 땅은 우리가 보는 자연세계의 땅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심령의 땅에도 가시와 엉겅퀴가 있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시는 남을 콕콕 찌르고, 엉겅퀴는 세 발 칼코리처럼 끌어당깁니다. 착취입니다.
엉겅퀴는 창3장과 산상수훈에도 나옵니다. ‘어떻게 엉겅퀴에서 무화과나무 열매를
따겠느냐?’(마7:16)하십니다. 그런 것이 나오면 버림을 당하고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서 성령의 열매가 나오는가?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있는가 한 번 살펴보세요.
그런데 왜 아직 우리가 안 됩니까? 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것은 그 전의 과정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췸도 맛보고
하나님의 은사도 맛보기도 하는 등등 여러 가지로 맛보기도 하는데 ‘왜 내 심령에
채소와 과일이 안 나오는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첫째 비를 받은 적이 없고
그 다음엔 좋은 땅 옥토를 만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을 받은 적이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저절로 원래 저주 받은 그 상태의 가시와
엉겅퀴만 있는 겁니다. 성질 낼 것 다 내고, 미워하고, 시기, 질투, 원수 맺는 것,
당 짓고 롬1장과 3장에 있는 것을 다 하는 겁니다. 입만 벌렸다 하면 이 혀가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이게 바로 가시와 엉겅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입이 칼일까 호미일까요? 당연히 호미가 되어야 됩니다.
남을 북 돋우어 주는 입이어야 합니다. 칼처럼 자르지 말고... 이건 혀만 없어지면
되는 것 아닙니다. 혀가 없으면 그 때부터 눈으로 사람을 죽일 겁니다. 이게 바로
인간의 본성의 문제라는 겁니다. 속에서 나옵니다. 아직 좋은 나무가 안 됐다는 겁니다.
좋은 나무가 안 된 이유가 뭐냐? 비를 받아서 그 비를 통해 옥토를 만드는 통곡과
눈물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직 심을 걸 심지 못하고 계십니다.
파종을 못하시는 겁니다. 복을 파종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채소와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게 저주라는 겁니다. 저주함에 가까워 불사름에 된다는 겁니다.
요15장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세요.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8절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을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이렇게 되면 너희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11절)하십니다.
만일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아 열매가 없는 그 말라빠진 가지는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6절)하신대로 되는 겁니다. 이와 같은 맥락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정당한 게임을 하십니다. 주실 것 다 주시고 난 다음 되고 안 되고의
그 결과를 지켜보십니다. 마3장에도 알곡은 곡간에 쭉정이는 불사름입니다.
따라서 불세례는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성령의 세례를 우리가 받으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마음의 땅을 옥토로 만드시는 작업을 하고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하시고 그래서 그 말씀이 우리에게 믿음의 결부를
이루시므로 열매가 되는 좋은 나무가 됩니다. 그 열매로 인해 결국 복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았으면 우리는 심령에 옥토(좋은 땅) 작업을 계속 해야 됩니다.
옥토 작업만 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 복의 말씀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십니다. 제 마음이
강퍅(완고)하니 고쳐 달라고 주님 앞에서 애원해야만 옥토가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늘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만 만들어 놓으면 하나님이 한량없이 부어주십니다. 8복 중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며”(마5:5) 심령의 땅만 만들어지면
다 받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보이는 하늘과 땅의 원리를 바라보세요. 하늘에서
햇빛과 비를 내리면 땅이 일을 하므로 각양 식물이 열매를 맺지 않습니까?
버림을 받고 쓸 수 없는 사람은 6절 보세요.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할 수 있다고
시인하는 사람에게 한없는 영적인 지원을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푸시는데 자신은 안 된다고 우기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초보에만 머물고 아기죽거리면서 완전한데 어떻게
나가겠느냐 하고 버티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 징계를 당합니다. 우리가
완전한데 나아가겠다고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게 하시면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하며, 어떻게 우리가 사랑을 하되 어떻게
원수까지 사랑하느냐?’ 인간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순종하고 그 말씀을 내게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이 말씀의 골자입니다. 히6장이 강조하고
싶은 말씀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 나가라고 하는 겁니다.
만일 완전한데 안 나가면 계속해서 1절부터 6절까지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데 나아가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른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채소와 과일을 내면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십니다.
우리는 이 복을 꼭 받아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버지께 영광의 찬송을!
아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