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와 나병 환자를 고치심 (1481)
코시모 로셀리
코시모 로셀리(Cosimo Rosselli, 1439-1507는 르네상스시대의 피렌체 화가이다.
그는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루카 시뇨렐리와 함께
1481년 여름에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요청으로 시스티나 성당에 벽화를 그렸다.
그들은 모세의 생애 7개와 예수님의 생애 7개의 주제로 벽화를 그렸다.
그림의 목표는 구약에서 예고되고 신약에서 계시되어
성 베드로의 계승자들에 의해 영존하게 된 그리스도의 교회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중 로셀리는 그의 조수이자 사위인 피에로 디 코시모와 함께 4개의 벽화를 그렸다.
<홍해를 건너다>와 <십계판과 황금송아지>가 구약이고,
<산상설교와 나병환자를 고치심>과 <최후의 만찬>이 신약이다.
로셀리는 그림의 네 번째 주제인 구약의 <십계판과 황금송아지>의 맞은편에
신약의 <산상설교와 나병환자를 고치심>을 그렸다.
그래서일까?
두 그림은 대칭된다.
모세는 산에서 하느님께 십계판을 받는다.
하느님께서는 구름 속에서 모세에게 십계판을 건넨다.
모세와 하느님 사이에 구름으로 가리어져 있다는 게 놀랍다.
모세의 제자 여호수아는 그 광경을 숨어서 본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백성들에게 십계판을 보이며
계명을 지킬 것을 선포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에 빠지고,
하느님을 불신하여 불 뱀에 물린다.
이에 모세는 화가 나 십계판을 던진다.
구약의 하느님은 진노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신약의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시다.
예수님은 산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신다.
천사는 바람을 불어 산을 가렸던 구름을 몰아낸다.
그래서 감추어진 산이 완전히 드러난다.
새들도 날아와 산들을 찬양한다.
교회를 통해 이룩하신 새로운 계약을 환영하듯이.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시어 제자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오 5,3)
그래서일까?
가난한 사람과 여인들은 고개를 숙여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만,
부유한 사람들과 옷을 갖추어 입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떤 나병환자에게로 다가가 손을 내밀며 말씀하신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느님의 자비는 원하는 이들에게 베풀어지니까.
그러기에 산상설교는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행복선언이다.
그 행복은 하늘나라를 위해 물질의 풍요보다는
마음의 풍요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행실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된다.
하느님의 사람은 계명을 억지로 지키지 않는다.
그들은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스스로 지키고
또 지키도록 가르친다.
그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들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자선을 베푼다.
그들은 숨을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 숨어서 기도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용서를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한다.
그들은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을 위해 단식한다.
그들은 좀도 녹도 쓸지 않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
그들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지 않는다.
그들은 구원을 청하고,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하늘의 문을 두드린다.
그들은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해 준다.
그들은 멸망으로 이끄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좋은 열매를 맺는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여 반석위에 집을 짓는다.
그래서 바위산위에 교회가 하늘에 닿아 있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