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마리아 金瑪利亞, 1892-1944] 독립운동가, 교육자, 여성운동가. 원명 진상(眞常), 이명 근포(槿圃).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소래) 출생. 세살 때 아버지가 사망했으나 기독교 신문화를 일찍 받아들인
집안 분위기와 어머니의 교육열로 소래학교를 졸업했다. 열네 살에 어머니마저 사망함으로써 숙부인
김윤오와 김필순의 보살핌을 받으며 서울 정신여학교에서 수학, 졸업 후에는 모교 등에서 교편생활을
하고 두 차례 일본 유학을 하였다. 도쿄조시가구인(東京女子學院) 졸업을 앞둔 1919년 2월, 2·8독립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일경에 체포된 이후 스스로 졸업을 포기하고 조국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독립선언서’ 10여장을 필사한 후, 비밀리에 귀국하여 활동하였다. 3·1운동 발발 직후 항일
부녀단체 조직을 계획하고 준비하던 중 체포·투옥되어 5개월여를 서대문감옥소에서 보냈으며 출옥
후에는 동지들을 모아 전국적 규모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활동하였다. 동지의 배반(밀고자 -
오현주)으로 다시 체포되어 혹심한 고문과 옥고로 사경에 처하게 되자 1921년 병보석을 받아 입원
치료하던 중 망명을 획책, 철통같은 경계망을 뚫고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망명하였다.
독립을 위해서는 실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큰 뜻을 품고 미국으로 재망명, 이후 10년간 미국 내 유명한
5개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키웠다. 형 집행이 만료되던 1932년 귀국하여, 국내의
지식인들이 일제 탄압에 굴복하여 친일로 변절해 가는 중에도 조국독립을 위해 그 의지를 꿋꿋이
지키며 활동하였다. 1944년 3월 13일 고문후유증 악화 (상악골축농증 - 구타 및 물고문, 콧속 이물질
강제삽입)로 평양에서 서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위업을 기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관련어록
"독립이 성취될 때까지 우리 자신의 다리로 서야하고 우리 자신의 투지로 싸워야 한다." - 김마리아
"김마리아와 같은 여성동지가 열 명만 있었던들 대한은 독립이 됐을 것이다!" - 도산 안창호
"이 세대의 한국 여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이다." - 숭실전문학교(현 숭실대학교) 교장 매큔
"너는 영웅이다. 너보다도 너를 낳은 네 어머니가 더 영웅이다." - 마리아를 심문하던 일본인 검사
자료출처 : 김마리아 :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였다 - 박용옥 저, 국민일보, 중도일보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인즉슨, 독립투사들은 사리사욕을 버리고 자신이
보유한 모든 재화를 독립운동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독립투사들의 씀씀이를 보면
타인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신에게는 가혹하리만치 검소하였다. 김마리아 선생의 유품은 의외로 찾기가
힘이 든다. 유품조차도 남기기 힘들만큰 검소하였다는 반증이다. 죽는 순간까지 조국의 강하에 담기어
한 줌의 재가 되어서라도 나라를 걱정하고자 했던 선생의 바램과 개인적 검소함이 절절히 묻어나오는
유언인 것이다.
첫댓글 이런분들이 모두에게 잊혀져가고 김활란 같은 쓰레기와 그 추종세력들이 인정받는 대한민국~!!!꼭 변해야하겟지요~~~!!
가슴 울림이 사그러 들지 않습니다....!
여성잔다아크 보다 더 위대하신 분 저의 애국자세를 굳혀주소서 애국하는 많은 후학여성들의 어머니 입니다,
삼일절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저의 아이들에게 교육자료로아주 소중한 내용입니다 잘 사용하겠습니다.
김마리아와 같은 여성동지가 열 명만 있었던들 대한은 독립이 됐을 것이다!" - 도산 안창호 이부분에서 감동을 받네요. 김마리아 같은 분들이 많이 게셨으면 하네요
가슴이 쓰리네요..ㅠㅜ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지켜주셔서....
조선의 잔다르크, 이런인물이 있었는지 정말 몰랐어요... 감사합니다 여사님
저도 오늘 첨 알았네요 하여간 무식한 것도 죄라니까요 ^^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제 홈피에 올렸습니다. 모두들 우리 독립운동가들 널리널리 알려요~~~!!
지금의 기독교가 김마리아같은사람을 본받으면 얼마나좋을까요? 적어도 그 당시 기독교는 항일독립운동하던종교였지요 일부몇몇사람들때문에 기독교라는 종교가 욕을먹기는했지만 그래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한것같아서 좋네요
그 당시 기독교가 항일독립운동하던 종교였다구요? 그건 크게 잘못알고 계신겁니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 중에서 김마리아와 같은 극소수 그런 사람이 있었을 뿐이었지요.. 오히려 나라와 민족정신을 좀 먹던 종교였습니다.
원수가 지금 이순간에도 도처에 있음이 통탄스럽다
존경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