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대회 이렇게 준비했다.
사람의 나이 40을 불혹이라고 한다. 무엇인가에 미혹되는 일 없이 자신의 중심을 지켜가는 나이라는 뜻이다. 올해 화곡어머니테니스 대회가 40세가 되는 해이다. 과연 어떻게 대회를 준비해야 '화곡다운 대회'가 되는지 회원 63명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화곡 클럽의 뿌리를 다시 챙겨보는 것. 이미 80세를 넘긴 창단 멤버들이 제50회 화곡대회를 맞는 10년 후까지 과연 몇 분이나 건강하게 운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 창단 멤버들은 추억이 서린 1970~80년대의 중요한 사진들을 찾아 왔다. 만지면 금방 바스러질 것 같은 누렇게 변색된 40년 전의 잡지를 스캔하고 사진들을 다시 손질하여 24페이지에 팜플랫 요소요소에 실었다. 또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다양한 행사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화곡의 역사를 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외에도 제40회 화곡대회를 위한 준비는 다양했다.
첫째, 풍성하게 상품을 준비하여 참가자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
둘째,19년째 후원을 받고 있는 (주)학산 비트로 본사에 감사의 뜻이 담긴 '화곡나무'를 기증한다.
셋째, 테니스 잡지뿐만이 아니라 일간지와 스포츠 월간지에 연락하여 화곡의 역사와 전통을 기사화 한다.
넷째,팜플랫의 페이지를 늘려 1976년 제1회 대회부터 현재까지 변천과정을 싣는다.
다섯째, 이벤트 회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우리의 힘으로 대회 현장을 꾸민다.
여섯째, 화곡과 인연이 깊은 내빈들을 다양하게 초청하여 감사의 뜻을 전달한다.
논의
제40회 화곡대회 준비는 작년 12월 정기총회에서 새로운 회장을 뽑은 후 곧바로 시작되었다. 필자는 2009년부터 3년간 화곡클럽 회장을 역임했으나 다시 40회 화곡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대회에 관한 회원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그 중에서 40회를 기념하는 특별한 행사 보다는 매 년 화곡대회에 참가하는 참가자들에게 더 푸짐한 상품을 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으로 큰 틀이 결정되었다.
비트로 본사에 '화곡나무 심기'
화곡클럽 회원 일동은 화곡대회 제40회를 맞아 부산 송정에 있는 (주)학산 비트로 본사에 나무 한 그루를 심기로 하였다. 19년째 비트로는 매 년 질 좋은 한국 토종 제품을 협찬하여 화곡대회의 품격을 높였다. 그리고 비트로의 한결같은 후원으로 화곡대회는 더욱 튼튼한 척추를 갖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의 징표다. 나무심기는 미래를 향한 약속이자 비트로의 발전을 기원하는 화곡인 들의 혼을 심는 것이다. 나무는 청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은 다 가지고 있어 교감이 가능하다고 한다. 비트로 본사 마당에 화곡나무를 심는 것은 19년째 건강한 인연을 맺어가고 있는 화곡클럽과 비트로의 위대한 태클(TACKLE)의 시작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와 서울스포츠
필자는 화곡대회 40회 대회를 열기 전에 조선일보에 미리 취재요청을 드렸다. 4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화곡 어머니테니스회의 활동을 일간지에 알리고 싶었다. 조선일보에서 '줌마병법'을 쓰는 김기자는 평소 여성관련 기사를 집중적으로 쓰는 분이이서 그 분께 이메일을 드렸다. 여자들이 뭉치면 얼마나 대단해 지는지, 대한민국에 숱한 테니스 클럽이 많이 있지만 그 어느 클럽도 40년간 대회를 열어 여성 테니스 동호인을 한 곳에 모이게 한 클럽은 없다고 설명을 곁들였다. 그리고 평범한 주부들이 모여 대한민국 주부 테니스의 리더가 되어 온 선배들의 역사를 기자의 시선으로 한 번 바라봐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충분히 기사화 될 만 한 사연이고 10년 전 중앙일보에서도 취재를 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국은 성사되지 않았다. 실망이 컸다. 단지 80대 선배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흔적들을 알리고 싶었을 뿐인데. 그 이후 서울시에서 발행하는 '서울 스포츠'에 취재 요청을 드렸다. 그곳은 스포츠 관련 기사를 많이 다루는 곳이어서 다행히 기사화 되었다. 화곡테니스 클럽은 4월호에 '여성아마추어 테니스클럽의 살아있는 전절'로 기재가 되었다.
참가상품을 들고 있는 참가자
상품준비
참가상품이 문제였다. 그동안 비트로에서 받은 참가품은 대부분 테니스 가방이었다. 필자는 담당 과장을 만나 올해는 40회 대회로 더 좋은 가방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예선 통과자부터 줄 파우치까지 해 주실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며 파우치 샘플을 전했다. 그러나 새로 바뀐 담당 과장은 파우치는커녕 참가 품으로 가방을 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난감했다. 생산원가가 너무 올랐다는 대답을 들은 후 3개월 가까이 애간장이 녹았다. 결국 최근 유행하는 보스턴백 형식의 크고 가뿐한 가방과 파우치까지 지원을 받았으나 과정이 녹록하지 않았다. 상품으로는 본선 1회전부터 64강까지 파우치, 32강은 자동차 와이퍼를 준비했다. 16강부터 결승까지는 최근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필수품인 보온 보냉 물통을 준비해 기존의 상품에 플러스해서 주기로 했다.
장학금을 받는 구연우 학생
팜플랫 만들기
화곡은 매 년 대회 팜플랫을 만든다. 총 20 페이지. 그곳에 화곡의 역사와 여행, 행사 등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만들어 왔다. 이번에는 특별히 네 면을 추가했다. 오늘의 화곡이 있기까지 창단 멤버들의 활동을 넣기 위해서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자료를 준비했다.1976년 제1회 화곡대회부터 최근 대회의 사진을 구분하여 실었다. 그리고 70년대 테니스 토픽에 나온 화곡클럽의 기사와 중앙일보, 여성잡지 퀸, 매 년 테니스 잡지에 기재된 기사들의 PDF 파일을 준비했다. 가장 최근에 서울시에서 발행하는 서울스포츠 2015년 4월호에 기재된 기사도 함께 실었다.
1981년 제1회 무궁화배 단체전에서 우승한 사진. 1989년 일본의 구마모토 현의 한 여성클럽과 교류전한 사진들을 스캔해서 포토샵 작업을 했다. 창단 멤버들이 수집해 놓은 옛 사진들을 중심으로 한일, 한중 교류전과 각종 단체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자료들까지 집안의 앨범을 다 뒤져 100여장을 준비했다. '화곡다운 팜플랫 만들기'에 혼을 쏟았다. 과거와 현재를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편집하는데 꼬박 200여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개나리꽃이 피었다가 지고 초록 새순이 돋았다. 입술 위에도 꽃이 피었다. 화곡카페에 올려놓은 제40회 화곡대회 팜플랫 24페이지를 본 한 분의 댓글을 옮겨본다.
"팜플랫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깝네요. 여느 공들인 잡지보다 더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화곡의 역사가 이 한권의 책에 다 들어 있군요."
대회장 꾸미기
화곡대회는 전통적으로 4월 세 번째 화요일에 시작해서 수요일까지 양 이틀 대회를 해 왔다. 그러나 최근 대회가 많아지면서 월. 화로 날짜를 옮겼다. 비가 내리는 일요일, 임원들이 모였다. 비는 야속하게도 개나리부 대회 날짜로 예정된 월요일 오전까지 내릴 것이란다. 개나리 부를 연기할 것인지 강행할 것인지 한동안 고민을 했다. 최종 5월18일로 연기 통보를 해 놓고 화요일에 있을 입장식장을 꾸미기 위해 풍선을 불기 시작했다. 펄이 들어간 커다란 풍선을 불 때까지도 괜찮았다. 그러나 장식용 작은 풍선을 불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뻥뻥 터졌다. 이미 불어 놓은 것도 뻥뻥 터지며 심장이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임원 네 명이 양 이틀간을 불었다. 터지면 또 불고 또 불어서 만든 풍선으로 장식한 대회장은 화려했고 어느 대회장과 달리 차별화되었음은 물론이다.
내빈초대
누구나 바쁜 시대에 대회 입장식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기적인 일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무리를 해야 했다. 멀리 울릉도 거제도 순천까지 초청장을 보냈다. 그 분들은 화곡대회 입장식에 참석하기 위해 1박2일의 일정을 잡고 올라와야 했다. 서울 경기 강원지역은 물론이고 부산 대구까지 많은 분들이 대회 입장식에 참석해 주셨다. 울릉도에서는 호박엿을 미리 택배로 보내 참가 선수들에게 울릉도의 맛을 보여 주었다. 국민생활체육 이대봉 회장님은 입장식 전날 전화를 하셨다. 대화중에 이번 화곡대회 40회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 드렸다. 화곡클럽의 창단 멤버들이 앞으로 10년 후, 50주년까지 몇 분이나 살아계실지, 몇 분이나 건강하게 운동을 하고 계실지 모르기 때문에 이번 대회는 더 잘 치르고 싶다고 전했다. 이대봉 회장님은 입장식에 오시면서 화곡의 70~ 80대 16명의 형님들을 위해 개별 선물로 티셔츠 하나씩을 더 준비해 오셨다. 깊은 정성과 의미가 깃든 선물이다.
후기
세계적인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파는 것이 인간이다'라는 책을 통해 누구나 무엇인가를 파는 세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세일즈 전성시대'. 유형의 상품이든 무형의 가치든 각자가 가진 무언가를 팔고 그 반대급부로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과 관심을 지불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제40회 화곡대회도 많은 것을 팔았다. 이번 대회를 위해 화곡의 전 회원들은 열과 성의를 다해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을 전했다.
입장식을 마치고 잠시 쉬는 사이에 지방에서 국화부에 출전한 한 선수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연맹에는 나이든 회원들이 없어요. 일을 잘 하지 못할 연세가 되면 자동으로 탈퇴를 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런데 오늘 입장식에서 백발의 원로 회원들을 보니 참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화곡의 긴 역사를 대변해 주는 이보다 더 좋은 증빙은 없을 거예요."
필자는 바쁜 시간을 내어 화곡대회 입장식에 참석해 주신 내빈들께 이메일과 문자로 감사 인사를 드렸다. 대부분 한 수 잘 배우고 간다는 답장이 왔다. 화곡의 역사를 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팜플랫과 체계적인 행사 전반의 모습. 점점 단순화 되어 입장식도 안하고 팜플랫도 광고 위주로만 만들어가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화곡다운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는 답장을 받았다. 아무리 세상이 스마트하게 바뀐다 하더라도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화곡다운 모습이라는 것. 화곡이라는 파워브랜드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편집하여 재창조 해 나가는데 있다.
글 송선순 사진 테니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