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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특별하게 먹은 음식은 어탕국수였다.
( 2008년 부산에 갔을 때)
어탕국수는 지리산민물고기로 만든 국수이다.
밥 반그릇과 함께 뚝배기에 담아서 주는 어탕국수.
어탕국수에 딸려 나오는 반찬-배추김치,깍두기, 고추무침
-된장에 박은 풋고추 :
아삭아삭하니 입맛을 돌게 하는 고추무침은 된장에 며칠 넣었던 것인지 간이 잘 배어 구수했다.
그래서 고추 이야기는 이렇게^^ 設設
가을이 되어 빨갛게 물들기 직전까지 고추는 여름 밥상 위에 오르는 가장 흔한 식품일 것이다. 아무렇게나 따서 쓱삭쓱삭 수돗물에 씻어 된장 종지 하나에 끼워 내도 건성으로 밥상 차려낸 것 같지 않게 군침이 돌고, 여름을 타서 시들거리는 몸에 확 뜨거운 힘을 주고 싶을 때는 일부러 작고 매운 고추를 베어 물어 본다. 와짝하니 혀의 돌기를 긴장시키다가 목으로 넘기는 순간 눈물이 쪼옥 나게 "매워!" 소리가 나면 자그마니 푸른 고추 하나가 핏줄을 불끈 당겨오는 것도 같다. 내 몸과 교접하는 푸르름은 이미 내 몸에서 화라락 불을 당기는 것이다.
부산에서 친구들과 만나기 전날 술이 과했던 탓으로 뒷날은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고 싶었다. 동창친구들을 만나 초밥집으로 갈까 복집으로 갈까 했지만, 휴가철이라 문을 닫은 집도 있고 정기휴일이라 예약하려던 집은 가지 못하게 되자 뜨거운 낮 햇살을 피해 들어갈 곳을 찾는 게 급했다. 그때, 눈에 띈 집이 어탕국수를 한다는 부산 사상구 버스 터미널 앞 골목의 식당이었다.
얼른 보기엔 추어탕과 매운탕을 합쳐 놓은 듯 하고, 거기다가 국수까지 밀어 넣었으니 눈으로 보기만한다면 누구에게라도 식욕을 돋구어 줄 음식은 아니었다. 제주도의 돼지고기 국수가 그렇듯이 보는 것 하고 한 번 먹어 본 다음하고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한 숟갈을 떴는데, 맛이 꽤 좋았다. 우선 칼칼하게 속을 데우는 매운 맛이 알콜의 잔여분이 남아 있던 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았다. 친구들도 생각보다 맛이 좋다며 잘 먹었다.
함께 내 놓은 고추는 너무 커 보였다.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잘라달라 했더니 이 고추는 그대로 먹어야 맛이라고 했다. 그래도 남자친구들 만나 처음으로 밥을 먹고 있는데 젓가락질 서툰 내가 실수라도 할까 싶어 한 입 크기로 잘라 먹었다.
된장에 박혔다가 나온 고추는 짠 맛이 아닐까 했지만 집 된장의 구수한 맛이 더 깊었다. 된장의 깊음과 고추의 싱그러움이 만나 맛은 깔끔했다.
돌아오는 날, 기어코 남편에게도 이 집을 소개했다. 남편에게는 어탕국수의 칼칼한 맛을 보여주고도 싶었지만 나는 이 된장에 박은 고추맛이 한 번 더 먹고 싶어졌다. 이번에 갔을 때는 잘라 달라 하지 않고 그대로 먹었다. 좀 더 본래의 맛을 보고 싶어서 하나씩 꺼내 들고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국수 보다 고추무침이 더 빨리 바닥을 보였다. 다른 반찬, 깍두기나 배추김치는 손도 안 대고 고추무침을 먹었다. 남편도 의외라며 부산의 명물을 한 번 먹고 가는 것이라고 흐믓해했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운전수에게 우리가 부산 명물 어탕국수를 먹었다고 했더니 기사 아저씨가 어탕국수를 잘하는 어떤 집 이야길 해 주신다. 점심 때는 자리도 없다는 그 집의 어탕국수와 고추무침은 또 어떤지 궁금하지만 이미 배가 불렀고 비행기 시간도 가까워졌다. 유명한 집이 아니라지만, 우리가 먹은 그 집만해도 꽤 괜찮았다. 어탕국수 단품으로 네 다섯 개의 탁자를 놓고 장사를 하는 집이었는데, 아름아름 아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 눈치였다.
집에 돌아와 그 집의 고추무침을 만들어 보았다. 친정 집에서 가져온 풋고추가 있길래 쌈장 양념과 함께 무쳤다. 된장이 달랐고 그 집과 달리 마늘이나 양파, 그 외 참깨와 참기름도 조금 넣었기 때문에 그 집에서 내놓은 <제목을 붙일 수 없는 고추>라기 보다는 <풋고추 양념장무침> 이라고 반찬 제목을 붙여도 좋을 찬거리가 되었다. 혀끝에 남은 어탕국수 집의 고추 맛을 생각해보면 더 싱싱하고 구수해야 했지만, 내 것은 고추가 조금 더 질겨서 그랬는지 덜 아삭했다. 그래도 풋고추 그대로 쌈장에 찍어 먹을 때 보다 더 많이 고추를 먹었다.
강정 평화를 위해 도보 순례를 하던 날, 어느 마을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보는 건 즐거웠다. 누군가 조금씩 일구어 놓은 텃밭은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외도동을 지날 때쯤 길 옆의 그 집은 나즈막한 지붕에 길 옆으로 두 평쯤 되는 텃밭이 있었다. 그 밭에 두 줄 남짓 고추밭이 있었다. 어느새 빨갛에 익은 고추도 하나 둘 보이고, 연두색으로 작은 고추도 보이고 물이 부족했는지 잔뜩 푸르게 찌푸린 것들도 보였다. 저녁 나절 햇빛이 조금 시들어갈 때마다 주인이 나와 보살피고 있을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고 사람과 동물, 사람과 식물 사이에도 보살핌이 있는 건 보는 이를 안심하게 한다. 작은 텃밭에 머무는 가난한 농부의 손길을, 또는 허리 꼬부라졌을 것 같은 흰 머리의 할머니를 떠올리자니 이 작은 땅을 버리지 않고 무언가를 거두는 마음이 고마워진다. 나도 허리 굽혀 그 밭을 기억하고자 하였다.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고추 밭은 뜨거운 여름 날을 견디며 알알이 영글어 가고 있었다. 탐스러운 성공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 같았다.
사진을 찍고 일어서는데 저쪽에서 도보순례를 함께 하고 계신 임신부님이 오신다. 그리고 곧장 내게 물으신다.
"왜 그렇게 남의 고추에 관심이 많아요?"
여름 길 더위 한가운데 웃음 한 통을 동동 띄워 놓은 것 같아 하하 웃었다.
그리고 신부님이 꼭, 억지로라도, 기어코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었고, 신부님 말씀은 아래와 같다.
" 어떤 본당에 신부님이 고추농사를 지으셨어요. 그런데 고추가 풍작인 거에요. 신부님이 혼자 먹을 수 없으니까 고추를 따서 신자들에게 나누었지요. 할머니 신자, 아주머니 신자, 처녀신자들까지 골고루요. 그랬더니 다음 주일에 신자들이 와서 아우성이었어요!"
"왜요?"
"신자들이 신부님에게 몰려 오더니
'신부님 고추가 너무 좋았어요,
신부님 고추 정말 맛있어요,
신부님 고추 한 번 더 주세요' 했대요"
이 이야길 우리 합창반 언니에게 들려 주었더니, 언니 한 사람이 다시 고추 이야길 해 주었다.
" 어떤 마을에 과부와 홀아비가 살았어. 두 사람 다 집 옆에 밭 하나씩이 있었는데 거기다 둘 다 고추를 심었대. 그런데 그 홀아비 농부는 농사가 잘 안 되는 거라. 항상 옆집 그 과부네만 고추가 잘 열리고 말야. 하루는 그 홀아비가 과부는 도대체 무슨 비결로 저렇게 농사를 잘 지을까 훔쳐 보기로 했어. 담장 옆에 바짝 숨어서 과부가 밭에다 거름을 주는지 똥물을 주는지 알아 보려 했지.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과부는 고추밭에 아무 것도 안 주는 거야. 그럼 뭐야! 나는 거름도 주고 물도 잘 주었는데, 도대체 뭐야 했지. 그런데 말야 이른 아침에 그 과부가 밭으로 가는 거야. 홀아비는 긴장을 했어. 뭐를 주려고 이 아침에 나오나? 하고 가만히 보니까 과부가 치마를 입고 밭을 휙 둘러보고 가는 거야! 그랬더니 고추들이 바짝바짝 반짝반짝 빳빳이 고개를 쳐들더래. 물이 확 오른 고추가 되더라나!
홀아비가 옳구거니! 하고는 자기도 뒷날 아침에 고추밭을 휘익 지나가봤어. 어라 그런데 홀아비네 고추들은 자기가 돌아보고 나니까 시들시들 하다가 고개를 푹 꺽어 버리네. 그때야 깨달았지. 치마를 입어야 하는 거구나! 홀아비는 자는 두 딸을 깨웠어. 너희들 빨리 치마 입고 고추밭에 다녀오너라. 했지, 딸들이 어리둥절하게 치마를 걸쳐 입고는 고추밭에 끌려 가다시피 갔지. 아버지는 빨리빨리 돌아라돌아라 성화였지. 그래서 두 딸은 영문도 모르는 채 고추밭을 돌고돌고, 이 고랑 저고랑을 정신 나간 여자처럼 돌아댕겼네.
그런데, 뒷날 홀아비네 고추밭은 고추가 모두 죽어 버렸대.
홀아비가 시들어 죽어 버린 고추밭을 보면서 한숨을 푹 쉬네.
그리고 하는 말, '딸 하나만 살짜기 보낼 걸' 그랬다네!"
그 이야길 들은 또 한 명의 언니도 고추이야기를 이어갔다.
"요번에 오일장에 갔던 날이야. 채소전을 지나고 있는데 고추 파는 아저씨가 있더라. 그 앞에 어떤 아줌마 하나가 고추를 하나씩 조심스레 고르더니 한 바가지 담아가지고는 아저씨에게 얼마냐고 물어. 고추아저씨가 값을 말하니까 비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그 아줌마가 비싸다 싸다 좋다 궂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바가지에 담았던 고추를 그냥 두고 일어나서 가버렸어. 혹시나 고추 한 번 팔게 될까, 아줌마의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저씨가 발끈 했어.
'아줌마! 아니, 고추를 그렇게 만지작만지작 하다가 그냥 가면 나는 어떡해요!' 그렇게 말하는 아저씨 얼굴이 벌겋더라. 나도 마침 고추를 사러 갔었는데 서울 표준말로 또박또박 야단을 치는 그 남자 달아오른 얼굴 보고는 고추값 얼마냐고 물어 보지도 못했어!"
( 2008년 8월 9일, 멜라니아 씀)
그리고 합창반 언니들과 최근 맛보고 있는 언니들의 고추(김장용 고추를 어디서 구입해야 할 것인가라든가, 고추지를 담을 때 잘 삭히는 방법에 관한 것도 있겠고, 요즘 새로 나오는 오이고추가 유전자변형 식품이 아닌가 하는 것도 있겠지요만 꼭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아니고) 에 대해서 이야기는 계속 되었는데, 그 고추 이야기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살짝 건드릴 수 있고 아직 진행형인 고민도 삽입된 것이라서 모 신부님의 이름은 다 거명을 할 수 없었고, 언니들의 이름 또한 활자화 할 수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몇 년 전에 써 두었던 글, 뿌리깊은 나무님 고추 이야기 보고 생각이 나서 제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또 다른 분의 고추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여름엔 고추가 쵝오~ 라든가 하는)
첫댓글 신부님고추가 너무 좋았어요.
여름엔 고추가 쵝오~
고추가 이렇게 잘 팔리는 이유는 계절 탓 일것입니다.
여름에 기를 돋구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고추입니다.
고추 이야기를 하나 올려 드리겠습니다.
멜라니아님의 글은 고추보다 더 맛깔스럽네요. 너무 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