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국회의장단 3인도,
여당대표도, 호남인 이 다 되었다."고
자만하면 안됩니다.
나는 1971.3.13일 전역하여 1971년 대선을
신민당 제주도당 선전부차장으로 김대중후보 유세운동을 긑난뒤
부산생활을 3년하다가 1973년 제주도로 옮겨 4년,
그리고 1977년 또 다시 부산생활 4년후
1980년초부터 부마사태 배후세력으로 수배당한 몸으로
서울,광주를 오다가다 1983년 3월11일 영등포역에서 체포되어
광주서부경찰서로 압송된후 1주일간 국보법위반관계를 조사한후 무협의로 풀려나
1983년 3월17일 수배망에서 해제되어 광주 송정리에 정착하였습니다.
그 12년동안 현장에서
호남인의 차별대우를 피부로 느껴야 했습니다.
부산에서는 전라도 사투리를 하면 셋방 얻기도 힘듭니다.
전라도 동부지역(광양,순천,여수,고흥,하동,장흥,보성)출신들이
부산,울산,마산지역에 공순이,공돌이로 서럽게 살았습니다.
"하와이"사람으로 애칭도 뒤 따랐습니다.
서울지역에서는 때밀이,구두닦기,버스안내양,식모살이
모두가 전라도 사람이었습니다.
그 서러움이 "한"이 되어 1987년 대통령선거때
김대중후보를 지지하게 되었지만 박철언의 술수(?)에
넘어가 민정당 노태우후보 당선을 안겨 주엇습니다.
지금 호남만세(?)를 부를 때가 아닙니다.
박그녀일당,TK세력은 핵심권력,재벌통재,잇권분배
귀족공화국을 꿈구고 있습니다.
저들은 호남인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압니다.
저들은 호남인들 비위를 알맞게 행동합니다.
저들은 돈줄인 금융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저는 인생살이 45년을 떠돌이 하면서
호남인이 당한 현실을 잘 압니다.
만일에 이영일 같은 선배가 대구출신 이었다면
지금은 반기문 자리에서 대권을 꿈꾸고 있었을 것입니다.
JP를 모시고 10년(1988~1997)을 지내온 동안
항상 2인자로 군림하면서 처세하는 그 무서움에
놀랬습니다.
JP가 1987년 신민주공화당 대선후보를 위한
창당 작업할때 재벌들은 박철언이가 무서워 단1원의
창당자금 기부를 거절했는데 광주의 김인곤 호심재단이사장은
거금20억원의 현찰을 동원하여 코란다 승용차로 부여 사무소까지
JP에게 전달합니다.
그런후 13대 총선에서 전국구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이 됩니다.
또한 JP는 1996년 15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호남인 지대섭을 특별당비 30억원을 받고
국회의원 당선권에 배치하여 자민련국회의원으로
당선 시킨후 4년간 당비명목으로 수십억원을 강요합니다.
제 16대에는 특별당비가 50억원으로 상향조정되자
지대섭의원은 비례대표 우선순위를 포기합니다.
JP는 호남인들을 희생시켜
충청도 재벌들을 안착시킵니다.
알짜기업 한화그룹 김종희,김종철(전 국민당총재)을
키워 김승연의 천안북일고 후원재단을 만들었고
오늘의 백조원대의 한화그룹을 만들었습니다.
동아기업도 알짜배기 대한통운을 불하하여
대재벌로 키우고 중앙정보부 해외요원의 도움으로
리비아,중동진출 선두주자로 키웠으나
전두환에게 밋보여 몰락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JP는 건재합니다.
전두환도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들에게
"석고대죄한다."는 진솔함이 있다면
수천억원의 숨겨논 재산을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재단에 기부해야 될 것입니다.
저들은 차별대우는 그 것뿐만 아닙니다.
나의 친구가 필생의 사업으로 일꾸어온
"화인코리아"도 대구 사조산업이
공짜로 집어 삼켜도 누가 도움을 안줍니다.
노량진 수산시장도 목포수산시장 상인들이
오랜세월을 키워왔는데 사조산업 주주들이
TK세력을 앞세워 주도권을 갖어 갑니다.
제2금융권에서 잘 나갔던 부산저축은행도
광주송정리 삼양타이어(금호) 박상구 측근들 이기 때문에
TK 영포회가 공중분해 시키려고 14명을 구속 시킨 것입니다.
호남은 국민여론이 나쁠때 떡값(?)을 주고 국론이 잠잠하면
호남인들을 키워서 잡아 먹어도 "뒤탈이 없다."는 생각이
저들 TK세력입니다.
저들이 우리를 안심시키고 있을때
우리의 반격은 호남인과 BK의 연합세력으로
충청인의 동지의식을 안심시킨후
수도권을 석권하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장관 몇석에 "만세삼창" 은 안됩니다.
확실한 승률이 있을때 "패'를
던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만에 빠지면 안 됩니다.
승리가 확정될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