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푸짐한 인심과 육섬의 사투리
(나의 70세 여름 휴가후기)
* 2014 의정부 흥사단 하계수련회 일정
목적: 1. 정의돈수
2. 문화역사 탐방
일시: 2014년 8월 16일(토)--17일(일)
장소: 충남 보령시 오천면 육섬(六島)
참석자: 이해주 지부장외 7명
평생 동지들의 오붓한 섬 여행
우리는 의정부시 흥사단 단우들의 모임인 의정부지부 회원들이다.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월례회를 갖는다. 그래서 서로 얼굴도 자주 보며 소식도 알고 친근하게 지내는데 해마다 여름이면 멀리 섬이나 유적지를 찾아가 심신의 피로를 풀고 한 가족같이 단합대회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남해안 충무 앞바다의 욕지도를 다녀왔고, 올해는 서해안의 대천 앞바다 작은 섬인 육섬을 가기로 한 것이다.
내가 제목으로 충청도 사투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번 여행에서 하도 많이 충남 고유의 액센트--를 들어서 귀에 쟁쟁하기 때문이다. 외딴 섬인 육도 섬사람들은 물론 회원 중 유독 충청도 출신이 많아서 친근감이 든다. 나도 그 <멍청도> 출신이 아닌가...말씨가 얼마나 느린지, 나는 어렸을 때 서울 남산에서 돌을 굴리며 “ 아 버지, 돌 굴 러 가 유,,,” 하다가 아버지는 벌써 돌에 맞아죽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나는 6.25 한국전쟁 직후 상경해서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나오고 지금까지 60여년을 서울에서 살아와 서울 표준말을 써왔지만 부모님의 고향인 충청도(천안)사투리를 집에서 늘 들어왔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수련회 일정으로 서산시 해미면 해미읍성(천주교 해미 순교성지)과 김좌진 장군의 생가와 기념관과 청소 근처 주포초등학교를 돌아보았고 오천항에서 페리호를 타고 30분 걸리는 육섬으로 건너가 특유의 지방 사투리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충청도 사투리를 읊어보면--핵교, 아주매, 배차, 베, 데련님, 동상, 말레, 들지름, 감주, 가찹다, 개볍다, 거진, 갔슈, 왓슈, 안녕하슈, 그래유 등이 이지역의 사투리들이다.
나는 이런 말을 다 알아듣지만 타지 사람은 이게 어디 말인가 하고 어리둥절해진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해미읍성 탐방
8월 16일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전날부터 마음은 바쁘지만 여행 가방을 못 챙겨서 불안하다. 9시에 출발한다니까 게으름을 핀 것이다. 배낭 하나에다 옷가지와 세면도구, 수건을 넣고 패트병, 물 컵, 카메라, 핸드폰과 지갑을 챙기고 아침을 안 먹어서 옥수깽이(옥수수)찐 것 3개를 넣었다. 그래도 꽤 묵직하다. 이 정도면 되지... 하며 비옷을 안 챙기고 등산복을 입고 떠났다.
청명한 초가을 날씨다. 9시 정각 회룡역에서 일행 7명이 만나 출발했다. 서울에서 멀고도 먼 섬 여행에 다들 들뜬 기분이다. 구리 고속도로를 거쳐 서하남, 외곽순환도로로 달려 시속 110 km 싱싱 나른다. 도로가 막히지 않으니 엑셀을 밟을 수밖에 없다. 속도를 내서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학의분기점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만 지나치고 말았다. 내친김에 줄곧 달려 조록분기점에서 나가 서해안고속도로를 택했다. 결국은 2대의 차가 따로 떨어져 가게 되었고 합류지점으로 서해대교의 <행담도 휴게소>에서 만나자고 전화했다.
오전 11시에 행담도에 도착, 주차장에 세우고 뒷 차를 기다려서 커피와 통감자구이를 먹고 다시 출발, 해미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해미읍성에 11시 30분 도착했다. 여기서 중식을 해결한다.
서산 해미읍성 문화탐방이 시작되었다. 마침 17일 대표적인 천주교 순교자성지인 이곳을 제 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서 2014년 <아시아, 한국 청년대회>를 여는 날이다.
정문인 <진남문>으로 들어갔다. 조선 전기 서해안 방어의 거점으로 축성된 성곽인데 이순신 장군이 한 때 훈련원 봉사로 재직하기도 한 곳이다. 여기저기 천막에는 흰 가운을 입은 수녀들이 보인다. 우리는 성 입구에 설치된 교황님 방문 환영기념 조형물 얼굴 앞에서 단체사진을 박았다.
1872년 내포지방의 천주교 박해 당시 무고한 신도 1000여명이 처형되어 생매장된 끔찍한 종교탄압의 현장에서 오싹함을 느낀다. 평소에는 조용한 성지인데 오늘은 교황 방문의 역사적인 행사준비로 분주하게 삼성전자가 대형 스크린 작업을 서두르고 있었다.
유서 깊은 김좌진 장군 생가 방문
12시 30분 해미읍성 바로 앞 식당가에서 백반을 시켜 먹고 1시에 다시 출발, 홍성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2시 가까이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를 방문했다. 생가복원 사업으로 지어진 기와집 한 채와 돌비석으로 김좌진 생가 터가 서있다.
고종 때 태어나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으며 한성신보 이사를 역임, 도산 안창호 선생과 서북학회 설립, 오성학교 설립과 청년학우회 설립 등 평생을 무관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11년 북간도에서 자금조달 책임을 맡다가 체포되어 2년 6개월 투옥되기도 하였고 광복단에 가입해 항일투쟁을 전개, 그 후 대한정의단의 사령관으로 활동하였다.
가장 혁혁한 공은 독립군 대장으로서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3,000명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다. 1925년 신민부를 창설하여 총사령관으로 활동하였고 1929년 한국총연합회 주석으로 선임되어 만주에서 러시아로 독립군을 이끌다가 1930년 산시역 앞에서 공산주의자의 총탄을 맞아 해방을 못 보고 순국한 애국지사였다.
예정에 있었던 김좌진 장군 묘소 탐방을 포기하고 대신 김영숙 단우의 고향인 청소 주포초교 근처로 가서 꽸잎(깻잎)을 한 포대 싣고 오천 항으로 직행했다. 여기도 천주교<갈매못 성지>가 있다. 30분을 기다려 <오천 페리호>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대천항 쪽으로 내려갔다. 멀리 보이는 화력발전소 굴뚝과 유명한 피서지인 대천해수욕장을 지난다.
4시 40분 허육도의 삼형제봉을 지나 육도--작은 섬에 도착했다. 마을회관 2층에 짐을 풀고 내려와 섬 주변을 한 바퀴 돌며 따개비와 고동을 줍고 산책을 했다. 사방이 무인도 섬이다. 바람이 없는 조용한 해변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쉬다가 저녁 7시 식사시간이 되어 즉석에서 장어와 키조개를 굽고, 우럭 회 등 푸짐한 안주에 한산주를 마시며 충청도는 인심이 후하다는 걸 다시 느꼈다. 2시간가량 정의돈수의 기쁨을 나누고 선창가 평상에 누워서 파란 밤하늘을 벗 삼아 잠을 청했다. 남자들은 1시까지 누워있다 보니 추워서 더 이상 잘 수가 없고 모기도 다리를 마구 물어 가렵다. 하는 수 없이 숙소 방안으로 들어가 갈지자로 누워서 골아 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날이 밝으니 시끌벅적하다. 벌써 일어나 바닷가에 가서 게와 고동을 잡아 온 분도 있다. 어제 피곤하지도 않은지, 잠이 없는 건지 모두 아침 6시에 모두 일어나 나가고 없었다. 나는 조식을 먹기 전에 뒷산으로 올라갔다. 고추가 익어서 빨갛게 타고 있었고 동네 산소도 보인다. 계속 올라가보니 찔레나무가 울타리를 치고 막혀서 하산했다. 정말로 한 줌 밖에 안 되는 조그만 섬이었다. 통틀어서 15가구가 전부란다. 늦은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굵어져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적막강산에 파도 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정기여객선 대신 어선을 긴급 호출
11시다. 이제는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시간이다. 비는 계속 내리고 여객선은 없고 마음이 심란하다. 여기는 하루 두 번 밖에 정기여객선이 없단다. 하는 수 없이 배를 별도로 부르기로 결정하고 점심을 먹은 후 3시에 어선을 타고 출항했다. 아 살았다 싶다. 광복절 연휴가 3일이라서 차가 막히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오천 항에서 의정부까지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고 어두워지면 더욱 지리 파악이 어려워진다.
3시 30분 오천항에 내리니 비가 그쳤다. 다행이다. 해양경찰대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발견하고 이제 조금 안심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두 패로 나누어 한 팀은 곧바로 올라가고, 내 차는 2명을 아산 신창역에 내려주기로 했다. 가다가 길이 막히면 오산과 여주로 가는 두 분이 집에 가기 힘든다. 국도 길로 청소를 거쳐 광천, 홍성을 지나 예산, 도고온천으로 순식간에 질주했는데 처음으로 밀리는 아산의 언덕을 넘어갔다.
4시 10분 전철1호선 종점 신창역에 도착, 시간표를 알아보니 4시 50분에 서울 올라가는 전철이 있었다. 일행은 역 앞 커피전문점에 들어가서 팥빙수와 카페라테를 시켜 먹고 헤어졌다.
이제부터는 나 혼자 올라간다. 어제 더위에 종일 운전도 하고 술도 먹고 해서 몸이 찌뿌드드하다.
내 고향 근처인 온양온천으로 차를 몰아 역전에서 가까운 <온양온천탕>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고 사람이 별로 없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피로를 풀고 나오니 6시가 넘었다. 가다가 길이 막히면 저녁도 못 먹을 것 같아서 시장 안에 들어가 <병천 순대국>을 먹고 7시 출발했다.
계속 국도를 택해 온양에서 응봉, 둔포, 평택 방향으로 올라가서 다시 우회전해 안성, 양성, 용인을 거쳐 용인고속도로로 광주, 남한산성, 하남을 거쳐 2시간 만에 서울로 진입해 편하게 올라왔다. 집에 도착하니 밤 9시였다.
1박 2일 고대하던 서해안의 7순(旬)기념 섬여행이 무사히 끝난 것이다.
---------------------일죽 김양래 2014.0819------------
첫댓글 좋아요, 사진은?
갑찐 여행 하셨습니다...
칠순 축하드림니다^^~~
사진은 글쌔 ? 내가 올려야 하나요....찍은 사람이 없으면 여기에 그것도 올리지요...ㅊㅊ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