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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특강-지상중계]
향가로부터 노벨문학상으로
박재열(시인, 경북대 명예교수)
본 원고는 세계한글작가대회의 일환으로 경주 문정헌에서 열린 박재열 교수 초청특강 원고를 그대로 옮겨온다. 우리의 문학이 향가로부터 시작되었기에 노벨상을 목표로 하는 세계화에는 우리만의 독창성을 대내외에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 부분을 박재열 교수는 문정헌 특강을 통해 잘 짚어주고 있기에 특강현장의 육성을 그대로 살리고자 구어체를 그대로 지면에 옮겨보았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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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이곳 <문정헌文井軒>에서 노벨문학상과 관련한 문학 특강을 하도록 요청받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노벨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이상(理想)적인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분께”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수여하는 상이지요. 철학자가 받은 경우도 있고, 최근에는 정치적 문제로 편파성이 제기되기도 했지요. 오늘 강의에서 저는, 이곳 경주와 노벨문학상을 연결 지어 보면서, 한국 문학의 노벨문학상 수상 염원을 염두에 두고 경주의 문학사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그것은 경주가 우리 문학사에서 내놓은 훌륭한 문학작품들과 탁월한 문인들을 몇 분 소개하고 그분들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외국 작가들과 비교하는 것으로 구체화 될 것입니다.
그에 앞서 제겐 먼저 오늘 이 <문정헌>에서 강의를 하게 된 것이 무척 뜻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곳 경주에서 태어나 근처 사정리에서 아주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대략 70년 전쯤입니다. 이곳 가까이 경주공업고등학교 실험공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서 긴 쇠 대롱을 불어서 유리병을 만드는 과정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부근은 대부분 미나리꽝이었습니다. 거기서 동쪽 들을 내다보면 미나리꽝 위에 솟아 있는 고분이 참 신비롭고 의뭉스럽게 보였었지요.
1. 경주 문학의 빛나는 유산
가. 「제망매가」의 서정성과 시적 기교
경주의 문학으로 맨 먼저 피어난 것은 신라의 향가입니다. 향가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을 대라면 대개 「제망매가」를 꼽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삼국유사』에는 월명사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월명사는 항상 사천왕사에 살았는데 피리를 잘 불었다. 일찍이 달밤에 문 앞 큰길에 나가 불면 지나가면 달이 그를 위해 가는 것을 멈추었다. 그로 인해 그 길을 월명리라고 불렀다. 월명사는 또한 이로써 이름이 났다.(중략) 신라 사람들이 향가를 숭상한 것은 오래되었다. 대개 시송詩頌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종종 천지의 귀신을 감동시킨 것이 한번이 아니었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제망매가」에 대해 “월명사는 또한 일찍이 죽은 누이를 위하여 재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 그를 제사하였다. 문득 세찬 바람이 불어 종이돈을 날려 서쪽으로 사라지게 하였다.”라고 설명합니다. “문득 세찬 바람이 불어 종이돈을 날려 서쪽으로 사라지게” 한 것은 감동 받은 귀신의 조화겠지요. 월명사는 사천왕사에 주석駐錫했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나와 피리를 불었던 한길 가는 지금 사천왕사지 앞 도로가 됩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찍은 사진을 보니 이곳은 한적한 곳이었고, 한일자(一字)로 길게 늘어선 숲속에 신문왕릉이 있었습니다. 신라 땐 이곳을 월명리라고 했다 합니다.
「제망매가」를 감상해 보면 월명사의 탁월한 시적 재능과 표현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죽은 누이에 대한 절절한 슬픔이 녹아 있고, 덧없는 이승 삶에 대한 애절함이 풍겨납니다. 현대어로 번역한 것은 이렇습니다.
生死 길은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아아, 彌陀刹에서 만날 나
道 닦아 기다리겠노라.
- 월명사, 「제망매가」 전문
오누이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도 “가는 곳 모르”니 세상살이가 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죽고 사는 길이란 비록 이승에 머뭇거리는 동안 피붙이가 “나는 간다는 말도/못다 이르고” 저 세상으로 가는 그런 길입니다. 이처럼 「제망매가」는 허무한 이 세상살이를 세 겹의 비유로 심화시키고 또 승화시켰습니다.
향가도 기본적으로 노래였습니다. 그 당시의 노래가 전승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날에 이 제망매가를 노래로 부르고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됩니다.
그런데 이 작품 「제망매가」가 노래로 불린 때가 8세기였습니다. 영미시문학 연구를 전공하며 세계의 시문학을 두루 살펴왔었는데, 동시대의 다른 나라 시문학에서는 이런 고도의 서정성과 시적 기교를 찾기 힘듭니다. 이 정도의 서정은 영국의 경우 15세기 소네트가 도입된 이후에나 가능합니다. 「제망매가」의 애절함은 시대나 지역에 상관없이 깊은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구체적이고도 뛰어난 비유로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제시한 것은 어느 문화권에서든 8세기 시로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 저는 이 향가를 읽으면서, 옛말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윽함’에 매료되었습니다. 이승과 저승이 갈라놓은 슬픔이 그윽했고, 옛말을 통해서 본 시의 정경 자체가 아주 ‘그윽한’ 정경이었습니다. 이 ‘그윽한’ 정서를 제 시에 넣어서 쓴 시가 운 좋게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 데뷔작인 셈입니다.
홑이불을 두르고 조심 조심 빨랫줄을 타는 달
밤바람이 푸른 대숲을 벤다.
달빛과 시대의 애환이 산안개에 접힌 달그르매의 푸른 수풀이다.
生死路 한켠에 핀 정은
이예 뎌예 닐 닙다이 떠나니.
빨랫줄로 갈라지는 이승과 저승의 밝은 간격에
살아 생전에 즐겁던 목소리.
달빛은 시들어지면서 소리하고
이 밤에 울지 않는 것은 일체가 무상이리라.
무상에 눈먼 월색의 두터운 귓밥 속으로
나 가다 말도 몯다 닐은 채…….
달빛은 강으로 흐르고
푸른 강물에 자지러지는
허리 가늘은 생시의 풀꽃이다.
- 졸시, 「달빛·1 전문」
어느 날 저녁 제 하숙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달이 빨랫줄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그 빨랫줄이 꼭 생사의 경계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제 할머니가 3년 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가 가신 저승이 그 달밤으로 와락 다가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때 제 느낌과 영감을 계속 발흥시킨 기제가 바로 이 「제망매가」였습니다.
제 시 속에 이 향가의 몇 구절을 넣으니 느낌이 더 잘 살아나 상승작용을 하였습니다. 그해 신춘문예 심사를 서정주 시인이 하면서 심사평에 “「달빛」을 택한 이유는 그 시 정신의 이슥한 함축이 (중략) 두터워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성인들의 달빛의 이슥하고 간절함을 이 시는 꽤나 은근히 잘 보여 주고 있다. 고가古歌에서 인용해 넣은 구절들도 어색함이 없이 잘 어울려 보인다.”라고 썼습니다. 쑥스럽지만 제 시를 들어 말길을 연 것도 이 「제망매가」의 그윽한 정서와 비유가 1,200년을 뛰어넘어서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이 작품의 독특한 보편성을 보여 주는 특장입니다.
나. 고운 최치원의 문장력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신라의 우수한 또 한 편의 시문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숭복사지에 남아 있는 비석의 비문에 주목합니다. 이 비석에 새겨진 비문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이 찬撰한 것입니다. 비신이 산산조각이 나 없어지고 쌍귀부와 이수 일부가 남아 지금 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만 다행히 이 비문을 베껴 놓은 것이 있어 우리는 1,100년 전의 최치원 글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비문의 내용은, 원래 지금 원성왕릉 자리에 있던 곡사鵠寺를 지금의 숭복사지崇福寺址로 옮긴 후 그 절이 옹색한 세월을 보낸 뒤 근래에 중창하게 된 연유와 과정을 고운 특유의 화려한 문장으로 기술한 것입니다. 이 비문을 읽으면 고운이 참 해박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는 유불선 경전이나 역사 문학에서 자유자재로 고사를 끌어와 문장의 품격을 높이면서 한편으로는 적절한 비유가 되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런 고운의 드높은 예술혼(魂)을 만나게 된 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큰 행복이지요.
고운은 숭복사 절터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절승 경개를 볼 것 같으면 바다 밖의 외딴 시골(신라)에서 걸출하였다. 좌편의 뾰족한 봉우리들은 닭의 발이 구름을 끌어당기는 듯하고, 우편의 높은 평지와 낮고 습한 들은 용의 비늘이 태양에 번쩍이는 것 같다. 앞에 임하면 메기 같은 산이 검푸르게 벌려 있고 뒤로 돌아보면 붕새의 날개처럼 생긴 산등성이가 잇닿아 있다.
- 최치원 찬, 숭복사지 비석의 비문 중에서
고운의 뛰어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예가 됩니다. 직접 숭복사지에 가서 사방을 둘러보며, 먼저 남쪽으로 바라보면 왼쪽으로는 토함산 줄기가 뻗어 내립니다. 흔히들 “좌청룡 우백호” 하고 두루뭉술하게 넘어 갈 것을, 동쪽의 “뾰족한 봉우리들은 닭의 발이 구름을 끌어당기는 듯”하다 하였습니다. 얼마나 생생하고 구체적입니까? 거기서 오른쪽으로 내려다보면 금오산까지 확 트입니다. 고운은 여러 못이나 개울이나 논에서 빛이 반사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용의 비늘이 태양에 번쩍이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비닐하우스가 많아 더 반짝거립니다. “메기 같은 산”이나 “붕새의 날개처럼 생긴 산등성이”도 하도 생생하여 어쩌면 실제 보는 경치보다 이 문장이 불러내는 경치가 몇 배 더 아름답고 생생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고운이 당대의 임금이었던 진성여왕에 대해서는 어떻게 기술했을까요? 음욕에 빠진 못난 여성으로 그렸을까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정강왕이] 갑자기 서산에 지는 그림자를 만나시니 높이 달 같은 누이에게 의지하여 길이 동해에 솟을 빛을 전하시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대왕전하(진성여왕)께서는 꽃받침이 꽃과 이은 듯하고, 왕가의 계통에 매우 밝으며, 빼어난 곤덕(坤德)을 체득하고, 아름다운 천륜을 계승하시었다. 진실로 이른바 신주(神珠)를 품고 채석(彩石)을 불린 것으로서, 이지러진 데에는 모두 기우고(有虧皆補), 좋은 일이라면 닦지 않음이 없으셨다.
- 최치원 찬, 숭복사지 비석의 비문 중에서
정강왕이 죽음을 맞이한 것을 “서산에 지는 그림자를 만났다”고 표현했고, 그때 왕위를 누이동생(진성여왕)에게 물려줌을 “높이 달 같은 누이에게 의지하여 길이 동해에 솟을 빛을 전하시었다.”고 장엄하면서 화려하게 표현했습니다. 두 오라버니에서 왕위가 진성여왕으로 이어진 것을 “꽃받침이 꽃과 이은 듯” 자연스럽다고 하면서, 진성여왕은 꽃받침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임을 암시했습니다. 왕위 계승에 여자기 때문에 하자가 있다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왕가의 계통에 매우 밝다”고 하여 그 정통성에 하등의 문제가 없음을 시사했습니다. 여성의 미덕인 곤덕을 스스로 체득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천륜을 지켰다고도 했습니다.
이 놀라운 인유는 다음의 두 고사에서 나옵니다.
먼저 신주神珠에 대한 고사입니다. 『법화경』 「제바달다품」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리불이 팔세용녀에게 그녀가 짧은 시간에 높은 도를 얻은 것에 의심이 간다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그때 그녀는 한 보배구슬이 있어 그것을 부처님께 드리니 부처님이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성불하는 것을 보라고 하더니 잠깐만에 남자로 변신하여 등정각을 이루고 중생을 위하여 묘법을 설하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신주는 곧 팔세용녀가 부처에게 바친 보배 구슬로서 그녀의 성불을 암시하는 신물神物이 아니겠습니까. 진성여왕이 그것을 품어 성불할 여성임에 틀림없다는 암시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또 채석彩石은 중국의 여와女媧 신화에 나오는 신기한 돌입니다. 『회남자淮南子』에 따르면, 태고의 하늘을 받치는 4개의 기둥이 부러지자, 대지는 갈라지고 화재와 홍수가 발생했습니다. 맹수와 괴조怪鳥가 횡행하며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이때 여와가 오색으로 빛나는 돌을 녹여 하늘의 구멍을 메웠다고 합니다. 불린 채석은 바로 이 돌이며 진성여왕이 하늘이 무너질 때 채석을 녹여 하늘의 구멍을 메울 인물임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고운은 진성여왕을 불교 유교의 경전에서 성불한 여성이나 여신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비의 명銘은 다음과 같은 시로 되어 있습니다.
아아, 아름다울손 여와(女媧)이시여!
효제(孝悌)의 정 돈독하시어
안행(雁行)을 아름답게 이루시고
왕자(王者)의 도를 선미(善美)하게 이루셨도다.
(이상 최영성 역)
진성여왕은 효심이 있고 남매간에 공경과 우애가 지극하다는 말입니다. 안행雁行을 아름답게 이루었다는 말은 헌강왕과 정강왕과 진성여왕을, 나란히 사이좋게 날아가는 기러기에 비유한 것이지요.
다. 현대시 박목월의 경우
이제 현대로 내려올까요. 박목월(1916-1978)은 경주가 나은 우리나라 대표적 시인입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 전문
목월이 경주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이 시에 배어 있는 향토색은 오롯이 경주 지방의 것입니다. 이 지방의 정서를 이 지방의 리듬으로 승화한 작품으로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요.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이 이 시를 읽을 때 이 시의 향과 맛은 어느 정도 전달될까요?
2. 노벨문학상 수상 시의 두 면모
가. 엘리엇(T. S. Eliot, 1888-1965)과 모더니즘
이제 노벨상을 받은 현대의 몇몇 시인의 시세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합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학운동인 모더니즘을 이야기하자면 티 에스 엘리엇(T. S. Eliot, 1888-1965)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22년에 나온 그의 『황무지』는 각국어로 번역되어 그 나라의 모더니즘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1.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얼마의 생명을 이어 주었다.
- T. S. 엘리어트, 『황무지』 첫 부분
이것이 434행의 장시 『황무지』의 첫 부분입니다. 초고는 두 배로 길었는데 그 원고를 에즈라 파운드에게 보여 주었더니 반 이상을 잘라내 버렸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를 대할 때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은, 시란 모름지기 서정적으로든 주제로든 상호 유기적 관계의 부분들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서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단편으로 되어 있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인상입니다.
이 시는 모자이크 그림과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여러 문화권의 담론 중에서 의미 깊은 단락을 잘라내어 무작위로 이어 나간 듯합니다. 예컨대 라틴문학, 영문학, 그리스 문학, 이탈리아문학, 독일문학, 그리스 신화, 기독교 및 힌두교 경전, 유명 인사의 회상록 등에서 가져온 단편,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국의 퇴폐한 도시문화와 역사를 떠올리는 단편 등이 설명도 없이 황당할 정도로 이어집니다.
맨 앞에 나오는 제사題辭는 1세기 로마 황제의 궁정시인이었던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에서 인용한 것이고, 두 번째 제사 “보다 나은 예술가”는 단테가 『신곡新曲』 「연옥편」 26장에서 12세기 이탈리아 시인 다니엘을 찬양한 문구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작품이나 경전, 심지어는 도시인의 대화 등을 인용하거나 인유합니다. 독자들은 무엇을 인용하고 인유했는지를 모르면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엘리엇 자신이 주석을 붙여주기까지 했을까요. 그러나 그 주석적 사실을 알고 읽으면 모자이크 그림에서 어떤 형체를 발견하듯이 어렴풋이 주제가 떠오르게 됩니다. 현대의 피폐하고 타락한 도시의 물질문명 즉 황무지 속에도 재생의 희망이 언뜻 보이는 것이 주제라면 주제입니다.
엘리엇의 이런 시법은 종전의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시를 일거에 갈아 치웠습니다. 그런데 이 시가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26년이 걸렸습니다. 발표는 1922년에 했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1948년이었습니다.
나. 루이즈 글뤽(Louise Glück, 1943- )과 내면 고백의 언어
엘리엇과는 시법이 완전히 다른 한 여류 시인을 소개하기로 합시다. 이 시인은 202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루이즈 글뤽입니다.
우리가 이 글뤽의 시를 읽을 때 맨 먼저 다가오는 인상은 그 언어가 매우 명징하고 신선하고 깔끔하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엘리엇처럼 범세계적인 문명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내면을 다룹니다. 그것이 신화와 겹쳐질 때에는 신화를 끌어들이기도 합니다. 아래 두 편 중 앞의 것은 신혼의 환희로 가득 찬 것이고 뒤의 것은 남편에 대한 증오가 가득하여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른 듯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있죠.
아침이에요. 저들은 곧
깨겠죠.
침대 테이블에는 백합
꽃병이 있죠. 햇빛이
그 꽃들 목구멍에 고이죠.
남자가 조용히 그러나 그녀 입 깊숙이
여자의 이름을 불러줄 것처럼
여자 쪽으로 돌아눕죠.
창문 문지방에는
새가 한 번,
두 번 불러보죠.
그러자 여자가 뒤척이고 몸엔
남자의 숨결이 가득 고이죠.
눈을 떴어요. 절 보고 계시는군요.
바로 이 방 위로
해가 미끄러져 가네요.
거울을 만들려고
당신 얼굴을 들이대면서
당신은 말하죠, 당신 얼굴 봐요.
당신 참 조용하시네요. 불타는 수레바퀴가
유유히 우리 위로 지나가네요.
- 루이즈 글뤽, 「행복」 전문
앞 연에서 화자는 신혼부부 같은 한 부부의 방을 들여다봅니다. 방안에는 햇빛이 넘치고 꽃병에 꽂아둔 백합의 목구멍엔 햇살이 고입니다. “남자가 조용히 그러나 그녀 입 깊숙이/여자의 이름을 불러줄 것” 같습니다. “새가 한 번,/두 번 불러” 본 뒤 “여자가 뒤척이면” 그녀의 몸엔 “남자의 숨결이 가득” 고입니다. 남녀의 숨결이 하나가 되어 남녀의 몸에 같이 퍼져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과 일심동체와 은밀한 관능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입니다. 두 번째 연에서 화자는 여자가 됩니다. 여자는 눈을 떠보니 남자가 자기를 보고 있습니다. 남자는 ‘내 얼굴이 당신이 봐야 할 거울이오.’라고 말한 듯합니다. 그래서 남자는 거울을 보듯이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조금 조용해질 때 그들 위로 불타는 수레바퀴가 지나갑니다. 울컥 다가드는 사랑의 뜨거움을 암시한 것일까요?
이 칸타빌레로 온 것이
작은 일이 아냐. 십육 년 전
그와 같이 사는 건 처음부터
열병이었어. 십육 년 간 나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렸지. 웃음이 나와.
아시다시피 나는 점점 허약하여 죽어가는,
아니 그가 사랑에 빠져 불 끄는 호스를
남에게 들이대는 꿈을 꾸곤 했지. 그래, 그는 그랬었어.
나는 마음이 텅 빔을 느꼈고, 오늘 그는 토스트는 손도 안 대고
죽은 눈처럼 응시하는 수란(水卵)도 그대로 두고 나갔어.
- 루이즈 글뤽, 「오전 아홉 시의 독백」 전문
‘칸타빌레’가 이 부부의 서정적인 삶을 말하든, 어떤 장소를 말하든, 남녀는 결합하여 산 것은 하나의 큰 사건이었지만 그 삶은 열병처럼 괴로웠다고 고백합니다. 여성 자신은 점점 약해져 금방 사그라질 처지에 있는 꿈, 남자가 “사랑에 빠져 불 끄는 호스를/남에게 들이대는 꿈”을 꾸곤 합니다. 마음에 휑하고 쓸쓸한 바람만 붑니다. 차려놓은 토스트와 달걀 반숙을 손도 대지 않고 남자는 휑하니 나가버립니다. 여기서 화자의 심정은 대변하는 것은 성난 듯 남자를 쳐다보는 눈망울 같은 달걀 반숙입니다. 달걀의 흰자위 속에 노른자위가 볼록 나온 것이 화난 화자의 눈망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처럼 남자를 통해 투영되어 오는 글뤽의 마음은 투명하고 섬세하고 빈틈없어 보입니다. 독자에게 일으키는 공명은 자연히 깨끗하고 정갈한 것입니다. 김혜순도 이처럼 자신의 내밀한 심경을 어쩌면 더 리얼하고 치열하게 표현하지만 글뤽에 비하면 말수가 많고 상상력이나 비유가 거칠고 뻐덕뻐덕합니다. 글뤽보다는 언어 자체의 향이 그리 잘 발산되지 못합니다.
맺는 말
경주의 문학이 다시 향가를 계승하는 빛나는 모습을 재창조하며, 그 언제라도 장래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그것은 훌륭한 문학인이 자랄 수 있는 배양토를 얼마나 잘 마련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통일신라 때에는 경주가 한반도의 수도로 찬란한 문화를 선도하였습니다. 월명사, 최치원, 설총 같은 시인/문장가가 나와 찬란한 문학을 꽃피웠습니다. 근대에 와서는 동리 목월 같은 우리 현대문학을 이끈 분들이 배출된 것은 경주의 문화적 배양토가 기름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향가뿐만 아니라 나정, 계림, 예기청소, 서출지 등에 얽힌 설화는 다 훌륭한 영양분이 되겠지요.
우리는 이런 전통을 기반으로 단순한 문학 활동보다는 한 차원 높은 일종의 문학운동을 펼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더블린에는 ‘블룸즈데이(Bloomsday)’라는 날이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를 기념하는 6월 16일이지요. 이 소설은 1904년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 그의 아내 마리언 블룸,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 스티븐 디덜러스가 그날과 그 이튿날 새벽까지 더블린의 열여덟 곳을 떠도는 이야기이지요. 이 소설은 엘리엇의 『황무지』처럼 20세기 소설을 이끈 대표적 작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매년 이날엔 조이스를 사랑하는 문학인들이 세계 각처에서 모여서 기념행사를 가지고 공원에서는 종일 그 소설을 스피커로 낭송을 합니다. 경주에서도 참고해볼 만한 볼 사례지요. 이처럼 시민들이 문학을 즐기고 존중하고 토론하는 튼튼한 전통과 저변 확대가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요?
앞에서도 보았듯이 시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 중에는 엘리엇 같은 범세계적인 문화를 소화하여 작품에 녹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글뤽처럼 자신의 정서를 진솔하게 표현한 경우도 있습니다. 고운은 전자에 속하고 월명사는 후자에 속할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다양한 실험과 내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본 목월의 「나그네」 같은 시는 영어로 옮길 때 그 향과 맛이 거의 전달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지방의 고유한 향토색은 우리 지방 사람이 아니면 향유하기 힘들지요. 이럴 때 보면 우리 문화는 구미문화에서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에 비하면 김춘수의 「꽃」과 같은 작품은 번역만 잘하면 서구인들도 거의 우리만큼 음미할 수 있을 듯합니다.
덧붙여 말하면, 작가가 직접 영어로도 작품을 쓰지 않는 한 노벨문학상에 도전하려면 훌륭한 번역이 뒤따라야 하겠습니다. 이 번역은 두 개 국어를 모국어로 습득하지 않은 이상 어설픈 것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 면에서 두 문화권을 어릴 때부터 동시에 체득한 세대가 번역에 적격입니다. 미국의 이민자들 중에는 1.5세대의 젊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 부커상 후보작으로 이름을 올린 경우도 더러 보았는데 이들은 대부분 한국문화와 현실, 문화전쟁 등을 즐겨 다룹니다. 이들이 우리 문학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제 이야기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