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4/10 22:00 사당동 출발
4/11 03:30 송하 삼거리 (트럭)
04;10 아랫 삼승령 출발
05:00 쉰섬재 2.2km
06:00 645봉
07:10 임도
07:45 (식사 후 출발)
08:30 독경산 7.8km
09:00 창수령 0.9km
10:26 울치재 3.6km
11:40 O.K.목장 3.3km
13:10 맹동산 상봉 2.0km
13:40 곰취농장 임도 2.0km
14:10 하삼의 마을 (1.8km)
14:30 박짐 마을 (1.4km)
10시간 20분 25.0km
(아랫삼승령)
잔뜩 찌뿌린 하늘을 염려하면서도 萬里길 행장을 꾸려 메고 또 낙동길에 한걸음 더하려 밤길을 나선다.
한 잔 술로 이른 저녁잠을 청해 보려 하지만 멀뚱거리는 내 잔뇌가 그예 한밤을 꼬박 새우고 영양 땅에 닿는다.
송하 삼거리에서 저시마을 이장님의 작은 트럭에 짐으로 얹혀 30여분을 달려 아랫삼승령 마루금에 택배되니,
그믐의 밤하늘에 잠시 반짝이던 별들도 짙은 운무 속으로 사라지고, 칠흑의 밤길을 숨가쁘게 오르기 시작한다.
동쪽 백청리 마을의 불빛만이 생기를 머금고 맥길을 따라 걸으니 학산봉을 지난 발길이 흐린 랜턴에도 익숙해진다.
이처럼 인간의 의지란 때때로 상상 못할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둘러 싼 환경을 학습해 가며 스스로를 훈련해 나간다.
만만치 않은 봉우리들을 대여섯번 오르 내리고 나서야 잦나무골(栢木洞) 불빛 보이는 쉰섬재를 지난다.
거칠고 비탈진 산허리 어드메에 50섬의 조를 가꾸고 살았던가..草根木皮의 배고픔도 아직 살아 있는 기억인 것을..
(지경고개 일출)
높고 낮은 고갯길을 여러번 스치고, 이 고갯길을 걸어 영양 땅에서 영해를 오가며 蒼水의 寶林을 부러워 했을까.
아직도 영양 땅 넓은 두들(둔덕)에는 2만도 채 안되는 인구수로 해체되는 농촌을 부여잡고 슬픈 괭이질을 잇는데..
낮잠 자는 나으리들은 살아 생전 받아 먹을 연금 타령으로 책상 머리만 맴돌고 있으니 이번 선거는 또 어찌될고.
친소관계에 얽매인 우리네 윤리를 비웃을 수만도 없는 현실에서 지연,혈연으로 얼룩진 것은 언제나 잠재울 것인가.
여명이 밝아 오는 숲속 봉우리들을 오르내리고, 방호벽 수로를 건너 望霜골 내려다 보이는 절벽길을 넘어 서니,
옷재(烏峴) 소나무 끝에 일찍 잠을 깬 까마귀 한마리 긴 울음을 끌고 나그네를 비웃듯 새벽을 날은다.
(독경산)
서낭당재 넘는 길에 구름 속을 뚫고 잠시나마 일출을 대하니, 맑은 날 동해 일출과 젊은 날이 그립다.
이등병 시절 포장막도 없는 트럭에 실려 동해안을 달려 묵호에서 간성으로 배치되어 가던 날..
꽁꽁 얼어 붙은 몸이 갑작스레 더운 내무반에 도착하여, 마비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눈물이 났다.
군대 끌려와서 이렇게 죽으면 무슨 영광이리오..오늘도 찬 바닷 속에 갇혀 떨고 있을 아이들이 생각나구나..
지경고개 넘어서고 전나무 숲 건너 獨慶山(683.2)을 빤히보며 군경계 지능선을 벗어나 창수면 맥길을 찾아 내린다.
이 땅에 굳게 박힌 혈연의 윤리는, 내가 아는 者와 모르는 者에 대한 인간관계 마저도 배타적으로 해석할 것이니
우리는 금을 그어 가며 살아 가는데 너무나 익숙해 있구나..이리 맥길은 가끔씩 벗어 나기도 하는데..
(讀經山-칠보산)
보림리 임도 고갯길 농막 곁에 아침상을 펼치고, 멋드러진 마루금 솔두들(松山)을 감상하며 食樂을 즐긴다.
술 한잔 따르면서도 上下를 구분함이 예의의 조화로움으로 아름답게 여겨질 일이나, 행여 두려운 것은
우리들 部分의 질서가 全體의 질서를 위한 당연한 上下 계급으로 발전되어,身分의 윤리로 정착되는 일이다.
그리하여 토론도 없고 개인의 대등한 지위도 없는 군대식 사고로만 발전되는 일이다. 그들의 눈에는 오늘의
이 엄청난 사고를 수습하는 인간윤리라는 것은, 위험하고 고쳐질 줄 모르는 저주받을 혼란으로만 여겨질지도 모른다.
부디 자식을 잃고도 그 사체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그들 부모 형제들의 아픔을 謙遜의 德으로 포장하진 말지어다.
獨慶山(683.2) 오름길에서 북쪽 讀經山(563.9) 너머 칠보산 지맥을 바라보고 편한 묘지 봉우리를 크게 휘둘러 오른다.
(독경산 정상)
거친 숨결로 올라 선 독경산 정상 헬기장에서 시야가 뚫린 사방을 훤히 둘러 보니 한결 가슴이 시원하다.
우리는 수많은 뫼 고스락을 찾아 오르며 인생의 頂点 또한 단 한번의 승부가 아님을 배워왔다.
윗사람이 되고 나면 자기의 無知나 과오를 自認하여 무슨 체면이라도 구겨질까 두려운 법이다.
그러나, 인간의 실수는 항상 반복되는 법이고, 그것이 숨겨질 수 없는 까닭에는 빠른 인정만이 해법인 것을..
온 천하가 지켜 보는 이 맑은 하늘 아래 숨길 일이 무언가..이젠 방 봐 가면서 똥 싸는 시대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똑 같은 규칙으로, 어느 누구의 생명이나 모두 다 귀한 것으로 여겨 빠른 수습을 바랄 뿐이다.
창수령을 향한 내림길에서 枯死木의 멋진 환영을 받으며, 맹동산 마루금의 바람개비를 바라본다.
좁은 땅 산 마루를 벗하던 이 땅의 영혼들에겐 어쩌면 초원 아니라도 큰 날개에서 목가적인 낭만을 느낄지도.
흘러가는 바람으로 에너지 생산한다는데 누가 싫어 할소냐 마는 하필 바람 많은 곳이 저리 산먼둥에 있으니..
창수리 자래목이를 향해 돌아 오르는 신작로에서 영해 바닷 바람을 싣고 간간이 지나는 차소리도 싫지는 않다.
긴 내리막을 이어 내려 와 주말의 아침을 여는 창수령에 닿는다. 산림 관리원의 빨간 모자가 솔 숲에서 화려하다.
권위의 상징이다..'빨간 모자'..유격 교관의 위엄 보다는 애교스런 모습이다.
(창수령 내림길-맹동산)
蒼水嶺 고갯길에 서서 그날을 그려 본다. '젊은 날의 초상'은 수심의 얼굴로 유서와 독약을 가슴에 안은 채,
칼갈이 아저씨와 영훈이 막걸리 마시던 회한의 주막집은 茂昌里 안부로 더 내려 가야 하는지도..
“감상과 허영을요. 익기도 전에 병든 내 지식을요.”
“내 오랜 망집(妄執)을 던졌다. 놈은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죽어가는 아내와 부스럼투성이
남매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그대로 살려두는 쪽이―더 효과적인 처형이었지….”
이젠 모든 것을 던져야 할때가 내게도 다가 올 것이다. 이 길 끝 간데 몰운대 바닷가에서 난 무엇을 남겨둘 건가..
(맹동산 O.K.목장 마루금)
창수령을 지난 마루금은 벗어 났던 영양 땅을 다시 찾아 서쪽으로 오르며 길고 편한 등허리를 엎드린다.
울치재(泣嶺) 창수리 내림길이 내려다 보이는 편한 안부에서 이슬이 한 잔으로 墮淚酒를 대신한다.
破怪峴이라 했던가..그래 그래 힘들면 쉬어가고, 무서움은 떨쳐 버리고,울일은 없애면 되고..웃으며 넘어가자.
양구리 창하천(化川)이 반변천에 닿을 무렵이면 영양 길 드나들던 추억 잇기도 이번이 마지막인가 싶구나..
싻 트지 않은 두릅나무 도열 속에 울치재를 넘어서니 양구 내림길에 외로운 당집 하나 새끼 禁줄을 둘렀으니..
영혼이라도 잠시 쉬어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맹동산 세찬 바람결이 무서워 대문 꽁꽁 닫았나 보다..
(OK목장의 흔적)
빤히 올려다 보이는 맹동산 길의 풍력 바람개비들을 가깝게 여기며, 맘은 단숨에 올라 칠 것 같았는데..
서너개의 봉우리를 만만찮게 오르내리며 동쪽 능선을 타고 1시간 여만에 OK목장 정수리에 올라선다.
비록 바람부는 민둥산이라 할지라도 씨감자밭 길 임도로 이루어진 초원을 상상했건만..
온통 파 헤쳐져 왠만한 고속도로 현장이다. 바람개비 실어 올릴 작은 도로 내었다가 다시 주변을 정리했으면..
아무래도 하는 꼴이 앞으로 왕창 허물고 꾸며서 차량으로 휙하니 올라 올 수 있는 관광지를 만들 계획인가 보다.
松皮 벗겨 먹던 가난이 싫어서, 붉은데기(굴펀지) 민둥산이 싫어서 ,사람 구경 좀 하자는데..뭐라 말하리요 만은.
영양 군수 나으리 제발 앞 뒤 좀 생각하고, 제대로 환경 보존하는 개발 아니면 관광이고 씨감자고 죄다 망하는 줄을..
괜히 엉뚱한 놈들 배불리고, 정작에 석보 땅에 오염된 공기와 쓰레기만 남으면.. 훗날 후회하면 항상 늦지요..
(영해 대진포구)
萌動山(민둥산) 기슭을 돌아드는 진달래길은 회색 포장길로 변한채 초원으로 가꾸어질 언덕은 황량키만 하니..
형제봉 너머로 영해 바다 대진포구만 아련하고, 觀魚臺 일출을 즐기던 상대산이 오똑하구나..
창수에서 흘러드는 영해 솔천(松川)에는 아직도 황금 은어가 살아 헤엄치고 있을까..
옛말에 벼슬하면 돈벌고 땅산다고..하지만 요즘 벼슬하려고 땅 팔아 공부시켰다가 망한 사람도 많다.
옛날 말뚝만 박으면 제 땅되던 시절에야 벼슬로 돈을 얻고, 땅이 돈을 낳고, 장리쌀로 거둬 들일 수 있었겠지만..
21세기 오늘날에 산먼둥에 감자 심고, 목장터 초원 가꾸다 졸지에 초지 농지 보상 받아 횡재를 만났을까..
어느 누가 감히 이젠 관료와 지주의 결탁은 없어진 맑은 세상이라 자부할 수 잇을까..저리 일부러 넓게 파헤쳤는데..
(맹동산 상봉 정상)
차가운 포장 길 한켠에 허리 잘린 채 산불초소마저 잘려나간 맹동산 상봉 표지목을 부여 안고 분노를 느낀다.
엄청난 비용으로 산길 파해치고 하늘금에 포장길 만들었으면 산봉우리 하나 정도 남겨 예쁘게 꾸밀 성의는 없는걸까.
삼의골(산밑골/山下谷) 찾아 내리는 봉의곡에 버들강아지 봄물 밀어 올리고 냇물 소리 맑으니 예쁜 꽃 필 날도 가깝구나
망가진 산녘 어느 틈에서 '노랑무늬 붓꽃'이 아픔을 딛고 다시 피어 났으면 좋으련만..
하삼의 날머리에 잘 단장된 공원에 오가는 객도 없이 정자 하나만 외롭구나..박짐으로 걷는 길에 냉이캐는 손길이 여유롭다.
(하삼의 날머리)
4/15 道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