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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소망을 이루다 (피렌체 루카편) 제13편
11월 12일 리보르노(Livorno) 피렌체.
로마에서 부터 흐린 날씨가 150마일을 항해 해와도 날씨는 그대로이다
리보르노 항의 아침도 찌푸린 날씨이다
피렌체 피사 루카등 볼거리가 많아 이곳에서 2일간 정박한 후 프랑스
마르세이유로 출항할 예정이다
쌀쌀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우리의 조식은 항상 Terrace Cafe이다
오늘따라 친절한 웨이터가 포즈를 취해 주면서 사진서비스를 해 준다
우리 옆에 또다른 크루즈선이 정박해 있다
오늘은 피렌체 관광부터 시작인데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피렌체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셀프 기념 찰영하는 곳이 있어
우리도 한 장 찍고 나왔다
피렌체는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도시이고 르네상스를 탄생시킨 도시가 바로 피렌체이다
피렌체하면 그 중에서도 두오모 대성당을 꼽는다
두오모 대성당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del Fiore)
'꽃다운 성모마리아의 대성당'이라는 의미로 1292년부터 지오토-
프란체스크-탈렌티나- 나토기니에 의하여 1446년까지 15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걸 작품으로 장미색, 흰색, 녹색의 3색 대리석으로
꾸며진 화려한 외관은 꽃의 성당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조토의 종루나 두오모 쿠폴라(돔)에 오르기 위해서 항상 관광객으로
기다란 줄이 만들어 지는데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는 연인이 함께
오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연인의 성지라고 해서 꼭 올라가고
픈 코스이기 때문이다
이 성당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으로 3만명의 신자가 함께
기도 할 수 있는 규모 면에서도 세계적이다
특히 정문은 1578년 파괴되어 1887년에 재건되었다하며 그
아름다움도 배가 되었다함
돔의 내부 천정에 그려져 있는 최후의 만찬 프레스코화는 볼수록
거대함에 압도당하고 섬세한 화폭이 정말 불후의 명작인 것 같다
지오토 종탑(Campanile di Giotto)
대성당 옆에 높게(87M) 서 있는 탑이 지오토 종탑이다
대성당의 총 책임자였든 지오토가 1334년 시작하여 그의 제자 안드레아
피사노와 탈랜디에 의해 1359년 완성한 종탑으로 이 탑의 기하학적
장식은 매우 독특한 것으로 하부에는 훌륭한 부조가 있는데 안드레아
피사노의 작품과 제자들의 작품이다.
지오토의 예술성은 단테가 "신곡"에서 언급했을 정도라고 한다
414계단을 올라가면 두오모 대성당의 웅장함과 피렌체 시가의 붉은
지붕들을 보면 정말 예술의 도시 피렌체를 실감할 수 있다
연인들의 약속을 다짐하는 열쇄들이 종탑 올라가는 창문에 한없이
걸려 있는 모습이 다정해 보인다
지오토(Giotto 1267-1337)는 이탈리아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당시 최고의 화가로 불리던 치마부에(Cimabue)
가 어린 시절 양을 그리고 있는 지오토를 보고 제자로 삼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신곡으로 유명한 시인 단테(Dante)는“치마부에의 시대는 갔다.
지금부터는 지오토(Giotto)의 시대다'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중세 르네상스시대의 삼대거장이며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라파엘로(Sanzio Raffaello)
미켈란젤로(Michelangelo)등의 위대한 미술가들도 지오토(Giotto)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중세의 대단한 미술가임에 틀림이 없다.
두오모 성당의 돔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두오모이며 높이가 106M나
되며 꽃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del Fiore)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산 조반니 세례당 San Giovanni (지옥의 문)
피렌쩨 두오모 성당 앞에 있는 세레당은 두오모 대성당 보다 100년
전에 만들어 졌으며 세례당의 동문은 로렌쪼 기베르띠가 만든 청동문이
하나 있다 이 문은 기베르띠가 피렌쩨의 마지막 발자취를 축하하기
위해 1452년에 만들었다.
그는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와 힘께 르네상스 초기의 대표적인 문으로
원근법을 사용한 조형물이며 구약성서의 여러 장면들이 새겨진
5개의 직4각형으로 도금한 10개의 부조가 들어 있다.
이름 하여 천국의 문이라 한다
1425년에는 제3문의 제작을 위촉받아 27년 걸려 1452년에 구약 이야기를
10면의 정교한 양각을 황금을 입혀 완성하였다
기베르티는 이야기를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보수적인 고딕 풍을 보여
왔으며 10개의 부조는 천지창조며 최초 인류인 아담 탄생등 창세기
내용 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한면 한면이 그리스도의 역사를 구현하는 모습들로 음각되어 있으며
그 화려함과 정교함은 르네상스 문화를 느끼게 하였다
단테의 집 (Casa di Dante)
피렌체의 광장 시료리아 광장으로 가다 보면 단테의 생가를 만나게 되는데
단테 또한 피렌체의 존재 이유다
단테는 (alighieri Dante ,1265-1321) 장편 서사시 신곡등 라틴
중세의 문학 철학 수사학의 대가이며 페트라르카, 보카치오등과
명작 신곡에 묘사된 지옥의 세계를 미켈란 제로는 최후의 심판에
나타냈으며 그의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를 9살때 배키오 다리에서
처음 만난 후 사랑이 시작되었는데 9년 후 산타크로체 성당앞에서
우연히 만났지만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끝나는 안타까운 사연은
여자의 아버지가 적극 반대헸기 때문에 단테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서사시를 만들고 지옥에서 허덕이고 고통받게 하여 사랑의
아픔이 이렇게도 괴로운 것이란 걸 노래한 그 유명한 신곡이
탄생하였다고나 할까
13세기 교황파의 정치싸움에 휘말려 피렌체에서 추방 라벤나에서
사망하였고 라벤나의 단테 무덤 앞에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 있는데
이 등불의 기름은 피렌체에서 제공되며 매년 9월 두째주 일요일
기름을 옮기는 의식도 행해 진다고 한다
산타크로체 성당 (Basilica di Santa Croce)
두오모 대성당의 동쪽 편에 또 하나의 음산한 성당이 있는데 타일로
장식된 산타크로체 성당으로 1294년 프란체스코에 의하여
검소하게 건축되어 1443년에 완성되었으며 르네상스의 주역들인
피렌체의 유명인 287기의 무덤이 보존된 성당이다
날씨마저 찌푸려 음기가 서리지만 옛 성현들의 숨결을 느껴
보려는 마음은 한결 경건하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재산으로 산타크로체성당을 짓기 시작 하였고고 평생 무소유와 청빈을 강조하면서 수도한 그를 따르는 탁발 수도회인 프란체스코회가 결성되기도 했다
정문 왼쪽에는 단테의 동상이 서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무수히
많은 무덤 조각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정교한 작품들은 그들의 생애를
말해주 듯 정말불후의 명품들이다
내부는 프란체스코파의 청빈한 교리에 맞추어 간결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다
성 프란체스코는 탄테,지오토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3사람 중 한명이다. 단테의 신곡이 당대의 인간을 위한 노래였다면
지오토는 실제 사물을 보는 것 같이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고
성 프란체스코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삶을 산 예수의 삶을 직접
보여 주여 주었다고 한다
미켈란 제로의 무덤
명성에 걸맞게 당대의 최고 조각가 조르지오 바사리가 직접 만든
호화로움 무덤이 바로 "미켈란제로의 무덤"이며 아래 세여인은
회화, 조각, 건축에 뛰어난 미켈란 제로의 재능을 의미한다
마키아 벨리의무덤
당대 교과서가 되었든 군주론을 집필한 "마키아 벨리의 무덤"
그는 국가 권력은 하나의 절대 군주로 집결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독재를 의미 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는 이 군주론을 이용하여
무의도식의 절대 권력의 이론을 만들어 통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단테의 무덤(기념비)
휘말려 라벤나에 추방되어 그곳에서 사망했다.
단테의 시신을 피렌체로 가져오려 했으나 그 곳 주민의 반대로
여기에는 기념비만 건립하여 단테를 추모한다 로시니의 무덤
음악의 여신 뮤즈가 지켜 줄 만큼 윌리암 텔, 세빌리아의 이발사
등을 작곡한 음악의 천재 "로시니의 무덤" 이다
파리에서 사망한 로시니는 원래 쇼팽이 묻혀 있어서 유명한 페르라 쉐즈
묘지에 묻혀 있다가 이곳으로 이장 했다고 한다
카포니의 무덤
엄숙하게 여신이 석관에 월계관을 놓아주는
당대의 자유주의를 제창한 정치가 “카포니의 무덤”
마르코니의 무덤
무선통신을 개발한 과학자,물리학자인"굴리엘모 마르코니의 무덤"이며
무솔리니에게 협력하였다 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은 사람이다
갈릴레오의 무덤
그가 발견한 망원경과 지구본을 들고 있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무덤"이며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 재판까지 받은 천체 과학자이다
아래 조각에는 태양을 돌고 있는 횡성궤도가 조각되어 있다
레오날도 다빈치의 무덤
천재 조각가 이며 건축가 과학자로써 르네상스의 주역인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무덤"이다
극작가 비토리오 알피에리의 무덤
당대 비극 작가로 유명한 알피에리의 무덤인데 석관 네모서리에 사람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이 성당 안의 바르디 가문 예배실(Bardi Chapel)에는 성 프란체스카의
일대기가 그려진 벽화가 그려져 있다
지오토는 단식 기도 중 6개의 성흔을 받은 프란체스코를 그려 벽화로
표현했다
특히<성흔을 받은 성 프란체스카>와 <성 프란체스카 죽음의 애도와
장례식>은 지오토의 작품으로 산타크로체 성당의 최대 걸작품으로
남아 있으며
성자의 영혼을 네천사가 상반심을 받들고 있고 제롤라모 기사는 옆구리에
손을 넣어 성흔을 확인하며 애도 하는 모습이 사실적이고
<성 프랜체스카의 부활>은 예수님처럼 살다가 부활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지만 왼쪽에서 4번째 사람은 턱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돌려 성 프랜체스카의 부활을 의심하는 인간의 감성을
성화에 표현한 작품으로 르네상스의 극치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처름 유명인들이 피렌체에 모여 있으니 당연히 르네상스의 태동은
필연적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시뇨리아광장(Piazza della Signoria)
중세도시 피렌체의 중심 광장으로 정치적인 모임, 연설, 문화토론,
시위의 장소로 사용되어 왔으며 피렌체 공화국 시절에는 행정 중심지
였으며 광장주변에는 베키오궁(Pallazzo Veccho) 우피치 미술관
(Galleria degli Uffizi)이 있으며 코모지 청동상, 넾툰 분수,
다비드상등 무수한 조각상들이 있다
광장 주변에서 여러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메다치가의 통치자
코시모 1세(Cosimo 1)의 청동 조각상은 1594년 조각가 지암 볼로구나(Giambologna)의 작품이다
메두사의 머리를 벤 페르세우스( Perseus with Haed Medusa)의 조각상이
앞쪽에 보이고 이 조각상은 1554년 조각가 셀리니의 작품이라고 한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냎툰누스(Neptunus)가 사두마차를 끌고
시원을 분수를 품어 낸다
시뇨리오 광장은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운 광장으로 문화 정치 집회의
장소이기도 하다
베키오궁전(Pallazzo Vecchio)
1314년 아르놀프 디 캄비오(A di Combio)에 의하여 완성 되었으며
1550년 코사모 1세가 피티 궁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당대 통치자
메디치 (Medici)가문의 궁전으로 피렌체 정치를 총괄하든 곳이다
현재는 시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베키오 궁전 앞을 지키듯 조각된 미켈란 제로의 데비드 상과
반디 넬리의 헤라 크레스가 조각되어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면 피렌체 공화국의 문장이 있고 2층에는 대형 홀이 있다
양 벽면에는 비사리와 그 제자들이 그린 메디치의 전투 장면이
묘사 되어 있으며
호화로운 교황 레오 10세의 거실과 메디치가의 사람들이 사용한
방들도 보존 되어 있다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
아노르강 위에 만들어진 다리이다. 다리 위는 원래 푸추간 가게가
처음 들어섰으나
지금은 다 흘어버리고 보석상, 미술품 거래상과 선물 판매소가
들어서 있다.
베키오 다리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며 단테가 베아트라체를 만나
세기적인 사랑을 불태운 역사적인 다리로 유명하기에 관광객이
끄칠줄 모르게 모여 든다
피렌체 박물관
르네상스시대 꽃피운 모든 작품들을 원형 그대로 복제 하여 전시하면서
영원히 보관하는 기술은 참으로 놀랍다
이 처럼 지옥의 문 설치장면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박물관에 비치하고
후학들로 하여금 새로운 공법을 연구하게 하는 것이 이른바
산교육이 이닐까
우린 하루 종일 르네상스에 취하여 감탄을 연발하며 시간을 보내다
귀선 하는 도충 피렌체의 야경을 보기 위해 미켈란제로 광장으로 향했다
미켈란젤로 광장의 다비드상
미켈란 젤로 광장에서 본 피렌체의 야경
이 아름다운 야경을 뒤로하고 우린 배로 승선하여 또 다른
내일의 관광을 위하여 휴식을 취했다
피렌체가 낳은 천재 에술가 미켈란제로에 대하여 조금 알아보자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미켈란젤로가 1508년 율리우스 2세의 위촉을 받아 바티칸의 시스티나
대성당에 구약성서의 내용을 천지창조, 인간의 타락, 노아 이야기를
주제로 3편 제9화로 구성하여 4년만인 1512년 완성한 천정화다.
41.2×13.2m의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는 천지창조는 구약 내용의
순서와는 반대인 성당 입구부터
술에 취한 노아
대홍수
노아의 제사
아담과 이브의 원죄와 낙원 추방
이브의 창조
아담의 창조
땅과 물의 분리
해와 달과 지구의 창조
빛과 어둠의 창조
의 순으로 제작되었다.
화면 사이에는 천사나 예언자 또는 역사(力士)를 그려 넣어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표현하였다.
천정 중심에는“아담의 창조”를 배치하여 프레스코(fresco)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프레스코는 영어로 'fresh'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금방 바른 젖어 있는 상태의 석회 벽 위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말한다.
한편 이 벽화를 완성하기 위해 오랜 시간 천정에 매달려 혼자서 고된 작업을 했던 미켈란젤로는 허리와 목, 눈 등 무리가 오고 건강이 악화되는 등 직업병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멸의 시스티나대성당 천정화와 벽화 최후의 심판은 조각가에서
화가로 입신하였으며 성스러운 미켈란제로로 불리게 되었다
시스티나 성당은 1471년부터 교황이었던 율리우스의 삼촌 식스투스
(Sixtus) 4세가 자신의 치세를 기념하기 위해서 이름 붙인 채플이며
오늘날에도 세계의 추기경들이 이곳에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한다.
아담의 창조 (Creation of Adam) 감상하기
폭풍처럼 하늘에 나타난 하나님은 한 팔에는 이브를 끼고 한 팔을 뻗어
둘째 손가락으로 아담에게 새 생명을 충전하듯 불어 넣는다.
아담은 힘없이 늘어진 자신의 손가락에 힘찬 하나님으로부터 육체와
생명을 충전 받는다.
아담의 팔과 상체는 괴로운 듯 침울한 상태를 보여주고 얼굴 표정은
표현할 수 없는 향수에 차 있다.
하나님과 아담의 손가락을 가까이 그렸음에도 인간과 신의 간격은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
펜과 잉크는 다를 게 없지만
잘된 시도 나오고 모자란 시도 나오네
그저 그런 시도 있다네
다만 대리삭에
고귀하고 천박한 형태가 있다면
그건 순전히 망치를 든 사람 탓 일세
나의 영혼이 신을 닮았다면
바같의 아름다음을 탐익하지 않았을 것을
이제 덧없는 가치에는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으리
영원한 형태가
나에게 이리오라 손짓하네
미켈란제로
결국 천지창조의 천정화는
첫 네 장면은 대지와 물과 불과 바람을 통해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벌하는 이야기다.
뒤쪽의 네 장면은 하나님의 창조 권능을 묘사하여 창조주와 교회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의 감정을 일으키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