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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靑蛇)’ ‘양축(梁祝)’
원초적 욕망 좇는 순수 인간의 저항과 낭만
항저우(杭州)의 아름다운 호수 시후(西湖)는 중국인들 사이에 평생에 한번은 꼭 들러야 할 명승지로 손꼽힌다.
풍광도 빼어나지만 수천년의 세월 동안 그곳을 배경으로 탄생한 숱한 전설과 시와 노래가 중국인의 발길을 이끈다.
쉬커 감독의 영화 ‘청사’와 ‘양축’은 시후를 배경으로 한 중국 민간전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뱀과 인간의 사랑, 신분이
다른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에는 억압적인 현실에 안분지족하면서도 원초적 욕망을 향한 낭만을 잃지 않는
중국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
항저우의 자랑, 시후
요즘 중국에서 유행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시우셴(休閑)’이다. 레저란 뜻이다. 중국에 그만큼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제대로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 1992년부터이니까 15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사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이젠 삶의 여유를 찾는 중국인이 늘었다는 증거다.
중산층 수준인 이른바 ‘샤오캉(小康)’에 도달한 사람이 크게 늘고, 이들을 중심으로 레저 수요도 늘어나면서 레저 산업, 그중에서도 여행업이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요새 중국에서 유행하는 여행 코스는 크게 두 가지다. 그중 하나가 역사적 명승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 여행 코스에서 항저우(杭州)는 단연 첫머리에 있다. 또 다른 여행 코스는 ‘붉은 혁명’의 성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마오쩌둥의 고향이나 공산당의 해방구가 있던 옌안(延安)을 찾는 이른바 ‘홍색 여행’이 대유행이다. 고대 중국의 뿌리와 현대 중국의 고향을 찾는 셈이다.
인문적 향기 가득한 명승지
항저우는 예전 월나라 땅이다. 오나라에 패한 월왕 구천이 쓸개의 쓴맛을 보며 복수의 의지를 가다듬었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성어가 나온 고장이자, 왕소군, 양귀비, 초선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서시의 고장이다. 하지만 항저우의 얼굴은 역시 시후(西湖)다.
항저우는 시후가 있어서 비로소 항저우다. 항저우에 가서 항저우 음식이 소문만 못하다고 불평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항저우 사람들 앞에서 시후를 나쁘게 이야기해서는 절대 안 된다. 항저우 사람들에게 시후는 자존심 그 자체다.
항저우는 3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古都)다. 마르코 폴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한 곳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과 나무, 호수, 강이 어우러져 경치가 좋다. 더구나 쌀과 물고기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그래서 예부터 쑤저우(蘇州)와 함께 항저우를 인간 세계의 천당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돈 있는 상하이 사람들의 꿈이 항저우에 별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처음 시후를 본 것이 1993년 5월인데, 10여 년이 지나 다시 시후를 찾았다. 처음 시후에 왔을 때 호수 주변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맛이 일품이었다. 마침 비가 내렸는데, 비안개 속에서 바라보는 호수가 한 폭의 동양화였다. 그런데 지금은 인파가 몰려 사람들 발길에 치일 정도다. 이렇게 복잡하고 소란스럽다면 시후를 제대로 감상하기란 애초에 틀렸다.
시후는 조용한 때 호수 주위를 산책하거나 호수에서 배를 타면서 느껴야 제격이고, 그중에서도 아침, 특히 안개 낀 아침이나 저녁 노을이 질 무렵, 그리고 달밤에 보는 것을 최고로 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눈 덮인 시후를 제일로 꼽기도 한다.
세상에는 모두 36개의 시후가 있다고 한다. 경치 좋은 호수는 모두 시후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그중에서 항저우 시후가 최고다. 아마 최근에 시후를 둘러본 한국인이라면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후를 보고 실망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단체 관광객, 신경을 거스르는 관광안내원의 메가폰 소리, 게다가 호수의 물은 썩은 것처럼 더럽고 호수 주변에는 바가지 씌울 기회만 노리는 장사꾼들이 지천이라 시후를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 사정이 이러니, 왜 중국인들은 시후를 평생에 한 번은 꼭 가야 할 곳으로 여기는가, 이곳이 정말 그렇게 유명한 시후가 맞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시후는 처음에는 경치가 빼어난 자연 명승지였지만 수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문화적인 명승지, 인문적 향기가 가득한 명승지가 되었다. 역사가 새겨지고, 숱한 전설과 시와 노래, 이야기가 탄생하고, 사람의 발길과 혼(魂)이 시후 물결에 켜켜이 쌓이면서 시후는 이제 문화적인 명승지가 되었다. 시후는 그 자체로 시이자 역사이고, 문화다.
항저우 사람들의 자부심
영화 ‘청사’와 ‘양축’의 포스터
중국에는 4대 민간 전설이 있다. 중국 민중의 욕망과 꿈이 담긴 이야기들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견우직녀’ 이야기를 비롯해 ‘맹강녀(孟姜女)’, ‘백사전(白蛇傳)’,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臺)’ 이야기가 그것이다.
‘맹강녀’ 이야기는 만리장성과 관련이 있다. 결혼한 지 사흘 만에 장성 쌓는 노동자로 징발된 남편을 찾아 나선 새색시 이야기다. 남편이 이미 시체가 되어 장성 안에 파묻힌 것을 알고 맹강녀가 얼마나 슬프게 울었던지 장성이 무너지고 거기서 남편의 시체가 나왔다. 맹강녀가 장성을 무너뜨렸다는 보고를 받은 진시황은 당연히 진노한다.
그런데 맹강녀의 출중한 미모를 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황후로 삼으려 한다. 그러자 맹강녀가 세 가지 조건을 내건다. 남편 무덤을 만들고 정중하게 장례를 치를 것, 그런 뒤 절을 할 것, 자신과 함께 사흘 동안 바다에서 놀 것. 진시황은 앞의 두 가지 약속을 지킨다. 자기의 뜻이 이뤄진 것을 확인한 맹강녀는 진시황이 세 번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찾은 바다에서 자살한다.
그 뒤 맹강녀가 은어로 변했다는 설도 있고, 모기 같은 벌레로 변해 진시황을 물어서 죽게 했다는 설도 있다. 만리장성을 쌓는 것이 민중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 당시 민중이 진시황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다.
‘백사전’, ‘양산백과 축영대’ 이야기는 시후와 항저우 일대에서 일어난 이야기이고, 영화 ‘청사’와 ‘양축’의 모태가 됐다. 최근 항저우에는 새로운 관광상품이 하나 생겼다. ‘쑹청(宋城)’이라는, 송나라 때 거리를 재현한 일종의 테마파크가 있는데 이곳에 설치된 초대형 극장에서 중국 전통 예술을 공연하는 상품이 관광객에게 큰 인기다.
이 공연의 주요 레퍼토리가 ‘백사전’과 ‘양산백과 축영대’ 이야기다. 공연을 보고 있으면 중국 4대 민간 전설 가운데 두 가지가 자기 고장에서 탄생했다는 데서 비롯된 항저우 사람들의 문화적 자부심이 느껴진다.
뱀=근원적 생명력
‘백사전’은 중국의 민간전설이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전파되어 조금씩 변형되거나, 예술작품으로 재창조됐다. 1953년에 제작된 일본 첫 컬러 애니메이션이 ‘백사전’일 정도다. 전설이라는 것이 본래 핵심적인 줄거리는 있지만 시대, 지역에 따라 부분적으로는 다른 내용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구전(口傳)되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사람에 따라 내용을 추가하기도 하고, 삭제하기도 하고, 변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1994년 쉬커(徐克) 감독이 만든 영화 ‘청사’도 민간전설인 ‘백사전’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약간의 변화를 줬다.
‘백사전’은 뱀의 변신 이야기, 변신설화다. 옛날에 중국인들은 하나의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로, 어떤 경우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생명체로 변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생활 속에서 유충, 고치, 나방 등의 변신을 관찰하고 양잠술을 완전히 터득한 사람들이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런 변신에 관한 생각이 신화에도 침투했다. 우 임금의 아버지가 홍수를 다스리지 못해 자라로 변신하는 처벌을 받는다든가, 불사약을 훔친 항아(姮娥)가 달로 달아났다가 두꺼비가 된다든가 하는 변신 이야기가 많다. ‘장자’도 거대한 물고기가 새로 변하는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는가.
변신을 동물계의 원리 가운데 하나로 여겼던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에게 변신은 무죄이자, 존재의 형식 그 자체였다. 우리 단군신화에서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수련한 끝에 인간으로 변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백사전’에서 백사는 시후 호수 속에서 500년 동안 수행한 끝에 여자가 된다. 이름은 백소정(白素貞)이다. 흰 아가씨란 뜻으로 백낭자(白娘子)라 부르기도 한다. 이름 그대로 하얀 뱀이 한없이 순결한 백옥의 여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의 곁에는 푸른 뱀에서 변신한 소청(小靑)이라는 하녀가 있다.
영화에서는 백소정이 1000년을 수련해 사람이 됐고, 소청은 500년을 수련해 사람이 된 것으로 나온다. 수련 기간이 차이가 나는 만큼 백소정은 완벽하게 사람이 됐지만 소청은 아직 뱀의 티를 벗지 못했다. 영화에서 백소정 역은 왕쭈셴(王祖賢)이, 소청 역은 장만위(張蔓玉)가 맡았다.
두 배우의 비중을 반영하듯이 원래 전설은 백소정 이야기가 중심인데 영화는 소청의 비중을 크게 높여 백소정과 나란한 위치로 올려놓았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백사’가 아니라 ‘청사’로 바뀐 것이다.
뱀의 변신 이야기인 ‘백사전’이 우리에게는 낯설 수 있다. 뱀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이브를 유혹해 선악과를 따먹게 한 것이 뱀이다. 뱀은 음험하고 사악하고 사람을 타락하도록 유혹하는 악마의 화신 이미지가 강하다. 서양신화에서 흔히 뱀은 퇴치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중국 신화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중국 신화에서 인간을 창조한 것은 여와(女튋)다. 여와는 상체는 인간이지만 하체는 뱀의 형상이다. 중국 신화에서 인간을 낳은 태초의 어머니가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뱀이 중국 원시 인류에게 여성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것과 관련이 있다.
끊임없이 몸을 폈다 움츠렸다 하는 율동적인 리듬, 탈피를 거듭하며 영원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뱀의 생리가 고대인들에게는 생명의 원천이자 모태인 여성의 이미지와 겹쳐 보였고, 뱀의 몸을 한 여와가 인간을 창조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뱀에서 변신한 아름다운 여인
중국 신화에서 뱀은 근원적인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뱀은 언뜻 약해 보이지만 독이 든 이빨이 있고 신비하면서도 빠르다. 또 새와 더불어 중국 고대에 많이 사용된 토템 가운데 하나다. 뱀은 용과 함께 비바람을 불러 오는 것과 같은 신비한 능력까지 지닌 영물 이미지도 갖고 있다. ‘백사전’은 그런 뱀의 이미지 속에서 나온 이야기다. 아름답고 부드럽고 다정하고 순수한 인간, 그것이 백사가 변신한 여인 백소정의 이미지다.
시후에는 시후 호수를 가르는 유명한 제방이 둘 있다. 바이디(白堤)와 쑤디(蘇堤)라는 두 개의 둑이 호수를 가르고 있다. 바이디는 원래 이곳이 흰 모래가 있었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축성한 둑 바이궁디(白公堤)도 바이디라고 불렀는데, 바이궁디가 사라지면서 본래 바이디가 백거이의 둑이 됐다.
쑤디는 송나라 때 시인 소식(蘇軾), 즉 소동파(蘇東坡)의 둑이다. 소동파가 관리로 있을 때 호수가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준설했다. 소동파는 쑤디를 쌓은 뒤 유명한 둥보러우(東坡肉) 요리를 발명한다. 둑을 쌓자 항저우 사람들이 소동파에게 감사의 표시로 돼지고기를 가져다줬는데, 그 많은 고기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소동파가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한 것.
소동파는 ‘식신(食神)’으로 불릴 만큼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돼지고기를 네모지게 썬 다음 나름의 방법으로 조리해 우리나라 사람들도 좋아하는 삼겹살찜 요리를 탄생시킨 것이다.
둥보러우는 돼지고기를 껍질째 살짝 튀겨낸 뒤 거기에 설탕, 간장, 대파, 술(황주)을 넣고 국물이 졸 때까지 약한 불에 오랜 시간 고아내는 요리다. 연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기를 쪽파나 청경채와 함께 먹는다. 둥보러우는 고기에 기름과 설탕을 넣어 볶은 뒤 간장을 넣고 오래 익혀서 검붉은색이 나도록 하는 요리법, 즉 홍소(紅燒)요리의 대표 음식이다.
‘백사전’의 두 남녀 주인공, 즉 백사에서 변신한 여인 백소정과 시후에 놀러 나온 허선(許仙)이 처음 만난 곳이 바이디 중앙에 놓인 아치형 다리 돤교(斷橋)다. 흔히 시후 절경으로 10가지를 든다. 이른바 ‘시후 10경’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돤교 잔설(斷橋殘雪)’이다. 겨울에 눈이 내리고 나면 바이디의 다리 밑부분에 눈이 남아 있는데, 아치형 다리 중간부분은 눈이 녹아 다리가 끊어진 듯 이어진 듯 보인다고 한다.
그 풍경이 시후 10경 가운데 하나다. 이 다리는 나중에 백소정이 법해선사에게 제압당해 허선과 영원히 작별하는 곳이기도 하다.
백소정과 허선의 만남에 계기를 제공한 것은 우산이다. 허선이 시후에 놀러 나온 날 마침 비가 내린다. 허선은 미모의 여인에게 넋을 잃는다.
백소정 쪽도 마찬가지다. 비는 오는데 그 여인은 우산이 없었다. 허선은 그 기회를 포착해 미모의 여인에게 우산을 빌려준다. 그러자 백소정이 허선에게 훗날 우산을 돌려주러 갈 터이니 사는 곳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 뒤 스토리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백소정이 허선의 집을 찾아가고 둘이 좋아하게 되고 그래서 결혼한다.
사랑의 훼방꾼
중국의 고도(古都) 항저우에 있는 전통 가옥. 과거 유명한 상인이 거주했다고 한다.
우산이 남녀 사이의 ‘작업’ 도구로, 연애의 메신저로 등장한 것이 이때부터다. 그런데 작업 용도로 우산을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 우산은 남녀를 맺어주는 메신저이기도 하지만 이별의 상징이기도 하다.
중국 사람은 우산을 선물로 주지 않는다. 연인 사이에는 특히 그렇다. 우산의 ‘傘’자의 중국음과 헤어진다는 뜻인 ‘散’자의 발음이 똑같이 ‘싼[san]’이다. 그래서 우산 선물은 이별의 암시이자 헤어지자는 간접 메시지로 사용된다.
우산이 인연이 되어 맺어진 커플은 사랑하는 동안에도 노심초사할지 모른다.
백소정과 허선처럼 우산으로 말미암아 만났지만 우산이 암시하는 불길한 조짐 때문에 사랑이 어그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백소정과 허선은 행복하게 잘 산다. 백소정의 신비한 공력으로 한약방을 운영해 돈도 많이 번다(어떤 판본에선 한약방이 두 사람의 것이 아니라 허선의 형이 운영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렇게 잘 살고 있는 둘 사이에 훼방꾼이 나타난다.
법해선사라는 스님이다. 요괴 퇴치 전문 스님이다.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요괴를 제압한다. 벌레나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한 ‘요망한 것’은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스님이다. 법해선사는 허선 집에서 요괴의 기운을 느낀다. 그런 뒤 허선에게 말한다.
부인이 요괴라고. 하지만 허선은 믿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그런 가운데 단오가 됐다. 단오절은 중국에서 초나라 시인인 굴원(屈原)을 기념하는 날이다. 굴원은 조정 대신에게 모함을 받은 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은 충절의 시인이다. 단오절에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가는 것은 그의 시체를 건지기 위해서다.
단오에 용 모양의 용주(龍舟)로 시합을 벌이는 것은 여기서 연유했다. 찹쌀밥을 댓잎으로 싼 쭝쯔(?子)를 물속에 던지기도 한다. 고기들이 굴원의 사체를 뜯어먹지 말고 대신 쭝쯔를 먹으라는 뜻이다.
단오에 굴원을 기리는 풍속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오가 5월5일이니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는 때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날, 날이 더워지면 나타날 벌레들을 퇴치하고 예방한다. 속설에는 단오절에 웅황주(雄黃酒)를 마시면 여름 해충을 막을 수 있고 나쁜 기운을 멀리할 수 있다고 한다.
웅황은 독성이 있는 맵고 신맛이 나는 광물질이다. 웅황을 갈아서 그 가루로 어린이의 이마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어른들은 가루를 술에 타서 마시면 여름 내내 병이 없고 독충이 접근을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창포나 쑥을 대문에 걸어두면 사악한 기운이 감히 집안에 들지 못한다고 여겼다. 중국에서 단오절은 굴원을 기념하는 날이자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날이다.
사연 많은 레이펑 탑
법해선사의 말을 들은 허선은 결국 단오절에 아내 백소정에게 웅황주를 권한다. 백소정은 이미 허선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다. 웅황주를 먹으면 백소정은 끝이다. 자신의 원형이, 자신이 뱀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버린다. 백소정은 웅황주를 마신다. 마시자마자 원래 모습이 드러난다. 뱀으로 변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허선은 기절해 숨을 거둔다. 놀란 백소정이 목숨을 걸고 허선을 구할 신선초를 구하러 간다. 그곳은 뱀만 잡아먹는 학이 사는 곳이다. 소정은 목숨을 걸고 신선초를 구해와 남편 허선을 살린다.
다시 살아난 허선은 곤혹스럽다. 아내는 백사다. 그렇지만 그녀를 사랑하고, 더욱이 그녀는 목숨을 걸고 자기를 살려냈다. 허선은 아내와 뱀, 사랑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던 중 법해선사가 다시 나타나 허선을 진산사(金山寺)로 데려간다. 아니, 강제로 끌고 가서 수도를 하며 요망한 기운을 떨쳐버리라고 한다.
백소정은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남편의 애정과 신뢰를 회복할 다짐을 한다. 법해선사가 남편을 데려간 것을 알고는 진산사로 가서 법해선사와 무공 대결을 펼친다. 물에 사는 새우와 게가 총동원되어 백소정을 돕는다. 하지만 끝내 법해선사를 이기지 못한다.
싸움에서 패한 백소정은 하녀 소청의 부축을 받으며 시후의 돤교로 온다. 출산이 임박해 산통이 더 심해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허선을 만난다. 하녀 소청이 나서서 칼을 뽑아 배은망덕한 허선을 해치려 한다. 백소정이 말린다. 허선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백소정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백소정은 허선과 헤어지더라도 아이만은 무사히 낳기를 바란다.
그 순간 법해선사가 나타난다. 법력으로 백소정을 원래의 뱀으로 변하게 해서는 바랑 속에 담아 시후에 있는 레이펑 탑(雷峰塔) 밑에 구멍을 파고 넣는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탑으로 눌러버린다. 백소정과 허선의 사랑은 법해선사로 인해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
레이펑 탑은 벽돌탑이다. 레이펑 탑이 시후에 세워진 뒤 시후에 또 하나의 명물이 생겼다. ‘레이펑 낙조’가 그것이다. 탑의 그림자가 맑은 호수와 푸른 산 사이로 비껴서고 넘어가는 해가 시후를 비추는 ‘레이펑 낙조’는 ‘시후 10경’에 든다. 중국인들은 탑 밑에 백사가, 백소정이 갇혀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다들 안타깝게 여기고 백소정을 동정했다. 백소정이 탑에 눌려 있다는 생각 때문에 레이펑 탑을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탑의 벽돌을 갈아서 먹으면 약효가 있다는 미신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탑의 벽돌을 훔치기 시작했다. 1924년 9월25일에 결국 레이펑 탑이 무너졌다. 지금 시후에 있는 레이펑 탑은 2002년 9월에 새로 만든 것이다. 법해선사는 중국인들에게 줄곧 미움을 받았다. 중국 작가 루쉰은 레이펑 탑이 붕괴됐다는 소식을 듣고 통쾌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스님이 제 염불이나 하면 그만인 것을 백사가 허선에게 반하고 허선이 요괴를 아내로 삼은들 스님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루쉰뿐 아니라 대다수 중국인, 항저우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뱀이 변신했든 어쨌든 두 사람이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왜 법해선사가 나서서 간섭해 사랑을 깨느냐며 법해선사를 미워했다.
그래서 훗날 옥황상제의 미움을 산 법해선사가 도망을 다니다가 게껍질 속에 숨어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항저우 요리 가운데 가을철 민물게 요리가 일품이다. 이곳 사람들은 게를 먹으면서 게껍질 속에 숨어 사는 법해선사를 욕하곤 했다고 한다.
‘양산백과 축영대’
‘백사전’ 전설에는 사랑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욕망을 옹호하면서 그것을 억압하는 도덕이나 종교, 권위에 대한 저항이 담겨 있다. 뱀에서 변신한 백사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본능, 감정을 상징하고 법해선사는 인간 삶을 규율하고 옥죄는 권위와 도덕, 종교 등을 상징한다.
허선은 이 둘 사이를 오가면서 갈등한다. 허선은 평범한 인간의 상징이다. ‘백사전’이 두고두고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게임으로 다양하게 각색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늘 그렇게 법해선사에게 억눌리며 살아가면서도 백사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원초적 욕망이 마르지 않기 때문이리라.
시후에는 ‘백사전’ 못지않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양산백과 축영대’ 이야기가 그것이다. 영화 ‘왕의 남자’ 흥행으로 동성애가 화제인데, ‘양산백과 축영대’ 이야기에도 동성애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꽃미남’은 예부터 항저우 남성의 전형적인 콘셉트다. 샌님처럼 곱고 섬세하고 유약하고 다소 여성화된 이미지다. ‘백사전’의 허선도 그렇다. 중국 둥베이 지방이나 산둥 지방이 남성의 고장이라면 항저우는 여성의 고장이다.
‘양산백과 축영대’ 얘기를 두고, 중국 여러 곳에서 서로 자기 고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항저우 인근 닝보(寧波)다. 대부분 항저우 인근 지역에서 연고권을 주장하지만, 멀리 산둥에서 ‘양산백과 축영대’가 공자 고향의 이야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시후에 있는 창교(長橋)는 양산백과 축영대가 작별하던 다리다. 항저우 만송서원(萬松書院)에서 함께 공부하던 두 사람이 결혼하라는 부모의 독촉에 훗날을 기약하면서 작별하던 다리다. 이름과 달리 3m도 되지 않을 만큼 짧다.
영화 ‘양축’은 ‘양산백과 축영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역시 쉬커 감독의 1995년작이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축영대는 시집갈 나이가 됐지만 행동거지도 학문도 엉망이다. 부모는 축영대를 공부시키기 위해 남장을 시켜 서원으로 보낸다. 축영대는 그곳에서 가난한 서생 양산백을 만난다.
축영대는 자기가 여자인 것을 숨기고 양산백에게 의지하며 생활한다. 양산백은 축영대에게 끌리는 마음을 동성애 감정이라 생각하고, 축영대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양산백은 결국 축영대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둘 사이에 사랑이 싹 튼다.
安分知足, 亂中有序
영화 ‘청사’와 ‘양축’은 시후를 배경으로 한 전설을 소재로 하고 있다. 각각 왕쭈셴·장만위, 우치룽·양차이니가 주연을 맡았다.
양산백이 과거를 보러 갈 무렵, 축영대에게 집으로 돌아오라는 통지가 온다. 시집을 보내려는 것이다. 축영대가 떠난다는 소식에 길을 떠난 양산백이 다시 돌아오고 둘은 마침내 남자와 여자로 사랑을 나눈다.
둘은 시후에 있는 창교 다리에서 차마 헤어지지 못한다. 양산백이 축영대를 저만큼 배웅하면 다시 축영대가 양산백을 그만큼 배웅하기를 18번이나 반복한다.
이 둘이 그렇게 서로 배웅하며 오간 길의 길이가 18리였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이 다리는 연인들의 다리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정인절(情人節)’이라고 하는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젊은 커플들이 일부러 이곳을 찾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간 축영대는 집에서 정한 혼처로 시집을 간다. ‘춘향전’에서는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해 변사또에게서 춘향을 구해내지만 양산백은 그러지 못한다. 과거에 급제해 현령이 되어 돌아왔지만 소용이 없다. 관리의 힘보다도 지방 토호, 지방 문벌의 힘이 더 세던 시절이었다.
당시 결혼의 첫째 원칙은 ‘문당호대(門當戶對)’였다. 중국 가옥의 대문 앞에 있는 북 모양의 돌이 ‘문당’이고, 대문 위에 있는 원이나 육각형의 나무 표식이 ‘호대’다. 문당은 문관인지 무관인지를 표시하고, 보통 짝수로 되어 있는 호대의 숫자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의 벼슬을 암시한다.
대문 위에 육각형 나무가 네 개 박혀 있으면 고관집이다. 아예 대문에 집 주인의 신분을 명시해놓은 것이다. ‘문당호대’는 결혼할 때 양쪽 문당과 호대가 비슷해서, 집안의 계급과 문화, 경제적 능력이 맞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잡 속에서도 유지되는 소통
전통사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마오쩌둥이 주도한 사회주의 시대를 거쳤지만 중국은 어쩔 수 없는 등급사회, 계급사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마오가 추구했던 평등사회가 중국의 전통적 관념에서 얼마나 어긋난 것이었는가를 절감한다. 중국인은 자기의 위치가 정해지면 그 위치에 맞게 행동하고 그것을 자기의 몫으로 아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철학을 지녔다.
중국에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중국 교통혼잡에 혀를 내두른다. 택시와 버스, 자전거, 사람이 서로 뒤엉킨 교차로를 보면 저런 곳에서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들 한다. 그리고 중국은 아직 멀었고, 현대화되려면 한참 멀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충분히 현대화된 타이완에서도 그런 교통혼잡을 경험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현대화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교통이 뒤엉키면 한국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나고 교통이 마비될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그런 혼잡 속에서도 소통이 되고 나름의 질서가 유지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가 ‘난중유서(亂中有序)’다.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질서가 있다.
그 질서의 원리는 고차원의 것이 아니다. 한국과 중국의 교통문화를 유심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것이 있다. 서로 먼저 가려고 앞을 다투고 서로 끼어들려고 차의 머리를 들이미는 것은 똑같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먼저 머리를 밀어넣고 자리를 차지하면 그것이 인정되고 뒤차가 양보해 순서가 정해진다.
우리처럼 중간에 끼어든 차를 뒤쫓아가면서 빵빵거리거나 기어이 추월하려고 기를 쓰지 않는다. 어떤 경우는 자기 차보다 고급 차가 끼어들면 그대로 양보한다. 혼란 속에서도 교통질서가 유지되는 비결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막다른 골목에서 차 두 대가 만났다. 누가 양보할 것인가. 둘 사이에 신경전이 시작된다. 한 사람이 차를 세우고 담배를 꺼낸다. 그러자 다른 운전사는 신문을 펼쳐든다. 담배를 꺼내 문 사람이 차의 시동을 꺼버린다. 최종 승부에서 시동을 꺼버린 사람이 이겼다. 졌다고 판단한 상대편 운전사가 신문을 접고 차를 뒤로 돌려 길을 터준다.
수천년 동안 중국 사회는 이런 원리로 움직여왔다. 마오쩌둥은 그것을 뒤흔들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고 중국 전통사회를 움직여온 등급사회의 원리가 이제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원리로 다시 중국에서 실현되고 있다. 중국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이토록 빨리 적응하는 문화적 배경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중국 민중의 의지
영화 ‘양축’에서 가난한 북방 출신인 양산백은 아무리 과거에 급제했더라도 결국 중국 남부 문벌세력의 벽을 넘지 못한다. 축영대 어머니가 양산백을 찾아와 말한다. 축영대가 결혼을 거부해서 방에 갇혀 있고 이러다간 축영대가 병이 나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러자 양산백은 축영대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축영대에게 쓴 붉은 각혈의 편지를 어머니 손에 보낸다.
양산백은 죽고 축영대는 하는 수 없이 정해진 혼처에 시집을 간다. 결혼식 날 축영대는 양산백의 무덤이라도 지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혼사를 그르치면 안 된다고 거절한다. 결혼 행차가 다른 곳으로 가려 하자 흙이 무너지고 길이 끊긴다. 결국 혼례 행차는 양산백의 무덤 앞으로 간다.
축영대는 양산백의 무덤에 시를 지어 바치고 ‘양산백의 묘’라고 씌어진 나무 팻말에 자신의 이름을 같이 새긴다. 그 순간 바람이 일고 비가 내리고 무덤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축영대가 무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는 무덤이 닫힌다. 날이 개고 무덤 위로 무지개가 뜨고 나비 두 마리가 난다. 둘은 죽어서 비로소 하나가 된 것이다.
영화에서 양산백과 축영대가 결국 만나 사랑을 이루게 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다. 하늘은 축영대의 행차를 기어이 양산백의 무덤 쪽으로 돌려놓는다. 중국인에게 하늘은 인격신이다. 하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자연의 이치대로 사는 것이다.
‘백사전’을 토대로 한 영화 ‘청사’나 ‘양산백과 축영대’ 이야기를 재현한 ‘양축’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가로막는 세상을 고발하려는 중국 민중의 의지가 담겨 있다.
항저우 시후에 수천년 세월 동안 켜켜이 서린 낭만은 그저 빼어난 자연 풍경이 주는 낭만과 다르다. 억압된 이곳 너머 저곳을 갈망하는 순수한 인간들의 낭만이다. 시후는 단순한 자연물을 넘어 시이자 역사이고 문화다. 시후에 가면 시후가 아무리 소란스럽더라도 백소정과 허선, 양산백과 축영대를 떠올리면서 그런 낭만을 생각할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