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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경희 | 그림 김병주 | 감수 박형우 | 발행처 라이프플러스인서울
176면 무선제본| 12,000원 | 아동/인물 | 발행일 2010. 8. 29 | ISBN 978-89-962177-4-9
의사중의 의사 대의(大醫)가 되는 길
나라 구한 큰의사 이야기1
《대암 이태준》
: 신의라 불린 독립지사
“65주년 광복절과 100번째 경술국치일(8월 29일)을 앞두고 사람뿐만 아니라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대의를 다룬 인물이야기가 처음으로 발간됐다.”
2010년 8월29일 100번째 경술국치일
2010년 올해는 한일 강제 병합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100년 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공표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지로 완전히 전락해 버렸다. 이전까지 고종은 외세 침탈을 막고 스스로 권위를 높이기 위해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왕을 황제라 칭하게 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1910년 경술년의 일이다. 그래서 이날을 경술국치일이라 한다. 결국 올해는 한일 강제 병합 100주년이자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해이다.
독립운동 경험 바탕으로 경제성장 이뤄
우리나라는 현재 OECD 국가 중 하나다. 월드컵에서 남녀 축구대표팀 모두 4강의 신화를 달성한 나라다. 경제적으로도 10위권에 해당하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비록 세계대전의 결과로 일제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의 발전과 성장은 침략자 일제에 의해 이뤄진 것도 승전국 미국 덕분도 아니다. 상반기에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를 완간한 독립운동사 연구 원로학자이자 전 국사편찬위원장인 이만열 독립운동사편찬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니까 일제가 근대화시켜 주었다는 논리에 경도되는 것이다. 독립운동의 역사는 국권 회복만이 아니라 근대국가를 추구하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임시정부만 해도 요모조모 따져가면서 법을 제정했고, 1920년대말부터 정당 사이에 제휴와 연합이 활발해지는 등 '이당치국(以黨治國)'의 경험도 했다. 독립운동의 과정에서 민중들은 민주적 역량도 쌓을 수 있었다. 3ㆍ1운동의 예만 보더라도 독립운동가들은 ‘백성이 주인되는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 왕조도 아니고 제국도 아닌 '민국(民國)'을 세우려는 것이 3ㆍ1운동의 목적이었다. 나는 경제발전 때문에 민주화가 됐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립운동 과정에서 쌓인 민주적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완간 기념 언론 인터뷰에서
최초로 대의를 다룬 인물선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얼마 전 모 공중파 방송 시사프로그램에 따르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우리나라 섬 이름’을 묻는 고교 국사 시험 문제에서 마라도, 제주도, 대마도 등 뜬금없는 답안이 쏟아졌단다. 50% 가량이 엉뚱한 답을 내놓은 것이다. 취재 결과 드러난 학생들의 형편없는 국사 실력, 여기에 내년부턴 국사가 수능 선택과목이 된다고 한다. 국사를 선택한 학생은 겨우 10% 좀 넘는다고. 그러니 경술국치가 뭔지 한일병합이 뭔지, 을사늑약은 왜 늑약인지 모르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위기다. 역사를 모르고 뿌리를 모르면서 월드컵 때마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은 모순이다. 일제의 우리민족 통치를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매국노’라 지탄 받는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 등 한인들이다. 같은 민족에 의해 나라를 잃은 독립운동가들은 목숨을 걸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몸을 던졌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代)가 망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추천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장)의 말대로 독립운동 과정에서 쌓인 민주적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발전과 번영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대우는 만족스럽지 않다.
한일강제병합 100년, 경술국치 100년. 벌써 한 세기가 흘렀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우리의 역사가 젊은이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나라의 치욕인데도 말이다. 오늘과 내일을 살 우리에게 부끄러운 과거가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부끄럽고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해야 희망찬 내일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내일을 이끌어갈 우리 젊은이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대의(大醫)의 자격
후세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가르칠 것인가? 이 책에서는 삶의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부끄럽게 숨어 살 것인가, 한 치의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것인가를.
여기 하늘을 우러러 한 치 부끄럼 없이 열정적으로 살다간 분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원히 역사에 묻힐지도 모르는 그 분들의 이름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다. 그 중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편안한 삶이 보장된 의사(醫師)라는 직업이 있음에도 사람은 물론 죽음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살리기 위해 뛰어든 큰의사, 즉 대의(大醫)를 찾아 나선다.
대암(大岩) 이태준(李泰俊)은 한일강제병합100년에 만나는 첫 번째 대의다.
본문 속으로
-함안 아라가야의 후예
큰 바위 대암 이태준은 아라가야 땅 경남 함안의 인천 이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김수로왕의 후손이자 허기의 후손이기도 한 태준은 어려서부터 한학을 가까이 하며 글공부에 열심이었다. 서당 훈장님으로부터 들은 임진왜란 당시 자랑스런 조상들의 의병활동 이야기, 직접 목격한 ‘함안민란’ 등은 어린 태준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기본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부산 앞바다로 물밀듯이 쳐들어와 사람을 죽이고 값나가는 것을 뺏고 집을 불태웠지. 그때 왜놈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이들은 왕도, 높은 벼슬아치도 아니었다. 의병이 우리나라를 왜놈들 손에서 구해냈다. 선비, 농사꾼, 게다가 천민까지 나라를 지키려고 의병이 되었다 그 말이다. 이곳에서는 이휴복 조상님이 홍의장군이라 불리던 곽재우 의병장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거든. 치열한 싸움 끝에 함안 땅에서 왜놈을 몰아냈다.”
-본문 38쪽
태준의 유년기는 격동의 시대였다.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일본이 침략 야욕을 불태우던 혼란기이기도 했다. 태준은 기독교 선교사를 통해 서양문물과 종교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의 원인 모를 죽음과 아내의 죽음은 의학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안창호를 만나 독립운동에 투신
어머니, 아버지, 아내 죽음 앞에 넋을 잃은 태준에게 앞을 내다보게 해준 것은 바로 서울(한성)이었다. 선교사를 통해 서울 김형제상회에 점원으로 취업한 태준은 여기서 훗날 의학교선배이자 스승,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면허의사 중 한 명인 김필순을 만나게 된다. 김필순을 통해 도산 안창호를 알게 되고 훗날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안창호를 세브란스병원에서 돌보게 되는 태준은 안창호에 의해 독립운동을 할 것을 굳히게 된다.
“국권을 되찾으려면 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느 날, 안창호가 물었다. 예기치 않은 질문이었다. 태준이 머뭇거리자 안창호는 둘째 손가락을 펴서 앞을 가리켰다.
“바로 자네일세.”
무슨 소리인가 하고 갸우뚱하는 태준을 보고 안창호가 웃었다.
“자네처럼 건강한 몸, 순수한 열정과 애국심을 지닌 젊은이가 이 나라 독립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해야 한다네. 젊은이가 미래의 주인공이잖아.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래야지.”
-본문 111쪽
-몽골의 신의
105인 사건 이후 김필순이 먼저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하게 되고 태준도 이내 뒤따라가게 된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김규식을 만나게 된 태준은 비밀군관학교 설립을 목표로 김규식과 함께 몽골로 향하게 된다. 몽골에 들어서자 타국 땅에서 부닥친 괴이한 풍경. 몽골인의 70%가 성병인 매독으로 시달리고 있었던 것. 동의의국이라는 독립운동 거점을 마련한 태준은 여기서 몽골 환자들을 치료하고 성병을 퇴치함으로써 ‘붓다 의사’, ‘신의(神醫)’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태준은 몽골왕의 주치의(어의)가 되고 몽골 주둔 중국군 가오 시린 주치의도 겸함하게 됨으로써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몽골 왕은 의술을 베푼 태준에게 보답의 차원에서 외국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을 내린다.
한편, 태준이 운영하는 병원 동의의국은 중국과 러시아, 만주, 한반도를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의 최초의 거점이자 비밀연락처가 되었다. 태준은 한인사회당 지하당원으로 활동했다.
“제가 할 일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저도 저대로 할 일을 궁리하겠습니다.”
태준은 한인사회당 지하당원으로 비밀 연락을 맡게 되었다.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의 수도 모스크바는 전 세계 공산주의자와 혁명가, 식민지 해방투쟁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의 거점이 되었다. 한인사회당 운동가들은 모스크바와 멀리 떨어진 블라디보스토크와 상하이 등지에서 주로 활동했다. 먼 길을 오가는 사람, 자금, 정보 등을 한인사회당 지하당원 태준과 동의의국이 이어주었다.
-본문 144
또한 태준은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는 김규식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당시 금액으로 2,000원(현재 시가 4천만 원 상당)을 지원한다. 태준은 독립자금을 운송하는 일에도 깊게 관여한다. 1920년 겨울,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가 상해 임시정부에 지원하는 원조금(금궤)을 운반하고 의열단에 가입해 폭탄 제조 기술자 마자르를 소개하기로 한다.
상해 임시정부 군의관 간부로 임명된 태준은 소비에트 정부가 지원하는 독립자금을 상해 임시정부로 운송하다가 러시아 혁명에 항거하다 몽골 울란바토르를 점령한 운게른이 이끄는 러시아 백위군 부대에 의해 처형된다. 38세의 젊은 나이였다. 운게른의 백위군 부대에는 태준의 독립운동을 방해하려던 일본인 군인들이 섞여 있었다.
-저자 소개
글_ 송경희
글을 쓴 송경희 선생님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섯 살 때 전북 김제로 이사 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길지 않은 시골 생활이었으나 그때의 기억이 글쓴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글쓰기, 독서, 논술 교육으로 사람을 만나며, 관련 프로그램 개발자, 강사로 일하면서 『하루 10분 초등 글쓰기』 1, 2권을 집필했습니다.
요즘 주로 하는 일은 대부분 교육과 어린이, 청소년 서적 글 만지는 일입니다. 자라는 어린이, 청소년이 자기 정체성을 세우는 데(자기가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를 이해하기) 근현대사 교육이 매우 중요함을 절감해 우리 근현대사를 더욱 자세히 캐내고 널리 알리는 집필 활동에 몸담고 있습니다.
-감수자 소개
감수_ 박형우
내용을 감수하고 추천사를 쓴 박형우 선생님은 연세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의사학과 초대 학과장을 지냈다. 1999년부터는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장을 겸임하며, 대외적으로는 2009년부터 대한의사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중원과 한국근대의학 연구에 독보적인 이로『의학사 산책』 『세브란스와 한국 의료의 여명』 『사진으로 본 한국근대의학 120년』 『한국근대서양의학 교육사』 『제중원』『사람을 구하는 집, 제중원』(공저)등의 저서가 있다.
-추천사
이태준 선생을 소개하기 위해 씌여진 이 책을 보고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송경희 작가는 이태준 선생의 자료를 모아서 이 책의 뼈대를 만드는 한편 자료가 없는 선생의 생애는 여러 사람들의 증언과 현지답사를 통해 보완했다. 작가의 부지런함과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은 이 책을 통해 이태준 선생의 생애를 감동적으로 재현해냈다고 본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독립운동사편찬위원장, 숙명여대 명예교수
의료계에는 이태준 선생님처럼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인물이 여럿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때마침 경술국치(한일 강제 병합) 100년을 맞아 새롭게 발굴되고 소개되는 것에 대해 무한한 기쁨을 느낍니다. 또한 나라와 국민을 구하기 위해 젊음을 바친 훌륭한 대의(大醫) 선배님들께 존경을 표하며 ‘나라 구한 큰의사’ 인물 이야기를 여러분께 권합니다.
-박창일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차 례
추천사
저자의 말
시작하며_ 닥터 리, 리다인이라 불린 한인
1. 아라가야의 둥지 함안
2. 인천 이씨와 도천재
3. 의병으로 일어나는 농민들
4. 종이 있는 기와집
5. 새로운 경험
6. 슬픔을 뒤로 하고
7. 서울 김형제상회
8. 1907년 8월 1일
9. 세브란스병원 의학교
10. 다시 만난 안창호
11. 낯선 난징에서 길을 찾다
12. 몽골의‘ 붓다 의사’
13. 비밀연락원
14. 마지막 임무
끝내며
부록
이태준 연보
사진자료
첫댓글 여기서는 처음으로 신간 소개하네요. <대암 이태준: 나라 구한 큰의사>는 <제중원 백정의사 박서양>이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책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공을 많이 들인만큼 좋은 결실이 있을겁니다.
아라가야의 시조는 아로왕(阿露王)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수로왕의 혈통과는 관계가 없는듯 보입니다. 6가야연맹을 설명하기 위해 형제간으로 설정된 것일뿐 사실과는 다릅니다.
헐! 함안 향토사학자,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그 외 몇몇 교수 등 사학자들이 읽고 감수한 건데... 뭐가 맞는건지?
그냥 넘어간 게지요. 잘 알지도 못하고, 아라가야에 대한 기초지식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듯. 그러나 이것은 전체에 비하면 <창해일속>에 불과하지요.
다음 책 감수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아침에 뉴스를 봤는데, 연변에 살던 어느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십여년전에 한국에 왔다가 불법체류자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이제야 겨우 한국국적을 취득했다고 합니다. 이게 다 역사를 잊고 살아온 때문 아닐까 아침부터 가슴이 무거워졌네요.
잊혀진,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의인들의 삶을 계속 발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았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화이팅하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