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아침 산토리니 이아마을로 갔다. 좁은 산비탈에 조개처럼 붙어있는 마을, 집들을 전부 휜색으로 칠하고, 중간에 간혹씩 파란 돔을 지붕으로 한 교회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한폭, 한폭 그림을 이룬다.
땅이 척박하고 강수량이 적어 옛날에는 궁핍했을 섬이, 그 독특함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아 부를 이루고있다. 오후에는 산토리니에서 가장 큰 마을 상가와 식당이 몰려있는 피라마을을 보고서 세시쯤 호텔로와서 한잠자고 저녁까지 먹고 해지는 모습을 보러 오전에 갔든 이아마을로 다시갔다.
6.5 늦은 아침을 먹고 산토리니의 산정상근처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을 향했다.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리는 앗찔한 굽이길을 돌고돌아 정상근처 주차장에 도착했다. 양여사의 다리 콘디숀이 좋지않아 우리둘은 차근처에서만 내려다 보기로했다.
이곳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오르기 힘든곳에 건물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방어용이겠지만 그래도 쉽게 납득이 안간다. 두시간이상 걸어야 오를수 있는 나무도 없어 뙤약빚을 그대로 받아야하는 이길을 걸어서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오후에는 해안의 해수욕장에서 몸을 적시고 블루라이프 우리호텔로 돌아왔다.
산토리니 티라 섬은 크레타 섬을 제외하고 키클라데스 제도 최남단에 있는 그리스 에게해의 섬이다.
세계적으로는 아틀란티스 설과 관련지어서 유명세를 탔지만 한국에선 손예진의 포카리스웨트의 광고 촬영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상징색인 청색과 흰색으로 지어진, 콘크리트가 만든 인공미와 기묘하게 어우러지는 자연미가 매우 인상적인 섬.
원래 이 섬의 이름은 '씨라' Η Θηρά (i thira)이며 산토리니라는 이름은 중세시대 이후 이 섬에 들른 베네치아인들이 이 섬의 주보성인인 성 이리니(Η άγια Εηρήνη)의 이름을 따와서 Santa Irini 라고 불리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본래는 하나의 섬이었으나 화산 분화로 다섯 개의 섬으로 나누어진 곳이다. 지수 7로 폭발했으며, 만약 지금 폭발한다면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줄수 있기에 옐로스톤 국립공원, 토바 호수, 백두산, 아소산 등과 더불어 초화산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미국 해양대기청 지진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한 결과, 기원전 17세기(BC 1610년경)에 산토리니 섬에서 대지진이 발생, 최고 높이 90m의 쓰나미가 발생했었다고 한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감에도 불구하고 건물들의 새하얀 벽이 일년내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는데, 관광명소인만큼 벽이 더럽혀진 채로 방치해 두면 꽤 비싼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유지한다고 한다
기원전 1613년 산토리니에서 발생한 화산폭발은 48~64시간 동안 지속되었으며 60㎦에 이르는 화산재와 부석(pumice)이라 불리는 화산석 등을 공중에 흩뿌렸다
이는 집 6400만채와 맞먹는 부피다. 폭발의 충격은 지구적인 충격을 줬다. 화산에서 튀어나온 화산재 등은 성층권에까지 도달할 정도였다
2주간 어둠이 깔렸고, 2년간 겨울이 지속되었다. 지금도 북반구 전역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폭발이었다. 섬 전체에 쌓인 하얀 화산재의 두께가 60m에 달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다시 이 땅을 찾으며 전통적인 건축물이 자연스럽게 탄생하게 되었다.
산토리니 사람들은 화산재를 파고들어가 집을 만들었다. 워낙 건조한 땅이라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집의 구조체로 사용할 만한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다. 대신 화산재로 구성된 지층을 동굴처럼 파고들어가면 훌륭한 집을 만들 수 있었다.
화산재는 시멘트와 거의 비슷한 성질을 갖는다. 동굴을 팔 때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좁고 길게 파고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입구에 들어가면 거실, 침실, 창고 등이 차례로 등장하는 일자형 평면구조가 이곳 건축물의 특징이다.
모든 동굴집은 하나의 입구만 있다. 이곳은 워낙 건조해서 집을 지을 만한 나무를 구할 수 없었고, 사람들은 하얀 화산재에 구멍을 파고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
동굴주택은 이곳의 강렬한 자외선과 강풍을 피하기에도 적합했다. 그렇게 산토리니 섬의 역사는 시작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토속 건축물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훌륭한 경관을 연출했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이곳의 경관은 단순한 ‘사진발'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도 바다와 건축물을 손쉽게 카메라의 한 프레임 안에 넣을 수 있다. 화산폭발로 칼데라가 형성됐고, 그로 인해 바다 쪽으로 열린 형태의 초승달 모양의 지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산토리니의 바다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과거 형성된 마을의 형태적 특성이 지금까지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피라 마을의 한 매장에서 판매 중인 옛 사진들을 보니, 1930년대의 산토리니도 지금의 모습과 놀랍도록 똑같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어컨 실외기나 휴대전화 안테나 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현대의 풍요로움과 그것을 향한 욕망은 이곳의 아름다움을 훼손하기에 충분하다.
산토리니의 건축은 기본적으로 화산폭발에 따른 부산물을 재료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토속적'(vernacular)이라는 표현이 붙는다.
건조한 날씨에 의해 목재가 부족해 석재의 압축력을 기반으로 한 건축물을 개발하게 됐다.
수직력을 견디기 위한 방안으로 아치 형태의 지붕이 나오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치 지붕이 수직의 하중을 수평으로 작용하게 하기 때문에 이를 견딜 수 있게 벽체는 두꺼워졌다. 1956년 이곳을 완전히 파괴한 대지진 이후에는 아치형 지붕이 더욱 늘어났다.
아치 위에 평평한 옥상을 추가로 덧붙이는 경우도 있다.
천장이 이중으로 돼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고, 빗물 수집도 쉽게 해줬다. 매우 건조한 이곳에서 옥상은 빗물 수집용으로 아주 중요했다. 살짝 기울기를 줘 빗물을 아래쪽으로 흐르게 해 ‘시스턴’이라는 이름의 빗물받이에 저장하도록 했다.
섬의 꼭대기 부위에 화산재가 쌓였고, 가파른 절벽 지형을 이루고 있어서 누군가의 집 옥상은 또다른 이의 집 베란다로 활용됐다. ‘수직도시’가 된 것이다. 지금도 소유 관계가 복잡하다고 한다.
아주 단순한 형태에 두꺼운 벽체, 얇은 아치, 좁은 입구, 하얗고 부드러운 곡선의 단순한 외형을 가진 산토리니 건축물은 이렇게 탄생했다.
산토리니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이런 흰 건축물의 이름은 이포스카포스(Yposkafos)다.
하지만 선장이나 귀족 등과 같은 부유층의 주택은 달랐다. 빽빽한 절벽지에 집을 짓는 대신, 꼭대기 평지에 집을 지었다. ‘선장의 집’으로 통칭되고 있는 카페타노스피타(Kapetanospita)다. 1850년께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선장의 집은 프랑스 같은 곳에서 볼 만한 건물과 비슷한 느낌의, 화려한 장식이 더해졌다. 유럽 전역을 다녀온 선장들은 당시 유행한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따라 하고 싶어 했다.
그리스 아테네국립공과대학의 타노스 스타시노풀로스는 2006년 발표한 논문 ‘산토리니 건축물의 4가지 요소에서 찾아낸 토속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찰’에서 “지형과 기후조건 등에 적응해 나가는 사회 진화의 한 형태”라고 소개했다.
건축물은 사람들이 그 장소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산토리니의 화산폭발과 그에 따른 지형 조건, 지중해성 기후 등은 이곳 특유의 건축을 만들어낸 셈이다.
외부에서 들여온 건축 재료가 아닌, 이곳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그대로 써 만들어낸 건축은 인공이면서도 인공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자연과의 조화는 태생적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경관을 위한 세밀한 도시관리는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산토리니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하얗고 부드러운 파사드의 건축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도시의 모습, 그리고 그 도시가 푸른 바다를 향해 아름답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경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무한한 가치를 담고 있다.
그리고 또한 코발트블루색의 아름다운 바다를 유지하기 위해 산토리니에는 5개의 하수처리장이 풀가동된다.
낚시 같은 수변 활동에 대해서도 시기를 정해 제한적으로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카푸로스 부시장은 “관광객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토리니에 놀러온 관광객들이 만족하고 돌아가야 앞으로도 이곳의 관광업이 지속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관광객이 크루즈를 타고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올 경우 섬이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는 생각에, 시간대를 정해 관광객을 분산시키는 노력도 한다.
일반적으로 여정 도중에 들르는 경우엔 선박편을, 비수기에 방문하거나 신혼여행 등으로 단번에 들르는 경우는 항공편 이용하게 된다.
선박편은 성수기가 아닌 경우엔 이용이 불편할 정도로 편수가 줄어들며, 동절기에는 아테네에서 오는게 있고, 그 배는 산토리니를 거쳐서 크레타 등 몇개의 섬을 들려 로도스로 간다.
산토리니까지 오는 선박편은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완행의 경우는 낙소스, 파로스, 이오스를 거쳐서 오느라 거의 8시간 가까이를 배 안에서 지내야만 한다. 이에 대비한 급행편이 있는데 직통으로 4시간 가량 걸리며, 운임은 완행의 1.5~1.8배 가량.
터키에서 넘어오는 경우는 남쪽의 마르마리스에서 그리스의 로도스로 넘어온 다음 산토리니로 가는 편이 있는데, 대기시간이 매우 길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경로 때문에 많은 여행객들이 이용하곤 한다.
마르마리스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 넘어오려면 무조건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구를 경유해야 한다.
항공편의 경우는 아테네 공항에서 출발하는 에게안 항공을 이용하여 45분 걸린다. 드물게 올림픽 항공이 뜨는 경우도 있다.
산토리니는 대략 울릉도 크기만한 본 섬을 가리키는 이름이고, 그 섬 안에는 여러 마을들이 산재해 있다. 중심도시는 피라이다
이아마을. 최북단에 자리한 마을이자 산토리니 제 2의 마을.
이아마을, 포카리스웨트 광고 촬영지가 바로 이곳이다.
이아마을은 산토리니섬 최서단에 있기 때문에 주로 석양을 보러 사람들이 몰린다.
때문에 약간 프리미엄이 붙은듯한 인상이 있으며,
이아마을의 바닥도 다른 마을들과는 다르게 고급스런 소재로 매끄럽게 깔아놔 부촌같은 인상을 준다
이아마을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