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작년에 부부가 함께 부산 가톨릭 신학원(야간26기)을 졸업했습니다만 여러 사정으로 2010년에는 졸업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2011년 6월2일부터 4일까지 재학생(주간29기, 야간27기)들과 함께 홍콩과 마카오를 다녀왔습니다.
마카오는 우리 한국 교회와 많은 인연이 있는 곳, 사진으로나마 여정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마카오는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소년이 정든 고향을 떠나 1837년부터 1842년까지 5년간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한 곳이다. 당시 박해중이던 조선 땅에 신학교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당시 조선 전교를 맡고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가 운영하는 마카오신학교까지 유학을 떠나야만 했다. 중국을 거쳐 마카오까지 가는 데만 반년 이상이 걸린 고난의 여정이었다.
1836년 12월3일 서울을 출발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명의 신학생이 187일만인 1837년 6월7일 마카오에 도착했다. 서울→평양→의주→비엔먼(邊門)→선양(瀋陽)→마치아쯔(馬架子)→시완쯔(西灣子)→창쯔(長治)→마카오의 1,690km(4,200리)대장정의 길이었다.사진은 마카오행 배 안에서 바라본 홍콩의 건물. 건물 중앙의 텅빈 공간은 태풍이 빠져 나가도록 설계되었다. 홍콩에서 마카오까지는 배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세 명의 한국인 신학생이 공부했던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마카오 신학교 자리. 옛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5층 높이의 주상복합 건물이 서 있다. 이 곳이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의 정신적 고향인 셈이다. 최방제 신학생은 불행히도 마카오에 도착한 지 6개월 만에 위열병(胃熱病)으로 이 곳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 신학생이 공부하던 신학교에서 도로 하나 건너 편에 있는 카모에스 공원. 무더운 날씨,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라틴어로 진행된 신학교 수업,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머나먼 고향 조선에 대한 그리움을 이들은 이 곳에서 달랬을 것이다.
이 공원에 세워진 성 김대건 신부의 동상. 1985년 10월 한국 주교회의가 세웠다.
성인의 약력이 한글과 중국어, 포르투갈어, 그리고 영어로 쓰여져 있다. 설명을 듣는 동안 우리 부부 사진 한장. 찰칵.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자리에서 5분 거리 안에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 1608년 건축되었다. 신학교 안에 경당이 있었지만 신학생들은 이곳에 와서도 자주 미사를 보았다.
우리 순례객은 성 안토니오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내부는 화려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이 성당 제대 아래에는 김대건 성인의 유해가 묻혀있단다.
성전 측면에 있는 성모님 상. 미사 중에도 촛불을 키고 기도를 드리는 이 곳 신자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성당 입구에 설치된 한인교포 신자가 봉헌한 김대건 신부 목상. 먼 이국땅에서 김대건 신부님의 목상을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성 안토니오 성당을 나와 '포트리스 힐'(요새 언덕)을 몇백 미터 걸어 올라가면 성 바오로 성당이 나온다. 마카오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1602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1637년에 완성한 이 성당은 1835년 1월26일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어 정면 부분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 성당은 설립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이자 극동 아시아 지역에 세운 최초의 대학 건물이기도 하다.
김대건 신학생도 마카오에 머무는 동안 이 성당에 자주 들러 간절히 기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신부는 당시 사제들만 통과할 수 있는 성당 정문의 돌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반드시 사제가 되어 이 문을 통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주교좌 성당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시간이 늦어 들어가지 못하고 사진만 찍었다. 현재 마카오에는 23개의 성당이 있지만 미사를 봉헌하는 곳은 6곳뿐이다. 모든 성당은 오후5시면 문을 닫아 들어갈 수가 없단다. 1999년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된후 신자가 급격히 감소하여 현재 2만여명에 불과하다는 말을 들으니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첫댓글 푸른 초원을 알고 싶으면 단 하루라도 그 속에서 지내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지옥에만 있는 자가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전혀 모르는 것과 같겠지요. 마카오를 다녀오신 분만이 아는 진실을 오늘 읽었습니다. 확실하게 오늘을 경험하며 살고 계시는 님의 삶이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글과 편집 속에 묻어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