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집/ 헤르만 헤세
이 집 근처에서 작별을 고한다. 이런 집을 앞으로 오랫동안 보지 못하게 되리라. 이제부터는 알프스 고개를 오르는 고갯길로 접어들고, 바로 이곳에서 북부 독일식 건축 양식이 독일의 전원 풍경, 독일어와 함께 끝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경을 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유목민이 농부보다 더 원시적이었던 것처럼 방랑자는 여러모로 원시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착지에 머무는 삶을 끝내 벗어나 가볍게 경계선을 넘는 것은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미래로 향하는 길잡이로 만든다. 내 마음처럼 국경선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면 전쟁도 없고, 봉쇄도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국경보다 혐오스럽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은 없다. 그것은 대포나 장군들 같다. 이성, 인류애, 평화가 만연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웃어 넘겨버린다. 그러나 전쟁과 광기가 발발하면 그것은 매우 중요하고, 진지해진다. 그것은 우리 같은 방랑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고, 감옥에 투옥하게 만들었던가? 악마가 데려가야 할 것들이다.
나는 수첩에 집을 그린다. 내 눈은 독일식 지붕, 독일식 대들보와 박공, 그것에서 느끼는 친숙함과 고향의 푸근함에 작별을 고한다. 작별이기 때문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고국에 대한 애정으로 다시 한번 나는 그 모든 걸 사랑한다. 내일이면 나는 다른 지붕, 다른 오두막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흔히 연애편지에 적혀 있는 것처럼 나는 내 마음을 여기에 두고 떠나지는 않는다. 오, 정말 그건 아니다. 내 마음과 함께 떠나리라. 산 너머 저쪽에서 보낼 시간에도 내게 그것이 필요하다. 나는 농부가 아니고, 유목민이기 때문이다. 나는 배신, 전환, 공상의 숭배자다. 나는 내 사랑이 지구상의 어떤 것에 붙잡혀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뭔가를 사랑하는 것을 단순히 하나의 대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통해 더 깊은 의미를 깨닫는 거라고 늘 생각한다. 우리의 사랑이 매달리는 곳이 충성과 미덕이 된다는 말에 나는 의심을 품는다.
농부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소유한 것을 지키고, 정착한 사람들의 충성심과 미덕에 행운이 깃들기를! 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사랑, 존경, 부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런 미덕을 추종하려고 노력하느라 지난 반평생을 낭비했다. 내가 아닌 내가 되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일반 시민이 되고 싶었다. 나는 공상의 세계를 살아가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고향의 삶을 즐기는 미덕을 겸비하고 싶었다. 이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유목민이었지, 농부가 아니었고, 찾아 나서는 사람이지, 소유한 것을 지키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나는 내게 단지 우상이었을 뿐인 여러 신들과 법칙을 숭배하려 나 자신을 학대하는 고행의 길을 걸었다. 그것이 나의 오류고, 괴로움이고, 이 세상의 고통에 대한 나의 공조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고, 구원을 향한 길로 접어들 용기를 내지 못하면서 이 세상에 더 많은 죄를 범하고, 고통을 증대시켰다. 구원의 길은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뻗어가지 않은 채 자기 자신의 마음으로 향하고, 오직 그곳에만 신이 있고, 그곳에만 평화가 있다.
산에서 습한 회오리바람이 나를 스치고 내려가고, 저 너머 푸른 하늘 조각이 다른 나라의 땅을 내려다본다. 저 하늘 아래서 나는 종종 행복해하고, 자주 향수병도 앓으리라. 나처럼 순수한 방랑자 중에 완벽한 사람은 향수병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가 맛보는 기쁨의 값을 치르듯, 향수병의 대가도 치르고 싶다.
내가 바람결에 거슬러 올라가며 맞는 맞바람에 물길이 나뉘고, 언어의 경계가 있는 산 너머 저쪽 먼 곳에서 불어오는 향긋한 향기가 산등성이와 남쪽을 향해 불어온다. 내게 많은 것을 약속해 주는 바람이다.
작은 농가와 고국의 전원 풍경이여, 잘 있거라! 나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소년처럼 네게 작별을 고한다. 소년은 이제 어머니의 품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설령 본인이 원한다고 하더라도 어머니를 절대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바오밥 선생님도 수필을 잘 쓰시지요.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