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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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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스크랩 크노소스 궁전, 미궁, 미노아 문명의 상징
민들레꽃 추천 0 조회 483 19.02.26 20: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미노아 문명은 B.C 3000년경 크레타섬 중심의 에게해에서의 청동기문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페니키아의 공주인 에우로파(Europa)가 납치를 당해서 그리스로 넘어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에우로파가 유럽(Europe)의 어원이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초창기 그리스 문명은 동방에서 흘러들어온 것이라고 본다. 크레타 문명은 에게해에 연한 도서지역에서 발전했기에 후일 일어난 미케네 문명과 통틀어 에게 문명이라고도 불린다.

 

최초의 지중해 문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크레타 문명은 지중해 동방 무역을 통해서 번성했는데 당시 서방보다 훨씬 더 많이 발전해있던 동방의 문물을 서방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이들은 페니키아 등의 문화, 예술을 그리스 지역으로 전달함과 동시에 당시의 페니키아 문자 역시 전달하여 그리스 알파벳, 더 나아가서는 로마자와 현재 영어 알파벳에 영향을 주었다.

문명은 점점 발전하여 40여개 소국가로 분립되었고 B.C 2000년경 1인 지배가 시작되었고 B.C 1600년경에는 크노소스의 지배자가 섬 전체를 지배하였다. 처음에는 동부와 중부에 각각 독립적인 세력이 분립되어 있었는데, BC 2000년경에 크노소스를 중심으로 하여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져, 미노스라 불리는 왕이 섬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정치 ·군사 ·예술 등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또한 동부 지중해의 교역을 거의 독점하게 된 것 같다. 수도 크노소스는 인구 8만을 헤아렸으며,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으로서 번영하였다. 크노소스궁전은 경사진 곳에 가운데 마당을 사이에 끼고 수백의 작은 방을 배치한 복잡한 계획에 의하여 건립된 대건축으로, 소위 미궁(迷宮:라비린토스)로서 유명하다. 거기에는 제례 ·공무(公務)를 위한 방, 왕족의 사실(私室) ·공방(工房) ·창고 등이 있는데, 중요한 방은 대부분 선명한 벽화로 장식되고 채광과 배수시설도 세심하게 배려되었다. 다른 지역의 궁전도 대소의 차이는 있으나, 계획 ·장식방법 등에서 크노소스와 공통된 성격임이 확인되었다. 크레타섬에는 독립된 신전은 없고 또 이것이 신상(神像)이라고 확인될 만한 조상(彫像)도 없다. 왕은 지배자인 동시에 최고의 신관(神官)으로서 신성시되었으나, 아마 그것에는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와 같은 체계화된 신관(神觀)은 존재하지 않은 듯하다. 신앙의 기반을 이룬 것은 일종의 주물숭배(呪物崇拜) 였으며, 신과 비슷한 것으로는 원시적인 지모신(地母神)을 생각할 정도였다.

 

미노아 문명의 상징 . 크노소스궁전, 미궁

 

미노아 문명은 라비린토스와 같은 궁전을 남겼으며 미술의 특징으로는 일상적이며 작고 친밀한 것에 흥미를 가졌다. 그들은 그림문자와 선상 A문자를 사용하였고 인종적, 문화적으로는 선천적으로 쾌활하고 향락적이며 감성적인 아시아적 특징을 가졌다.

그러나 미노아 문명은 B.C 1570, B.C 1500년 궁전이 파괴당하고 B.C 1450년 선상 B문자를 사용하는 미케네인이 크레타를 정복하면서 종말을 맞이했다.

중요한 유적으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르스가 태어난, 그리고 미노스 왕이 다스렸던 궁전 유적 등이 있다. 크레타 인들은 무역으로 얻은 방대한 부를 크노소스 궁, 워낙 크고 복잡하기에 미로로 보이기도 하며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이라고 소개되기도 하는 궁전과 항만을 건조하는 데 썼다.

크레타 문명의 쇠퇴는 당시 크레타 섬과 가까운 지역에서 지진과 토네이도 등의 자연재해가 잇따랐고 따라서 지진과 토네이도로 인해 크레타 문명의 기반인 무역로가 손상되었으며 건조해 둔 배와 항구들이 피해를 입었다. 자연재해로 인해서 경제적 기반을 상실한 크레타 문명은 점점 쇠퇴하며 북쪽, 발칸 반도 남부에서 일어나는 미케네 문명에 지중해 무역의 패권을 넘겨주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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