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괴정 (六槐亭)이라?
한자어 괴(槐)는 회화나무를 뜻한다
그렇다면 여섯 선비가 풍류를 같이하던
회화나무가 있는 정자인가?
인근에는 수령이 약 600년이 넘는
느티나무고목이 3그루가 있다.
느티나무는 규목(槻木)인뎨
괴목(槐木)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육괴정도 같은 경우일 것이다.
※3그루 느티나무에 대해서
옛 선비들은 마을 입구에 회화나무를 심어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선비가 사는 곳’임을
나타내려 한 나무이다
_ 육괴정의 느티나무는
느티나무이지만 회화나무이기를 바란
선비들의 마음이었을까
_ 창경궁에도 들어서자마자
3그루의 회화나무를 볼 수 있는뎨
영의정과 좌, 우정승의 삼정승을 의미하고 있다.
종종 낙향한 선비들은 집 앞뜰에
화화나무 3그루 심기를 즐겨했다고 한다
* 어디에
이천 산수유 마을의 초입인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에 있다.
* 언제부터 있었나
물론 개축이 되기는 했겠지만
처음 만들어 지고 이름이 붙여진 것은
조선전기인 1500년대 초인
중종때이다
* 누가 처음 만들었나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를 중심으로
이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크게 몰락하게 되자,
난을 피하여 도립리로 낙향한
문인 엄용순이 건립하였다.
* 괴정육현(槐亭六賢)
옛 선비들 참 재미나다.
뜻이 맞는 여섯 선비 친구가
자신들의 뜻과는 다른 관직에서
물러나 자주 모였는데
그 이름하여 괴정육현이라 했다네!
회화나무(실제는 느티나무)가 있는
정자의 여섯 현자라!
육괴정을 건립한 엄순용은
김안국(金安國)을 비롯하여
강은(姜濦)·오경(吳慶)·
성두문(成斗文)·임내신(任鼐臣) 등
다섯 선비들도 함께 낙향하여
이 정자에 모여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였는데, 이들을 가리켜
괴정육현(槐亭六賢)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 분들의 나이 등으로
유추해 볼 때 (임내신과 성두문은
60년이상의 차이가 난다)
위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는 듯 하다.
* 왜 육괴정이라 했을까?
여섯명의 선비 친구들이 자주 모이던
정자 앞에 연못을 파고 느티나무를
세그루를 심어 육괴정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초당으로 지었다고 하나,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쳐
지금은 팔작집으로 된 본당과
이를 둘러싼 담장과 대문으로 되어 있어
정자가 아닌 사당의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