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 소원인 한글날 국경일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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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살리고 빛내기 70]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든 국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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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8일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국경일에 관한 개정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1990년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에서 빠진 뒤부터 15년 동안 한글단체와 국민들이 한글날을 되살리려고 피땀 흘리며 싸워서 얻어낸 국경일이다. 세계 으뜸 글자인 한글이 위대한 국민을 만들었고 그 국민은 한글이 태어난 날을 국경일로 만들었다. 다른 국경일 넷은 대한민국을 세울 때 뜻깊어 정부가 정한 날이지만 경사스럽기보다 가슴 아픈 날들이거나 막연한 날이다. 한글날은 국민이 만든 국경일이라 남다르게 뜻깊은 날이고 더 기쁘고 뚜렷하고 자랑스러운 날이다.
한글은 우리말을 가장 적기 좋은 글자이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인데 태어나고 50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쓰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때인 1926년에 한글학회 선열들이 중심이 되어 한글을 살리고 빛내어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우리말 독립을 이루려고 만든 우리말 독립 준비 날이다. 한글학회 선열들은 한글날마다 우리말 독립을 다짐하면서 한글을 갈고 닦다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 옥살이도 하고 모진 고문에 두 분은 옥에서 돌아가시기도 했다. 그렇게 귀중한 한글이기에 한글이 목숨이라는 생각으로 한글을 지키고 살렸다.
그 덕에 광복 뒤부터 우리 말글로 교과서도 만들고 공문서도 쓰면서 1946년 미국 군정 때부터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우리 말글을 살리고 써서 온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고, 그 바탕에서 더 잘살게 되고 우리 자주문화가 꽃피게 되었다. 그런데 사대주의와 일본 식민지 근성에 찌든 자들이 1990년에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고 ‘철도의날’처럼 보통 기념일로 만들었다. 더욱 한글날을 성대하고 뜻있게 보내고 한글을 빛내야 하는데 오히려 한글을 못살게 굴어서 간신히 일어나는 겨레기운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래서 한글단체는 공휴일을 넘어 국경일로 만들어 한글을 더욱 빛내자고 나섰다. |
▲ 한글날국경일제정범국민추진위원회(위원장 전택부)에서 한글을 사랑하는 전직 총리와 대학총장 들 국민 1000명 이름으로 한글날국경일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한겨레신문에 광고한 글. © 리대로
나는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다고 했을 때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으로서 다른 한글단체보다도 가장 먼저 대통령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건의문을 보내고 정부에 공개토론을 제안했으나 오지 않아서 한글회관에서 정부 잘못을 따지면서 정부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앞장을 섰으나 막지 못했다. 그 뒤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이 중심으로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에 나섰다. 한글학회는 공청회를 열고 한글단체는 국회와 정부에 건의문을 보냈으나 들은 체도 안 했다. 좀 더 치밀하고 치열하게 투쟁을 해야 했다. 반민족 친일 세력이 정치와 언론, 경제계를 장악하고 한글을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다.
한글 반대 세력이 너무 커서 한글단체 힘만으로는 어렵기에 2001년에 시민단체와 사회 저명인사들까지 참여하는 한글날국경일제정추진국민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에 전택부, 본부장에 서정수, 사무총장에 이대로가 맡고, 신기남의원이 앞장을 서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법안을 내고 한글단체와 국회의원들이 함께 힘차게 활동을 했다. 한글인터넷주소 사업하는 넷피아(사장 이판정)가 도와주어서 토론회도 열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문도 보내고, 신문에 글도 쓰고 광고도 내고, 투쟁백서도 냈다. 전교조, 전국국어교사모임, 참여연대, 참교육학부모회 들 시민단체 대표들이 국회 앞에서 함께 1인시위도 하며 도와주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대 국회를 넘겼다. 참으로 허망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김영삼 정부가 한자와 영어 조기교육을 하겠다면서 한글을 못살게 굴었고 영어 바람이 세차게 불어 얼빠진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고 우리 말글을 지키고 빛내야 할 필요성이 더 절실했다. 그러나 이 일은 매우 큰일이기에 쉽게 되지 않았고 넘어야 할 산이 높았고, 건너야할 강이 깊었다. 사대주의와 식민지 근성에 찌든 자들이 지배충이 되어 설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들 한글던체는 더 먼저 포기했고, 범국민 추진위 전택부 위원장과 신기남의원도 너무 힘들어 지치고 절망상태였다. 새로운 전술과 전략이 필요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지난날 민주당 중심으로 활동한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여러 정당이 참여하여 한글날 국경일만이 아니고 우리문화 세계화 추진 의원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한글이란 말만 들어도 한자와 일본 한자말에 물든 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반대하기에 그 저항을 줄이고 더 많은 여야 국회의원을 참여하도록 집을 크게 짓자는 뜻이었다. 마침 신기남 의원이 다시 17대 국회의원이 되었기에 “우리가 산꼭대기 8부 능선까지 왔다. 전술 전략을 바꾸고 조금만 노력하면 바로 뜻을 이를 수 있다.”라며 내 생각을 말하니 머리가 좋은 신 의원은 바로 찬성했다. 그래서 내가 회칙과 창립 선언문을 초안하고 의원 모임 대표는 신기남, 민주당 간사로 임종인, 한나라당 간사 정두언, 정의당 간사 노회찬 의원을 정하자는 조직 안을 냈다. 이 간사들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나와 친밀하게 지내던 한글사랑 뜻벗들이었다.
그렇게 의원모임을 만들고 여야 60여 명이 참여해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힘차게 움직이니 일이 잘 풀렸다. 국경일 제정 법안은 11월에 행자위를 통과되고 12월 8일에 국회본회의까지 통과되었다. 하늘이 도왔고 전술 전략이 통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애썼기 때문이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진 뒤 15년 만에 뜻을 이루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 그 글자가 태어난 날을 국경일로 만든 위대한 국민이었다. 그 법안이 행자위를 통과한 날 나는 그 소식을 알려준 국립국어원 최용기 부장과 최기호 교수를 내가 사는 마을로 오라고 해서 축배를 들고 노래방에서 땅에 엎드려 큰절을 한 뒤 큰소리로 “한글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함께 기쁜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어렵게 이룬 국경일이기에 앞으로 더욱 뜻있고 값지게 보낼 것을 다짐하면서 2006년 1월 국회 귀빈식당에서 축하모임을 열고 그동안 애쓴 국회의원들과 여러 분들에게 “한글을 빛낸 큰 별‘이라는 감사패를 주고 ’한글 만세‘를 힘차게 외쳤다. 그런데 이날 축하모임에 그동안 가장 많이 애쓴 전택부 위원장은 몸이 좋아져서 나오셨는데 서정수 본부장이 위암이 제발해서 참석하지 못해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한글단체만으로 국경일 추진이 잘 안 되어 시민단체까지 참여한 범국민추진위원회를 꾸리자고 한 분이 서정수 교수님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일은 한글만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겨레가 사는 밑바탕에 되는 매우 큰일이었고 힘든 일이었기에 그동안 애쓴 분들을 고마워하면서 축하모임을 했다.
그런데 어렵게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지만 아직도 한글이 훌륭함을 깨닫지 못한 자들이 판치고 있어 한글을 제대로 이용하고 빛내지 못하고 있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 때에 국민이 한글을 살리고 빛내자고 외치니 한글전용 정책을 펴면서 한글이 태어난 곳인 경복궁 정문(광화문)에 그 뜻을 담아 한글문패를 달았는데 그 한글현판이 독재정치 상징이라며 제 글자 한글이 있는데도 쓰지 않고 중국 한자를 섬기다가 1910년에 나라가 망할 때 광화문에 걸렸던 부끄러운 한자현판을 대단한 문화재 가치가 있다고 복제해 달고 나라 망신을 시키고 있다. 이런 얼빠진 자들이 있어 한글은 아직 제대로 빛나지 못하고 제 몫을 다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일도 끝까지 싸워 바로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