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트만, 아상(我相), 무아(無我)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작성했습니다.
아트만, 아상(我相), 무아(無我)
아트만(Ātman्)
아트만(Ātman्)은 힌두교의 교리 중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생명’, ‘숨’, ‘영혼’, ‘참 나[眞我]’, 진여(眞如), 본성(本性) 등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我(아)’, ‘性(성)’, ‘自性(자성)’, ‘身(신)’, ‘自身(자신)’, ‘自體(자체)’, ‘體(체)’, ‘體性(체성)’, ‘神(신)’, ‘神識(신식)’ 등으로 한역돼 있다.
힌두교에서 생명은 숨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고, 원래 아트만은 ‘숨 쉰다’는 뜻이었는데, 나중에 이것이 인간 존재의 핵으로서, 태어나는 일도 없고, 사라지는 일도 없으며, 죽은 뒤에도 영원히 살아남아,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존재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내 안에 내재해 있는 절대불변의 존재로 자리 잡게 되었다.
힌두교에서는 개인에 내재(內在)하는 절대불변의 존재인 아트만을 상정(想定)하고, 우주의 궁극적 근원으로 브라만을 상정하여, 이 둘은 같은 것이라고 봤다. (범아일여梵我一如)
숨 쉬는 생명인 아트만은 '참 나'를 말하고, 한자로는 ‘我(아)’로 표기된다. 그러나 끊임없이 윤회하는 삶에서 현재의 나는 '참나[眞我]'가 아니라, 윤회 중에 내가 쌓은 업(業)에 의한 것이다. '참나'는 윤회 과정에서 계속 존재하여, 생기거나 없어지지 않고, 불변의 존재로서의 ‘생명의 본체’를 의미한다.
<브리하다란야까 우파니샤드> 제5편 15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아트만은 모든 생명체의 통치자요, 모든 생명체의 왕이다. 마치 마차바퀴의 살들이 가운데 중심에 의지하고 있듯이, 이 아트만에 모든 생명체가 의지하고 있도다. 모든 신, 모든 세상, 모든 숨들이 바로 이 아트만에 의지해 있도다.”
무아(無我)
붓다가 무아(無我)를 주창한 것은 그 이전에 인도사상을 지배하던 힌두교(브라만교)의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의 실체인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서다. 붓다는 '아트만과 같은 그런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나"라고 하는 것은 단지 오온의 가화합(五蘊假和合)체일 뿐이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무아설(無我說)이다.
아상(我相)
1) 아상(我相, 我想, ātman-samj˜nā): self-concept, egoism, a notion of a self, the illusion of separate individuality or ego-entity
여기서 ‘我(아)’는 산스크리트어 ‘ātman(아트만)’의 번역어이고, ‘相(상)’은 ‘개념’, ‘인식’이라는 뜻의 ‘samj˜nā(삼즈냐)’의 번역어다. 아상(我相)이란 ‘아트만이라는 인식’으로서 ‘아트만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ātman(아트만)은 ‘호흡[氣息]’, ‘영혼’, ‘생명’, ‘자신(自身)’, ‘본질’, ‘본성’, ‘신체(身體)’, ‘지성(知性)’, ‘오성(悟性)’, ‘我(아)’, ‘최고아(最高我)’ 등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我(아)’, ‘我者(아자)’, ‘自(자)’, ‘己(기)’, ‘自己(자기)’, ‘性(성)’, ‘自性(자성)’, ‘身(신)’, ‘自身(자신)’, ‘自體(자체)’, ‘體(체)’, ‘體性(체성)’, ‘神(신)’, ‘神識(신식)’ 등으로 한역돼 있다.
‘samj˜nā(삼즈냐)’는 ‘이름’, ‘생각’, ‘개념’, ‘인식’, ‘잘못된 생각’이라는 뜻으로, ‘名(명)’, ‘想(상)’, ‘相(상)’, ‘槪念(개념)’, ‘邪想(사상)’ 등으로 한역돼 있다.
따라서 아상(我想)은 ‘아트만이라는 인식’, 불생불멸의 참나[我]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트만, 참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 그런 것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 등이다.
‘我相(아상)’이라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로는 ātma-bhāva(아트마 바바)도 있는데,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나의 본체인 진아(眞我)’, ‘참나’를 일컫는 말로, ‘自性(자성)’, ‘我相(아상)’, ‘自體(자체)’, ‘本身(본신)’, ‘內身(내신)’, ‘身命(신명)’ 등으로 한역돼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我相(아상)이나 無我(무아)에서의 我(아)는 일인칭 대명사의 我(아, I)와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영어의 I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는 aham(아함)이다. 이것은 ‘我(아)’, ‘吾(오)’ 등으로 한역되어 있지만, ātman(아트만)에는 吾(오, I)의 뜻은 없고, 단지 최고아(最高我), 절대아(絶對我), 참나, 진여(眞如) 등의 뜻만 있다.
따라서 없다[無]는 뜻인 an(안) 뒤에 아트만(ātman)이 붙은 anātman(안아트만)의 번역어인 무아(無我)는 ‘아트만은 없다’, ‘불생불멸(不生不滅)한 참나[眞我]는 없다’는 뜻이지, 지금 여기에 있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없다’고 떠들어대는 사람이나 ‘참나[아트만]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무아(無我)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 이 글은 다음카페 위빠사나금정선원 조성래 원장의 글입니다. 이 내용에 동의하시면, 카톡 또는 문자로 복사하여, 다른 분들께 전달해주시고, 더 많은 글을 보려면, 다음(daum)에 위빠사나금정선원을 쳐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불교(佛敎)'라는 종교는 있어도 붓다의 가르침도, 여법(如法)한 수행도 없는 시대, 사이비들이 깨달았다고 소리치며, 광고하고 있는 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첫댓글 이미 읽으신 분은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녁 먹고 많이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