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보다도 더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온 용암은 한라산이 되었다. 바위투성이의 척박한 땅이었던 이곳에 이름 모를 잡초가 하나씩 뿌리를 내렸고, 세월이 흐르며 더 큰 식물과 동물이 살아갈 양분이 되어주기도 했다. 넘실대는 파도를 따라,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따라 이 땅에 도착한 씨앗은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었다. 이전보다는 상황이 좋아졌을 테지만, 여전히 단단한 암반 위에 뿌리를 내리기란 쉽지 않았을 게다. 제주도의 거친 풍파와 맞서기 위해 나름대로 진화를 거듭해온 것이 지금의 모습을 보이게끔 했다. 제주의 숲은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숲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온대기후와 한 대기후의 접점에 자리한 지리적 특성과 더불어 변화무쌍한 기후와 화산섬 특유의 따스한 지열을 토대로 다양한 식생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 무엇보다도, 이토록 험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녀석들의 삶이 그 모습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제주의 숲은 분명 단순한 자연환경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준다. 운동화 끈을 바짝 조이고, 본격적으로 제주도의 숲을 거닐어보자.
환상숲
제주 남서부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아담한 숲은 제주도 여행자의 곶자왈 입문 코스로 알려진 곳이다. 곶자왈의 전형적인 풍경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유지인 탓에 다른 곳보다는 높은 입장료가 있지만, 매시 정각에 출발하는 숲지기의 해설을 들으며 숲을 둘러본다면 그 어느 곳보다도 재미있고 유익한 숲 탐방이 될 것이다. (성인 기준 입장료 5,000원 / 문의전화 064-772-2488)
수천 그루의 비자나무가 모여 있는 숲, 비자림은 분명 제주도에서 보기 드문 풍경을 선사한다. 제주도에서 자생하던 수종이 아닐뿐더러, 왕에게 비자 열매를 진상하기 위해 조성했다는 설이 있기도 한 곳이기 때문이다. 비자림이 생긴 연유야 어찌 되었든, 붉은 화산 송이가 깔린 산책로를 따라 거닐어보는 한 시간의 산책은 제주의 그 어느 곳보다도 더 ‘힐링’이라는 키워드에 충실하다. 비자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모 화장품 회사의 광고 소재로도 사용되었을 정도. 산책로 전체가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유모차나 휠체어를 끌고 둘러보기에도 좋다. (성인 기준 입장료 1,500원 / 문의전화 064-783-3857)
곶자왈 깊은 속살까지 만나볼 수 있는 탐방로가 교래자연휴양림에 조성되어 있다. 곶자왈 원시림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3km의 생태관찰로가 가장 일반적인 탐방 구간이나, 서쪽의 큰지그리오름으로 향하는 오름산책로 역시 색다른 매력을 자아낸다. 두 코스 모두 둘러보는 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니 선택은 당신의 몫. 휴양림 내에는 제주의 전통 가옥을 모티브로 지은 숙박시설이 있어 고요한 제주의 숲 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기도 하다. 매달 첫째 날에 다음 달의 온라인 예약을 오픈한다. 경쟁이 치열하니 수강 신청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할 것. (성인 기준 입장료 1,000원 /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입장 가능 / 동절기는 오후 3시까지 입장 가능)
제주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삼나무. 하늘로 곧게, 그리고 높게 뻗은 나무가 한데 모여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덕에 수많은 여행자에게는 이색적인 사진 촬영 배경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삼나무가 제주도에서 자생해온 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수익을 목적으로 식재해 군락을 이룬 삼나무는 제주도 고유의 숲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만 이제는 보기 좋게 자리를 잡은 모양새이기도 하다. 절물자연휴양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좌우로 펼쳐지는 삼나무 숲을 감상하며 천천히 거닐어보자. 삼나무 숲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려 11km에 달하는 ‘장생의숲길’의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제주도 숲의 또 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체력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반드시 도전해보자. (성인 기준 입장료 1,000원 / 주차요금 중·소형 기준 3,000원)
비교적 최근에 폭발하여 다채로운 화산 지형을 살펴볼 수 있음은 물론, 지질학적 가치가 뛰어난 덕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도. 이 화산섬이 유네스코의 선택을 받게 된 세 가지 결정적인 지역이 있다. 하나는 제주도의 정신적 지주인 한라산이요, 다른 하나는 바닷속에서 솟아난 또 하나의 화산, 성산일출봉이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이곳인 거문오름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는 곳이니만큼, 자유롭게 입장하여 둘러보는 것은 어렵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정해진 시각에 찾아가야 입장이 가능하니 참고하자. 오름의 정상에 올라 분화구를 내려다보는 정상코스와 분화구 내부로 들어가 한 바퀴를 둘러보는 분화구코스, 그리고 아홉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거문오름의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능선코스 등 총 세 개의 코스를 순서대로 둘러보게 된다. 세 개의 코스 중에서도 가장 핵심 구간은 분화구코스. 거문오름이 분출하며 생성된 분화구에서 나름대로 적응 과정과 진화를 거치며 살아남은 식생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서 분출한 용암이 바다 방향으로 흐르며 만들어낸 수십 개의 동굴과 그 흔적을 살펴보는 것 또한 거문오름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능선코스까지 가지는 않아도 좋다. 거문오름의 진면목을 느끼고 싶다면 반드시 분화구코스 탐방에 참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