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8일 토요일....
부산의 유유자적여행자클럽을 따라
경북 영양 일원으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제일먼저 들린곳은 두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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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마을은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동으로 [두들]이란 언덕배기라는 옛말로
[언덕위의 마을]이란 뜻입니다.....
두들마을은 1640년 석계 이시명(石溪 李時明 : 1590-1674)선생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이곳으로 들어와 후학양성에 전념하면서 부터 재령(載寧) 이씨의 집성촌이 되었고
소설가 이 문열씨를 비롯하여 많은 문인과 지식인들을 배출하였습니다....
후두결핵으로 31세에 요절한 항일시인 몽구 이병각(1910-1941 시인의 시비입니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은 음식디미방 체험관 이었습니다.
[음식디미방]은 석계 선생의 부인이신 장 계향님 께서 쓰신 한글요리서중 가장 오래된 음식조리서랍니다....
영양군에서 나오신 문화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는 일행들.....
음식디미방에 관한 설명입니다... 꼭 읽어 보세요....
석계 선생이 살았던 [석계고택] 문앞 입니다....
석계 선생은 유명한 생존 작가 이 문열씨의 13대 조부라고 합니다...
석계고택을 비롯한 두들마을 고택들은 기와지붕 마감재인 앙와(仰瓦)를 쓰지 않았는데
이는 미완으로 남겨둠으로써 사치를 피하라는 뜻과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음을
자각하기 위한 수백년 내려 온 전통이라고 합니다....
이곳 저곳 지붕 끝에 앙와가 없습니다....
가문의 꽃으로 [불두화]를 심어 가꾸었다 합니다...
불두화는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석계고택을 나와 [낙기대]로 향합니다.... 수령 300-400년 된 상수리 나무가 50여 그루 있다 합니다....
두들마을에는 동대(東臺), 세심대(洗心臺), 낙기대(樂飢臺) 서대(西臺)가
약 100미터 간격으로 일렬로 자리잡고 있는데 낙기대는 '배고픔을 즐기는 곳"이라 합니다.
배고픔마져 즐김으로써 욕망을 끊으려 했던 선비들이라 합니다.
뒤쪽의 비석은 장 계향 부인을 기리는 비석으로 10남매를 훌륭하게 키웠고
그 중 이조판서가 나와 [정부인]의 호칭을 받았고 83세의 일생을 살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합니다....
마을 전체가 참으로 아늑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약 10미터 높이의 언덕배기 아래에는 들판이 펼쳐져 있고 흉년이 들면 이 언덕배기의 꿀밤을 주워 모아
기민들에게 도토리 죽을 끓여 주던 전통은 400여년 전 장 계향 정부인 때 부터 비롯되었다 합니다...
다음은 이 시명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쳤던 석천 서당에 들렀습니다...
석천서당의 [석]자가 이상합니다... 해설사 애기로는 옛 사람들은 전체 획의 수를 좋은 숫자로 맞추기 위하여
한 획을 첨가하기도 했다 합니다... 돌위에 자갈을 한개 더 얹어 놓았다나요...
유우당이었던가? 석간정사이었던가? ... 기억이 안납니다....
여중군자 장 계향 예절관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좌측이 예절관....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기념관...
기념관 안 모습.....
장 계향의 생애와 업적..... 혹자들은 신 사임당보다 더 훌륭항 인물이라고 한답니다....
신 사임당은 율곡 한사람을 키웠지만 장 계향은 전처의 아들을 비롯한 10명의 아들을 훌륭히 키웠고
효, 교, 충, 예에 관한 많은 작품을 남기고 평균수명 40세 전후이던 시대에 83세라는 장수를 누리며
삶의 모범을 보였다는 점에서 더 훌륭하다 할 만 하다고 한답니다..... 이 시명 선생도 84세를 사셨고....
수를 놓은 작품....
장 계향의 글씨들...
[정부인] 칭호를 하사 한 임금님의 교지....
장계향의 병풍작품....
[장 계향 예절관]을 나와 몇군데 유명 건물을 더 둘러 보았습니다.... [광산문우]....
해설사님은 걸어가면서도 열심히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해설사님! 감사합니다....!
도서관 격인 [두들 책 사랑]......
[만석꾼의 집]을 둘러 보고 두들마을을 떠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