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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22일 저녁,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아들은 춘천 고음악 콩쿨 출전을 앞두고 리코더 레슨을 받던 중이었다. 평소보다 집중을 하지 못 하던 아들의 옆모습에서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며 자세히 들여다보던 순간 얼굴이 심하게 왼쪽으로 돌아가며 178 cm의 키 그대로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아들의 몸을 받쳐 안고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고등학교 시절 ‘교련 시간’에 배웠던 응급상황 대처에서 혀가 기도를 막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떠올라 ‘설압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것이 없는 경우에는 절대 손가락을 쓰러진 사람의 입에 넣지 말라는 지시까지 생각났지만 앙다문 이를 다치거나 숨이 막힐까봐 내 손가락을 집어넣어 버티고 있었다. 영원 같은 몇 분이 지나 온몸에 힘이 빠진 아이를 뉘어놓고 119 대원을 기다리며 딸아이를 안심시키는 내 목소리는 남의 것처럼 낯설었다. 앰뷸런스가 왔으나 주택의 좁은 나무계단으로 들것이 내려갈 수 없어 아이를 부축해 차에 태우고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자리가 없다고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대기하다 결국 응급실 침대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6월치고 더웠던 저녁이라 에어컨을 켠 실내가 얼마나 추웠던지 옆 침대 보호자가 시트를 하나 구해다 줘서 두르고 밤을 샜다.
그날 저녁은 질 나쁜 옛날 필름처럼 부분, 부분 연결이 끊어진 기억과 119를 부르라고 애써 담담하게 딸아이에게 말하며 떨리던 내 목소리가 물속처럼 먹먹하게 귓전을 울리며 뒤엉긴 악몽이 되어 이후 몇 년 동안 잠을 깨우곤 했다. 그 와중에도 딸아이는 비정상적이라 할 만큼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며 나에 대한 믿음이 한층 깊어졌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병원 응급실에 누워있는 아들을 지켜보며 내 머릿속은 텅 비어 갔다.
‘지금 내가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동안 혹시라도 나로 인해 아이가 잘못 된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하나. 아이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혹은 ‘우리’의 세계에 묶어 놓으려 쉼 없이 몰아붙인 것이 탈진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아이를 위한다는 일이 도리어 상하게 만들진 않았을까.‘ 무엇보다 이어지는 자책을 막을 수 없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엄마는 무의식 속에 아이의 장애를 자신의 탓으로 돌려 자책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느 논문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장애뿐만 아니라 아이와 관계된 사소한 부분이라도 잘못되는 일이 있으면 우선 내 잘못으로 돌리게 되는 피해망상적인 습관을 나도 가지고 있었다. (굳이 말을 안 해도 나와 같이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님이 많으실 줄 안다. 하지만 실제로 청소년기와 초기 성인기에 뇌전증이 발현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으니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지나치게 피로하거나 수면이 부족하지 않도록 살피고, 적절한 운동을 시키는 동시에 영양 공급에 신경을 쓰시는 편이 성장에도 좋을 것이며 뇌전증이 오더라도 이겨내기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들의 7살 무렵 ’상태 좋은 자폐성장애 아동 한 명이 뇌전증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갔지만 맞는 약을 빨리 찾지 못 해 인지가 많이 손상되었다.‘라는 이야기를 함께 소아정신과 치료실에 다니던 어느 엄마가 했던 기억이 났다. 주변의 많은 심리학자며 소아정신과 의사선생님들은 ‘아들의 장애가 중하지 않으니 뇌전증이 올까 봐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셨다. 그 말로 안도하고 싶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을 떠나지 않던 석연치 않은 불안함에 혹시라도 내 아들에게 이런 일이 닥칠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던 차였다. 돌이켜 보니 동료 엄마가 해주신 이야기 덕분에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 내가 받은 충격에 조금이나마 완충작용을 해줬기에 감사드리며 나 역시 이 글로 인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이 크다.
날이 밝아서야 담당 교수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뇌파검사를 했으나 ‘발작이 진행될 때 찍어야 간질파가 제대로 나온다.’는 말씀과 함께 한 번의 대발작으로 뇌전증이라는 진단을 내릴 수 없으니 다시 한 번 발작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약물치료를 시작하자고 하셨다. 하지만 두 달 후인 8월 29일, 아들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학교로 달려가 입원을 시켰다. 다시 뇌파 검사를 했으나 간질파는 잡히지 않았으나, ‘뇌전증’ 진단을 받은 후 라모트로진 성분인 ‘라믹탈’을 처방 받아 복용하기 시작했다. 첫 발작부터 아이에게 맞는 약 용량을 찾을 때까지 거의 1년이 걸렸는데 그동안 관찰을 해보니 두 달 주기로 대발작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발작이 오기 전 대개 극심한 피로와 함께 몸이 처지며 자꾸 누우려고 하는 ‘전조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며 길을 가다가도 이런 증세가 있으면 어디든지 누워도 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라며 대처방법도 반복해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자폐성장애의 특징상 ‘아무데나 누워도 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 해 이해시키기가 정말 힘들었다.
두 달 후 음악치료를 하고 오는 길에 ‘전조증상’이 있어 복지관 옆 가로수에 나와 함께 기대앉아 아이를 안심시키며 ‘이럴 때는 엄마가 없더라도 이렇게 기대거나 누우라’고 실습을 하며 가르친 후에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서둘러 집으로 운전하며 오는 길에 지하차도를 지나며 ‘조수석’에서 아들은 발작을 했고, 나는 한 손으로 기울어지는 아이의 머리를 받치며 아이가 놀랄까 봐 이를 악물고 속으로 울부짖었다. 불과 1, 2분 남짓했지만 아직도 생생한 악몽 같은 기억을 억지로 되살리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유년기를 포함해서 청소년기나 초기 청년기의 자녀에게 뇌전증이 발현될 때 부모는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되어 우울감이 극심해진다. 특히 가족이나 이웃의 배려와 위로가 필요함을 꼭 기억하시고 잘 챙겨주시기 부탁드린다.
‘뇌전증’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 때문인지 ‘뇌전증을 동반한 자폐성장애(혹은 발달장애)’에 대해 경험을 공유하는 글을 많이 찾아볼 수 없고, 정확한 정보 역시 아직 부족해 글을 써서 알리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심지어 취업을 할 때도 약 복용 사실을 숨기거나 뇌전증을 동반한다고 밝히지 않은 경우도 심심찮게 보고 있다. 나 역시 ‘자폐성장애’에 이어 ‘뇌전증’까지 겹친 아들의 중복장애를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았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낙인효과’를 넘어서 당사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밝히고 고용주나 주변 분들에게 조처와 대응책을 알려주는 일이 필요하다. 발달장애를 가진 성인의 경우에 회식에서 사소하게 몇 잔 기울이는 술이 치명적이 될 수 있고, 수영이나 등반을 할 때는 반드시 주의가 필요하며 작업장에서도 만약을 대비해 발작 시 머리를 다치거나 손상을 입지 않도록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올해로 10년 째 약을 복용하는 동안 10 번 내외의 발작을 겪었으니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대발작을 한 번 겪을 때마다 아이나 나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한 불안에 시달리며 후유증과 고통을 겪었다. 혹시라도 학교에 가는 길이나 학교에 있을 때 발작이 일어날까 염려되어 전환에 필요한 ‘혼자 교통수단 이용하기’ 연습도 중단하고, 설거지를 하다가 불현듯 아들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가기도 하고, 심지어 자다가 발작이 일어날까봐 아들 침대 아래 요를 깔고 수시로 들여다보며 잠을 설친 날도 부지기수였다. 당시에는 자폐성장애인의 뇌전증에 대해서 따로 연구된 결과가 거의 없어, 스웨덴과 일본, 미국의 정보들을 ‘구글’에서 찾아봤지만 만족할 만한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때마침 ‘대한 뇌전증 학회’에서 하는 세미나가 있어 참석해 많은 정보와 함께 ‘에필리아가 들려주는 뇌전증 이야기’라는 안내서도 얻으며 지대한 도움을 받았다. 책에서 읽은 대로 관찰을 통해 아들이 발작하기 전의 ‘전조증상’과 주기를 알게 되니 조금 안심이 되었고, 1년 가까이 지나 약 복용 후 더 이상 발작이 없게 되자 과감히 교육과 훈련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 몇 년이나 강도가 약해지긴 했지만 불안은 내내 나를 따라 다녔다.
약 복용을 하고 발작이 없어진지 3년이 되자 약을 끊자고 하시는 주치의 선생님께 우선 약을 조금씩 줄여보자고 제안을 했다. 체중 대비해서 400 mg이 최대치인데 점점 줄여 2 5mg까지 내렸을 때 속으로 매우 불안했지만, 의사 선생님이 제안하셨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2015년 4월, 발달장애인 대학 마지막 학년 재학 중이었다. 지역사회 체험 나가며 종로를 지나던 중 상윤 씨는 버스 안에서 다시 대발작을 일으켰고, 점심을 먹다 전화를 받은 나는 아들과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는 대형 건물 로비에 가서 아이를 태우고 집으로 왔다. 힘없이 앉아있는 아들을 데리고 오면서 자꾸만 흐려지는 정신을 붙들려고 안간힘을 썼다. 병원에 연락해서 뇌파검사를 받고 주치의 선생님께 다시 약 처방을 받을 때, 200mg까지 약을 올리자는 제안에 내가 책임지겠다며 100 mg을 우선 써보자고 말씀드렸다. 그동안 관찰해왔기 때문에 혹시라도 다시 발작이 일어나면 그때 용량을 올리겠다는 무리수를 두면서도 애써 낮춘 약의 용량을 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히 지금까지 100 mg으로 조절이 되고 있지만 돌이켜 보면 아슬아슬한 선택이었다.
아들은 뇌전증 약을 평생 먹어야할 지도 모른다. 약으로 인해 간 손상이 올 수도 있고 다른 부작용이 따라올 수 있지만 주기적으로 대발작을 일으키다 보면 인지 손상이 올 수 있고, 발작 시 사고로 인해 심한 신체적 손상까지 올 수 있기 때문에 감안하고 계속 약을 먹일 계획이다. 주변의 자폐성장애인들 중에 약 복용 후 3 년 이상 증상이 없어 중단한 경우에 다시 발작을 하는 케이스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현재 아들은 아침저녁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약을 복용하며 큰 어려움 없이 생활을 하고 있으니 더 이상 어려움이 닥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몇 번 눈물을 흘려가며 어렵게 쓴 글이니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면서 나는 개방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어떤 일이든지 내 아들에게, 그리고 내게 일어날 수 있다고
모든 가능성 앞에 나를 열어 놓으면 오히려 두려움이 옅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 올 테면 한번 와봐라.' 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너무나 두렵기 때문에 도리어 먼저 열어 버리는 것일 게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서 뇌전증 유병률이 높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McDermott팀은 지적장애가 있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에서의 뇌전증 동반율을 비교했다. 후자의 경우는 뇌전증 유병율이 1%였으나, 전자의 경우 뇌성마비에서 13%, 다운증후군에서 13.6%, 자폐증에서 25.4%, 정신지체에서 25.5%. 그리고 뇌성마비와 지적장애가 동반된 환자들의 경우에는 성인기 동안에 뇌전증 유병율이 점점 감소함을 확인했다. 각 10년간 지적장애가 없는 환자들에 비해 지적장애가 있는 환자들에서 뇌전증 유병율이 더 높았다. 지적장애가 있는 환자들 상당 부분이 난치성 뇌전증을 갖는 경우가 많다. 항뇌전증 약은 난치성 뇌전증의 주 치료법이고, 40% 정도는 복합약물요법에 의존하고 있다.
V. P. Prasher, M. P. Kerr(eds.) Epilepsy and Intellectual Disabilities, DOI:10.1007/978-1-84800-259-3_8, c Springer Science+Business Media, LLC 2008“
윗글은 ‘발달장애와 뇌전증’ 검색 중 가장 조회 수가 많은 논문에서 일부 인용했다. 미국 ‘뇌전증 재단’ 홈페이지에는 자폐성장애인의1/3 정도가 뇌전증을 갖고 있다고 나와 있으며, Autism Speaks의 홈페이지에는 ‘뇌파검사 시 지침서’와 환아와 그 친구들에게 뇌전증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사회성 이야기(social story)가 각각 나와 있다. 아직 한국에는 관련 연구가 미미하며 자료나 정보 또한 그다지 많지 않다. 그중 가장 정리가 잘 된 웹사이트가 ‘아산 병원 뇌전증 클리닉’과 ‘대한 뇌전증학회’ 홈페이지인데, 뇌전증 전반에 대한 상세한 설명 외에 ‘발달장애와 뇌전증’에 관해서는 따로 기술된 부분이 없는 실정이다. 학계와 연구자들께서 이 영역에도 연구를 많이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참고를 위해 웹사이트 정보를 붙여드린다.
(글자를 클릭하시면 해당사이트로 이동합니다)
- 남영/부모/한국자폐인사랑협회 운영위원/발달장애지원 전문가 포럼
※ 위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