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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1.1.6.PM2시)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게송으로 부처님의 덕을 찬탄함
반갑다. 모두들 무사하신가? 제발 무사하시기를 부처님 전에 빈다. 몸조심 잘 하셔서 무사히 코로나 터널을 빠져나가자.
오늘 화엄경은 여래현상품 ‘서방의 향염광 보살의 찬탄’이라.
4) 서방의 향염광(香焰光) 보살의 찬탄
이시중중(爾時衆中)에 부유보살마하살(復有菩薩摩訶薩)하니 명향염광보명혜(名香焰光普明慧)라 승불위신(承佛威神)하사 관찰시방(觀察十方)하고 이설송왈(而說頌曰)
그때에 대중 가운데 또 보살마하살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향염광보명혜(香焰光普明慧)였습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차회제보살(此會諸菩薩)이 입불난사지(入佛難思地)하사
일일개능견(一一皆能見) 일체불신력(一切佛神力)이로다
이 회상에 모인 보살들이
부처님의 생각하기 어려운 지위에 들어가서
모든 부처님의 신통한 힘을
낱낱이 다 능히 보도다
이 회상에 모인 보살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바로 이 순간 이렇게 동참한 보살들이 이 회상에 모인 보살들이다. 화엄경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가장 높이 일컬을 때 보살들이라고 일컫는다. 거기다 좀더 하면 보살마하살, 대보살, 큰보살이라고 한다.
그것은 남녀 구별이 없고, 승속의 구별, 노소의 구별이 없다. 그저 이 화엄회상에 동참한 모든 보살들,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일컬어서 이 회상에 모인 보살들이
부처님의 생각하기 어려운 지위에 들어가서
모든 부처님의 신통한 힘을
낱낱이 다 능히 보도다
지신능변입(智身能徧入) 일체찰미진(一切刹微塵)하사
견신재피중(見身在彼中)하야 보견어제불(普見於諸佛)이로
지혜의 몸이
온갖 세계 미진에 두루 들어가
몸이 그 가운데에 있음을 보듯이
모든 부처님을 널리 보도다.
지혜의 몸이
지혜 그 자체가 몸이다.
온갖 세계 미진에 두루 들어가
몸이 그 가운데에 있음을 보듯이
모든 부처님을 널리 보도다
지혜의 몸이 있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온갖 세계 미진에 두루 들어가
몸이 그 가운데에 있음을 보듯이
모든 부처님을 널리 보도다
여영현중찰(如影現衆刹) 일체여래소(一切如來所)하사
어피일체중(於彼一切中)에 실현신통사(悉現神通事)로다
그림자와 같이 나타난 온갖 세계의
모든 여래의 처소에
그 모든 곳에서
신통한 일을 다 나타내도다.
여영현중찰(如影現衆刹)
그림자와 같이 나타난 온갖 세계의
우리가 세계, 법계, 온세상, 세간 이런 말을 하지만 그것이 다 알고 보면 그림자와 같이 나타난 것들이다. 그래서 불가득(不可得)이다. 얻을 수 없고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자와 같이 나타난 온갖 세계다.
우리가 의지하고 거기에 근거를 잡고 이렇게 살아가지만, 그 역시 그림자와 같이 나타난 온갖 세계다. 세계도 그렇고 거기에 의지하고 사는 우리들도 역시 그렇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
조금 지혜의 안목을 가지고 깊이 통찰하면 그렇게 보인다. 평생 고려청자라고 생각하고 잘 모시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까 중국산이고, 가짜다. 만든지도 불과 얼마 안된 것인데 잘 못 알고, 무슨 고려청자인냥으로 애지중지하고 모시고 살았다.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이 세계, 나 자신, 세상, 부귀공명, 온갖 명예 그런 것들도 또한 사실은 꿈을 깨고 보면 다 고려청자인 줄로 착각하고 가짜를 모시고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 중생들은 몽매해서 그렇게 속고 살아간다. 그러니까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깨어있는 눈으로 볼 때 어떻겠는가? 사실 그것은 간단한 이야기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 아이들은 자기 수준대로 가치판단을 하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애지중지하지 않는가? 그런 것이지 사실은 별거 아니다.
모든 것이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고 해서 그렇게 실망할 것도 사실은 아니다. 그것이 철드는 일이다.
그림자와 같이 나타난 온갖 세계의
모든 여래의 처소에
그 모든 곳에서
신통한 일을 다 나타내도다
보현제행원(普賢諸行願)을 수치이명결(修治已明潔)일새
능어일체찰(能於一切刹)에 보견불신변(普見佛神變)이로다
보현보살의 모든 행과 원을
잘 닦아 이미 깨끗하게 하고
능히 모든 세계에서
부처님의 신통변화를 널리 보도다.
보현보살의 모든 행과 원을
잘 닦아 이미 깨끗하게 하고
능히 모든 세계에서
부처님의 신통변화를 널리 보도다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지만, 보고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살은 거기에서 자비심을 일으킨다. 그리고 본래의 서원, 고통받는 중생들을 그냥 차마 볼 수 없다고 하는 자비심, 그런 서원의 힘에 의해서
보현보살의 모든 행과 원을
잘 닦아 이미 깨끗하게 하고
청정하게 하고
능히 모든 세계에서
부처님의 신통변화를 널리 보도다
신통변화를 거기서 나타낸다. 보살행을 왕성하게 일으킨다는 것이다.
신주일체처(身住一切處)하야 일체개평등(一切皆平等)하니
지능여시행(智能如是行)하야 입불지경계(入佛之境界)로다
몸이 일체 처소에 머물러
일체 처소마다 다 평등하니
지혜가 능히 이와 같이 행하여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갔도다.
몸이 일체 처소에 머물러
일체 처소마다 다 평등하니
지혜가 능히 이와 같이 행하여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갔도다
이증여래지(已證如來智)하고 등조어법계(等照於法界)하야
보입불모공(普入佛毛孔)의 일체제찰해(一切諸刹海)로다
여래의 지혜를 이미 증득하고
법계를 골고루 비춰서
부처님 모공(毛孔)의
모든 세계바다에 널리 들어가도다.
여래의 지혜를 이미 증득하고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우리 모든 인생사가 몽환포영(夢幻泡影)인 줄을 잘 알고
법계를 골고루 비춰서
그 어디에도 또 어느 때든지 골고루 그와 같은 사실을 다 깨달아 알아서
부처님 모공(毛孔)의
모든 세계바다에 널리 들어가도다
일체불국토(一切佛國土)에 개현신통력(皆現神通力)하야
시현종종신(示現種種身)과 급종종명호(及種種名號)로다
모든 부처님 국토에
신통력을 다 나타내어서
갖가지의 몸과
갖가지의 명호를 나타내 보이도다.
모든 부처님 국토에
신통력을 다 나타내어서
갖가지의 몸과
갖가지의 명호를 나타내 보이도다
진공(眞空) 가운데 묘유(妙有)다 라고 한다. 깨어있는 눈으로 밝게 꿰뚫어 보면 그야말로 갖가지가 존재하지 않지만, 또 거기에서 한고비 넘겨서 중생을 위하는 입장에서 보면 갖가지의 몸과 갖가지의 명호를 나타내 보인다.
능어일념경(能於一念頃)에 보현제신변(普現諸神變)하야
도량성정각(道場成正覺)하고 급전묘법륜(及轉妙法輪)이로다
능히 한 생각 사이에
모든 신통변화를 널리 나타내서
도량에서 정각(正覺)을 이루고
미묘한 법륜(法輪)을 굴리도다
능히 한 생각 사이에
모든 신통변화를 널리 나타내서
도량에서 정각(正覺)을 이루고
보리 도량에서 정각을 이루고
미묘한 법륜(法輪)을 굴리도다
화엄경은 늘 ‘정각을 이루고’ ‘정각 이룬 그 내용 그 사실이 그대로 화엄경으로 표현했다’ 라고 하는 이 원칙을 떠나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다.
도량에서 정각을 이루고 미묘한 법륜을 굴리도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나무 밑에 앉아서 정각을 이루었다. 그 사실이 그대로 법륜을 굴리는 내용이다.
일체광대찰(一切廣大刹)을 억겁부사의(億劫不思議)어늘
보살삼매중(菩薩三昧中)에 일념개능현(一念皆能現)이로다
모든 광대한 세계를
억겁에도 생각해내지 못하거늘
보살은 삼매 가운데서
한 생각에 다 능히 나타내도다.
시간도 그렇다. 우리들 중생들은 눈앞의 것만 보고 어제 오늘 내일 그저 작년 금년 내년 이렇게 본다. 기껏해야 백 년 안에서 계산을 하는데 조금 깨어있는 보살의 지혜는
모든 광대한 세계를
억겁에도 생각해내지 못하거늘
보살은 삼매 가운데서
한 생각 딱 이렇게 삼매에 들면
한 생각에 다 능히 나타낸다
광대한 세계, 그것을 한 생각에 다 능히 나타낸다. 여래현상품이라 부처님의 모습 부처님의 내용을 이런 시각 저런 시각에서, 이런 각도 저런 각도에서 다 표현해내 보는 입장이다.
일체제불토(一切諸佛土)에 일일제보살(一一諸菩薩)이
보입어불신(普入於佛身)호대 무변역무량(無邊亦無量)이로다
모든 부처님 국토의
낱낱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 몸에 널리 들어가되
끝도 없고 또한 다함도 없도다.
모든 부처님 국토의
낱낱 모든 보살들이
국토마다 보살들이 꽉꽉 차 있고
부처님 몸에 널리 들어가되
끝도 없고 또한 다함도 없도다
그대로 부처님으로 산다. 들어가기는 어디로 들어가겠는가? 그냥 부처님으로 산다. 보살들은 부처님으로 산다.
5) 북방의 사자(獅子)보살의 찬탄
이시중중(爾時衆中)에 부유보살마하살(復有菩薩摩訶薩)하니 명사자분신혜광명(名獅子奮迅慧光明)이라 승불위신(承佛威神)하사 변관시방(徧觀十方)하고 이설송왈(而說頌曰)
그때에 대중 가운데 또 보살마하살이 있으니 이름이 사자분신혜광명(獅子奮迅慧光明)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살피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능전정법륜(能轉正法輪)하시니
법계제국토(法界諸國土)에 여운실주변(如雲悉周徧)이로다
비로자나 부처님이
능히 정법륜(正法輪)을 굴리사
법계의 모든 국토에
구름처럼 다 두루 하였네.
참 아름답다. 표현이 잘 된 내용이다.
비로자나 부처님이
능히 정법륜(正法輪)을 굴리사
바른 법륜을 굴리사
법계의 모든 국토에
구름처럼 다 두루 하였네
어느 한 곳에서만 비로자나 부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온 법계에 구름처럼 다 두루 하였다. 그러면서 정법륜을 굴리고 있다. 이것을 그 어떤 선지식이 법문을 하듯이, 또는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부처님이 형상을 나투어 법문을 하듯이 그렇게 이해하기로 하면 이런 화엄경의 말씀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현재 상태 이대로 우리가 이해해야 된다. 그래서 제가 화엄경을 푸는 열쇠를 몇 가지를 이야기를 하는데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
시냇물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법문소리다. 그리고 저 산천초목은 어찌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 아니겠는가. 산천초목 천지만물은 그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고 모든 소리, 소리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모든 동작, 모든 사실, 모든 사건은 그대로가 법문의 표현이다. 그렇게 보는 소동파의 그 게송이 또한 화엄경의 어려운 대목들을 푸는 열쇠다, 라고 제가 자주 언급을 한다.
비로자나 부처님이
능히 정법륜(正法輪)을 굴리사
법계의 모든 국토에
구름처럼 다 두루 하였네
시방중소유(十方中所有) 제대세계해(諸大世界海)에
불신통원력(佛神通願力)으로 처처전법륜(處處轉法輪)이로다
시방에 있는
모든 큰 세계바다에
부처님의 신통과 원력으로
곳곳에서 법륜을 굴리시네.
시방에 있는
모든 큰 세계바다에
부처님의 신통과 원력으로
곳곳에서 법륜을 굴리시네
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 차 굴러가는 소리,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는 소리,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 소리가 있는 것이든, 소리가 없는 것이든, 곳곳에서 다 법륜을 굴리는 소식이다. 이러한 소식을 우리는 자꾸 이렇게 들음으로 해서 무릎을 탁 치면서 ‘그러면 그렇지’ 언젠가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을 것이다.
‘방송을 한다고 해석을 하면서 떠들고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법문이라고 굳이 그렇게 할 것이 있겠나’ 물론 그것이 법문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굳이 그것을 가지고 법문이라고 그렇게 고집할 것은 아니다. 그대로 묵묵하면 묵묵한 대로, 바람 소리는 바람 소리 대로,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는 재잘거리는 소리 대로, 시내에 차가 굴러가면 굴러가는 소리 대로, 그런 소리가 하나도 없다 해도 조용한 그대로, 적정법(寂靜法) 적정한 도리 적정한 현상 그대로 또한 비로자나 부처님의 법륜 굴리는 소식이다. 이것을 우리가 수용해야 된다. 이것을 우리가 누려야 된다. 결국은 이것을 누려야지, 꼭 이렇게 방송에서 떠들고, TV나 라디오에서 이야기하고 하는 이런 것들만이 법문이다, 이런 차원을 우리는 좀 얼른 벗어나야 한다. 또 벗어난 상태에서 그러한 것은 그러한 것대로 법문으로 들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원융무애해야 한다. 걸림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본래 그렇게 태어났다. 원융무애 하게 태어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성장하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그 나름대로 자기의 규칙을 정하고 ‘이것은 맞다, 이것은 틀리다, 이것은 기다 아니다, 이것은 옳다 그르다’ 이런 식으로 습관을 들이며 살다 보니까 오히려 많이 어긋나 있다. 그것을 두고 ‘십만팔천리를 어긋나 있다’ 고 하는 것이다. 본래 아무 일이 없었는데 그렇게 우리의 생활습관 때문에 그런 잘못된 길을 내서 그 길로 다니다 보니까 오히려 진실과는 십만팔천리를 어긋났다, 이런 표현을 한다.
일체제찰토(一切諸刹土)의 광대중회중(廣大衆會中)에
명호각부동(名號各不同)하사 수응연묘법(隨應演妙法)이로다
일체 모든 세계의
광대한 회중(會衆) 가운데
명호(名號)가 각각 같지 않으사
따르고 맞춰가며 묘법을 연설하네.
일체 모든 세계의
광대한 회중(會衆) 가운데
예를 들어서 문수선원에 이백 명, 삼백 명이 모였다, 그것이 아니고 그대로 현재의 모습 그대로 광대한 회중, 많고 많은 법회 청중들이 이렇게 존재하고 계신다.
명호(名號)가 각각 같지 않으사
각각 다 다르다.
따르고 맞춰가며 묘법을 연설하네
거기에 맞춰서 묘법을 연설한다. 이것을 마음에 가만히 그리기만 해도 참 환희심이 나는 화엄경 법문이다.
여래대위력(如來大威力)이 보현원소성(普賢願所成)이라
일체국토중(一切國土中)에 묘음무불지(妙音無不至)로다
여래의 크신 위신력은
보현의 행원으로 이루신 바라
모든 국토 가운데에
미묘한 음성이 이르지 않는 데 없네.
여래의 크신 위신력은
보현의 행원으로 이루신 바라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보살행이다. 보살행 중에서도 보현보살의 행원, 보현보살의 행원으로 대표되는 그것으로써 부처님이 수행해서 이루신 바다.
모든 국토 가운데에
미묘한 음성이 이르지 않는 데 없네
모든 국토에 그러한 이치를 다 펴고 있다. 전하고 있다.
불신등찰진(佛身等刹塵)하사 보우어법우(普雨於法雨)하사대
무생무차별(無生無差別)하야 현일체세간(現一切世間)이로다
부처님의 몸은 세계 티끌 같으사
법의 비를 널리 쏟으시되
생멸도 없고 차별도 없이
모든 세간에 나타나시네.
부처님의 몸은 세계 티끌 같다. 세계를 티끌로 만들었을 때, 그 티끌 숫자와 같이 많고 많다. 그러면 부처님 몸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여래현상품 첫 게송에 뭐라고 했는가?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라. 부처님의 몸은 법계에 충만하다고 했다.
법계에 충만한 이대로가 부처님의 몸이다. 그런 이치다.
부처님의 몸은 세계의 티끌 같으사, 티끌같이 많고 많다.
그 많고 많은 부처님이 법의 비를 널리 쏟는다.
그대로 존재하면서 무슨 법상을 차리고 소리를 내고 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그대로 법문을 한다는 뜻이다.
저렇게 겨울이 되어서 나목으로 보여주면 나목으로 보여주고, 봄이 되어서 새순이 돋고 파릇파릇 색깔을 맞춰가면 그 모습 그대로 또 법문을 하고 있는 사실이다.
법의 비를 널리 쏟으시되 생멸도 없고 차별도 없이 모든 세간에 나타나시네.
부처님의 몸은 세계 티끌 같으사
법의 비를 널리 쏟으시되
생멸도 없고 차별도 없이
모든 세간에 나타나시네
무수제억겁(無數諸億劫)의 일체진찰중(一切塵刹中)에
왕석소행사(往昔所行事)를 묘음함구연(妙音咸具演)이로다
수없는 모든 억겁의
일체 티끌세계 가운데
지난 옛적 행한 일을
미묘한 음성으로 다 연설하시네.
수없는 모든 억겁의
일체 티끌세계 가운데
지난 옛적 행한 일을
미묘한 음성으로 다 연설하시네
불법이라고 하는 것을 서두에서도 자주 말씀드리지만 상설(常說) 변설(徧說)이라, 항상 설하고 있고, 어디에서나 설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쉬임없이 공간적으로 빠짐없이 늘 자기 모습 표현하고 있는 그대로가 설법이다. 그래서
수없는 모든 겁의
일체티끌 세계 가운데
지난 옛적 행한 일을
미묘한 음성으로 다 연설하시네
지난 옛적 행한 일을 미묘한 음성으로 다 연설한다. 저기 가서 풀 한 포기 나뭇가지 하나 딱 우리가 취해서 보면 그 속에 나무의 역사가 다 있고, 그 나무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 나무 이전의 역사도 작은 나뭇가지 하나 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
지난 옛적 행한 일을
미묘한 음성으로 다 연설하시네
지질학자들은 어디 가서 돌조각 하나 흙덩이 하나만 딱 가지고도 지구의 45억년의 역사를 읽어내지 않는가. 45억년의 역사를 읽어낸다. 다 그 안에 있다. 있으니까 읽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나뭇가지를 하나 딱 꺾었다. 그러면 그 나무의 역사가 작은 나뭇가지 하나에 다 있는 것이다.
그 나무의 역사 뿐만 아니라 그 나무 이전의 역사까지도 그 안에 다 있다. 거기에 예를 들어서 수분이 있다고 하면 나뭇가지에 있는 그 수분이 역사가 얼마인가. 예를 들어서 나무가 10년짜리 역사다 백년짜리 나무다 해서 그 안에 있는 수분의 역사도 어디 10년에 끝나겠는가, 백년에 끝나겠는가, 무한이다. 무한의 역사가 하나의 나뭇가지에 있는 수분의 역사다.
잠깐 나뭇가지 한 일 이년 밖에 안되는 나뭇가지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잠깐 그렇게 나뭇가지로 표현되었을 뿐이지 그 본질은, 나뭇가지의 본질의 역사는 무한한 세월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수없는 모든 겁의
일체티끌 세계 가운데
지난 옛적 행한 일을
미묘한 음성으로 다 연설하시네
시방진국토(十方塵國土)에 광망실주변(光網悉周遍)이어든
광중실유불(光中悉有佛)하사 보화제군생(普化諸群生)이로다
시방의 미진 국토에
광명그물이 모두 다 두루 한데
광명 속에 다 부처님이 계시면서
모든 중생들을 널리 교화하도다.
시방의 미진 국토에
광명그물이 모두 다 두루 한데
온세상에 전부가 광명그물이 모두 다 두루하다.
광명 속에 다 부처님이 계시면서
모든 중생들을 널리 교화하도다
거기에서 부처님이 낮잠 자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앉아만 계시는 것도 아니라, 모든 중생들을 널리 교화하고 있다.
시방의 미진 국토에
광명그물이 모두 다 두루 한데
먼지 숫자와 같이 많고 많은 국토에 광명이 꽉꽉 찼는데 그 광명 속에
광명 속에 다 부처님이 계시면서
모든 중생들을 널리 교화하도다
좋은 내용이다.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는 눈을 떠야 된다. 이해가 되어야 되고 그것을 우리가 느껴야 된다.
불신무차별(佛身無差別)하야 충만어법계(充滿於法界)하사
능령견색신(能令見色身)하야 수기선조복(隨機善調伏)이로다
부처님의 몸은 차별이 없어서
법계에 충만하사
능히 색신(色身)을 보게 해서
근기를 따라서 잘 조복하도다.
여기에 또 앞에서 부처님의 모습이 광명그물 속에서 별별 일을 다하는 것,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다 하고 있지만 그 차원을 누가 알겠는가? 쉽게 이해가 안된다. 그래서 여기에 뭐라고 했는가?
부처님의 몸은 차별이 없어서
법계에 충만하사
능히 색신(色身)을 보게 해서
색신 6척이면 6척 7척이면 7척의 사바세계 중생들의 안목에 이해가 될만한 몸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근기를 따라서 잘 조복하도다
만약에 특별한 몸이라면, 사바세계 중생하고는 영 동떨어져 버려서 그저 놀라서 도망가거나 기절을 하거나 그렇게 된다.
엇비슷하게 나타내 보인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우리들하고 비슷하다. 그런 모습을 나타내 보여서 그 근기와 수준에 맞춰서 우리들을 교화하고 조복한다는 이야기다.
본질은 앞의 게송과 같이 그러한 내용인데, 현상으로써, 여래현상품이니까 본질의 면도 이야기 하고 현상의 면도 이야기 한다. 그런 것이 여래현상품이다.
부처님의 몸은 차별이 없어서
법계에 충만하사
능히 색신(色身)을 보게 해서
굳이 2600년 전에 가비라성에 태어나서 6년 고행하고 성도했다 하고, 법륜을 굴린다 하고, 같이 고행했던 사람들이 싯달태자가 목욕하고 우유죽 얻어먹고 하니까 타락했다 하고, ‘오거든 우리 다시 아는 체 하지도 말자’ 하고 이런 관계 정도, 이런 수준의 사이다. 그래야 또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능히 색신을 보게 해서
근기를 따라서 잘 조복하도다
너무 동떨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안된다.
참 좋은 내용이다.
이러한 게송들 속에 무한한 의미가 쏙쏙 박혀 있다. 우리가 이것을 백 번이고 이백 번이고 읊조리다 보면 거기에 번쩍하고 떠오르는 모습이 있고, 떠오르는 경계가 또 나타날 것이다.
삼세일체찰(三世一切刹)에 소유중도사(所有衆導師)의
종종명호수(種種名號殊)를 위설개령견(爲說皆令見)이로다
삼세 일체 세계에 있는
많은 도사(導師)들의
가지가지 다른 이름을
설해 주어 다 보게 하도다.
삼세 일체 세계에 있는
과거 현재 미래 일체 세계에 있는
많은 도사(導師)들의
도사는 부처님이다. 부처님의
가지가지 다른 이름을
별별 이름이 다 있다.
설해 주어 다 보게 하도다
이 이름 저 이름 다 이름을 들먹거려 가면서 부처님을 보게 한다.
과미급현재(過未及現在)에 일체제여래(一切諸如來)의
소전묘법륜(所轉妙法輪)을 차회개득문(此會皆得聞)이로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일체 모든 여래가
굴리신 미묘한 법륜을
이 법회에서 다 들을 수 있네.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일체 모든 여래가
굴리신 미묘한 법륜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 화엄경은 현재의 석가모니 부처님, 현재의 부처님이 굴리신 미묘한 법륜이다. 그런데 여기는 뭐라고 했는가?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일체 모든 여래가
굴리신 미묘한 법륜을
이 법회에서 다 들을 수 있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문만 듣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또한 과거의 부처님 법문도 듣고 앞으로 오실 미래 부처님의 법문도 이 현재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문에서 다 듣는다고 하는 내용이다.
화엄경 게송은 자꾸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고,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그 맛이 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맛이 우러난다.
제가 예습한다고 미리 공부할 때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는데 한 번 더 읽으면 더 맛이 또 나고, 또 이렇게 여러분들을 앞에 놓고 강의를 하다 보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내용까지도 떠올라서 느낀 대로 전할 수 있게 된다.
오늘 화엄경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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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분들이 동참해서 지금도 102분이나 동참하고 계신다. 화엄법회가 성황을 이루어서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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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그림자와 같이 나타난 온갖 세계. 그래서 不可得이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인줄 알지만 자비심으로 중생을 대한다.
부처님의 몸은 세계 티끌 같으사 법의 비를 널리 쏟으시되 생멸도 없고 차별도 없이 모든 세간에 나타나시네.
수없는 모든 겁의 일체티끌 세계 가운데 지난 옛적 행한 일을 미묘한 음성으로 다 연설하시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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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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