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요한 23세 교황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며,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복을 받는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당신을 반대하는 자고, 당신과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3,7-14
형제 여러분, 7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아야 합니다.
8 성경은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들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내다보고,
“모든 민족들이 네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기쁜 소식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전해 주었습니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10 율법에 따른 행위에 의지하는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니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율법은 믿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규정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따름입니다.
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4 그리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이르러,
우리가 약속된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5-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15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태평하여 보이십니다. 사람들이 그분께서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루카 11,15)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하여도 크게 동요하시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베엘제불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신다면 사탄의 나라는 이미 분열되어 서로 싸우고 있는 셈이니 곧 멸망할 것이고 그러니 크게 걱정할 것 없다는 식이십니다.
사실 오늘의 복음을 보면, 마귀를 쫓아내는 행위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너희의 아들들”(11,19)도 마귀를 쫓아내고 있고, 사람들은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을 오히려 의심합니다. 게다가 한 번 마귀를 쫓아낸다고 해서 꼭 상황이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마귀 하나가 나간 빈자리에 더 악한 영이 더 많이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쫓아내셔도 그것이 베엘제불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실 때 그들의 마음 안에는 의심만 생깁니다. “힘센 자”(11,21)이신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들어가시어 다시 마귀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시지만, 오히려 그들의 믿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예수님의 기적에 걸려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흔들리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그 자리에 와 있음을, 오고 있음을 적어도 그분께서는 스스로 분명히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의심과 불신 속에서도 하느님의 나라는 옵니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나리라.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이리라”(복음 환호송).(안소근 실비아 수녀)
우리 시대 악령의 실체!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우리 시대 대 마귀 베엘제불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마귀!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기괴한 형상에 날카롭고 큰 뿔이 달린 얼굴에, 괴성을 지르고 길길이 뛰는 무서운 그런 모습입니다.
그러나 저는 또 다른 형태의 마귀들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마귀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기괴하고 흉측한 이미지와는 반대입니다.
화려한 포장지와 달콤한 맛과 향기로 자신을 감추고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취약함을 파고듭니다.
어쩌면 천박한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우리 시대 경계해야 할 대 마귀입니다. 오직 돈이 최고라는 사고방식입니다. 돈이 하느님 위에 위치하며, 돈을 숭배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인간 취급도 안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악령은 참으로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악인들의 승승장구와 떵떵거림, 이를 방조하고 외면하는 사회 시스템이 이 시대 악령입니다. 불의한 방법을 총동원해 천문학적 재물을 쌓은 이들이 휘두르는 횡포와 갑질의 칼날이 이 시대 악령입니다.
자신만의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고통과 상처를 외면하는 우리 교회의 안일함이 이 시대 악령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이 시대 악령으로 천박한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배경으로 하고있는 ‘죽음의 문화’를 지적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 가정 안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배금주의, 극단적 이기주의, 가정 폭력, 대화의 단절, 편리주의, 물질만능주의가 슬금슬금 들어오더니 완전히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 시대 악령의 실체인 것입니다.
오늘의 가정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그 간교한 악의 세력, 죽음의 문화를 우리 가운데서 쫓아내기 위해 합심해야겠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시대 악령의 우두머리는 다름 아닌 배금주의입니다. 재물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것입니다. 돈을 하느님 윗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합심해서 큰 목소리로 외쳐야겠습니다.
“돈이 다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자리가 다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 다가 아닙니다. 실상 눈에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은 모두 사라져갑니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만은 영원하십니다. 이 세상 지나가면 이 세상보다 훨씬 아름답고 풍요로운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고통스러워도 견딥시다. 모든 것 주님 손에 맡기고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살아갑시다.”
모든 바람이 이루어지게 하는 유일한 바람.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십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인들은 선을 위하여 하나가 되고 악인들은 악한 일을 위해 하나가 된다고 하시며 악마들도 악한 일에서는 갈라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은 청하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때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게 무엇일까요?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그러니 하느님의 손가락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행복인데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로마 14,17)그렇다면 우리가 죽기까지 청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청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그러니 먼저 우리 안의 악을 몰아내는 성령님을 청합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세속과 육신과 마귀의 욕망을 몰아내십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머지는 다 곁들여 받게 됩니다. 내가 깨닫지 못하여 청하지 못하는 것도.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1347~1380)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주목할 만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녀의 삶은 영적 평화와 연합을 추구하는 누군가를 통해 그녀의 가족을 포함해 누구라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강력한 예입니다.
가타리나는 이탈리아 시에나의 부유한 대가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25명의 자녀 중 25번째 였지만, 그녀의 형제자매 중 상당수는 유아기까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자코모는 부유한 양모 염색가였고, 그녀의 어머니 라파는 의지가 강하고 실용적인 여성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가족과 마찬가지로 가타리나의 부모는 그녀가 결혼하여 존경할 만한 결합을 통해 가족의 지위와 부를 더욱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가타리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사회적, 재정적 지위에 있어 잠재적인 자산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가타리나는 대부분의 아이들과 달랐습니다. 그녀는 불과 여섯 살 때 사도 베드로, 바오로, 요한과 함께 영광의 자리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환상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가타리나가 나이가 들자 그녀의 가족은 그녀에게 결혼을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같은 사회 계층의 젊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정상적인 기대였으며, 가타리나의 부모는 잠재적인 구혼자를 주선했습니다. 그러나 가타리나는 결혼이나 가족이 꿈꾸던 세속적인 삶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미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행복을 대체할 행복은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가타리나의 소망은 명성이나 영향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평화와 연합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그녀는 수녀원 밖에 있으면서도 기도와 봉사의 삶을 살았던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평신도 공동체인 ‘만텔라테’(Mantellate)에 합류했습니다.
그녀의 금욕적인 생활 방식은 그녀의 가족을 걱정시켰고, 가족은 그녀가 극단적인 영적 수행을 버리고 좀 더 전통적인 삶으로 돌아가기를 계속 희망했습니다. 그녀의 신비로운 경험 중 하나가 그녀를 고독한 삶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위해 봉사하도록 부르면서 그녀의 삶은 극적인 전환을 맞이했습니다.
가타리나는 이에 순종했고 당시의 정치적, 종교적 혼란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읽고 쓸 줄도 몰랐지만, 교회와 사회 모두에서 빠르게 강력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가타리나가 참여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는 아비뇽에서 로마로 교황권이 복귀된 일이었습니다. 거의 70년 동안 교황들은 로마가 아닌 프랑스 아비뇽에 살았는데, 그로 인해 이탈리아와 그리스도교국 전체에 큰 정치적, 종교적 불안정이 초래되었습니다. 그녀는 교황 그레고리오 11세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하여 그에게 교황권을 로마로 돌려보내고 교회에 평화를 회복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카타리나의 지혜와 영적 권위에 감명받은 그레고리오 11세는 그녀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고 결국 1377년에 교황권은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교황권에 대한 참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타리나는 이탈리아, 특히 교황권과의 갈등이 특히 심했던 피렌체의 다양한 전쟁 세력에 평화를 가져오려는 노력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피렌체로 가서 평화 협상을 했습니다. 가타리나는 결코 권력이나 명성을 추구한 적이 없었지만,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부와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살기를 기대했지만, 가타리나는 오직 영적인 평화와 연합만을 추구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통해 그녀는 교회 변화를 위한 강력한 힘이 되었으며, 로마에 교황권을 회복하고, 전쟁 중인 파벌들에 평화를 가져오고,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 개혁과 거룩함을 촉구했습니다.
영적인 평화만을 원했던 카타리나는 로마에 교황권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평화를 가져오며, 교회가 거룩함을 향하도록 영감을 주는 등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학원도 보내고 돈을 많이 들이며 노력합니다. 하지만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면 다른 모든 것은 덤으로 받게 된다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녀 가타리나처럼 마음의 평화, 하느님 나라를 먼저 구하면 나머지는 덤으로 받게 됩니다. 그녀는 ‘대화’라는 책을 써서 교회 학자도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녀에게 글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를 소원합시다. 죽기까지 소원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생각만 해도 주실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수업료 낸 셈 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려면 수업료를 내야 합니다. 인생의 길에도 거저 주어지는 건 별로 없습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하면서 하나둘씩 배워가는 겁니다.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가끔 수업료를 낼 때가 있습니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샀는데, 잘 모르고 정기 배송을 선택했습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신청 안 했는데 의아해하면서 받았습니다. 그런데 1달이 지나니 또 왔습니다. 별로 필요도 없는 거라서 꼼꼼하게 살펴보니 제가 정기 배송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정기 배송을 취소했고, 이왕 온 것은 소모품이라 그냥 두고 쓰기로 했습니다. 수업료를 내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예도 있습니다. 도박에 빠지는 사람은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늦을 때가 있습니다. 도벽에 빠지는 사람도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교도소에 다녀와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질, 자본, 기술, 디지털 문화는 어느덧 우리 마음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풍요로운 시대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영적인 갈망이 커지고 있습니다.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정신적인 피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 가을 단풍, 흘러가는 시냇물, 지저귀는 새의 노래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도 근심의 먼지가, 시기의 먼지가, 욕망의 먼지가 수북이 쌓이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리의 배는 12척이고, 적의 배는 수백 척입니다. 당연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과 부하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었습니다. 장군의 뛰어난 전략을 믿었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려는 부하들의 용기를 믿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고, 제자들은 두려움에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하셨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하셨고, 제자들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무질서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잘 지은 집도 3년만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고, 엉망이 되곤 합니다. 집 앞의 텃밭도 한해만 돌보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착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양들은 목자와 함께 있어야 안전하다고 하셨습니다. 악한 세력은 힘들고 어려운 일 속에서도 우리를 넘어트리지만, 즐겁고 기쁜 일을 통해서도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일지라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살아가는 우리들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하느님,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물리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
오늘의 성인
성 요한 23세(John XXIII)
신분 : 교황
활동연도 : 1881-1963년
같은이름 :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교황 성 요한 23세(Joannes XXIII)는 1881년 11월 25일 이탈리아 베르가모(Bergamo)에서 12km 떨어진 소토 일몬테(Sotto il Monte)에서 가난한 농부인 조반니(Giovanni Roncalli)의 13명의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Angelo Giuseppe Roncalli)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한 요한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제상을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그는 베르가모 신학교에서 2년 간 교육을 받고, 로마(Roma)의 성 아폴리나레 대학(San Apollinare Institute)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이곳에서 신학을 공부를 하던 중, 1902년 10월 영성 지도자인 구속주회의 피토키(Francesco Pitocchi) 신부를 만나면서 “하느님은 모든 것이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Dio tutto, io sono nulla)라는 기본적이면서 근본적인 명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1904년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다음해에 베르가모의 테데스키(G.R. Tedeschi) 주교의 비서로 임명되어 1914년 주교가 사망할 때까지 그의 곁에 머물렀다. 교구장 비서로 일하면서 그는 신학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암브로시우스 도서관에서 연구 작업은 후에 교황 비오 11세(Pius XI)가 된 라티(A.D.A. Ratti) 추기경과의 만남을 갖게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끝난 후 1921년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는 그를 포교성성(현 인류 복음화성)의 이탈리아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그는 이어 1925년 아레오폴리스(Areopolis)의 명목상의 대주교 및 1935년 불가리아의 대목으로 임명되었다. 불가리아 · 그리스의 교황 사절, 파리주재 교황청 대사(1944∼1953년)를 거쳐 1953년 1월 12일에는 사제 추기경으로 임명되었고, 1958년 10월 비오 12세(Pius XII)에 이어 77세의 고령으로 교황에 선출되었다.
교황으로서 요한 23세라는 이름을 선택한 그는 11월 4일 즉위식을 거행하면서 좋은 목자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희망을 피력하였다. 우선 교황이 된 후 처음으로 개최한 추기경 회의에서 추기경 숫자를 70명으로 제한하는, 식스투스 5세(Sixtus V)부터 내려오던 규정을 폐지하였다. 1958년 12월 23명의 추기경을 새로 임명하였는데, 그 중에는 밀라노(Milano) 교구장으로 후에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가 되는 몬티니(Giovanni Battista Montini)도 포함되어 있었다. 1962년까지 그가 임명한 추기경은 모두 87명으로 늘어났다.
1959년 1월 25일 교황은 추기경들에게 로마 교구 시노드 개최, 공의회 개최, 교회법전 개정 등 세 가지 계획을 선언하였다. 로마 교구 시노드는 1960년 1월 24-31일까지 라테란 대성전에서 개최되었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는 교황의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이 공의회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 교인의 일치라는 궁극적인 목적에서 교회의 종교생활을 쇄신하고 그 가르침과 조직을 현대에 맞도록 개혁한다는 취지를 펼쳤다.
그 밖의 괄목할 만한 개혁으로는 그리스 멜키테 총대주교 막시모스(Maximos) 4세의 호소를 받아들여 비잔틴 전례에서 모국어 사용을 허가하는 한편, 미사경본과 시간전례서(성무일도)에 대한 새로운 예식 규정을 인가하고(1960년), 미사 통상문의 성찬 기도에 성 요셉(Josephus)의 이름을 삽입하였으며(1962년), 교회법전 개정을 위한 교황청 위원회를 구성한(1963년) 일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1960년 그리스도교 일치 사무국 개설, 이듬해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 처음으로 로마 가톨릭의 대표가 참가하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비가톨릭 인사들이 참관인으로 초대되는 등 일련의 쇄신이 이어졌다.
1963년 5월 22일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마지막 인사와 함께 강복을 준 교황은 성령 강림 대축일이었던 6월 3일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5년도 채 안된 재임 기간 동안 요한 23세 교황은 인류를 향해 열려 있는 교회가 되도록 가톨릭 교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좋으신 교황’(papa buono)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그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 소송이 시작되어, 2000년 9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복되었다. 그리고 2014년 4월 27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부활 제2주일)에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함께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6월 3일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일인 10월 11일로 변경하여 기념한다.
성녀 마리아 솔레다드(Mary Soledad)
활동년도 : 1821-1887년
신분 :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메리, 미리암, 솔레다드, 아코스타, 토레스
성녀 마리아 솔레다드 토레스 아코스타(Maria Soledad Torres Acosta)는 세례 때에 엠마누엘라(Emmanuela)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녀는 조용한 성품의 소녀로 자랐으며 놀이보다는 기도하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던 그녀가 미카엘 마르티네스 이 산즈(Michael Martinez y Sanz)라는 성모의 종 3회원 신부를 만나게 됨으로써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수많은 병자와 버려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인물이었다.
1851년 미카엘 마르티네스 이 산즈 신부는 7명의 부인들을 모았는데, 그들 가운데 맨 마지막 인물이 바로 엠마누엘라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는 이 수녀회의 실질적인 설립자가 되어 '고통의 성모님'의 가호 아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1861년 '마리아 시녀회'는 겨우 교구 차원의 승인을 얻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였다. 1875년에는 산티아고데쿠바(Santiago de Cuba)에 첫 번째 해외 수녀원을 건립하였다. 성녀 마리아 솔레다드는 35년 동안 이 수녀회의 지도자로서 봉사하였다. 그녀는 1950년 시복되었고,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알렉산데르 사울리 (Alexander Sauli)
활동년도 : 1534-1592년
신분 : 주교
지역 : 파비아(Pavia)
같은 이름 : 알레산드로, 알렉산더, 알렉산델, 알렉싼데르, 알렉싼델
제노에제(Genoese) 가문의 아들로 이탈리아 밀라노(Milano) 태생인 성 알렉산데르 사울리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후에 17세의 나이로 바르나바회 성직자가 되었다. 그는 파비아 대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면서 자비로 도서관을 지어 헌납하기도 하였다. 1556년 그는 같은 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으며 또 뛰어난 설교가로서 높은 존경을 받았다.
이를 지켜보던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는 그를 초빙하여 밀라노 대성당에서 설교하게 했는데, 너무나 청중들을 열광시켰기 때문에 스폰드라티(Sfondrati) 추기경(나중에 그레고리우스 14세 교황이 됨)까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567년 그는 약관 33세의 나이로 총장이 되었고, 1570년에는 코르시카 알레리아 주교로 활약하였다. 그는 20년 동안이나 교구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였기에 '코르시카(Corsica)의 사도'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1741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04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