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의 역사 문화 복구가 진정한 광복이다
한국 역사 문화 바로 세우기 시리즈(5): 2023. 8.15 광복절을 맞으며
글쓴이: 한국 기독교 역사 문화 해설사 김건수 장로
1. 대한(韓)민국의 뿌리를 모르는 한(韓)국인
매년 8월15일 우리는 광복절로 지킨다.
대한민국 건국기념일과 광복절이 중복되어 있어 식민지에서 해방된 광복의 의미가 축소된 감이 없지 않다.
우리는 1948. 8.15.에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세운 대한민국 건국일을 크게 축하하여야 하지만, 나라를 되 찾은 광복절도 온
겨레가 즐거워하는 큰 명절로 삼아야 한다.
오늘 같이 국부도 없고, 생일도 모르는 고아 같은 국민이 되게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건국된지 80년이 가까워 옴에도 우리는 일제가 교활하게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과 중공의 동북 공정 같은 역사 변조 프레임 속에 갇혀 실질적인 광복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역사 문화의 탈취와 변개가 존재하지만 그 중 가장 심각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일제에 의해 탈취당해 우리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삼한의 역사 문화 복구이다.
안타깝게도 거의 한국 국민 모두는 삼한이란 나라가 우리 역사에 존재 했었는지 막연해 하고, 역사 문화 해설사라는 필자 역시 삼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실토할 수 밖에 없다.
고조선과 고구려 백제 신라 그 언저리에 한사군이 존재했다고 배웠를 뿐 삼한이라는 나라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2. 삼한은 어디에 있었던 어떤 나라였는가?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 의하면, 삼국시대 이전에 한반도에 자리 잡은 마한, 진한, 변한을 통칭하는 청동기 시대 한반도 중남부지역에 성립하였던 진국(辰國)에 기원을 둔 것 같다.
이후 마한의 백제국이 백제로, 진한국의 사로국이 신라로, 변한의 구야국이 가야가 되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삼한으로 통치되는 78개 나라의 성격을 두고 여러가지 논의가 진행되어 왔는데, 대개 신지를 정점으로 읍차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로 서열화 되어 있는 상당한 정치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군과 소도에 의한 제사와 정치의 분리, 벼농사와 수리시설, 양잠과 길쌈, 철을 생산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 기록을 얼마나 믿어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하다.
삼한이라는 나라가 대한민국의 뿌리였으며 우리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삼한의 역사 문화를 발굴해 내어 복구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제국도, 대한민국의 이름도 삼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삼한의 역사 문화는 우리 국민 모두가 특별히 다음 세대를 이어갈 젊은이들에게 반드시 알려야 할 정말 소중한 역사 문화인 것이다.
일제는 이를 교활하게 일본 서기에 맞도록, 삼한은 거의 존재하지도 않은 50년 정도의 짧은 기간, 그것도 나라로 불리기에는 작은 부족으로 축소시켜 우리나라 역사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3. 일본식민사관 때문에 생긴 피해
일제 강점기에 한국 민족 말살 정책을 위해 일본 식민사관을 만들고 고문서 21종 20여 만권을 불태웠고, 약 20여 만권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일본은 한글을 쓰지 못하게 했으며, 상투를 자르고, 일본 성과 이름으로 창씨 개명했으며, 지명 등을 바꿔서 한국인이 뿌리를 알 수 없도록, 특히 삼한의 역사와 문화를 한국 역사에서 송두리채 빼버렸다.
총독부의 한반도 교육 지침에 삼국사기를 참조하지 못하게 했으며 <가야는 임나>라는 임나 일본부설을 일본 서기와 함께 가르치도록 하였으며 그 식민사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자신들의 역사 문화로 둔갑시켜 식민사관을 만들고 끝내는 민족 말살 정책으로 우리의 얼과 넋을 빼앗아 가 버린 것이다.
우리 민족은 자신들을 얼빠진 민족, 넋 나간 사람들로 자학하며 열등 시민으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고이즈미 총리가 임나 일본부설은 대륙 진출을 목적으로 조작된 역사라고 사과하였다고 하나 아직 일본 역사 교과서에 <임나는 가야> 라는
왜곡을 계속 수록하며 가르치고 있기에 이를 바로 잡기까지는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의 길은 아직도 먼 것이다.
뜻이 있는 일본인들이 사죄하기는 하나 이는 개인적인 것이지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역사를 학문적, 직업적으로 다루는 국내의 유명 사학자들이 이 식민사관을 정사인냥 지금까지도 가르치고 있으며 이를 바로 잡지 않고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4. 일본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길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대구의 도마박물관장 조국현 박사께서 1988년부터 36년간 삼한의 역사 문화를 비롯한 가야사 등 우리나라 고대 역사 문화를 복구하기 위해 일생을 드림으로 그 동안 매몰되고 감추어졌던 역사 문화가 세상에 드러나고 고대 역사 문화가 조금씩 복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레위지파 제사장 천군의 후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조국현 박사는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소도(도피성) 6곳 중 5곳을 발굴해 낸 장본인으로,
삼한은 일제의 주장대로 50여년간 잠시 존재했던 부족 국가가 아닌 BC 400년 레위지파 제사장들이 한반도에 왔었던 해부터 청도 이서국이 AD 297년 멸망 할 때까지 장장 700년을 이어간 잘 조직된 연방 국가였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가 인도를 거쳐 삼한에 도착한 사실, 도마가 제철소를 지키기 위해 달성 토성의 첫번째 층을 조개와 목책으로 쌓은 사실, 도마의 중매로 인도의
공주였던 허왕후가 김수로왕에게 시집온 사실 등 우리가 알지 못하던 수 많은 역사와 문화들을 발굴된 유물 유적들과 함께 보여줌으로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 시키고 있는 것이다.
조 박사의 강의에 의하면 삼한의 민속 종교는 미신이 아닌 유태교였으며, 가야를 비롯한 삼국의 민속 종교는 기독교였고, 불교가 들어오기 전이었기에 기독교는 외래 종교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5. 한국사 교과서에 들어가야 하는 자료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국사 편찬위원회, 교육 과학 기술부, 두산 동아 40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보충해야 한다고 개정 요청한 상태이다.
"삼한에는 정치적 지배자 외에 제사장인 천군이 있었다. 그리고 신성지역으로 소도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천군은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다. 천군이 주관하는 소도는 군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죄인이라도 이곳에 숨으면 잡아가지 못하였다. 이러한 제사장의 존재에서 고대 신앙의 변화와 제정의 분리를 엿볼 수 있다."
조 박사는 여기에 다음 내용을 보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한의 제사장 천군은 이스라엘의 레위지파 제사장이었고, 소도는 이스라엘 도피성 6곳이 있었던것처럼 삼한의 6곳에 소도가 있었다.
현존하는 소도는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국, 의성군 조문국, 청도군 성곡리, 경주시 사로국, 대구 광역시 압독국 소도 미리이다."
이상의 내용으로도 삼한은 부족 국가 아닌 잘 조직된 연방 국가였음이 입증하고도 남는다.
종교와 정치가 양립한다는 것은 유태교와 기독교에서만 존재한다.
6. 한국 고대사의 유적과 유물
당시 출품되는 유적과 유물은 대부분 제사장들이 사용하는 제사 용품이었다.
국립대구박물관에 삼한 시대에 출품된 유적들에서, 삼한이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에서 발굴되고 있다.
삼한은 당시 중심 제철소를 지키기 위해 달성을 쌓았고, 청동기 제조와 함께 제철 기술이 발달하여 인근 왜와 중국 등에 무역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가 주장한대로 삼한은 50여년 존재했던 부족 국가가 아니라 BC 400년에서 AD 297년, 약 700년 가까이 78개 나라가 연합한
연방제 국가였다.
현재 남한의 면적과 동일한 지역을 통괄했고, 신지, 험측, 번예, 살해, 견지, 읍차의 단계로 서열화 되는 통치 계급이 존재 했다.
농사를 위한 수리 시설이 존재했고, 양잠을 통해 비단이 만들어 졌고, 낙동강 주변에 26개의 제철소가 존재했으며, 강철을 만드는 제철소도 있어 왜와 중국에 무역한 흔적이 출토되고 있다.
달구벌 대구에 레위지파 제사장들이 법궤를 나르는 축제행사가 있었고, 서기 142년에 이 법궤가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도 마쓰리(오미코시)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레위지파 천군 제사장이 운영하는 도피성인 소도가 동일하게 6개소가 있음이 발굴되었고, 천군에 의해 초청된 도마 사도가 삼한에 방문하여 제철소를 운영한 것도 발굴되었다.
사도 도마가 중매하여 가야국 김수로왕과 아유타 허황옥 공주가 결혼한 이야기는 가락국기에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당시 가져온 파사석탑과 보물들로, 그리고 현대과학과 고고학으로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7. 삼한역사의 복구가 진정한 광복
삼한 역사가 복구 될 때 비로소 광복이 완성 되었다고 볼 수 있다.
700년의 왕조는 역사상 그렇게 흔하지 않다.
이 시기는 신구약 중간사의 암흑기에 해당되는 시기로 정경은 침묵했으나, 세계 역사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헬라제국이 왕성하게 확장 되는 시기로 서양과 동방의 역사 문화가 융합되어 헬라 문화가 꽃을 피우는 시기이다.
중동과 지중해 연안에서는 애굽이라는 이집트 제국, 앗수르 제국, 바벨론 제국, 페르시아 제국, 헬라 제국, 로마 제국까지 6개의 제국들이
계속해서 지배하던 그 시기에 극동에서는 그에 못지 않은 나라들이 존재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삼한이다.
그 당시는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이었으며 삼국사기와 가야사, 그리고 이스라엘과 인도의 기록들을 근거로 삼한의 민속 종교는 유태교 였음이 밝혀지고 있고, 삼국시대는 야소교(예수교)가 민속 종교였음이 알려지고 있다.
조박사는 삼한의 언어도 복구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몇 가지 예를 들고 있다.
"한얼님(하늘님, 하느님)의 얼이라는 순수한 삼한의 언어는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엘"에서 비롯되었으며, "얼굴"은 '하나님이 드나드는 굴'을 의미하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 즉 유태교 신자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현재 우리 언어 중 한자가 없는 말은 순수 삼한의 언어이고, 히브리어에서 파생된 우리 말도 많이 존재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그저 그러한 여러 나라 중 하나가 아니라 3개 대륙 중심인 이스라엘을 옛 언약의 제사장 나라로 선택한 하나님께서, 대륙의 끝과 해양이 만나는 땅 끝 한반도 대한민국을 새언약의 제사장 나라로 창세전부터 선택하셨다고 믿을 수 밖에 없다.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재림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도록 우리 민족을 부르신 것이다.
삼한 역사를 공부하여 우리 정체성을 회복하고 진정한 광복을 이루자!
이번 광복절은 삼한 역사 문화를 배우고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출발점이 되게하자!
2023.06.28. 한국 기독교 역사 문화 해설사 김건수 장로
첫댓글
일본식민사관을 극복한 김건수 한국 기독교 역사 문화 해설사님 축하 드립니다.
글쓴이: 임원주 (스토리텔링 작가, 저서: 허왕후 스토리텔링)
영어 단어에 discover는 발견하다는 뜻입니다.
커브를 벗기는 것이 발견입니다.
김건수 장로님은 일본식민사관으로 지워진 삼한의 역사를 발견 하셨습니다.
일본인은 일제강점기에 한국민족 말살정책으로 일본식민사관을 만들어 삼한의 역사 700년을 50년으로 속인 것을 발견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글을 쓰셨네요.
등산가라고 다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닌데,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려면 고산병을 방지하기 위한 산소 적응이 되어야합니다.
삼한의 역사를 확실하게 알려면 국립대구박물관 고대문화실에서 삼한시대의 유물을 알아야합니다.
삼한의 역사는 고고학으로 이곳에서만 사용하는 독특한 용어가 있는데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라는 과학적 시대구분 용어입니다.
김건수 한국 기독교 역사 문화 해설사님의 발견으로 이 내용이 속히 초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들어가기 바랍니다.
아직도 삼한의 역사를 50년으로 생각하고 삼한의 문화사를 모르는 것은 대한민국의 뿌리를 모르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증거가됩니다.
한반도에는 BC 2333년 고조선이 건국되기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는데, 각각의 군장국가(현재의 군수)였고, 이 나라를 숫자가 별처럼 많다하여 '진(辰 별 진)나라'라고 불렀습니다.
고조선이 건국되었으나 진나라는 고조선(유목, 제정 일치)과 문화가 달라서 고조선이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사 교과서의 고조선의 세력범위 참조)
진나라를 이어받은 나라가 삼한이어서, 삼한의 역사를 다룰 때는 진나라와 함께 다루어야 합니다.
진나라와 삼한은 대한민국과 위치와 면적이 같았고, 대한민국의 뿌리입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진나라는 이름만 나오고, 삼한은 고조선이 멸망한(BC 108년) 후 생긴 부여, 동예, 옥저 등과 함께 잠시 있다가 사라진 나라로 나오고 있습니다.
삼한은 삼국시대 이전에 대한민국 땅에 400년 이상 있었던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의 순 우리말이 삼한시대의 말이어서 삼한을 모르면 우리말을 모릅니다.
한국 고대의 우리말과 고대 민속종교의 언어
고고학, 유전학 등이 발달하면서 기록문서가 없던 선사시대 언어의 기원 연구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말의 기원은 9천년전 요하(홍산)에서 농경민이 한반도에 들어와서 한국어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2021.11.11.)
한반도에 살았던 9천년전부터 고조선이 건국되기 전까지 5천년 동안 살았던 한국인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였을까요?
고조선의 선(先)주민이었던 진(辰, 별처럼 많은 군장국가)에 요하말과 북방계, 남방계 언어가 들어와 한자가 없는 우리말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반도의 진(辰)나라 시대 우리말이 공통분모의 말이 되어서,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에 갔을 때나 백제의 서동과 신라의 선화공주가 통역 없이 대화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BC 400년 이스라엘 레위지파 제사장들이 한국에 와서 소도를 다스리는 천군이 되었고, 구약성경의 유태교가 민속종교가 되어서, 엘이 한얼님(하늘님, 하느님)이 되었고, 유태교 성도를 얼굴이라 하였습니다.
1세기 사도 도마가 한국에 왔었고, 삼국시대 민속종교는 기독교였습니다.
신약성경의 헬라어 프뉴마(성령, 바람)가 풍류도(風流徒)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