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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상권 상당 대기 33. 벽이 보이느냐?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강서(江西)에서는 군신부자(君臣父子)를 설명하고, 호남(湖南)에선 그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오늘의 운문선사의 향상일로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강서(江西)에서는 군신부자(君臣父子)를 설명하고,”라고 하신 것은 중국 강서지방에서는 군신부자(君臣父子) 공자가 설파하고 맹자가 주창한 유교(儒敎)에 나오는 삼강오륜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한창 유행하여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수많은 제자들에 의하여 중국의 삶의 철학적 가치관을 설파하고 있을 때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도 이조시대에는 불교를 배척하고 탄압하며 유교(儒敎)를 받아들여 국가의 통치철학과 양반사회를 이루어 선비사상을 기본으로 국가가 체택하여 왕과 신하의 관계와 가정의 부부관계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국가의 기본철학으로 다져 왔듯이 그럼 군신부자(君臣父子)는 삼강오륜(三監五倫)에 대하여 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이란?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유교에서 강조하는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 원칙을 의미합니다. 삼강(三綱)은 군신(君臣), 부자(父子), 부부(夫婦) 간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세 가지 큰 도리이며, 오륜(五倫)은 인간관계에서 기본이 되는 다섯 가지 윤리를 의미합니다. 이는 조선 시대를 비롯한 동아시아 유교 사회에서 중요한 윤리적 가치로 여겨졌습니다.
삼강(三綱)의 뜻과 의미 삼강(三綱)은 유교에서 사람이 따라야 할 세 가지 기본 도리를 의미합니다.
첫째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은 신하의 근본이다." 신하는 임금을 충성스럽게 섬겨야 한다. 두 번째 부위자강(父爲子綱) – "아버지는 자식의 근본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부위부강(夫爲婦綱) "남편은 아내의 근본이다." 아내는 남편을 따라야 한다. 이 세 가지 도리는 유교적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원리로 여겨졌으며, 조선 시대에는 강력한 사회 규범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륜(五倫)의 뜻과 의미 오륜(五倫)은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윤리를 의미합니다.
부자유친(父子有親) "부자(父子) 사이에는 친애(親愛)가 있어야 한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친밀한 정을 나누어야 한다.
군신유의(君臣有義) "군신(君臣)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
임금과 신하는 서로 의리를 지켜야 한다.
부부유별(夫婦有別) "부부(夫婦)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남편과 아내는 각자의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序)가 있어야 한다.
연장자는 아랫사람을 보살피고, 젊은 사람은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
붕우유신(朋友有信) "붕우(朋友) 사이에는 신의(信義)가 있어야 한다." 친구 사이에는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오륜은 개인과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윤리로 작용하며, 조선 시대에는 가족과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되었습니다.
삼강오륜의 유래와 역사적 배경 삼강오륜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이후 한(漢)나라 시대에 동중서(董仲舒)에 의해 정립되었습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性理學)이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삼강오륜이 사회의 핵심 윤리로 강조되었습니다.
조선 시대 왕들은 삼강오륜을 강조하며, 이를 어기는 행위를 중죄로 다루었습니다. 또한, 효(孝)와 충(忠)을 기본 덕목으로 삼아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활용되었습니다.
삼강오륜의 현대적 해석 오늘날 삼강오륜의 개념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이 현대 사회에서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지만, 삼강오륜에서 강조하는 인간관계의 기본 윤리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부자유친 →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과 존중" 군신유의 → "리더와 구성원 간의 신뢰와 책임" 부부유별 → "부부 간의 상호 존중과 평등" 장유유서 → "세대 간의 배려와 이해" 붕우유신 → "친구 간의 신뢰와 우정" 현대 사회에서는 가부장적 질서보다는 상호 존중과 평등을 바탕으로 삼강오륜의 가치를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유교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윤리를 정립한 중요한 개념입니다. 전통적으로는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를 상호 존중과 신뢰의 관계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강오륜의 핵심은 결국 인간관계에서의 도덕과 책임입니다. 시대에 따라 적용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정신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이렇게 유교가 한창 진행될 때임을 운문선사는 강서지방에서는 이것이 삶을 살아가는 철학적 종교적으로 정착되어가지만 “호남(湖南)에선 그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라고 하시는 것은 그 당시에만 하더라도 공자와 맹자의 철학적 종교적으로 굳어져 갈 때지만 호남지방을 아직 불교보다는 중국에서 발생한 도교(道敎)를 아직 숭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도교의 기원과 그 특색에 대하여 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도교의 기원과 그 특색 신선방술과 도교
기원전 3세기 무렵 중국에서는 신선설이 생겨났다. 이 신선설은 중국 고대에 있었던 산악신앙(山岳信仰)과 깊은 관계가 있다. 여기에 중국 종교의 원초적 형태인 무술(巫術) · 자연숭배 등이 혼합되어,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술(方術)이 생겨났다. 이 방술은 전국시대에 이미 성립되어 민간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방술을 행사하는 사람을 방사(方士)라고 하는데, 방사가 제왕과 밀접하게 된 것은 진시황(秦始皇) 때부터였고, 한무제(漢武渧) 때에는 제왕 측근에서 거의 떠나지 않을 정도였으므로 방술은 상층사회에 굳게 뿌리 내리게 되었다. 한편, 신선설이나 방술은 호소할 곳 없는 일반 백성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기에 이르러 종교적인 힘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변천하였다.
전한 말부터 전설의 임금인 황제(黃帝)와 『도덕경』의 저자로 전해지는 노자(老子)가 초인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신선으로 꼽혀 황로신앙(黃老信仰)이 대두하였다. 방사들의 조작적인 선전과 참위설(讖緯說)의 유행이 황로신앙을 가열시켰다. 이러한 황로신앙을 가미시킨 신선방술의 내용이 조정, 확대되고 신흥종교였던 불교의 영향을 받아 도교로 개괄되는 한 종교로 형태를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신선사상은 중국의 그것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도교와 도가사상
도교가 종교의 형태로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莊子)』 · 『열자(列子)』 등에 드러나 있는 도가사상은 존재하고 있었다. 동서고금에 도교와 도가사상을 혼동하는 예가 많다. 도교와 도가사상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도교는 어디까지나 종교이므로 근본적으로는 도가사상과 뚜렷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도교는 본래 피안(彼岸)의 관념이 의외로 희박하고, 오히려 현세의 길복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종교로서의 이론을 보강할 필요가 생겼던 것이고,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편으로 도가의 사상이나 그 논리를 받아 들이게 되었으므로 도교와 도가사상은 그 관계가 밀접해졌다. 도교는 마치 큰 바다가 작고 큰 물줄기들을 두루 받아 들이는 것같이, 온갖 종교 · 사상 · 풍속 등을 자체에 편리하게 흡수, 조절하는 특이한 성질을 지니고 변천해 왔다.
도가사상은 도교가 흡수, 조절한 주요한 사상의 하나이지, 본래부터 도교가 곧 도가사상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도가사상은 도교가 그 사상과 논리를 흡수한 이후에도 사상 · 문학 · 예술 등 각 방면에 작용하면서 독자적으로 전개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도가사상은 도교라는 종교와는 엄연히 구별되어서 역대 지식인들에 의하여 연구, 수용되어 한국사상 형성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도교의 정착과 그 특색
도교는 4세기 이후 비로소 불교의 체제와 조직을 모방하고 불법(佛法)의 전개방식 등을 받아 들여, 교리의 체계화와 종교체제의 정비를 꾀하였다. 도교는 본래 자연발생적인 종교였기 때문에 엄밀하게 따질 경우, 교조(敎祖)라든가 개산조(開山祖)라든가 하는 것을 밝혀낼 수는 없다. 노자를 교조로 내세우기도 하나 그것 역시 종교의 체제를 갖추게 하려는 의식이 생겨난 뒤의 일이다.
도교라는 종교의 성립과정과 그것이 목적하는 바를 요약해 보면, 도교는 고대의 민간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신선설을 중심에 두고, 거기에다 도가 · 역리 · 음양 · 오행 · 참위 · 의술 · 점성 등의 법술과 무술적인 신앙을 보태고, 그것을 불교의 체제와 조직을 본받아 뭉뚱그린 종교로, 불로장생을 주요 목적으로 삼고 현세의 길복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도교는 유교와 불교는 물론 다른 신앙까지 큰 마찰 없이 받아 들여서 포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도교라는 명목으로 포괄되는 신앙이나 행사의 내용이 매우 복잡해졌다. 도교는 신선설과 연결되어 불로장생을 이룩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게 됨에 따라 건강관리를 중시하여, 심리적으로는 사과신적 신앙(司過神的信仰)과 주술적인 방법이 도입되었고, 물리적으로는 호흡조절인 조식(調息), 곡식 먹지 않기 벽곡(辟穀), 관절의 조절 도인(導引), 남녀 방사의 조화 방중(房中) 등의 방법이 채택되었다 여기서 질병치료에서 불로장생까지 연결되는 도교의학의 성립을 보게 되는데, 그 극치가 금단(金丹)이다. 그러나 금단은 현실적으로는 생명을 잃게 하는 독극물일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하여 금단의 연조(煉造)를 연금술 같은 물리화학적인 방술에서 끌어 내면서 수련적인 단학(丹學)으로 전개하여, 도법을 닦는 의의와 결합시키는 데로 기울어졌다. 이렇게 하여 도교의 금단도(金丹道)는 연금술적인 외단(外丹)과 수련적인 내단(內丹)으로 크게 나누어졌고, 결국은 내 · 외 단의 통섭(統攝)이라는 방향으로 이론체계를 정립시켰다.
비승(飛升) 은화(隱化) 및 시해(尸解)
선단을 먹거나 수련을 통해 공행(功行)을 쌓아 득도하거나 하여 신선이 되는 계제도 여러 가지로 다루어졌다. 가장 화려하고 찬란한 것은 비승(飛升)이다. 비승은 신선이 되어 날아서 천상 선계로 올라가는 것으로 그 실례가 몇 가지 전해진다. 환 진인(桓眞人)의 경우 도교의 대인물인 도홍경(陶弘景, 456∼536)의 등외(等外) 제자로 있으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공행을 쌓아 그의 스승인 도홍경을 제쳐 놓고 선계 천존(天尊)의 부름을 받아 동자(童子)가 이끄는 선가(仙駕)와 의장(儀仗)의 영접을 받고 동자가 주는 선단을 마시고 선가(仙駕)에 올라 타고 선계로 날아 올라 갔다.
당나라 말기의 신라 유당 학생인 김가기(金可記)는 내단 수련에 성공하고 공행이 차서 미리 정해진 날짜에 당나라의 장안 종남산(終南山)에서 선계의 의장에 옹위되어 선단의 복용이라는 절차를 거치는 일 없이 백주에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상 선계로 곧장 날아 올라 갔다. 이러한 비승(飛升)의 예는 이 밖에도 몇 가지 전해진다.
은화는 비승같이 유별나게 선화(仙化)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길로 신선이 되는 것이다. 다만 비승의 경우같이 죽음의 형식을 전연 취하지 않고 곧장 신선이 되어 선계로 날아 올라가는 사례는 그리 흔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그 밖에는 신선이 되는 일이 없다고 해버리기에는 아쉬움이 없지 않으므로 죽는 형식만 취하고 실제로는 죽지 않고 신선이 되는 길을 터놓았다.
시해(尸解)가 그것이다. 시해에는 금목수화토 오행에 걸친 각기 다른 방법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검시해(劍尸解)는, 평소 지니고 다니던 검을 임종하는 자리에 세워 놓고 임종을 하면 사람은 신선이 되어 선계로 올라 가고 지켜 보는 가족에게는 그 검이 시신으로 보여 그것을 매장한다는 순서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오행의 금 시해(金尸解)에 속한다고 하겠다.
천계(天界) 삼십육천(三十六天)과 동천복지(洞天福地)
도교는 신선설을 기조로 하고 있으므로 불로장생과 연결되는 선단, 불로초, 신비한 의약, 각 계층의 신선, 초능력이 따르는 각종 도술, 천상과 지상의 허다한 선계 등등 환상적인 경지를 크게 개척해 놓았다. 건강하게 장수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공통된 욕구이므로 도교에서 개척한 불로장생과 연결되는 환상의 세계가 허황되기는 하나 그 나름대로 위안과 희열을 가져다 주었으므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있었다.
도교에서는 천계가 욕계 육천(欲界六天), 색계 십팔천(色界十八天), 무색계 사천(無色界四天), 상사천(上四天 또는 四梵天), 삼청경(三淸境), 대라천(大羅天) 도합 36천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최하위의 욕계 육천에 사는 사람도 수명이 1만 년이고, 그 위의 색계 십팔천의 사람은 수명이 1억만 년이며, 무색계 사천에 사는 사람은 수명이 억겁 년(億劫年)이다. 상사천부터는 사람을 죽게 하는 삼재(三災)가 없어서 죽음이 취소되고 그야말로 장생불사하여 무량수를 누리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득도하여 신선이 되어 천계에 오르면 수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라천에는 도교의 최고신인 원시 천존(元始天尊)이 있고, 그 아래의 옥청(玉淸)에 청미천(淸微天), 원시천존(元始天尊) 상청(上淸)에는 우여천(禹餘天), 영보천존(靈寶天尊)이있고, 태청(太淸)에는 대적천(大赤天), 도덕천존(道德天尊) 세 군데로 이루어진 삼청경에는 각각 중앙과 좌우의 세 궁전이 있고 그 궁전에는 선왕(仙王) · 선공(仙公) · 선경(仙卿) · 선백(仙伯) · 선대부(仙大夫)가 있어 현세의 궁정조직 같이 되어 있다.
한편 도교에서는 또 십주(十洲), 삼도(三島), 십대동천(十大洞天), 삼십육동천(三十六洞天), 칠십이복지(七十二福地) 등 지상에도 선진인(仙眞人)이 사는 동천복지로 불리는 각종의 낙원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선진인이 사는 천지간의 선계와 그밖에 있는 속계가 있는데, 선계와 속계 사이에는 내왕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밖에 도교에서는 성수신앙(星宿信仰)을 받아 들여, 북극성(北極星:현천상제(玄天上帝), 북두성(北斗星:북두신군(北斗神君), 남두성(南斗星)인 남극장생대제(南極長生大帝), 문창성(文昌星)인 문창창제군(文昌帝君), 삼태성(三台星) 등을 경배한다. 한편 도교에서 받드는 신은 성황신(城隍神) · 토지신 · 삼관(三官) · 사어(四御) · 재신(財神) · 문신(門神) · 조신(竈神) · 왕령관(王靈官) · 관제(關帝) · 낭낭(娘娘) · 용왕 · 팔선(八仙) · 여조(呂祖) · 마조(媽祖) 등 그 수효가 적지 않다.
중국 도교 교단의 성립과 변천 원시 도교 교단
후한(後漢) 말년(2세기에서 3세기 초에 걸친 시기)에는 정치의 난맥으로 혼란이 극심해지고 환관(宦官)의 횡포와 부호들의 방종이 심해서 일반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의지할 곳을 찾지 못했다. 이러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도교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태평도(太平道)와 오두미도(五斗米道)라는 종교 집단이 생겨났다. 후한 순제(順帝:125∼144 재위) 때 우길(于吉 또는 干吉)이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를 감득(感得)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종교집단을 만들고 그 도서명(道書名)을 따서 태평도를 표방했다.
우길의 뒤를 이어 장각(張角)이 교주가 되어 태평도의 조직을 굳히고 도서(道書) · 부적(符籍) · 참회(懺悔) 등을 사용하여 시행한 질병치료의 방법이 주효해서 많은 도당을 얻어 왕실을 타도하고 자기가 천하를 잡을 욕심으로 무장 봉기했다. 이른바 황건적(黃巾賊)의 난(亂)이다. 장각이 전사한 후 태평도는 몰락해 버렸다.
태평도보다는 좀 늦게 장능(張陵), 또는 장도능(張道陵:?∼178)이 후한(後漢)의 환제(桓帝 : 146~167)와 영제(靈帝:147∼189) 때에 오두미도를 시작했다. 오두미도가 태평도와 계승관계가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장능은 만년에 유학을 버리고 장생법을 배워 황제(黃帝)의 구정단법(九鼎丹法)을 터득했고, 또 사천(四川) 학명산(鶴鳴山)에서 도서(道書)의 저술과 수도에 전념한 끝에 수많은 신이 강림해서 신출정일맹위법(新出正一盟威法)을 그에게 전수했다는 것이다. 장능은 이 법으로 질병을 고쳐 주어 수많은 신도를 얻어 쌀과 비단을 바치는 법을 정하고, 신도를 통할하는 직책을 만들어 종교집단을 이루었다.
장능의 손자 장노(張魯)가 오두미도를 계승하여 그 교법과 조직을 완성시켜, 한 왕국을 방불케 하는 조직화된 종교집단을 성립시켰다. 장노가 조부 장능을 천사(天師)라 칭해 오두미도를 천사도(天師道)라고도 불렀다. 부(父) 장형(張衡)을 사사(嗣師), 자신을 계사(系師)라 하여 조부손이 법계(法系)를 계승한 것같이 말해 삼장(三張)으로 합칭하기도 한다. 장노가 조조(曹操, 155∼220)에게 굴복해 죽으면서 교세가 약해졌으나 천사도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정일교(正一敎)의 전신으로 도교 정통의 자리를 차지해 내려왔다. 태평도와 오두미도 내지 천사도는 부적과 도록(道籙)을 존중한다 하여 부록파(符籙派)로 불리기도 한다.
단정파라는 집단이 있었으니 복용하면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된다는 선단(仙丹) 또는 금단(金丹)으로 불리는 영약(靈藥)의 연조(煉造)는 선진(先秦)시대부터 전해지지만 후한 말기 오(吳)의 위백양(魏伯陽, 147∼167?)이 저술한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약칭 참동계)는 금단도(金丹道)를 천명한 대표적인 도서(道書)로 받들어진다. 다만 위백양은 자기가 저술한 『주역참동계』의 방법에 따라 연조한 금단을 먹고 일단은 죽었다가 되살아나 다시 약을 먹고 진인(眞人)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금단 연조에 주력하는 이 계열의 도인(道人)들을 단정파(丹鼎派)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교는 그 역사를 다 이야기 하려면 아주 긴 시간을 설명해야 하나 이것으로 마치고 운문선사는 이렇게 “강서(江西)에서는 군신부자(君臣父子)를 설명하고, 호남(湖南)에선 그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라고 하시어 불교의 정맥인 선사로써 사마외도들의 득세가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한참 잠자코 있다가 "벽이 보이느냐?" 하셨다.] 이른 사마외도의 신통술은 다 조작된 사술이지 생사를 가르는 붐교의 근본과는 다르다라는 뜻으로 말후구를 날렸습니다. 벽이 보입니까? ㅎㅎㅎㅎㅎ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첫댓글 운문록을 통하여 인연성불 요인성불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