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30.11:25 金. 맑음
뉴욕, 뉴욕.
코카콜라와 뉴욕 메츠.
월요일 오후, 시카고 오헤어공항에서 정시에 출발한 US Airways 1994기가 이륙을 한 뒤 제 항로에 자리를 잡자 서빙카트를 밀고 다니던 건장한 남자 승무원이 무엇을 드시겠느냐고 물어왔다. “Coke, Please.” 일단 미국에 오면 비행기 안에서 코카콜라를 한 캔 마셔봐야 미국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내 혀끝으로는 그 민감한 맛을 “이거다” 하고 잡아낼 수는 없지만 한국공장에서 생산하는 코카콜라와 미국현지공장에서 생산하는 코카콜라의 맛이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한국 코카콜라는 농축된 원액을 미국본사에서 가져다가 물과 탄산을 넣고 캔이나 페트병에 넣어서 판매를 하는데, 콜라의 성분은 이미 밝혀져 있으나 그 배합 비율은 영업비밀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가져온 원액에 물과 탄산을 넣는다고 했으니 콜라의 농도와 탄산의 강도는 현지마다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일까? 어떤 사람들은 미국 코카콜라가 더 달고 진하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made in 미제라서 더 좋게 느껴지나? 하여튼 그렇다. 얼음 몇 조각을 넣은 플라스틱 컵에 캔 뚜껑을 막 딴 콜라를 부으면 갈색의 거품이 솟아올라 흘러넘친다. 거품이 가라앉고 나면 막상 남아있는 콜라는 컵의 삼분의 일정도 밖에는 안 된다. 이내 사라지고 마는 컵의 삼분의 이를 채우고 있던 거품의 부피가 실제 우리가 바라보는 미국에 대한 환상의 부피와 얼마나 일치하고 있을까? 미국이라는 거대한 현상 속에서 실재實在와 환상幻想을 구분해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이나 시각은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해야할까?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 미묘하게 얽혀드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벽을 나는 미국산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또 다시 두드려보고 싶어졌다.
‘지구상에 지금처럼 포유류의 체구가 컸던 적은 없었다.’는 글은 얼마 전에 어느 칼럼에서 내가 읽었던 글 중 하나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옆 좌석에 타고 있었던 콧수염이 하얀 대머리 미국인 아저씨의 체격만 봐도 금방 공감이 가는 말이다. 나도 한국에서는 작지 않은 체구인데, 그때 내 형국이 대학원생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말 잘 듣는 유치원생의 모양새였을 것이다. 내 앞좌석에 머리가 보름달덩이처럼 불쑥 솟아나온 미국인도, 대각선 방향에 앉아있는 미국인 아저씨도 모두 신장 2m에 체중 130kg은 거뜬히 넘길 듯한 거구들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저렇게 거대하게 만들었을까? 물론 유전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상당부분 음식 탓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고기와 우유와 치즈를 많이 먹으면 저렇게 체구가 커질까? 필요한 것은 단지 시간일 뿐이고 결국 우리도 차츰 그렇게 돼 갈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야 물론 성인병과 함께 질병도 비슷하게 닮아가겠지만.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명치유신 한참 전인 18세기경 일본 풍속화를 보면 허리에 찬 긴 칼을 땅바닥에 질질 끌고 있는 일본 사무라이의 키는 150cm에도 못 미칠 단신이었다. 왜倭라는 한자는 한국과 중국에서 일본을 가리키는 말인데, 정확하게 말한다면 일본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었다. 이 왜倭속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있어서 일본사람을 왜인倭人으로나 일본 해적 떼를 왜구倭寇로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왜倭가 왜矮에서 나왔다는 유력한 설이 있다. 왜矮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난장이 왜, 줄일 왜 라는 새김이 붙어있다. 이렇게 단신이었던 일본사람들이 1868년 명치유신 이래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식생활의 변화를 받아들인 지 150여 년이 지나자 이제는 평균 키가 20cm이상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산케이 신문 기사에 의하면 2010년 기준으로 일본인 남성 평균이 170.5cm, 여성이 158.3cm라고 발표한 바 있다. 아, 그렇다.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자연환경적인 요소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거대한 북미 대륙권에서 사는 미국인에 비해 협소한 섬마을에서 사는 일본인들도 식생활이 완전히 서구화되고 많은 시간이 더 지나간다고 해서 그만큼 체구가 커질는지는 글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내 옆 좌석에 앉아있는 이렇게 거대한 체구의 미국인 아저씨가 팔짱을 낀 채 의젓한 자세로 풍채 좋게 있더니만 얼마 전부터 고개를 수그리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어서 슬그머니 건너다보았더니 스마트폰을 켜서 무릎에 올려놓고 이미 구식인 풍선 터트리기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얗고 커다란 손가락으로 조그마한 자판을 눌러가며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장면은 미국이라는 커다란 나라의 작은 애교라고 보아야할지 나는 고개를 슬렁슬렁 흔들어 보았다.
중간 기착지인 필라델피아공항에 일단 도착을 했는데, 일반적으로 국제공항 규모에서는 터미널에서 다른 터미널로 옮길 때면 터미널을 이어주는 전철을 타고 이동하기 마련이지만 청사가 노후화되어 있는 이곳에서는 구식방법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이곳에서 뉴욕까지 가는 비행기는 규모도 더 작아지고 승무원도 두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가는 동안 물 한 잔 주지 않는 걸 보니 대도시인 뉴욕 인심을 서서히 체감할 수 있었다. 뉴욕에는 3개의 공항이 있는데, 우리들은 라구아디아LGA공항에 정시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나니 밤9시30분이 되었다. 출구 옆에 안내소가 있어서 그곳에 비치되어 있는 맨해튼 버스노선도와 그에 더해서 구경을 가지도 않을 브루클린, 브롱크스, 스태튼 아일랜드, 그리고 킌스 버스노선도까지 욕심 많게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뉴욕 지하철노선도가 보이지 않아 그곳에 앉아 있는 커다란 펭귄처럼 착하게 생긴 백인 아주머니께 뉴욕 지하철노선도를 달라고 했더니 데스크 아래서 한 장을 꺼내 주었다. 가족들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이미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몇 번이고 눈에 익혀둔 뉴욕 지하철노선도를 펴놓고 노선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마도 내가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시내로 가려는 줄 알았던지 펭귄댁이 라구아디아공항에서 맨해튼까지 가는 몇 가지 방법들을 익숙한 솜씨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괜한 수고를 끼치는 것 같아 짐이 많아 택시로 갈 거라고 말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면서 “OK, good” 하면서 밝게 웃어주었다. 우리는 일행이 세 사람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나 택시를 타나 비용이 거의 비슷했다. 이곳 라구아디아공항에서 딸아이 아파트가 있는 곳까지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 차들이 약간 붐비기는 했지만 대략 20분가량 걸려 딸아이 아파트에 도착을 했다. 뉴욕의 밤은 살랑거리는 5월의 바람들 사이로 오렌지빛 가로등과 차량의 전조등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뉴욕시의 관광지도와 지하철노선도를 다 외우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큰 단위의 얼개를 파악하고 있으면 뉴욕이라는 도시의 개념이 머릿속에 쉽게 들어오게 된다. 뉴욕은 뉴욕주의 남동단인 뉴욕만灣으로 흘러드는 허드슨강 어귀에 위치하고 있는데, 맨해튼, 브롱크스, 브루클린, 퀸스, 스태튼 아일랜드 등 5개의 구(borough)로 이루어져 있는 미국 최대의 항구도시이다. 이 중 우리가 보통 뉴욕이라고 말할 때는 뉴욕시의 중심부인 맨해튼을 가리키는데, 맨해튼은 왼쪽으로 허드슨강, 오른편으로 이스트강, 그리고 위쪽으로는 할렘강에 둘러싸여 있어서 위쪽 귀퉁이를 한 입 베어 먹은 기다란 고구마처럼 생겨먹은 섬이다. 그리고 위쪽부터 순서대로 살펴보면 흑인거주 지역으로 알려진 할렘, 정확한 장방형 꼴의 센츄럴파크, 가장 번화한 중심지인 타임스 스퀘어, 미국철도의 역사를 품고 있는 그랜드센츄럴 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유니언 스퀘어, 소호지구, 리틀 이탈리아, 차이나타운, 그리고 맨 아래쪽에 금융가인 월스트리트가 있다. 맨해튼은 바둑판 모양으로 가로와 세로금으로 나누어 놓아서 가로길은 Street, 세로길은 Avenue 라고 부른다. 딸아이 아파트는 센츄럴파크 옆에 위치한 90rd St.에 있어서 센츄럴파크 산책과 가장 역사가 오래된 6번선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에 아주 편리하였다. 사실 이렇게 뉴욕을 정리를 하는 데는 10분이면 족하겠지만 뉴욕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훌륭하게 이해를 하기까지에는 내 머리로는 대략 이틀은 걸린 것 같았다. 교통이 복잡한 뉴욕에서는 대중교통수단으로 지하철 이용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고 편리한데, 지하철노선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괜히 기가 죽는다. 뉴욕 지하철노선도가 그렇다. 내용을 알고 있으면 참 잘 만들어진 지하철노선들인데 처음 보면 도대체 이 복잡한 미로를 어떻게 돌아다니나 하는 한숨이 밀려나온다. 하지만 복잡하든 말든 지하철노선도는 지하철노선도일 뿐이니까 서울에서처럼 그냥 안내판을 잘 봐가면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목적지에 척척 데려다준다. 사실은 나도 서울에서 처음에는 고속터미널역이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몇 번 헤맨 일이 있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던가? 망설임이나 되새김, 그리고 여유가 없는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고.
뉴욕까지 오던 비행기에서 별로 얻어먹은 것이 없어서였던지 아파트에 들어서자 배가 고파왔다. 이미 밤10시30분이 지난 시간이라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았고 딸아이 냉장고라도 열어봐야지 하는 참인데, 딸아이가 “아빠, 뉴욕도 자정까지 배달해주는 음식점이 있거든요.”하더니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더니만 아내에게 카드를 달래서 인터넷 결제를 시켰다. 한 이십분쯤 지나자 인터폰이 울리고 음식이 배달되어왔다. 엄마 아빠 입맛을 고려해 중국음식을 시켰는데, 의외로 우동국물도 괜찮았고, 볶음국수나 라조기도 입맛에 잘 맞았다. 배가 부르자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 솟아났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방송을 봐야지 하면서 TV를 켜고 앵커 네 명을 교체해가면서 하루 내내 뉴스만 전해주는 채널을 돌려 뉴스를 들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스포츠 채널을 알아내어 밤에는 프로 야구팀인 뉴욕 메츠팀 경기를 자주 보았다. 뉴욕 메츠는 연고지가 뉴욕주의 뉴욕이고 대체로 리그의 하위를 맴도는 약팀인데, 내가 뉴욕 메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팀에서 나를 필요로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 때문이었다. 뉴욕 메츠의 게임을 보고 있노라면 투수 선발진도 괜찮고 안타도 심심치 않게 잘 쳐내지만 불펜이 선발진에 비해 약한데다가 장거리 타자가 없어서 타선의 무게가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 되고 있다. 결국 뒷심이 부족해서 한 번 밀리기 시작한 게임은 뒤집어엎을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 나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래서 나 같은 홈런포를 장착하고 있는 장거리 타자를 영입한다면 단숨에 최강팀으로 등극을 할 터인데 아직까지는 서로 인연이 아닌 모양인지 연락이 없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뉴욕 메츠팀의 스카우터들은 내가 뉴욕에 와있는 줄도 모를 테니 나도 내일부터는 뉴욕시 구경을 하면서 마음 편하게 미국복권이나 사며 돌아다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거의 불가능한 확률의 선택 최정상에 있는 것이 복권 맞추기라면 인생人生이란 그 보다 한수 위인 불가해 불가역不可解 不可易한 것이 아니겠는가?
(- 코카콜라와 뉴욕 메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