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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경 교무님의 아린 시절 직접 겪은 이야기입니다~
보리밭 그림은 별도구요~~
보리밟기/자유인께서 올려주신 글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님이 저를 단련 시키시던
가르침을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보리밟기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자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할아버지 집을 떠나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매우 사랑하였지만 표현을 거의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놀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지기를 싫어했습니다. 힘이 세고 자만심이 강하여 날마다 싸움질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싸움을 잘 했던 것은 아닙니다. 싸움도 갈수록 늡니다. 처음에는 용기가 없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 지냈지만 싸움에 이길 때마다 두려움도 차츰 없어지고 자만심이 커졌습니다. 그렇지만 억지를 부려 남을 괴롭히거나 자신이 먼저 싸움을 거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나중에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여 매일 싸움을 했습니다. 상대방은 패거리였지만 본인은 친한 친구들이 있기는 했지만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싸우면 거의 이겼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매일 싸움하던 그 성질로 동생들을 괴롭혔습니다. 나의 거친 행동을 지켜본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겨울 망아지처럼 날뛰는 거친 성격을 변화시킬 계획을 세우셨던 것 같습니다. 그 방법으로 아버지는 내게 보리를 밟기를 시켜야겠다고 작정했습니다. 그해 겨울은 내게 있어 유난히 긴 겨울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아침밥을 먹고 나자,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재모야 이제 방학을 했으니 먼저 하루일과표를 작성해라. 네 일과표에서 오전은 보리 밟는 시간으로 정해라. 그리고 오늘부터 즉시 보리를 밟기를 시작하자. 춥다고 방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 바람이 세니 감기 들지 않도록 옷을 단단히 껴입어라.” 하시면서 자신이 쓰시던 명주목도리를 내 목에 감아주셨습니다. 나는 막 고삐를 뚫은 송아지 마냥 끌려가듯이 아버지를 따라 나섰습니다. 밭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려 녹색의 어린 보릿잎에 솜털처럼 덮여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생물이 움츠리고 있는 이 추운 겨울 하얀 서리에 덮여서도 여전히 파릇파릇 자라고 있는 보리를 보아라. 다른 초목들이 서리 한번 맞으면 금새 죽는 것과는 달리 보리는 추운 겨울을 나지 않으면 이삭이 생기지 않는다. 지금 이 보리는 겉으로는 추위에 꼼짝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열심히 자라고 있다. 따뜻한 방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 보다는 푸른 하늘과 푸른 보리밭을 감상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 보리의 꿋꿋함을 배우는 것이 더 훌륭한 공부가 되지 않겠니?” 아버지는 보리밭 한 모서리에 쪼그리고 앉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재모야 이리 와 여기 좀 보아라.” 하시며 손으로 서릿발이 서있는 보리를 흙 채 들어 올리며 물으셨습니다. “이게 무엇이냐?” “서릿발입니다.” “그래, 맞았다. 이렇게 서릿발이 뿌리를 밀어 올려 뿌리가 잘리고, 뿌리 사이에 공간이 생겨 그 사이로 공기가 들어가 건조해지면 흙에 닿지 못한 뿌리가 마르게 되어 결국 보리가 죽게 된다. 죽지 않게 하려면 보리를 밟아 주어야 한다. 보리를 밟아 주면 밟힐 때의 자극으로 추위를 견딜 수 있게 되고, 뿌리 사이에 공기가 들어갈 틈이 없어 뿌리가 튼튼해져 날씨가 풀리면 잘 자라게 된다. 또 잘라진 뿌리에서 잔뿌리가 많이 생겨 줄기의 수도 많아진다. 그것을 분얼이라 하는데, 분얼을 많이 해야만 이삭이 많이 생기게 된다. 이제 보리밟기가 얼마나 중요한 줄 이해했겠지? 금년 겨울 보리밟기는 네가 책임을 져야겠다.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면 보리농사를 망치게 되니, 올 보리농사는 네 손에 달렸다. 우리가 내년에 굶지 않고 잘 지내는 것은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잘 할 수 있겠느냐?” “예.” 나는 자신의 임무가 중요하다는 말에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세 좋게 보리를 밟아 나갔습니다. 그러나 줄곧 망둥이처럼 날뛰던 내게 지루함은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언덕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는 보리밭 고랑은 가슴을 답답하게 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건성으로 대충대충 보리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그 모양을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다가와 직접 시범을 보이시며 촘촘히 보리밭을 밟도록 주의를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보리밭에 혼자 남겨두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실증이 나, 조금 밟고 언덕너머를 바라보며 얼마나 남아 있나 살펴보고, 다시 조금 밟고 언덕 저편을 바라보며 조급증이 나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지루한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내 눈에 비친 보리밭은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었습니다. 일을 하다 싫증이 나면 하늘을 보았습니다. 푸른 하늘은 아득히 먼 곳까지 이어지고, 가끔 흰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보리를 밟아 빨리 일을 끝내고 따뜻한 방안에서 편히 쉴 생각과 친구들과 놀 생각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가 다시 나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재모야, 무슨 생각을 하면서 보리를 밟느냐?” “연날리기도 하고, 팽이치기도 하면서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한잠 자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내 생각에는 보리를 밟으며 마음을 비우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보리도 밟고 수양도 하고 얼마나 좋으냐? 저 하늘을 보아라. 하늘이 어떠하냐? 구름 한점 없이 맑지 않느냐. 우리 마음도 본래 그와 같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요란함이 없다. 네 요란한 마음에 어디서 나왔는가 잘 살펴보아라. 그러면 마음이 본래 고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요하니까 한 티끌도 가린 바가 없어서 밝은 것이고, 밝으니까 바른 것이다.” 마음이 본래 고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날밤 아버지는 나를 불러 앉히고 한자를 정성스럽게 쓴 노트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글씨가 얼마나 예쁘던지 글씨를 보는 순간 글씨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글씨는 책에 나오는 글씨와는 다르면서도 더 이상의 조화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의 균형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부터 밤마다 나와 마음공부를 해보자. 여기에 적은 것은 보조국사가 지으신 <수심결>이라는 글인데, 한자의 문리도 깨우치고 마음공부도 할 수 있는 좋은 문장이다. 글자 한자 한자에 얽매이지 말고 문장 전체의 의미를 중심으로 읽어라. 많이 읽다보면 자연히 한자 한자의 의미는 터득하게 된다. ‘삼계의 뜨거운 번뇌가 마치 불붙은 집과 같거늘 거기에서 참고 오래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을 것인가. 윤회를 면하고자 할진대 부처를 구함만 같지 못하고, 만약 부처를 구하고자 할진대 부처는 곧 이 마음이니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을 것인가. 몸을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색신은 거짓이라 생기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거니와 참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없어지지도 아니하고 변하지도 아니 하나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일백 뼈는 무너지고 흩어져서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되 한 물건은 길이 신령스러워 하늘도 덮고 땅도 덮었다 하나니라.’ 글이 아름답지 않느냐? 오늘부터 하루에 1장씩 공부하자. 총 40장인데 하루에 1장씩 읽히면 40일이면 다 읽힐 수 있다.”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늘 놀기만 하고 공부를 게을리 해왔기 때문에 실증이 날 법한데도 전혀 졸리지도 않고 어렵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수심결을 처음 대하는 순간 오래 전부터 익혀 왔던 것처럼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날 이후 매일 수심결을 배우는 즐거움에 빠졌습니다. 보리를 밟는 중에 줄곧 수심결을 외웠습니다. “삼계열뇌가 유여화택이어늘 기인암유하야 감수장고아. 욕면윤회인댄 막약구불이요, 약욕구불인댄 불즉시심이니 심하원맥고 불리신중이로다. 색신은 시가라 ……” 하루 이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입으로만 외우던 문장이 점점 그 뜻을 헤아리게 되었고, 보리밭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살피는 일도 뜸해지고, 무심한 마음으로 보리를 밟았습니다. 어느덧 그 넓은 보리밭을 모두 밟았습니다. 이제 보리밟기가 끝났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다시 처음 보리를 밟던 장소로 나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은 다시 서릿발이 서서 보리뿌리가 떠올라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리밟기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해 겨울이 다가도록 매일 보리밟기를 하였습니다. 보리밟기와 함께 나는 한문에 대한 문리가 트였고, 수심결도 어느덧 다 외우게 되었습니다. 이후 혼자서 사서오경 고문진보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후에 중국어를 공부할 때에도 불경이 구어문에 가까워 쉽게 독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보리밟기를 통하여 참을성 없고, 거친 기질을 변화 시켰습니다. 퇴굴심이 나려고 하면 성인이나 영웅호걸은 그런 순간에 어떻게 대처했다는 말씀으로 분발심을 일으키셨습니다. “마음은 성인의 바탕에서 길들이고, 몸은 영웅의 도략으로 움직여야 한다.” “부처님은 왕자로 태어나셨음에도 그 모든 것을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부처가 되시어 중생을 구제하셨다. 대장부라면 그 정도 큰 목표가 있어야 한다.” 특히 대장부라는 말로 꾀를 부리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자존심을 건드려서 스스로 약속을 어떻게든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아무튼 그 겨울이 지나고 중학교에 진학할 때 쯤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친 기질이 상당히 순화되어 학교생활도 원만해진 것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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