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역사탐방
◇ 압구정(狎鷗亭) 터 : 강남구 압구정동 455(동호대교 옆 현대 5차아파트 72동 · 74동 일대)
- 조선초 세조~성종 때의 권신 한명회가 지은 별장
조선 초 세조 때의 권신인 상당부원군 한명회(韓明澮 : 1415~1487)의 별장이었다
세조를 도와 단종을 내쫓은 사우당(四友堂) 한명회는 권력을 장악한 후에 압구정(狎鷗亭) 정자를 여의도에 지었다. 압구정 정자는 후일 동호(東湖 : 압구정동)로 옮겼다.
이 정자는 강 건너 오른쪽으로 뚝섬을 위시하여 서울의 동교[살곶이벌]가 가까이 보이고, 멀리는 삼각산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므로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곳으로 이용되었고, 압구정의 배 띄우기는 경도승경(京都勝景) 중의 하나였다.
한명회는 관직을 사퇴하고 압구정을 짓고 이곳에서 여생을 지내려 하자, 1476년(성종 7)에 왕이 「압구정시(狎鷗亭詩)」를 친제하여 하사하였다. 이에 조정 문신들도 차운(次韻)하였는데 그 시가 수백 편이나 되었다고 한다. 압구정은 중국에도 알려져 명나라 고관대작들이 「별서압구정시축(別墅狎鷗亭詩軸)」에 시를 수없이 담아 보내기도 하였다.
원래 한명회는 과거에 오르지 못해 38세에 경덕궁직을 지내 행색이 초라하였는데, 권람(權擥)과 함께 수양대군을 섬긴 뒤로 1455년에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이 커서 1등 좌익공신(佐翼功臣)이 되고, 이듬해 성삼문 등 사육신의 단종복위 운동을 좌절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1457년에 이조판서로 상당군에 봉해졌고, 1462년에 상당부원군으로 진봉되었으며, 1466년에 영의정이 되었다.
1468년 세조가 죽자 고명(誥命)을 받아 원상(院相)이 되어 국정을 돌보며, 남이(南怡)장군의 옥사를 다스려 익대공신 1등이 되었다. 다시 영의정이 되어 두 딸은 각각 예종의 장순왕후와 성종의 공혜왕후가 되었다. 그러나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윤씨 폐비사건에 관련되었다고 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한명회는 1457년(세조 3) 겨울에 명나라 사신으로 가서 남경 예부 상서 예겸(倪謙)을 찾아 자신의 정자 이름을 압구정이라고 하고 싶다면서 글을 청하였다. 이에 예겸은 「압구정기(狎鷗亭記)」를 지어 주었다.
한명회는 여의도의 압구정에서 서거정, 신숙주, 권람 등과 시주(詩酒)를 즐겼으나 압구정이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다. 한명회가 동호의 정자에 ‘압구정’이라는 현판을 단 것은 1476년(성종 7)이다.
여의도에 압구정이 있을 당시 한명회는 호조판서를 지낸 김수온(金守溫)으로부터 압구정 기문(記文)을 받았다. 이 기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왕도에서 남쪽으로 5리 떨어진 곳, 양화나루 북쪽 마포 서쪽에 언덕 하나가 있는데 높다랗고 시원스럽다. 푸른 물결에 둘러싸여 있는데 민간에서 화도(火島)라고 부른다. 이전에는 소와 양을 방목하던 곳인데 위쪽은 풀이 없고 아래쪽만 풀이 자라 좋아하는 이가 없었다.
상당부원군 한공(韓公)이 그 위에 정자를 짓고 노닐 장소로 삼았다. 공이 이 정자에 올랐을 때 흰 갈매기가 울면서 날아갔다. 공은 “기이하구나, 갈매기라는 새는 천지의 강해(江海)를 집으로 삼고 고금의 풍월을 삶으로 하여 잠기락 뜨락하면서 가까이 왔다가 멀어진다. 올 때는 물결을 타고 이르며 갈 때는 물결을 타고 물러나니 천지 사이 한가한 하나의 동물이다. 사람 중에 누가 갈매기처럼 기심(機心)을 잊어버릴 수 있는 존재가 있겠는가?”
하였다.
공이 중국으로 들어가 한림 예겸(倪謙)에게 정자의 이름을 물으니, 예공은 ‘압구(狎鷗)’라는 말로 답하였다. 공이 더욱 기뻐하여 응낙하고 “내 정자에 이름하는 것이 정말 마땅하오.” 하였다. 마침내 ‘압구’라는 말로 편액(扁額)하고 얼마 후 나를 불러 기문을 짓게 하였다.」
여기서 화도(火島)는 여의도이다. 위 기문을 보면 압구정 정자가 여의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477년(성종 8) 11월에 성종은 국구(國舅)인 한명회가 동호에 새로 지은 정자를 축하하기 위해 칠언율시(七言律詩)와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지어서 내렸다. 한명회는 이를 기리기 위하여 화려하게 현판에 새기고, 푸른빛과 금빛으로 장식을 한 다음에 정자의 벽에 걸었다.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그린 「압구정도(狎鷗亭圖)」에 보이는 정자의 모습은 높은 언덕 위에 정자가 있는데 마루 둘레에 난간을 돌리고 팔작지붕을 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소박한 일반적인 정자와는 달리 비교적 규모도 크고, 주위 경치와 어울려 화려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 말에는 저자도(楮子島)와 함께 철종의 부마인 박영효(朴泳孝)[1861~1939]의 소유가 되었으나, 갑신정변으로 박영효가 국적(國賊)으로 일체의 재산이 몰수될 때 이 정자도 몰수되었다가 고종 말년에 되찾았다. 이후 압구정은 1970년대 영동개발에 따라 현대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동명으로만 남게 되었다.
◇ 성수대교 : 성수동~압구정동
- 성동구 성수동에서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한강의 다리
성수대교는 강남의 영동지구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서울 동부권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고, 서울의 부도심의 기능을 촉진하며, 인구분산과 교통난 해소를 위해 건설된 한강 교량이다. 1994년에 성수대교 교량이 붕괴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고, 1997년에 다시 완공하여 재개통하였다.
1994년 붕괴하기 이전의 성수대교는 서울의 한강을 가로지르는 11번째 교량으로서 1979년 완공된 미관이 뛰어난 국내 최초의 게르버 트러스(gerber truss) 형식의 교량이었다.
1994년 10월 21일, 교각 10번~교각 11번 사이의 현수 경간 행거 48m가 끊어지면서, 붕괴하였다. 성수대교는 건설될 당시 트러스식 다리로 건설되었지만 트러스식 공법은 이음새가 잘못되면 무너지기 쉬운 공법이었을 뿐만 아니라 안정 시공인 이음새 핀 등의 세부 요소들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안전점검 조치를 소홀히 했다.
이날 성수대교를 건너던 승합차 1대, 승용차 4대, 버스 1대가 추락해 32명 사망, 17명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32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우리 사회의 부실 관행에 경종을 울린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건설기술인에게는 반성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995년 4월 26일에 현대건설이 재건설을 시작하였고 1997년 6월에 완공하여, 1997년 7월 3일에 재개통되었다. 사고 이후 새롭게 복구된 성수대교는 종전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른 실질적인 새 다리이다.
하부기초는 폭 10m, 길이 27m의 타원으로 묶어 크게 보강하였고, 상부구조는 너비 19.4m, 길이 1,160m의 연속 트러스교로 새로운 자재로 가설되었다. 사용된 자재뿐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종전의 다리에 비해 대폭 개선되었다.
그러나 한강 남·북 도로의 연결 램프 미설치로 진·출입 차량이 영동대교로 집중되어 영동대교의 정체 현상이 극심하였고, 이용 교통량보다 다리폭(4차로)이 협소하여 소통에 지장을 초래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존 4차로 교량의 상·하류에 각각 2차로씩을 증설하여 총 8차로로 확장하는 공사와 성수대교 남북 단의 진·출입 램프 개선공사가 2004년 12월에 마무리되었다.
이 공사를 통해 차로가 확장됨과 동시에 교량 폭도 19.4m에서 35m(차도는 28m)로 넓어지고, 또한 교량 남단과 북단에 진·출입 램프 13곳이 신설되어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의 진·출입이 쉬워졌다.
성수대교의 차량통행량은 2003년까지만 해도 일일 평균 8만여 대를 기록하였지만, 교량 확장공사가 마무리된 후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6년에는 11만 814대를 기록하였다.
◇ 서울숲 : 성동구 성수동1가 685-2번지
- 성수동1가 뚝섬 일대 15만 평의 면적에 조성된 시민공원.
서울숲은 1989년에 과천시로 이전한 경마장, 그리고 체육공원과 골프장 등이 있던 뚝섬 일대 부지를 주거 업무 지역으로 개발하려다가 이명박 서울시장의 주도로 뉴욕의 센트럴 파크나 런던의 하이드 파크 등을 본떠 도심 속의 대규모 도시 숲으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서울시가 '뚝섬 숲 조성 기본계획'에 따라 기존의 뚝섬체육공원 일대를 대규모 도시 숲으로 만들기 위해 2004년 4월 6일부터 공사를 시작하였다. 약 2,352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이 공원은 전체 면적 15만 평이며, 2005년 6월에 문을 열었다.
서울숲은 다른 지역에 비해 공원이 부족한 서울 동북부 지역의 시민들에게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숲의 형태는 친환경적 요소를 강조해 공원 전체에 걸쳐 지름 30~40㎝에 높이 20m의 나무 104종 42만 그루를 옮겨 심었다. 대표적인 나무 수종은 참나무·서어나무·산벚나무 등이며, 한국 고유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서울숲은 5개의 테마로 조성되는데, ➀ 제1테마는 '뚝섬 문화예술공원'으로, 광장·야외무대·아틀리에·게이트볼장·인공연못 등 시민들이 다양한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➁ 제2테마는 '뚝섬 생태숲'으로, 야생동물이 서식할 수 있도록 자연 그대로의 숲을 재현한 곳이다. 꽃사슴·고라니·다람쥐·다마사슴 등을 풀어놓은 곳으로 가이드 동반하여 출입도 가능하다. 472m의 보행다리는 한강 선착장과 연결된다.
➂ 제3테마는 '습지생태원'으로, 조류관찰대·환경놀이터·정수 식물원 등 친환경적인 체험학습공간이다. 구 뚝섬정수장 구조물을 재활용하여 건축한 나비 정원과 곤충식물원을 비롯하여 갤러리 정원, 꿀벌 정원, 체험마당, 시민의 숲 등으로 조성했다.
➃ 제4테마는 '자연체험학습원'으로, 기존의 정수장 시설을 재활용해 갤러리 정원·온실·야생초화원 등 각종 식물의 생태를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다.
➄ 제5테마는 한강 수변공원으로, 선착장·자전거도로 등이 있다.
공원의 남서쪽 한강변에 위치하여 한강 · 중랑천 합류부의 자연 호안, 수변공원, 선착장, 휴게공간 등을 제공한다. 보행 전망교를 통해 갈 수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정말 아름답다.
서울숲은 넓은 잔디밭과 어린이 놀이 시설이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으며,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연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이 보이며, 날씨가 좋은 날에는 거의 매주 주말마다 코스프레(만화나 게임에 나오는 의상을 입고)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