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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점 논쟁
전치수 교수에게 답함
글 박성배(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부룩 캠퍼스 종교학과 교수)
필자는 1990년 10월 14일 순천 송광사에서 개최된 보조 사상 국제회의에서 <성철 스님의 돈오점수 설 비판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날 필자의 논문에 대한 논평을 동국대학교의 인도철학과 강사인 전치수 교수가 맡았고, 그 제목이 <'성철 스님의 돈오점수설 비판에 대하여'에 대한 논평>이었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전 교수의 논평에 대한 답변이 되는 셈이다.
① 전 교수는 필자의 주장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평자(전 교수)는 열반경의 '법등명 자등명'이란 구절이 부처님 사후의 성불의 길을 피력한 유훈으로 보고 이를 육조의 '식심견성 자성불도 (識心見性 自性佛道)의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기 때문에 성철스님 의 견해와 뜻을 같이 함으로 논자 (박성배)의 주장에 비판적 입장을 취할수 밖에 없음을 밝혀둔다."
여기서 필자가 문제 삼지 않을수 없는 것은 전 교수의 주장을 밑받침하는 논리적 근거에 대해서이다. 전 교수가 성철 스님의 견해와 뜻을 같이 하기 때문에 필자의 주장에는 비판적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적 근거가 가능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전 교수는 필자의 주장과 성철 스님의 의견을 모순 관계로 보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성철 스님이 옳으면 필자는 틀려야 하고 필자가 옳으면 성철 스님은 틀려야 한다. 성철 스님도 옳지만 필자도 옳다든가, 또는 필자도 틀렸지만 성철 스님도 틀렸다든가, 어떤 점은 성철 스님이 옳지만 어떤 점은 필자가 옳다는..·••하는 등등의 여러가지 가능성들이 전 교수의 세계에서는 모두 배제되어 야 한다.
둘째, 전 교수는 성철 스님의 견해만이 전 교수가 인용한 열반경의 귀절 및 육조단경의 귀절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전제하고 따라서 성철 스님과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들, 가령 보조 스님이나 필자는 열반경과 육조단경이 말하는 성불의 길을 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전 교수의 논평에서 필자는 성철 스님을 비판하고 보조 사상을 선양하는 사람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필자는 항상 보조 스님과 동일 운명으로 처리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나 보조 스님의 저술 가운데 어느 대목이 전 교수가 인용한 열반경과 육조단경의 두 귀절에 거역하고 있는가? 필자가 이해하는 바로는 한 군데도 그런 대목이 없다. 문제는 두 귀절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겠 지만 적어도 보조 스님은 열반경과 육조단경을 계승한다고 자부한 분이었다. 그러므로 전 교수는 똑같은 이유로 보조 스님에 동의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교수는 보조 스님 쪽은 무시하고, 성철 스님쪽만을 편들었다. 우리는 전 교수의 논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전 교수는 열반경의' 법등명 자등명'이란 귀절을 우리들이 가야할 성의 길로 내세워 하나의 논리적 대전제로 삼고, 그 다음에 육조단경이 열반경과 일치하기 때문에 옳고, 성철 스님 또한 이와 일치하니까 옳고...••·반면에보조 스님과 필자의 주장은 이와 일치하지 않으니까 비판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전 교수는 '필자와 보조스님이 성철 스님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어찌하여 열반경이나 육조단경과 일치하지 않는 것과 같은지'를 밝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전 교수가 인용한 경장 장부 제16경에 나오는 열반경은 소승불교 계통의 열반경으로서 북량의 담무참이 번역한 40권으로 된 북본 열반경이나 혜엄, 혜관, 사영운 등이 편집한 36권으로 된 남본 열반경과 같은 대승불교의 열반경과는 교리 해석에 있어서 서로서로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교수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 있으며, 따라서 아함경이 말하는 < 성불의 길>과 중국에서 생겨난 남종선 계통의 선사들 간에 문제되고 있는 <성불의 길> 사이에 나타난 간과할 수 없는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 교수가 필자의 주장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 대해서 수긍이 가지 않는다.
② 전 교수는 인용문이 적다는 이유로 필자의 논문을 학술논문으로서는 불충분하다고 평했다.
인용문이 많아야 학술논문답다는 풍조에 대해서는 좀 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한마디로 이는 동양이 서양을 만난 뒤에 생긴 비교적 최근의 풍조이며, 특히 이는 요즈음 일본의 불교학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풍조이며, 일본을 불교학의 종주국으로 생각하는 세계 도처의 일본풍 불교학자들 간에 유행하고 있는 풍조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지금 세계의 도처에서 이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1980년 여름에 일본 경도에서 개최된 인도학 불교학 연차대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상당히 많은 일본 학자들이 발표를 했는데 그 당시의 내 소감을 말하자면, 이것은< 각주 경연 (Footnotes Contest)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발표자의 대부분이 자기의 주장과 자기의 논리를 전개하는 것보다는 옛날 자료를 많이 뒤적여 인용문과 각주를 풍부하게 하는 데에 더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인용문이 많고 각주가 많은 것을 나무랄 사람은 없다. 소위 학문이전의 상태 즉 아무런 근거도 없는 소리를 제멋대로 하는 전근대적인 풍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번은 겪어야 할 과정으로서 인용문에 책임을 지고 각주에다 자기가 연구한 것을 모두 정직하게 공개하는 풍조는 바람직하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인용문이 많아야 학술논문 답다는 것이 학문의 정사(正邪)를 가르는 표준이 되어버리면 이는 진정한 학문의 출현을 막는 또하나의 폐단이 되고 만다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
지금 많은 학자들이 동양학을 한다면서 그런 폐단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아까운 시간과 귀중한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가령 요즈음에 많이 쏟아져 나오는 육조단경이나 또는 참선에 관한 소위 학술적인 책들을 한번 있는 대로 전부 수집해 놓고 각각의 책이 가지고 있는 그 많은 인용문과 각주들을 서로서로 비교해 보라. 10권이 되었건 20권이 되었건 각각의 책에 인용된 인용문과 각주의 거의 80% 이상이 이미 다른 책에 다 있는 것들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학문한다고 하면서 모두 이런 짓들 을 하고 있어도 된단 말인가? 유행을 추종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학문하는 사람은 유행과 맞서야한다. 휩쓸려 함께 흘러가서는 안된다.
일본의 철학자들 가운데 서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마도 니시타 기따로(西田幾多郎)일 것 이다. 일본의 니시타 학파는 지금 세계의 도처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니시타 기따로의 저술은 각주가 없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를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도 그를 욕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책을 읽다가 의심나는 대목을 확인해보고 싶어도 각주가 없으니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 니시타의 그런 불친절에도 불구하고 니시타의 이론에는 탄복 할만한 대목이 많았다. 니시타가 이론 전개도 잘 하고 각주도 잘 달아주었더러면 더 고마왔겠지만, 그가 둘 중에 하나 밖엔 할 수 없었다면 남들처럼 인용문과 각주 작성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기 의 이론 전개에 더 철저해주었던 것이 우리들을 위해 백번 잘한 일 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니시타 학파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그의 그러한 철학적 자세 때 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사색이 지금 원숙해질대로 원숙해져 있고, 또한 자기의 이론이 지금 호호탕탕하게 전개되어 나가고 있는 판에 어느 여기에 남의 글 인용하고 각주 달고 앉아 있겠는가? 이러한 예증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발견되는 일이다. 현대철학의 거목이며 과정철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그랬고,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보스턴대학의 로버트 네빌 교수가 그렇다. 남의 말만 인용하고 자기 말이 없으며, 남의 이론만 소개하고 자기의 이론이 없다면 그것은 철학이 없다는 말 밖에는 안된다. 전 교수가 필자의 논문에 인용문이 적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미안하게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학술논문치고는 불충분하다고 말하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③ 전 교수는 필자가 제기한 문제, 즉 성철 스님이 보조스님의 절요에 나오는 첫 귀절을 왜곡했다고 주장하는 문제를 따지면서 성철 스님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전 교 수가 그러한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논리적 과정에 대해서 퍽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전 교수는 지금 우리들이 문제삼고 있는 귀절에 대한 문법적인 분석과 그 해석이 어떻든간에 하택 신회가 지해종사로서 조계적자가 아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성철 스님이 "수(雖)---------연(然)------".이라는 상관 귀절을 단순히 ‘비(非)’ 자로 해석했다고 해도 상관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것은 토론 도중에 일방적으로 주제를 변경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의 주제가 무엇인가를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성철 스님의 주장은 보조스님도 하택신회를 ‘시지해종사 비조계적자 是知解宗師 非曹溪嫡子”라고 단언했다는 것인데 반하여, 필자의 주장은 보조 스님에게 하택 신회를 깎아내리는 의도는 없었고 사실은 그와 반대로 하택 신회가 세상에서 지해종사로 낙인 찍혀 조계적자가 되었거나 말거나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그의 깨침은 높고 이해는 밝아서 (悟解高明) 스승 삼을만 하다고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다. 보조 스님이 하택 신회는 지해종사였기 때문에 조계적자가 아니라고 깍아내리면서 하택 신회의 돈오점수설을 평생 소중히 여겼다면 말이 되지 않지 않는가?
필자가 보기에 성철 스님과 보조 스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지해(知解)에 대한 평가의 차이인 것 같다. 성철 스님은 지해를 독으로만 보고 계신데 반하여, 보조 스님은 지해를 약으로 쓰신 분이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시봉하고 함께 살아본 경험으로는 성철 스님도 지해를 약으로 쓰시는 스님이었다. 필자는 평생 지해를 약으로 쓰지 않는 선지식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닦음과 깨달음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는 데에 있어서는 혹자는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혹자는 이를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가?
필자를 이를 불립문자병(不立文字病)의 한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조 스님은 매우 정직하신 분이다. 보조 스님은 당신이 지해를 약으로 쓰신 것을 스스로 인정하셨고, 이를 글로 써서 만천하 공표하셨고, 당신의 이론체계 속에서 지해의 위치가 어디이고 그 기능이 무엇임을 분명히 하셨다. 그래서 필자는 보조 스님을 현대적인 의미에서 학문이 무엇인줄 아신 분이었다고 본다.
보조스님의 지해와 성철 스님의 지해는 그 글자와 발음만이 똑같을 뿐, 그 의미 내용은 서로서로 크게 다른 것 같다. 성철 스님이 보조스님의 절요에 나오는 <수미위조계적자>라는 귀절을 <비조계적자>로 바꾸어 읽으시고 연(然) 자 이하의 귀절을 무시해버리는 것도 성철 스님의 지해관이 하택 스님이나 보조 스님의 그것과 다른 데에서 기인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줄 안다.
전 교수는 원영 스님의 지적이라고 밝히면서 성철 스님께서도 선문정로 201쪽에서 문제가 된 문장을 필자와 똑같이 해석하셨다고 덧붙였다. 선문정로 201쪽의 해석이 옳다면 3쪽의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고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문정로의 바로 그 다음쪽(202쪽)에 나오는 같은 문장에 대한 성철 스님의 해설을 계속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성철 스님의 이 문장에 대한 이해는 3쪽의 경우와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2쪽에 나오는 성철스님의 해설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돈오점수를 상론한 그(보조 스님)의 절요 벽두에서는 하택을 지해종사라고 하였다." 이점에 있어서 성철 스님의 보조 스님에 대한 오해(誤解)의 뿌리가 상당히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교수는 성철 스님이 이 문장을 왜곡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렇게 읽어야 마땅하다는 이론을 전개하면서 연(然) 자 다음에 따라오는 문장의 문법적인 기능에 순접인 경우와 역접인 경우의 두가지가 있다고 말하였다. 전 교수에 의하면, 순접인 경우에는 하택이 돈오돈수의 이론에 밝다는 뜻이되고 역접인 경우에는 하택이 해오에 밝다는 뜻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전 교수는 왜 그렇게 되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여기서는 역접으로 해석하여 택이 해오에 밝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옳다고만 주장하면서 그 이유는 성철 스님이 선문정로 170쪽에서 <悟解>는 <解悟>와 같은 뜻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조 스님이 사용하신 ’悟解’라는 말의 뜻을 성철 스님 식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를 성철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은 논증의 정도(正道)가 아니다. 보조 스님의 사상 체계 안에서도 여기서 말하는 오해를 꼭 돈오돈수라고 읽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전 교수처럼 해오라고 읽어서 잘못될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보조 스님의 해오라는 말의 뜻을 성철 스님 식으로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보조 스님의 글이니까 일차적으로는 보조 스님.식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그 다음의 이차적인 해설이야 죽을 쓰건 말건 아무도 말릴 수 없다. 이른바 해설자의 자유라는 것이다.
④ 전 교수는 필자의 주장에 앞과 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 있다고 평하면서 그 증거로 필자가 처음에는 보조 스님이 그 당시 수행자들의 ‘不依文字指歸’하는 경향을 보고 그에 대한 약으로 ‘수의여실언교 須依如實言敎>를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문자, 언어, 교리, 지해 등 언교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보조 스님도 문자를 중요시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전후 모순의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필자의 눈에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자명하게 수미일관되게 보이는데 전 교수의 눈에는 모순으로 보이는 것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가?
전 교수는 <依文字指歸>를 <依文字>에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자지귀는 문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조 스님의 말씀을 과연 그렇게 읽어도 좋을까? 보조 스님의 절요에서 ‘문자지귀’는 나누어서는 안될 하나의 숙어이다. 전 교수는 이처럼 둘로 나누어서는 안될 하나의 숙어를 둘로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필자의 말이 전후 모순으로 보였던 것이다. 전교수가 ‘文字指歸’를 ‘文字所歸’로 바꾸어 읽고서 보조 스님은 달에 의지하지 않는 것을 한타하셨지, 손에 의지하지 않는 것을 한탄하신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는 제법 선문답을 아는 것처럼 들리지만, 문제의 발단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다시 보조 스님의 절요로 돌아가서, 전 교수가 ‘‘不依文字指歸’ 라고 하는 여섯 글자로 된 이 귀절을 전후 다른 귀절들과의 상관 관계를 무시한 채 그 귀절 하나만을 분석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단장절구(斷章截句)의 오류>를 면할수 없을 것이다. 이 귀절은 어디까지나 <여관금시수심인予觀今時修心人>으로 시작하여 <불왕용공이(不枉用功爾) >로 끝나는 총67자로 된 전체의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⑤전 교수는 보조스님의 <여실언고>라는 말을 범어로 환원한 다음 이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 특히 사성제를 가리키는 것이지, 하태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보조스님의 절요는 인도의 범어 경전을 번역한 책이 아니다. 순수한 동아세아 사람들의 저술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설사 그것이 처음에 범어로 쓰여졌다 할지라고 10세기에 중국의 규봉 종밀이 쓰고 13세기에 고려 승려인 보조 지놀이 절요한 이상, 그것은 동아세아 사람들의 생명의 일부이다. 생명은 보편과 특수를 함께 지닌 것이다. 이말은 보조 스님 고유의 숨결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보조 스님이 설사 <여실언교>란 말 대신에 전 교수처럼yathabhutasalya란 범어를 그곳에서 사용했다 할지라도 그 말은 먼저 보조 스님의 생명 현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런 다음에, 필요하면, 인도의 부처님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은 좋다. 그러므로 전 교수는 여기서 왜 당신이 13세기 동아세아 출신 선승들의 언어를 인도의 고전어인 범어로 환원해야만 했던가를 먼저 밝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보조 스님의 <여실언교라는 말이 하택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논리적으로 입증했어야 했다. 전 교수는 그 작업을 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한 전 교수의 다섯줄 밖에 안되는 짧은 논평의 범위 내에서 말한다면, 필자는 전 교수가 여실언교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확대해석하자고 제의한 데에 대해서는 쉽게 공감할 수 있어도 그것이 하택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 데에 대해서는 좀더 설명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⑥ 전 교수는 동아세아에서 성장하고 발전한 한문권 불교 사상의 가장 기본적인 사유 형식인 체(體)와 용(用)의 논리를 또 범어로 환원하여 처리하였다. 이리하여 전교수는 필자의 체적 접근을 본질론적 해석 방법으로, 용적 접근을 목적론적 해석 방법이라는 말로 바꿔버렸다. 옛날부터 똑같은 문장을 오래오래 읽으면 그 뜻이 스스로 분명해진다는 말이 있지만, 이 대목에 대한 전 교수의 논평은 아무리 애써 읽어보아도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필자가 여기서 할 수 있는 말은 체용의 논리란 동아세아 한문권 불교 사상의 논리이니까 무엇보다고 먼저 이를 중국철학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요, 함부로 범어로 환원하거나 서양철학적인 개념으로 바꾸어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말 뿐이다. 그 결과는 혼란만을 일으킬 뿐이기 때문이다. 사상의 올바른 전달이나 발전을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학계의 일각에 비교종교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풍조가 유행하여 동서를 가로막는 늪만 더욱 심화시켰던 사실을 상기하면 새삼 경각심을 환기시키지 않을 수 없다.
7. "성철 스님이 보조스님의 돈오점수설을 너무 용적 접근이라고 비판했다는 필자의 지적은 잘못"이라고 전 교수는 논평했다. 이 논평은 전 교수가 체용에 대한 이해가 범어적 어원 및 서양철학적 개념과 뒤섞여 그 말의 본래적인 의미에서 이탈하여 엉뚱하게 뒤틀린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국철학에서 체용의 논리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발전하여 형이상학적인 원리와 그 작용을 설명할 때도 쓰여졌고, 윤리 도덕의 원리와 기능을 논할 때도 쓰여졌다. 심지어는 경제, 정치, 외교, 군사 등 여러가지 사회적인 사태의 해명에까지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를 수도론 (修道論)적인 칸텍스트 속에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필자의 논문에서 체(體)란 자성이 공(空)하다는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며, 용(用)은 자성이 공했을 때 나타나는 기능을 말한다. 진공모유(眞空妙有)라는 말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진공은 체요, 묘유는 용이다. 한 사람의 인격이 진정 허공처럼 걸린 데가 없어지면(체가 정말 공하면), 그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기능은 묘하게도 더욱 뚜렷하게 활발해진다(묘유). 자연계에서 삼라만상이 모두 각각 제자리에 있고,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도 그 체가 공하기 때문에 그 용으로 자연이 그렇게 자연노릇을 잘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묘유란 현상 세계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다 잘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필자의 논문에서 말하는 체적 접근이란 <체의 공화>를 초미의 급선무로 내세우는 수도적인 자세를 말한다. 따라서 체적 접근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만일 누가 그의 마음 속에 탐진치 삼독심이 들끓고 번뇌 망상이 그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천하의 선(善)을 혼자서 다 실천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용만을 그렇게 조작으로 꾸미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위선이요 거짓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거짓된 선은 안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이 육도만행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보현행이 원수인줄 알라>고 경고하시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보조스님의 생각은 다르다. 인간이 살아 있는 한, 무슨 활동을 하건 활동은 하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깨치고 못깨치고 선에 관계 없이 일상생활에서의 중선봉행(衆善奉行)은 수도자의 중요한 실천덕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조스님은 깨달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체적 접근을 하신 분이지만, 육도만행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용적 접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보조 스님이 체용을 겸했다고 말했던 것이다. 거기에 비해서 돈오돈수파에서는 체적 접근만을 강조하고 용적 접근을 거부했으며 성철 스님이 보조 스님을 비판하는 큰이유 가운데 하나가 보조 스님의 체계 속에 교가(敎家) 와도 같은 용적 접근이 섞여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논문 속에서 이 대목은 성철 스님의 사상을 그대로 소개하고 있는 대목인데도 불구하고 전 교수가 필자의 지적은 잘못이라고 운운하니 어리둥절해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잘한 일이냐 잘못한 일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철 스님의 지도 노선이 과연 그러하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거듭 밝히는 바이지만 전 교수가 이 문제를 그런 식으로 발전시켜 나간 것은 전 교수가 동양철학 체계 속에서의 체용의 논리를 오해한데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가 잘못 알았다면 지적해주기 바란다. 원활한 의사소통 (communication)의 제일 요건은 대화자들 간에 사용하는 말이 같아
야 하고, 말의 뜻이 같아야 하고, 그 말과 그 뜻을 활성화하는 인생체험이 같아야 한다는 말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진다.
(8). 전 교수는 인도의 미맘사학파의 성상주론(聲常住論)에 반대하여 성무상론(聲無常論)을 펼친 불교학파의 논리를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조명해야 할지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필자에게 인도철학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도대채 무엇인 문제인지, 질문의 초점을 잡을 수가 없다. 혹시 동아세아 불교사에서의 문자와 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종과 불립문자를 내세우는 선종과의 대립을 그대로 인도의 성상주론과 성무상론의 대립으로 오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보았지만 전 교수는 인도철학과의 교수이니만큼 설마그럴리는 만무하고 도시 종잡을 수가 없다.
⑨ 전 교수는 또 헤겔과 칸트의 서양철학적인 개념을 동원하여 보조 스님과 성철 스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대비시켰다. “보조 스님은 정(해오점수), 반(돈오돈수)에 대한 헤겔식 변증법에 의한 결론인 합(돈오돈수)에 이르는 과정을 택한 것이며, 성철스님은 주장(돈오돈수)과 반주장(해오점수)중 반주장의 오류와 자기 모순을 부정(斷)함으로써 주장을 결론으로 하는 칸트식 변증법을 택한 것이라고 본다.”
전교수의 이러한 비교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무엇보다고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
칸트에서 해겔로 발전해 나아간 독일 관념론 철학과 보조 스님에서 성철 스님에 이르기까지의 한국불교 사상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차이에 대해서 언급했어야 한다. 그런 다음, 이렇게 커다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우리의 대화 가운데 이러이러한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이러이러한 용어를 이러이러한 뜻으로 사용한다고 밝혔어야 한다.
인도의 범어와 서양철학적인 개념만 많이 사용하면 돋보이는 세상은 이미 지나간지 오래 되었다. 독일 관념론이라는 말이 말해주듯이 칸트와 헤겔의 철학 체계는 철저한 이성주의에 입각한 순수한 관념론 체계이다. 그러나 한국 선승들의 문제는 그런 것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깨달음과 닦음에 대한 수도 체계이다. 독일 관념론에 불교의 깨달음과 닦음의 문제가 있었던가? 한국의 선승들에게 일찌기 독일의 이성주의적 관념론 체계가 문제된 적이 있었던가? 서양에서도 일찌기 불교 사상을 헤겔의 변증법으로 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의 깨달음이 무엇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데서 비롯한 외국인들의 망발이었다고 지적된지 오래다.
(10) 전 교수는 보조 스님과 성철스님과의 차이를 각각 헤겔과 칸트의 변증법적인 도식으로 비교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양자의 본질적 모순인 차이점을 버리고 공통점만을 택한 보조 스님의 치유법과 오류와 모순을 버리고 본질 자체에서 해결법을 구한 성철 스님의 치유법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를 각자에게 반문하고 싶다." 전 교수는 여기에서 보조 스님의 치유법을 양자의 본질적 모순인 차이점을 못보고 공통점만을 택한 것이라고 특징지었으며, 반면에 성철 스님의 치유법은 오류와 모순을 제거하고 본질 자체에서 해결법을 구하는 것이라고 특징지었다. 그런 다음, 그는 독자들에게 어느 쪽을 택하 겠느냐고 묻는다. 승부를 가리는법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옛날 약장사가 자기 집에서 만든 약에는 사탕을 바르고, 남의 집에서 만든 약에는 똥을 발라놓고서 사람들에게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고 묻는 식이다. 무릇 학문적인 토론을 하는 사람은 논적(論敵) 에게도 겸손하고 공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겨우 양자간에 평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무리 공정하려 애써도 보통 사람이란 자기 입장에 대해서 아는 만큼 성대방에 대해서 알 수 없으며, 자기 편을 위하는 마음만큼 상대편을 위할 수 없도록 조건지어져 있다. 그러므로 공정한 마음도 없고 노력조차 않는다면 그런 대화는 안하는 것만 못하다. 그런데 지금 전 교수는 누가 들어보아도 보조 스님은 엉성하고 성철 스님은 하나도 틀림없는 것 처럼 대조시켜 놓고 있다. 그러나 그것의 사실 여부는 엄밀한 학적 연구 검토가 끝난 다음이 아니면 아무도 단언할 수 없는 일이다. 보조스님이 정말 양자간의 본질적인 모순을 외면하고 공통점만을 택한 사람이었을까? 전 교수가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알고 싶다.
또 선문정로에 그렇게 쓰여져 있더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도대체 보조 스님이 외면했다는 본질적인 모순이란 무엇인가?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본질적인 모순인가?
성철 스님에게는 그것이 본질적인 모순이지만 보조 스님에게는 그것이 본질적인 모순이 아니었다. 그리고 성철 스님은 오류와 자기 모순을 철저히 부정하고 본질 자체에서 해결법을 구했다고 말했는데 어찌 그것이 성철 스님의 전유물이겠는가? 세상에 올바른 선사치고 그렇지 않는 선사가 어디 있단말인가? 한국 불교의 역사상 보조스님 만큼 내 편과 남의 편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비판적이었던 큰스님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보조 어록을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읽어 보아야 하겠다. 성철 스님 식으로 읽지 말고 보조 스님 식으로 읽어야 한다. 그 말은 보조 스님 당시의 역사와 사회를 함께 공부하면서 보조 어록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보조 스님이 선교합일(禪敎合一)이라고 말하니까 선에서 조금, 교에서 조금, 조금씩 따다가 합쳐서 하나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 돈오점수라고 말하니까 돈오는 선이고 점수는 교라고 속단하여 이는 선교비빔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역사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요,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11)전 교수는 필자가 처음에는 수심결을 근거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같다고 주장했다가, 나중에는 절요를 근거로 보조 스님이 돈오돈수를 부정했다고 주장하여 종잡을 수가 없다는 식으로 논평하였다. 전 교수는 남의 글을 읽을때 좀 조심해서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전 교수의 논평은 보조 사상 제1집(1990년 10월, 보조사상연구원 발행) 519쪽과 520쪽에 실려있는 필자의 글 가운데 제5절의 끝부분을 문제 삼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전 교수는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무엇보다도, 필자는 여기서 수심결을 근거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같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보조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소개했을 뿐이다. 필자의 이론 전개상 이 차이는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전 교수는 곧 이어 필자가 절요를 근거로 보조 스님이 돈오돈수를 부정했다고 논평했는데 이것 또한 명백한 오독이다.<금각의 (今覺意) 로 시작하여 이위비연야(以謂非然也)>로 끝나는 보조 스님의 원문에서나 필자의 해설에서나 어느 쪽에서도 돈오돈수를 부정한 대목은 한군데도 없다. 지금 전 교수는 돈오점수만 들먹이면 돈오돈수를 부정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조 스님은 돈오돈수를 부정한 것은 아니고 돈오돈수를 오해한 사람들이 구경각을 성취하지도 못했으면서 자기의 작은 깨달음을 구경각으로 잘못 알고, 자기는 이미 돈오돈수했으니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망발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망발에 대한 약이 바로 돈오점수설이다.
(12 )필자가 돈오점수파의 일생과 돈오돈수파의 일생을 비교한 다음, 양자 사이엔 의외에도 구조적인 유사성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데 대하여 전 교수는 "차이의 유가 차이의 무라는 논리적 모순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논평하였다. 과연 필자의 이론 전개에 그런 모순이 있는지 없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양자간에 차이가 있다는 말은 돈오돈수설과 돈오점수설을 주장하는 스님들이 서로 다르고, 한 분은 지해를 설비상으로 알고 다른 한분은 지해를 약으로 쓰고......등등 다른 것을 열거하기로 들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돈오돈수파와 돈오점수파가 서로서로 이와같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전체적으로 조감해볼 때 양자간엔 의외에 유사성이 발견된다. 양자가 모두 처음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교리를 가르치고 배우며, 이렇게 교리를 공부하고 난 다음에 머리 속이 환해지면서 불퇴전의 정진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는 것(발심)이 같고, 이처럼 발심한 다음에 화두를 들건 만행을 하건 일사분란하게 용맹정진하는 것이 같고, 용맹정진 끝에 구경각을 성취한 다음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같다.
이만하면 양자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말해서 모순이라고 우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법은 우리의 언어 활동에 얼마든지 발견된다. 겉은 다른데 속은 같다는가, 처음은 다른데 마지막은 같다든가, 기독교와 불교는 얼핏 보기에 크게 다른데 알고 보면 유사한 점들이 많다든가, 공산주의와 종교는 본질적으로 다른것인데 그것들을 대사회적인 기능면에서 보면 매우 흡사하다든가•••등등 예를 들자면 이것 또한 한정이 없을 정도이다. 누구나 다 잘 아는 이러한 경우들을 전 교수는 또 <차이의 유>를 <차이의 무>라고 말했다고 탓할 것인가? 양자를 같다고 말하건 다르다고 말하건 모두가 인간의 관점과 사상해 버리고 앞도 뒤도 없이 그저 필자가 <차이의 유>를 <차이의 무>라고 말했다고 요약하는 것은 생명 현상인 인간의 언어활동을 공허하게 비생명화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13)열세번 째, 전 교수는 돈오점수파의 일생 과정과 돈오돈수파의 일생 과정을 비교한 필자의 도표는 마땅히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당신의 대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교수의 대안을 잘 관찰해보면 양자의 차이는 돈오돈수파의 칸에다 심(心)이라는 글자 하나를 적어 넣었을 뿐이다. 여기서 심(心)이 어쨌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다만 각각의 마지막에 괄호를 열어 돈오점수는 [단계적, 시간의 진행, 차별적]이라 써넣고 돈오돈수는 [일시적, 시간의 초월, 무차별적]이라고 적어 넣었다. 그런 다음, 전 교수가 이러한 설명으로 어떻게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났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돈오점수파의 일생은 단계적인데 반하여 돈오돈수파의 일생은 일시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돈오돈수파에 속하는 수도자들이 화두를 참구하고, 일상일여 몽고일여 오매일여의 삼관을 차례로 돌파하고, 드디어 구경각을 성취하고 하는 이 모든 일이 일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일시적이란 말의 의미라면 성철 스님을 비롯해서 성철 스님의 지도를 받고 있는 모든 스님들과 신도들이 다 일시적으로 그 모든 일을 다 성취해 마쳤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일시적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여기서 일시적이라는 말이 시간의 초월을 의미하는 무차별적인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돈오돈수를 믿고 정진하고 있는사람들이 모두 다 그렇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거기엔 시간의 진행이 있고 차별이 생기고 따라서 단계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돈오점수와 무엇이 다른가? 짐작컨데, 전 교수가 말하고저 하는 차이는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차이가 아니라 각(覺)의 세계와 미각(未覺)의 세계의 차이일 것이다. 각의 세계는 시간을 초월하고 무차별인데 반하여 미각의 세계에는 시간의 진행이 있고 차별이 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말이 된다. 그러나 이것을 전 교수처럼 각의 세계는 성철 스님의 세계이고 보조 스님의 세계는 미각의 세계라고 말하면 큰 문제가 생겨버린다.
도대체 이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어려운 일을 도표의 조작으로 간단하게 해결하려 하면 이는 학자로서 해서는 안될 <아전인수의 오류>에 빠지고 만다. 그러므로 문제의 해결은 도표상의 차이에 있지 않고 수행자 자신에게 실제로 어떤 차이가 나타나느냐에 있다. 성철 스님 자신이 시간을 초월하고 무차별적임을 당신이 사시는 모습 속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돈오돈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주장하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 보여 주어야 한다. 실지의 삶자체는 하나도 차이가 없는데 말로만 도표로만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고 떠들어 봤자 그런 것은 공수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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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전 교수는 필자의 결론, 즉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설을 <돈오돈수적 점수설>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교수가 필자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돈오돈수적 점수설이 돈오점수설의 내용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전대학교의 강사인 김호성 교수의 의견과 퍽 대조적이다. 김 교수는 필자의 돈오돈수적 점수설을 가리켜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설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평하였다. 모두가 각자의 관점과 시각을 나타낸 것으로 볼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논문에서 돈오돈수적 점수설은 미래의 한 연구 과제로서 문제 제기의 성격을 벗어나지 않았다. 전 교수가 그 러한 단정을 내릴 수 있기 위해서 는 <돈오돈수적 점수설>의 전모가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진 뒤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필자는 여기서 잠깐 <돈오돈수적 점수>라는 새 말을 만들어 내놓은 배경을 약간 설명해야 하겠다. 성철 스님이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설을 배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오점수설 때문에 사람들이 깨침이 아닌 것을 깨침으로 착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미증위증(未證謂證)이라는 병, 즉 깨치지
못했으면서 깨쳤다고 말하는 병은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병 중에서도 가장 큰 병이다. 인간이 앓고 있는 가지가지의 병들, 인간이 저지른 오만가지의 죄들, 이 모든 것들을 다 용서할 수 있어도 미증위증의 병만은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성철 스님은 항상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한 성철 스님은 중국의 중봉 스님이 말씀하신 별립생애(別立生涯)의 자세를 강조하시면서 과거 의 모든 것을 철저히 때려 부수어 깨끗이 버려버리고 항상 초보자 의 마음자세로 돌아가 새 출발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이러한 수도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 하나의 필연적인 요청으로 성철 스님은 돈오돈수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미증위증을 규탄하고 별립생애를 강조> 하는 것이 성철 스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필자는 돈오점수설을 인정하는 스님들에게서도 이말을 무수히 들었다. 미증위증의병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며, 누구나 한번씩은 앓는 병이다. 이 병은 돈오점수파에만 있는 병이 아니고 돈오돈수파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서도 무수히 발견되는 병이다. 말 하자면 이 병은 수도자라면 누구나 걸리기 쉬운 만인의 병이다. 그런데 이런 만인의 병을 돈오점수 파에만 있고 돈오돈수파에는 없는 것처럼 착각한다거나 돈오점수는 병이고 돈오돈수는 약이라는 도식으로 정리하는 것은 잘못이다. 돈오돈수설도 돈오점수설도 모두 다 약이다. 어느 약이 더 잘 듣는지는 써보아야 안다. 약의 효과란 항상 사람 따라 다르고 증상 따라 다르기 때문에 약에 적대성은 없다. 필자는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설을 보조 스님의 약보다 더 약량이 강한 새로 나온 양약(효)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그 약이 만병통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 보조 스님의 처방도 필요 한 것이다. 그리고 보조 스님의 약이 더 잘 듣는 환자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설은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설 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학적인 체계를 갖춘 수도 이론이다. 특히 수행에 있어서의 점차적인 성격을 철저하게 규명한 것은 큰 공헌이며 이는 그 뒤의 조선조에 퇴계 선생 같은 점수파 성리학자의 출현을 가능케 한 기초를 닦았다고 말할 수 있다. 성철 스님은 점수설의 병리적인 측면만을 지적하시고 점수 사상의 약리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임제의 정맥(正脈)을 잇고 조계의 적자(嫡子)를 자임하는 스님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보조 스님의 점수 사상은 높이 평가해야 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신념이며 동시에 성철 스님의 가르침 가운데 돈오돈수에 대한 관찰은 전인미답의 날카로움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그리고 필자는 양자가 조금도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양자간의 모순은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고 논쟁자들의 부정확한 개념 규정에서 비롯한 것같다.
필자는 여기서 마지막으로 결론 삼아 한가지만 더 말해야겠다. 이번에 <전 교수에게만 답함>이라는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이 많았다. 필자의 마음엔 지금 그런 느낌들이 잔뜩 고여 있고 지금도 여러가지 느낌들이 샘솟듯 계속 울어나오고 있다.
느낌의 핵심은 <학문이란 무엇 인가?>,<왜 학문을 하는가?>, <학 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등등의 가장 고전적인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과 정면으로 대결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엇이 진정한 학술 논문이고, 무엇이 진정한 학술회의인가를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송광사 회의에서는 <학술회의>란 말이 많이 쓰여졌다. 학술회의란 말의 정의가 잘 내려져 있어서 마치 운동경기장의 게임 규칙처럼 그렇게 공인된 학술회의의 왕도가 서있는 듯이 말했다. 학술회의 란 무슨 굉장한 것이나 되는 것처럼 〈이 자리는 학술회의를 하는 장소>라느니, 또는 <우리는 지금 학술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라느니...•· 등등 〈학술회의>라는 말을 사람들이 너무 써서 귀가 아팠다. 기우였기를 바라지만 이런 식으로 나갔다가는 마치 정부 주도의 소위 반공 교육이 학생들을 더욱 좌경으로 몰고 갔다는 비난처럼 우리의 학술회의가 사람들을 더욱 학술회의에 반감을 갖는 방향으로 몰고 갔다는 비난을 받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 언젠가는 학술회의의 정의를 내리는 학술회의를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여기서 그때 느꼈던 점을 몇 가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자기의 삶을 떠난 학문은 죽은 학문이다. 자기의 삶이 살아야 학문도 산다. 학문이란 다름 아닌 자기의 삶을 드러내 놓는 일이다. 자기의 삶 따로 있고, 학문 따로 있는 것은 하나의 희극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커다란 비극일 뿐이다. 우리의 주제인 깨달음과 닦음 자체는 삶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요, 깨달음과 닦음을 하나의 문제로 삼아 토론하는 것은 학문의 영역이라고 말할 때, 만일 깨달음과 닦음의 삶은 없고 깨달음과 닦음의 학문만 있다면 이것은 삶 없는 학문이요 따라서 죽은 학문이다.
깨달음과 닦음을 문제 삼는 학술회의에서 깨달음과 닦음에 목숨을 걸고 일생을 바친 사람들은 참여 하지 않고 깨달음과 닦음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다만 학자라 는 이유로 단상에 올라가 큰 소리 친다면 이것은 20세기 지성인이 공통으로 앓고 있는 고질병을 여기에서도 앓고 있는 셈이다.
우리들이 잊어서는 안될 것은 한국에 계신 소위 고승들의 학문관 (學問觀)이다. 그들에겐 학문에 대한 이해도 존경도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학자란 아무것도 모르면서 뭐나 다 아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는 속 빈 사람들의 대명사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학문을 가 지신 분이고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대 조사들 가운데는 훌륭한 학적 업적을 남기신 분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들은 그것을 우리의 현실과 결부시킬줄 몰랐다. 그들은 있어야 할 학문을 일으키려 하지 않고, 있는 학문의 잘못만을 들추는 것이다.
고승이란 말이 깨달음과 닦음에 일생을 몸 바친 사람을 뜻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이번 학술 회의의 주역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이번 학술 회의 당시 송광사에 주석하고 계신 스님들 가운데도 회의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스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극단이다. 부처님께서 가장 경계하신 두 극단만이 우리의 풍토를 주름잡고 있는 것이다. 이변중도(離邊中道)의 작업이 필요하다. 어떻게? 보조스님이 이미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셨다. 보조 사상을 계승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불교의 풍토가 이렇게 되어버렸다고 말하면 오진일까? 천하의 선지식들은 한마디 해주기 바란다.
전치수 교수의 논평은 실로 여러가지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필자의 논문이 수미일관 줄기차게 밝히려고 애썼던 문제, 즉 삶과 학문의 거리를 좁혀 보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학술 회의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가령 예를 들면 필자의 논문 가운데 제7절 성철스님에게 바라는 것'이랄지, 제8절 '미해결의 과제' 등은 본 논문의 정점을 이루는 핵심적인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전 교수는 이것을 필자의 사적 견해로 보이므로.논평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였다.
결국 우리는 또다시 <학문이란 무엇인가?,<우리는 왜 학문을 하는가?> 하는 고전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우리의 학문을 오늘날 하이 테크 시대의 공해로부터 구출해내야만 할 것 같다. 깨달음과 닦음의 문제를 다루는 학자는 분업화된 사회의 단순한 기능공일 수없다.
199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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