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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정첩 사랑과 상상 소녀
깊은 밤.
웃는 백구 눈썹이가 경계의 눈썹을 치켜뜨고 한참이나 짖어 댔다.
고아라는 십 여분이 몇 배나 길게 느껴지고, 대문에 기댄 남자가 삐걱대는 소리에 불안해서 솜털까지 일어섰다.
긴장 끝에 눈썹이의 짓는 소리가 사라지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갔나?”
슬며시 밖을 내다보니 어스름 달이 확인해 주었다.
송이가 대문 곁에 엄마의 정신 안정제라며 심어준 핑크뮬리도 환하게 비쳐주어 안정을 찾았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핑크 방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샹데리아를 달아주며 비켜서 있으라던 관리실장의 배려가 생각나 잠이 오지 않았다.
달력을 보니 내일이 칠월칠석이었다.
갑자기 남편이 떠올랐다.
“남편이 떠난 날이 7월7석이 가까웠을 때인데 벌써 4년이 되었구나.”
송이는 엄마의 뇌수술과 정신적 안정이 매우 필요해서 아버지가 사망한 날짜를 엄마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온전한 정신이 돌아오고도 한참이나 지난 즈음에 알려주어서 7석 즈음으로 기억하고 확실한 날짜는 알지 못했다.
아픈 기억은 날짜도 알고 싶지 않아서 고아라에겐 잊혀진 날이었다.
그 시각 정각리 은하마을에는 성 한남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낮에 샹데리아를 달아 주려고 방문했다가 들었던 대문 돌쩌귀 '찌그르르' 소리 꿈을 꾸다가 깨어서
고작 두 세 차례를 보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가슴에 콕 박힌 고 아라 생각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두 돌싱에게 사랑이 찾아온 것일까?
한남은 환희를 몽골로 보냈고, 고아라는 송이를 유럽으로 보낸 외롭고 두려운 밤이 사랑을 눈 뜨게 한 것일까?
새벽에 모기가 물은 까닭을 말하라면 부지런한 사람은 빨리 일어나 아침을 시작하라는 말로 들은 것처럼
작은 사건 하나에도 두 사람의 마음엔 사랑이란 파동이 일어났다.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마당에 핀 핑크뮬리 사랑.
(제주도 여행에서 찍어 온 핑크뮬리)
그 밤.
박 하순 해설사도 내일 강의할 자료를 읽고 있었다.
2019년 올해는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라 특별히 준비된 영상과 함께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그 중에 견우성인 독수리별자리 알타이어(Altair)와 직녀성은 거문고별자리의 베가(Wega)가 가장 밝게 보이는
‘7월 7석 별자리’자료를 보고 있었다.
두 별이 봄부터 동쪽으로부터 달려와 칠월칠석 즈음이면 가장 높이 올라와 마치 두 별이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날이며,
이후로 서서히 가을로 접어들고 서쪽 하늘로 기우는데 우리의 조상들은 이런 별자리까지 세심한 관찰로 견우와 직녀의
'사랑의 전설'을 만들었고, 듣는 이마다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는 서정적 감성도 관찰자들에게 전해주리라 정리를 했다.
박교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서기자의 말대로 송이를 찾아서 몽골에간 환희와 홀로된 한남씨를 떠올렸다.
환희와 송이가 견우와 직녀성처럼 긴 기다림 끝에 만나는 사랑을 하는구나.
몽골에서 만나야 하는데 찾았나 모르겠다. 못 찾았으니까 연락이 없는 거겠지?’
‘한남씨도 너무 오래 혼자 지냈으니까 직녀를 만나야 하는데......그 아주머니 같은?’
환희와 송이. 한남과 고아라.
누군 사랑이 이루어지고 누군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일까?
사랑을 묻어두고 바라만 보아야하는 안타까운 이별을 해야 하는 것일까?
두 사람의 운명은 시시각각 변해가고 있었다.
다음날 2019년 7월7석 일요일.
천문대나 천문과학관은 월요일이 휴일이고 평일은 2시에 업무를 시작하지만 특별한 날에는 아침 일찍이다.
직원들 모두 이른 출근을 하고 주방 아주머니는 관리실장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실장님~어제 드라이브 스루 산나물 시장에 갔다가 보았는데 두 분이 다정하게 가시던데 함께 어디 다녀오셨어요?”
“예? 아~아니 그냥....”
“아 예~ 알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갔다.
그 웃음의 의미는20년 가까이 혼자 살아온 한남씨가 그분을 만나 돌싱을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웃음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 없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누가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를 지켜본 박 하순 교수는 주방 아주머니가 사라지자 웃으며 한마디를 했다.
“환희 아버님~ 어제도 만나셨어요? 우연치고는 자주 만나네요?”
“아예. 그러네요.”
한남은 우연이라는듯 웃었지만 들켜버린 속셈처럼 어색한 미소가 따라왔다.
박교수는 주방 아주머니처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박 하순 별 해설사의 웃음도 당연히 두 사람이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웃음이었다.
한남은 작업을 위해 공구를 찾다가 손에 잡힌 작은 정첩을 들고 허둥대며 공구를 찾지 못했다.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오지랖은 바위틈 사이로 연두 빛 새싹처럼 드러나는 고아라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햇빛을 따라가며 연두가 녹색으로 만들어지듯 그 끝을 만들어가는 따사로운 햇살 때문이었다.
“이걸 대문에 달아주면 소리도 나지 않고 좋겠는데 너무 작고....맞아 우리 집 리모델링을 할 때 두벌을 사 놓은 것 같은데....”
‘여벌’로 준비된 정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함박웃음을 웃게 했다.
여벌의 행복한 포만감!
“사는 것이 다~ 여벌이 있으면 만사 불여튼튼 하겠구나.”
하지만 없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한남을 몰아 세웠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영천에 나가서 사면되겠다고 정리를 했더니 갑자기 어머니께서 알을 낳던 암탉을 잡아 삶아 주었던
날이 떠올랐다.
암탉의 배를 갈랐는데 내일 모레글피에도 낳을 샛노란 알들이 크기 순서대로 줄줄이 들어차 있었는데 작은 알들은 내일을
행복하게 만드는‘ 준비된 여벌’이었다.
한편.
송이는 혼자 하는 유럽여행을 접고 어렸을때부터 꿈꾸었던 마지막 별 여행지 몽골로 날아왔다.
'툴강'을 한 시간이나 달려 상류에 도착하니 '테를지 국립공원'이었다.
차에서 내려 목조다리를 건너는데 자꾸만 환희와 함께 건넜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희 생각만 하다가 너무나 한쪽으로 치우친 것 같아 엄마에게 미안했다.
혼자 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그때야 아버지 기일이 생각났다.
오늘이 7월7석이니까 아버지 기일을 훌쩍 넘겼다는 생각이 들자 엄마 마음이 아플까봐 돌아가신 날짜도 알려주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전화를 해 볼까?”
옆집 할머니 댁에 전화를 걸어 엄마를 데려와 달라고 한 뒤에 다시 걸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 없이 집에 혼자 있으니까 심심하지? 내가 불효 딸이라 아버지 기일도 모르고 지나가서 미안해 엄마?”
“어? 나도 몰랐어~ 근데 기일까지 들먹이고 웬 일?"
"응 오늘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석이잖아? 교회 갔다 와서 아빠 생각나면 별이라도 보러 가시라고.”
“그래? 너 내가 거기 가는 것 싫어하잖아~”
“아냐~ 이젠 엄마가 건강한데 설마 아빠 닮은 분을 아빠라고 착각하고 쓰러지는 일도 없을 건데 뭘 싫어해~ 하하하....”
“그래~ 나 엄청 건강하다 하하하 고맙다 딸.”
전화를 끊은 고아라는 별을 보러 왔다는 핑계를 삼아 관리실장을 만나러 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그 사람과 더 진행된 사실을 딸이 알면 어쩌지 하고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고아라의 뇌를 '돌싱'이라는 말이 점령해 버렸다.
그 사람이 돌싱이라는 사실에 더 큰 무게를 두자 마치 좋은 향과 소금기 섞인 치약으로 양치를 하고 깨끗이 행군 기분처럼
상쾌하게 해결 되었다.
돌싱 고아라에게 찾아온 사랑은 한번 결혼을 했다는 경험의 장점으로 판단이 신속하게 바뀌었다.
옆집 할머니 권사가 말했다.
“송이버섯 권사님 아점 먹었어? 오늘은 주일이니까 교회 가서 먹을까?”
“예? 아 그래요 좋아요.”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고아라는 송이가 할 말이 남았나 싶어 수화기를 바라보았다.
전화기를 든 할머니가 대답을 몇 차례를 하고 건네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남자야 받아봐 송이버섯 권사님.”
“예?”
놀란 눈으로 건네받은 수화기에서 관리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 아라씨. 제가 정첩을 보다가 생각나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예? 정첩이요?”
“예. 제가 내일은 쉬는 날인데 삐걱 거리고 불편한 대문을 고쳐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예? 너무나 감사한데 이렇게 신세만 져도 될지 모르겠어요.”
“예 그럼 하락하신 걸로 알고 끊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엉겁결에 대답을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자 할머니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송이버섯,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예? 예~”
“먼데?”
“샹데리아 갈아 준 분이 대문도 고쳐 준다고 오신댔어요.”
“그래? 좋겠다. 송이버섯 엄마야가 남자가 생긴 것 같다 그치?”
“아니라니까요~권사님도 차암~”
할머니는 장난 끼가 발동해 얼굴이 발개지라고 찬찬히 고 아라의 얼굴을 살폈다.
아라는 속내를 들킨 듯 얼굴이 발개졌다.
할머니는 개구지게 귀까지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그기지 뭐 나도 다 안다. 잘 해봐 나처럼 이렇게 평생 혼자 살지 말고, 나도 스물 댓 살만 젊어도 해 보는건디.”
“권사님도 차암~”
“아니야~ 대문을 고쳐 가지고 활짝 열어놔 그 양반 맘대로 들어오라고.”
“아이고 권사님 놀리지 마세요. 그러면 안 놀아 줄 거니까.”
“제발~ 나하고 놀지 말고 그 양반하고 놀아라. 내 소원이다 하하하....”
고아라는 더 이상 함께 있다가는 얼굴이 달아올라 터질 것 같아 달아나듯 집으로 왔다.
심장은 100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마구마구 뛰었다.
머리에서 정첩이라는 두 글자가 맴돌았다.
아라는 가슴을 대보는 정첩처럼 핑크 빛 한 짝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연결고리에서 부드럽게 돌아가는 쇳소리는 아마도 핑크빛으로 익어가는 사랑소리였다.
(동네 한바퀴를 돌며 찍어온 정첩1)
송이는 전화를 끊고 아스라이 지나간 고3때 7월 7석을 떠올렸다.
중2부터 만든 별보기 동아리 ‘별 볼일’리더로 있으면서 별에 관하여는 해박한 지식으로 남녀친구들 앞에서 활달한 송이였다.
칠석을 앞두고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 가시기전에 동아리 친구들이 모였을 때 송이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구연동화를 하듯
'모노드라마'를 하듯 연극배우가 되어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마치 환희‘별 신동’을 본 것 같다며 짝이 맞다고‘별 신녀’라고 별명을 지어 주었던 생각이 났다.
“내가 별 신녀?”
송이는 상상속의 환희와 별 신동 별 신녀가 되어 손을 잡고 걸으며 다시 1인2역 연극배우가 되었다.
“환희야 오래된 나무다리라 무섭다.”
“아니야 콘크리트 다리에 너무 익숙해서 그래~ 견우와 직녀는 까치와 까마귀 머리를 밟는 오작교도 건너는데 하하하.”
무섭다고 말한 송이는 환희의 웃음소리를 들어 보지 않았는데 환희처럼 웃었다.
송이는 혼자 하면서도 둘이 하는 상상여행이 행복하고 즐길만 했다.
여행의 피로가 점점 풀려 가고있었다.
길가의 커다란 ‘거북바위’회색의 아름다움, 주변은 아직은 여름이라 아름답다는 가을 색을 볼 수 없었다.
오지 않은 것에 기대는 더 아름다울 수는 있어도 현재를 즐기지 못하면 여행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유럽에 더 머무를 걸
하고 후회가 되었다.
큰 거북이를 보며 엄마 병간호를 한다고 환희와 거북이 등처럼 많은 추억 쌓기를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환희와 진도가 참 느렸다. 아니 없었구나.”
(몽골 국립공원 테를지 명물 거북 바위)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돌무더기가 보였다.
돌무더기 중앙에 색색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송이는 한국에서 온 가족 관광객의 뒤를 따라 다니며 혼자 온 것에 대한 위로도 삼았다.
관광객 중에 해박한 딸이 말했다.
“아버지 저건 우리나라에 서낭당과 같은 것인데‘어워’라고해요. 돌을 던져놓고 소원을 빌어 봐요.”
송이는 그들이 하는 토속 신앙을 따라하지 않았다 하지만 ‘환희랑 함께 왔다면 좋았을걸.’하는 생각이 따라왔다.
국립공원 바양하드 게르촌에 숙소를 잡고 게르에 딸린 테라스에서 바라본 경관의 뷰가 좋았다.
레스토랑도 보였다.
늦 터진 요리 만들기에 궁금증이 폭발하여 몽골 전통 음식이 뭘까 하고 가보고 싶었다.
레스토랑이라고 했지만 내부 구조가 게르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일정에 쫓겨 살펴보기만 하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왔다.
자연에서 즐기는 단체 승마 트레킹은 두려운 마음을 애써 참으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가족 중에 70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를 보고 용기를 얻어 탄 것이다.
반짝 거리는 강줄기와 테를지 국립공원의 기암괴석 중에 '기도하는 어머니'가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파아란 하늘과 구름, 짙푸르던 초원은 아주 조금씩 탈색을 시작하고 있었다.
자신의 황갈색 머리카락처럼 군데군데 닮아 가고 있었다.
여유로움...강에서 잠시 쉼을 찾는 여유.
숲 사이로 흐르는 강줄기에 어우러진 나무가 노란빨강 단풍이 들면 무척 아름답겠다고 생각했다.
빠듯한 시간을 보내냈지만 전혀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몽골 전통음악과 전통춤과 기예공연을 보고 난 후에 아홉시부터 진행하는 별을 보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다.
보현산 천문 과학관의 별 신동 환희라도 보게 되는 듯 기대와 설렘으로 다가왔다.
강행하듯 몰아치는 일정을 송이는 혼자서 즐길 수밖에 없었지만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아니 그 전부터 환희와 함께 했다.
에펠탑도 둘이 오르고 몽마르뜨 언덕도 둘이 오르고 미술관도 보이지 않는 손을 잡고 걸으며 관람을 했다.
말을 타고 웅덩이를 건너고 초원을 거니는 것도 상상의 세계로 불러낸 환희와 함께였다.
송이는 상상에 만취된 ‘환각소녀.’가 되었다.
환희의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는데 가상의 목소리로 '에델바이스' 노래를 불렀고 1인2역 알프스소녀 하이디도 되었다.
“환희야 우리 저기나무 아래서 쉬었다 갈까? 꽃도 참 많고 예쁘다.”
“응~ 그러자 에델바이스 봐라.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실체도 없는 환상속의 환희와 송이는 초원 구경을 했지만 시간이 많이 남아서 관측소에 일찍 도착 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자 황갈색 긴 머리카락이 날렸다.
그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송이씨~ 왔어요~”
송이가 돌아보았다. 낮선 사람이었다.
“누구세요? 저를 아세요?”
먼 몽골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가 반갑기도 했지만 기억에 없는 사람이라 움찔했다.
박 조국 해설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어디에 두고 혼자 계십니까?”
“예? 어머니요? 저를 아세요?”
어머니라는 말에 여행상담 때 엄마와 함께 간다고 했는데 그걸 곁에서 들었던 사람일까 생각했다.
“아, 왜 이러십니까~거석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주인공을 찾아 온 사람을 제가 모르겠습니까?”
“예?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요?”
더더욱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그 사람은 말을 해놓고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갸웃했다.
송이는 억지로 꿰맞추자면 환희와 국경과 시공을 초월하여 이곳까지 와서 상상 여행을 함께 하고 있으니
‘국경과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라고 하면 말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본적도 없으니 순 어거지 논리였다.
갸웃하던 그 사람이 다시 물었다.
“예? 왜 이렇게 시치미를 떼실까 함 송이 씨가.”
“예? 저는 함 송이가 아니고 한 송이 인데요 무얼 잘 못 알고 말씀 하신 것 같은데요?”
“예? 그럴 리가....”
송이라는 이름은 맞지만 성이 달라 반만 맞는 말에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까지 착각 한다는 것은 쌍둥이가
아니고서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박조국 해설사는 옷차림이 어제와 다른 것을 보고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때 함께 근무를 하는 해설사가 불렀다.
“박 선생님~”
“아 예 갑니다 가요~”
박해설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를 떴다.
송이는 뭔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몽골 전통음악과 기예공연을 보며 상상속의 환희와 박수를 하고 환희가 옆에 있는 듯 눈을 깜빡이며 웃어 주었다.
옆에 앉자있던 외국인이 마주 보며 웃어 주었다.
송이는 머쓱했다.
흥겹게 관람을 마치고 별 해설 시간이 되자 별 해설사가 등장했다.
송이는 깜짝 놀랐다.
“어?저분이 해설사 였구나. 저 분이라면 나에게 실없는 말을 건 낼 사람이 아닌데?”
송이는 해설을 마치면 다시 물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조금 전의 말들이 몹시 신경이 쓰였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 엄마가 어디에 있냐고? 누가 나를 닮았지? 얼마나 많이 닮았으면 착각해?’
해설을 듣는 둥 마는 둥 빨리 끝나기를 바랬다.
그런데 해설사는 끝나자마자 사람들에 쌓여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게르로 돌아 온 송이는 잠이 오지 않았다.
궁금증을 지우려고 들고 온 카메라로 별 사진만 늦도록 찍었다.
다음날 월요일.
한남은 공구 창고에서 찾은 여벌의 큰 돌쩌귀 정첩에 입이 귀에 걸렸다.
그때마침.
출 퇴근과 과학관에서 이동 운송 요량으로 쓰려고 상데리아를 사러 갔을 때 주문했던 중고 오토바이가 깨끗하게 단장되어
트럭에 실려 왔다.
한남은 오전 내내 주변 길과 언덕과 내리막길에서 운전 연습을 했다.
땀이 흥건히 젖을 무렵 자신감이 상승했다.
“이정도 쯤이야....”
아점도 잊고 점심도 생각하지 않고 작업공구와 함께 여벌을 행복 돌쩌귀 정첩도 실었다.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오토바이가 달리면 몸이 식을까봐 바람막이 옷을 덧입고 몸을 실었다.
“부르르르......”
고아라도 4번째 만나는 큰 바위 얼굴과 듬직한 어깨로 자신을 잘 관리 해줄 것 같은 관리실장 한남을 기대하는
설렘의 월요일을 맞이했다.
한남이 오토바이로 달려간 옥계마을.
고아리는 아침 일찍부터 서성이며 몇 차례나 집 안팎을 들락 거렸다.
대문에서 서성이다가 옆집 할머니에게 들키면 어쩌나 하고 마중을 나가듯 멀리 나갔다.
그때 오토바이가 한 대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오토바이에 탄 사람이 관리실장처럼 보였다.
반가움에 어쩔줄 몰라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불렀다.
“한남씨~”
그렇게 불러 놓고 놀라 얼른 손이 입으로 갔다.
발개지는 얼굴과 설렘으로 뛰는 가슴은 아라의 전유물이었다.
부르고도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스스로도 놀랐다.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모습을 알아보았는지 쏜살같이 달려온 관리실장이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나와 계셨네요?”
“예 어서 오세요. 또 수고를 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뭐~갑시다.”
“예.”
오토바이는 천천히 아라의 걸음에 맞춰 집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선 한남은 공구함을 집어 들었다.
아라는 공구함을 든 남자가 만능 해결사처럼 다가왔다.
속으로‘어머’라고 말하며 ‘심쿵’했다.
한남은 망가진 돌쩌귀에 달린 작은 나무를 톱으로 썰고 대문을 뉘였다.
아라가 말했다.
“조심 하세요~”
“아 예~”
(동네를 돌며 고물상 문에서 찍어 온 녹슨 정첩2)
가져온 두꺼운 각목을 대고 못질을 해서 돌쩌귀를 박을 기둥을 만들고 돌쩌귀 정첩을 달았다.
망칫소리 톱 소리에 아라는 작은 눈을 감았다 떴다 어깨는 움찔 거렸다.
“싹둑 뚝딱 쿵쾅 탁 탁탁...”
망치질도 끝나고 대문을 세웠다.
“자 한번 문을 닫아보세요 아라 씨.”
“아 예. 수고 하셨어요 어머나~”
육중한 대문이 부드럽게 돌아갔다.
아라는 기분이 좋아서 배꼽 인사를 했다.
“한남씨 감사합니다.”
한남은 너무나 얌전한 배꼽 인사에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입 꼬리는 웃고 있었다.
아라가 말했다.
“수고 하셨고요 점심때가 되었으니 제가 식사 대접을 하고 싶은데 찬이 마땅치 않으니까 저 아래 유명한 산채나물
비빔밥집에 가서 식사를 했으면 좋겠는데요?”
“아닙니다. 집에 가서 먹겠습니다. 별로 한일도 없는데요 뭐~”
“아니에요 그럼 들어가서 옷 좀 갈아입고 수건을 가지고 나올 테니까 수돗가에서 세수 좀 하시고 땀 좀 식히고 계세요?”
아라는 허락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남은 세수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혼잣말을 했다.
“손 볼 곳이 많은 집이구나....”
아라는 옷장을 열었다.
유럽 여행을 가려고 샀던 바지와 셔츠를 입고 수건을 꺼내 들고 나왔다.
“여기 수건요.”
“아 예. 감사합니다.”
한남은 네모반듯한 수건을 받아들자 손에서 보송보송 소리가 나는 듯했다.
남자만 둘이 살며 거칠게 갠 수건이 전부였다가 막 제대한 아들이 각 잡아 개어 둔 수건을 처음 써보았던 그 날이 생각났다.
수건을 돌려받은 아라가 물었다.
“거기까지 오토바이를 끌고 걸어가긴 그렇고 뒤에 타도 될까요?”
“예? 저도 오늘 처음 타보는 거라 제 운전 실력을 못 믿어서.....”
“예? 괜찮아요. 저속으로 가다가 넘어진다고 해도 얼마나 다치겠어요. 하하하.”
“예? 그렇긴 하겠네요.”
아라는 과학관에서 식사할 때는 주변 분위기에 기가 죽어 있었지만 자신의 집 마당이라 백구 눈썹이처럼 활짝 눈썹을 치켜
올리는 웃음도 나왔다.
웃음은 다음말로 이어졌다.
“사실 제 로망이 있었거든요?”
“뭔데요?”
“오토바이 뒤에 타 보는 거 에요.”
한남은 아라가 그 말을 하고 수줍어 손이 입으로 가는 모습이 아주 귀엽게 다가와 눈을 감고 이마에 손을 집고 아찔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럼 로망 한번 하세요.”
“오 예~”
아라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한남은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속 마음을 얼굴로 보일 수가 없어 눈길을 돌렸다.
공구함을 발판위에 싣고 아라를 태웠다.
아라가 말했다.
“무서우니까 좀 잡을게요.”
“아 예.”
한남은 옆구리에서 전기가 찌릿 겨드랑이까지 올라왔다.
'달달달달... '오토바이는 조심스럽게 짧은 거리를 거북이처럼 갔다.
산채 비빔밥을 시켜 놓고 두 사람은 대화를 잃었다.
전처럼 막상 대화를 해야 하는 시간은 가슴속에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이 가로막아서 좁은 공간 목구멍을 뚫고 나오질 못했다.
한남이 겨우 할 말을 찾았다.
“집에 손 볼 곳이 많더라고요. 오래된 집이라서요.”
“아 예. 고쳐서 계속 살집이 아니고 휴양 차 산 집이라서 손을 안 봤어요.”
“예? 그럼 언제 대구로 돌아 가실건가요?”
“예? 어떻게 알았어요. 집이 대구라고?”
한남은 실수를 했다.
이장에게 들은 말을 비밀을 지키지 못하고 발설하고 말았다.
‘그게...’ 하고 망설이자 아라가 말했다.
“이장 장로님께 들었지요? 괜찮아요. 말씀 하셔도. 다 들어서 아시겠지만 사실...”
아라는 말을 하려는데 눈물이 먼저 나왔다.
한남을 얼른 휴지를 뽑아 주며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라는 돌아서 눈물을 닦고 표정을 고치고 한남이 미안해 할까봐 웃으며 말했다.
“저는 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
“아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한남은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감사하다고 해야 맞는 말일까?'
아라는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말로 혼자만 간직한 돌싱의 사랑 고백을 했다.
한남도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 계속 만나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둘 다 무척 행복해서 나온 대답이었다.
식후 두 사람은 한층 가까워짐을 밝은 표정으로 주고 받았다.
밥을 두 차례나 먹었으니 가까워 질 수밖에 없었다.
아라가 먼저 일어나 계산을 하자 한남을 커피를 사겠다고 말했다.
길 건너 커피숍으로 들어 갔다.
마주보고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또 말이 끊겼다.
한남이 먼저 말했다.
“우리는 분위기 있는 곳에만 가면 말이 끊겨요. 차라리 산책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정말 그러네요. 나가지요.”
가까워 졌다고 생각했지만 딱히 말이 끊기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굳이 있다면 실수를 하지 않는 신중한 선택적 말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화란 그리 만만치 않은 것이고 애쓰고 힘든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공작은 아무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날개를 펴지 않고 꼭 필요한때 어렵사리 날개를 활짝 펴는 것처럼 대화란 공작의 날개처럼
어렵게 펴야 감동을 일으킨다.
두 사람은 커피숍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둔 채 숲길을 돌아 나오기로 했다.
가을은 멀었는데 보현산 부근 숲속은 좀 더 빨랐다.
아라는 숲길로 들어설수록 겉옷을 걸쳐 입지 않고 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좁은 어깨가 더 좁아졌다.
숲은 들어 갈수록 해를 차단하고 습한 기운을 내뿜어 돌싱의 어깨와 가슴을 더욱 시리게 했다.
한남은 큰 눈으로 아라의 그런 모습을 보자 찬 서리를 맞은 코스모스 같았다.
바람막이 옷을 벗어 아라의 어깨에 살며시 덮어 주었다.
아라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한남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아라의 눈은 관리실장의 관리와 보호를 받고 싶은 애절한 눈빛이었다.
그 감성은 시린 가슴을 뜨거운 피로 만들었다.
한남도 20년을 한 번도 뜨겁게 달궈 보지 않아서 녹 슬었던 용광로가 급히 데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숲의 길이가 너무나 짧았다.
두 사람이 선 곳, 그 하늘에서 눈부시고 뜨겁게 햇살이 내려오고, 맞은편에서 노부부가 걸어오고 있었다.
둘은 아무 일도 아무 말도 없이 없이 바라보기만 했는데 이후로 더욱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돌싱의 뜨거워진 가슴의 어색함 때문에.
두 사람은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아라는 올 때 보다 더 힘껏 한남의 허리춤을 잡았다.
로망을 완성하려고 얼굴을 기댔더니 얼굴이 따뜻했다.
한남은 마음이 따듯했다.
빈 가슴으로 무엇이 파고 들었는지 오늘 두사람은 고쳐놓은 핑크 대문 정첩처럼 힘차게 돌았다.
(홈이 있어 파고들며 사랑이 익어가는 정첩3)
-환희 부자를 사랑하는 고아라 모녀의 사랑. 다음 편을 기대 하세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