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편지
사랑하는 벗에게, 우리 함께 우리의 내적인 자아의 모습을 성찰해 보세. 시간은 우리를 떠밀고 있고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자신을 최대한 활짝 연다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닌가. 나는 자네가 스스로를 잘 준비해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네. 바로 그런 점에서 나는 자네를 존경한다네.
첫 번째 편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사랑하는 벗에게.
오늘은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놀라운 결과들과 지속적인 도움을 얻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한 명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자네와 함께 나누고 싶네(여기서 그 형제란 바로 로렌스 형제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겸손이 그로 하여금 자신을 제삼자화하게 했을 것이다)
장장 40년이 넘는 동안 이 형제의 주된 관심은 가능한 한 하나님 가까이 머무는 것이었다네. 그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만한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행하지도,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고자 했다네. 이유란 별다른 게 아니었네. 하나님의 순전하신 사랑에 대한 자신의 감사를 표현하고 싶을 뿐이었지. 또 하나님은 그런 감사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영원토록 합당하신 분이 아니시던가.
이 형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에 완전히 점점 배어들어가 매사를 그것에만 의뢰하여 그분의 도우심을 입어 살아간다네.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는 기쁨이 솟구쳐 올라와 어떤 때는 그 기쁨을 어쩌지 못해 사람들 보기에 유치해 보일 뻔한 일들을 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네. 감정이 너무 격렬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표출을 해야 할 테니까 말일세.
혹 어쩌다 그가 이 거룩한 임재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즉시 그에게 그것을 알려 오신다네. 그런 일은 종종 분주하게 일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 일어나곤 한다네. 물론 그는 하나님의 이 부르심에 신실하게 응답을 하지. 어떤 때는 부드럽고 사랑에 찬 시선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나의 하나님, 저는 온통 하나님의 것이오니 제게 뜻하시는 바를 모두 이루소서” 하는 식의 애정 어린 고백을 드리기도 한다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은 이내 그의 영혼에 다시 임하사 그에게 다시 쉼을 주시며, 그가 드린 그 몇 마디의 고백에 마냥 흐뭇해하시고 기뻐하신다네.
이런 일을 거듭 경험하면서 이 형제는 자기가 어떤 일을 행하건,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건 하나님은 항상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재차 확신케 되었다네. 그런 상주(常住)하시는 보배를 소유했으니 그가 누린 흡족함과 기쁨이 어떤 것이었겠는지 한번 상상해 보게. 그는 그 보배를 찾고자 초조해 하지도 않으며 그것이 있는 곳을 알아내고자 염려하지도 않는다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그것을 찾았고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그것으로부터 취해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라네.
그는 종종 사람이란 너무나 작은 것에도 쉽사리 만족해 버리고 만다고 지적하면서, 그러한 우리 인간들을 소경이라고 부른다네.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주시려고 준비해 놓으신 다함 없는 보물이 많이 있다는 얘기와 함께 말일세. 그러니 무엇 때문에 우리가 짧은 한 순간의 경배로만 만족해야 하겠는가? 그런 빈약한 헌신 가지고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의 물줄기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네. 하나님은 살아 있는 믿음으로 충만한 영혼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의 속에 격류와도 같은 당신의 은혜를 부어 주신다네. 이제 열린 통로를 발견한 그 격류는 마음껏 세차게 뿜어 나게 되는 거지.
우리는 종종 그 격류를 귀히 여길 줄 몰라서 그만 흐름을 탁 끊어 버리곤 하지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것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네.
사랑하는 벗이여, 함께 우리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세. 거기 방치된 둔덕을 헐어 버리고 은혜가 들어오도록 길을 평탄케 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도록 하세. 자네와 나는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왔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인생의 시간들은 그리 많지 않다네.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 그러니 단 한 번밖에 없는 그 죽음을 늘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세.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함께 우리의 내적인 자아의 모습을 성찰해 보세. 시간은 우리를 떠밀고 있고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져야만 하지. 자네가 스스로를 잘 준비해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러니 자네는 진노 중에 데려감을 당하게 되지는 않을 걸세. 바로 그 점에서 나는 자네를 존경한다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자신을 최대한 활짝 연다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걸어가야만 하네. 영적인 세계에서는 진보하지 않는 것이 곧 뒤로 물러가는 것 아니던가.
자기의 영혼 안에 성령의 바람을 지닌 자들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조차도 앞으로 미끄러져 나아간다네. 만일 우리 영혼의 배가 풍랑이나 폭풍 때문에 아직도 흔들리고 있다면. 우리는 줄곧 우리 안에서 쉬고 계시는 주님을 깨워야 하네. 그러면 그분은 이내 바다를 잔잔케 해주실 것이라네.
나의 사랑하는 벗이여, 지금까지 내가 이런 얘기를 자네에게 한 이유는, 혹 이것이 자네가 하나님과 자네의 관계를 다시 성찰해 보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였네. 만일 어찌 어찌한 이유 때문에(나는 그런 것이 없기를 바라지만) 자신의 그런 모습이 다소 식어 버린다 해도, 이 형제는 분명 자신의 태도에 다시 불을 붙일 것이라네.
자네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첫사랑과 첫 열정이 생각 나는가? 이 형제 얘기를 하다 보니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군. 자네도 마찬가지일 걸세. 세상적으로 말하면 그는 그리 유명한 사람은 아니라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그는 그분의 부드럽고 자상한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지. 우리도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하여 진지하게 기도해 주기로 하세.
첫댓글 전도사님 이글을 직접 치신거죠? 책을 보시면서..저는 가끔 그렇게 해볼까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직은 게을러서 반복적으로 읽으며 묵상하기만 합니다. 베니힌의 안녕하십니까 성령님보다는 이책이 뭔가 잡힐듯하면서도 모호한 느낌입니다. 연습이 일천해서 그렇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