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도 뒷산 정상 산책로에서 내려다 본 섬마을 전경. 해안선을 따라 38가구 11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며 홍합양식 등으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 38가구 110명 어민 주업은 홍합양식 - 낚시꾼 쉬어가는 '해상콘도' 인기 - 특산물판매장·배 접안시설 조성 중
나그네를 태운 소형 어선(1.9t)이 육지를 뒤로한 채 힘차게 물살을 가른다. 배 후미에 매달린 태극기가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러댄다. 엔진이 내뱉는 소음이 점점 커져가면서 채찍처럼 차가운 바람이 얼굴과 손등을 마구 할퀸다.
육지로부터 직선거리로 350m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실리도(實利島). 옛 마산 시가지로부터 배와 승용차를 이용해 30여 분이면 다다르는 이 섬은 창원시의 몇 안되는 유인도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다. 대도시와 인접해 있어 바다 낚시꾼 사이에선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최근 이 섬은 낚시꾼들의 천국에 머물지 않고 관광과 힐링의 공간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낚시와 홍합양식으로 먹고사는 섬
섬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단층집 모양을 한 '해상콘도'(유료낚시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함께 배를 탔던 일행 4명이 낚시대와 배낭을 챙긴뒤 잽싸게 콘도 위로 오른다. 콘도 내부는 싱크대와 아담한 크기의 방을 갖춰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들이 하루쯤 쉬어갈 수 있는 힐링장소로 제격이었다. 출렁이는 파도에 맞춰 리듬을 타는 콘도는 흡사 아이를 잠재우는 요람을 연상케했다.
낚시객 최철호(58·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는 "요즘 호래기(꼴뚜기)와 게르치(노래미 성어), 감성돔이 제철이다"며 "여기서 하루 푹 쉬고 나면 또 찾게 될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고 말한 뒤 낚시줄을 힘차게 던진다.
이윽고 도착한 실리도 항구. 다소 탁한 빛을 띠는 마산 앞바다와는 달리 이 곳의 물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주민들은 "물살과 조류가 어느 곳보다 강해 오염물질이 씻겨나가기 때문"이라며 비결을 귀띔해줬다.
마을에는 U자 해안을 따라 크고 작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다. 38가구에 110명의 어민들이 조업을 하고 있는 섬마을의 주업은 홍합양식(8㏊)이다. 수확이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올해 작황이 그다지 좋지 않아 주민들은 울상을 지었다. 어구를 손질하던 한 어민은 "비가 내리지않아 염도가 높아지면서 성장하던 홍합의 탈락현상(양식줄에서 떨어져 나감)이 심했다"며 안타까워 했다. 어선들은 제철을 맞은 물메기, 대구를 통발 등으로 잡아 새벽녘 마산수협에 내다 판다. 낚시업을 하는 성광호(4.5t) 선장 하재수 씨는 "요즘 주꾸미를 잡는 낚시꾼들을 싣고 멀리 거제 칠전도까지 간다"고 전했다.
해상콘도도 수입원이다. 주간에는 1인당 1만5000원, 야간에는 2만 원을 받는다.
■전설과 근대 역사가 살아숨쉬는 곳
마을 뒷산 정상에서 앞바다를 내려다 보면 초아도라는 작은 섬이 손에 잡힐듯 자리잡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아낙네가 머리를 풀고 땅에 앉아 울면서 아이를 부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이름은 아득한 옛날 실리도에 살던 과부가 아들과 함께 이 작은 섬에 조개를 캐러 들어 갔다가 물이 차면서 급히 빠져나갔는데 그만 아들을 깜빡 잊고 왔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전설 속에는 진실 여부를 떠나 섬 사람들만이 간직한 '아픔과 한'이 서려있다. 이야기를 듣고 그 섬을 다시 바라보니 뭔가 애틋한 자태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현재 이 섬은 주민들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주는 바지락 양식장으로 변모했다. 상품성이 뛰어나 마산 어시장에 내놓으면 값을 더 쳐준다.
실리도는 또 러·일 전쟁의 상흔이 아로새겨진 곳이기도 하다. 군사적 요충지라는 점 때문에 러시아 해군의 주둔지이기도 했지만 일본이 승리한 뒤 일본군 진지로 활용됐다. 한때 탄약고 등의 흔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나라가 힘없던 시절 우리 국토가 외세에 유린당한 흔적이라 씁쓸한 기분이 든다. 마을 안쪽에는 벽돌로 견고하게 지은 일본식 창고가 있다. 섬사람들은 이 건물도 일본군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변신을 준비하는 섬
도시민들에게 낚시로 유명한 섬으로만 알려졌던 실리도는 요즘 새로운 내일을 꿈꾸고 있다.
21만5352㎡의 크지 않은 면적이지만 아름다운 섬 경관을 활용하기 위해 창원시는 올해부터 2년간 12억5000만 원을 투자, 해안 둘레길(1100m)과 특산물 판매장, 배 접안시설 등을 조성 중이다. 또 초아도 바지락 양식장을 활용, 가족단위 조개류 체험장을 만든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마을의 좁은 길을 따라 뒷산으로 오르면 산책로가 나온다. 아직 완성된 상태는 아니지만 섬 허리춤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이어지고 있어 남해안의 수려한 경관을 조망하기엔 최적의 장소다. 둘레길을 따라 섬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면 왼편으로 거제도가 눈 앞에 있는 양 펼쳐진다. 그 순간이었다. 숲속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튀어나와 멈춰서더니 이내 숲속으로 사라졌다. 한 주민은 "고라니는 육지에서 헤엄쳐 건너 왔으며 이젠 새끼를 낳아 4~5마리로 식구가 늘었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 서유수 어촌계장
- "최고의 해돋이 조망 장소…거가대교 물론 태평양 보여"
"우리 마을 사람들 자랑 하나 할까요? 젊은이나 나이드신 분이나 정말 부지런 합니다. 덕분에 잘 사는 섬이라고 소문났죠."
실리도의 서유수(57·사진) 어촌계장은 기자와의 만남에서 먼저 섬 자랑부터 늘어놨다. 표정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걱정도 많다. 생업을 위해서는 일년 열두달을 바다에서 지새야 하지만 점차 나이든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지금부터 미래를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서 계장을 비롯한 어민들은 실리도를 '찾아오는 곳'으로 바꾸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 계장은 "연간 2000여 명의 낚시꾼들이 방문을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렵다. 평생을 바다에서 고생한 많은 주민들이 좀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작은 섬이지만 인구 109만 명의 통합창원시와 인접해 있어서다. 육지인 마산합포구 구산면 원전마을에서 이곳까지는 배로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 둘레길이 조성되고 있는 데다 섬 뒷쪽은 해돋이 장소로 최적이다. 거가대교는 물론이고 그 너머 태평양까지 조망할 수 있다.
주민들은 장기적으로 섬에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심어 풍치림이 뛰어난 곳으로 만드는 계획도 구상 중이다. 또 인근에 들어설 마산로봇랜드, 마산권과 거제를 연결하는 이순신대교가 건설되면 실리도는 관광섬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주민들은 현재 창원시의 도움으로 추진 중인 '실리도 관광 및 소득기반정비사업'이 내년말 끝나면 섬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서 계장은 "새해 해돋이 행사를 우리 마을에서 열 계획으로 있다. 섬에서 잊지 못할 해돋이를 보려는 시민들에 한해서는 무료로 배를 태워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